요한복음18:25절을 보겠습니다. (신 180쪽)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입니다
그는 유대교의 어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대제사장을 어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종교가 되어 이 대제사장의 말을 따라 그대로 행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그들은 대제사장을 그렇게 대했고 주님이 오셨을 때 그들의 말에 따라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우리는 이 종교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철학적 생각으로 종교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종교가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싫어하시는가 하면 그들이 종교가 되어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고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으로는 모른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14장부터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17장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성령이 오시면 깨달을 수 있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종교는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대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고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 역시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 시키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입니다
주님께 그 교훈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치셨고 은밀히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대제사장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아십니다.
그들의 생각까지도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대로 주님께서는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대제사장이 묻고 있지만 말씀을 해 주시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구속의 모든 일을 이루시고 십자가를 지시는 것으로 다 이루시기 때문에 굳이 더 이상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가 대제사장이라 해도 더 이상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대제사장도 그렇고 그 하속도 역시 주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시고 또 그 모양도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을 보고 자기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손으로 치고 있다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르기 때문에 십자가로 죽이려고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헬라 사상에 팽배하던 시기에 종교에 의해서 만들어진 삼위일체라는 신을 믿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주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인생들의 철학으로는 종교인으로 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유대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유대교는 시편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루고 있고 시편에서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지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종교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율법주의자인 욥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스스로가 행한 행위를 가지고 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무지한 자들은 이렇게 자기가 어떻게 영생을 얻는 줄을 모르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욥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율법을 잘 지킨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회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하는 행위가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를 하셨지만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그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고 있고 그 하속은 주님을 손으로 치는 담대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만의 일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 역시 똑같이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주님께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을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잘못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잘못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초등학문에 사로 잡혀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그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잘못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또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천국복음을 전파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성경을 본다고 해도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 인생들에게 소자,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문자 그대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가 부인하여 "나는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우리에게 약속을 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포도원의 비유에서 일군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그들이 일을 마치고 나서 한 데나리온씩 주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것은 한 데나리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많이 줄 수도 없고 더 적게 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데나리온도 더 많이 받으려고 하다가 주님의 말씀과 같이 버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데나리온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을 한 성도만이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만이 주님으로부터 한 데나리온을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을 하지 않고 종교인으로 산 사람은 원망을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온갖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과 같이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지만 그들은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사람의 철학을 따라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도리어 복음에 복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주님의 제자입니다. 물론 어느 누가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주님을 따랐던 것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다고 하니까 자기도 함께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도 베드로에게 인생들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네가 오늘 밤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편88:18절을 보겠습니다. (구 867쪽)
“주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나의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을 하시니까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 사도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이 성경말씀을 보면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가 세 번을 부인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냥 무심히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시편31편, 시편38편, 그리고 시편88편 등에서 친구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멀리 섰다고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실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도 베드로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은 이렇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주님께서 물론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하시는 일도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직접 말씀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은 분명하나 그분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도 기록된 말씀의 성취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냥 뜬금없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영생을 얻게 하려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거의 모든 말씀도 성경에 기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진리로 인도하시는 말씀 역시 같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도 없고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거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해서 잘 찾지를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 역시도 성경을 보고 가능한 찾으려고 지혜를 구하고 있지만 인생인지라 한계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인용입니다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교회사를 보면 이렇게 인용을 하는 것을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사 책을 보면 초기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때가 지나가고 이제 150년이 넘어가면서 서로 진리에 대해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그때 벌써 종교가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창조된 세상이라는 것을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보고 있고 특히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초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17장4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신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인생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창조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루었습니다.
역시 창세기에서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을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일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2장4절에서 우리 인생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다고 성경을 시작하고 있지만 인생들로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저는 모든 말씀의 기초는 성경에서 세워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종교에서 만든 조직신학이라는 책은 종교인들이 만들어서 가르치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그런데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보다 그 책을 더 권위 있게 배우고 있는 것이 이방의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 책이 아무리 거대한 종교에서 만들어 냈고 모든 사람이 본다고 해도 성경보다 위에 둘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책의 이름부터 종교의 조직신학 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목적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5장에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지 종교의 조직신학 책을 보고 아는 것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분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다면 그분이 하신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은 성경보다 종교의 조직신학이라는 책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고 그것을 교리서라고 하면서 배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쓰레기입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저에게 돌을 던지고 욕을 한다고 해도 저는 그 책을 쓰레기로 밖에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책은 인생의 철학으로 만든 책이라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로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인용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어느 말씀이 진리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가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베드로가 부인을 하는 일도 주님께서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성령을 받은 성도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그 친구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멀리 떠난다는 것을 이미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베드로가 실제 주님을 세 번 부인을 하는 것을 직접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며
멀리하다. 라는 히브리어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보면 부인을 하는 것과 그 뜻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친구가 멀리하는 것을 실제 주님이 오셨을 때 사도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는 것으로 보여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주님께서 죽으신다고 말씀을 하니까 나도 같이 죽겠다고 하면서 주님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할지라도 이미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사도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이런 말씀을 다 알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더욱 더 가슴 깊이 박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그이기 때문에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낫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인을 했습니다.
더구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베드로후서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강합니다.
베드로후서3장은 우리가 봐서 굉장히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자기가 부인을 했던 경험이 그것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해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더 가슴에 박혀 있고 그래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베드로후서는 강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묻고 있습니다.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사도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두 번째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부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시편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대로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강합니까? 내가 의지가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성경대로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더욱 더 자세하게 상고를 해야 하고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하고 주님의 제자지만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또 어떠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다 같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리어 사도 베드로는 인간적으로는 주님과 함께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은 그냥 하신 것이 아니라 시편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말씀을 하셨고 실제 사도 베드로는 주님에게서 멀리 떠났습니다.
성경입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도 유대인입니다. 그가 시편의 말씀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알았다 해도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서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하는 제자인 사도 베드로가 그렇게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하복음18:26절을 보겠습니다. (신 180쪽)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으로서,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러시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저는 성경 외에는 그 어떤 책도 인정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참고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교리를 담은 책은 참고할 가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책은 참고를 함으로 해서 도리어 종교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 성도들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직신학입니다
그 책은 참고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님들이 그 책을 참고하는 순간 종교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 중에서 참고할 만한 책이 혹시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혹시라도 어느 책을 참고를 하라고 말씀을 하면 올무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가능한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약 5종의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 책만 보아도 이제 혹시라도 제가 없다고 해도 충분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님들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입니다
그리고 헬라어 사전입니다. 그것을 참고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저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데 있어서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제가 염려를 하는 것은 혹시라도 사전을 습관적으로 보다 보면 그런 인생의 언어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서적입니까?
그런 책들은 안 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것으로 복음을 깨달을 수 있을만한 책이 있다면 좋겠지만 종교인들이 쓴 책이기 때문에 절대로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종교를 비유로 해서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음녀입니다
종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나온 책들 중에 유익한 책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부탁을 드리지만 성경 외에는 다른 책은 안 보는 것이 좋다고 저는 믿고 있고 우리 성도님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는 제가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아도 이제는 분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은사자들이 번역을 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히브리어를 배워야 하고 또 헬라어를 배워야 한다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같은 그리고 가난한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입니다
우리 성도는 택함을 입은 자입니다. 성경은 영생을 얻는 자가 적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던 때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보아도 그들이 광야에서 어떻게 했는가를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던 때 조금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러나 보시기 바랍니다. 겨우 제자들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를 하시고 또 병자를 고쳐 주심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은 것을 부인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교라는 종교에서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우리 인생은 종교에 포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신 성도는 복음을 듣고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이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교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집입니다.
사실 사도 베드로가 그 집에 들어와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베드로가 들어올 줄을 아시기 때문에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시고 있고 그래서 시편에 기록도 하게 하셨고 또 베드로를 지켜 주심으로 해서 그가 후에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부인을 하게 하셨습니다.
앞에서 두 번입니다
대제사장의 집에 있는 종들입니다. 평소에 사도 베드로가 주님과 함께 다녔다는 것을 알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은 주님께서 잡히실 때 동산에 함께 갔던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인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사도 베드로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베어버릴 때 그때 동산에 함께 온 사람이 베드로를 모르겠습니까? 더구나 칼을 들고 말고의 귀를 벤 베드로입니다. 다른 제자라면 혹시 모를 수 있을 수 있겠지만 베드로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시편44:3절을 보겠습니다. (구 833쪽)
“저희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저희 팔이 저희를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니이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것을 보았듯이 자기 칼을 빼어 자기를 구원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무도 잡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생각입니다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어서 성경을 본다고 해도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종교를 보아도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우리 성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자르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검을 집에 넣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시편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구원입니다. 신체의 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의 어느 것이라도 도움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까지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구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육체의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피조물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종교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아시고 들어오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주님을 환영을 하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과 기사를 다 보았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심지어는 죽어 무덤에 있는 나사로까지 살려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 분이 왕이 된다면 이스라엘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도 너무 좋을 것 같지 않습니까?
주님을 그렇게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주님을 지키고자 했고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보낸 군대를 보고 주님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검을 빼어 말고의 귀를 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렇게 한 이유는 자기들의 왕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주님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지만 이제 주님이 잡히시고 나니까 주님의 말씀과 같이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칼입니다
인생들은 육적인 것만을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그런 인간적인 생각에서 주님을 자기가 보호를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검을 빼어 말고의 귀를 잘랐습니다.
아직 영의 일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칼을 빼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시편에서 그것을 말씀을 하면서 그 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십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복음을 전하는 자라고 해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셔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막으려고 하고 있고 다른 복음에서에서는 사도 베드로가 절대로 그러한 일이 없다고 하면서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하지만 그런 인생들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됩니까?
그것이 자기를 더 궁지로 몰아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이 상황에서 사도 베드로가 부인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이고 동산에 함께 왔던 사람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묻고 있는데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서도 사도 베드로는 끝까지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을 깨닫게 되면 인간적인 열심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이 있음으로 해서 사도 베드로는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더욱 더 든든한 믿음에 설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사도 베드로가 하는 일은 오히려 주님의 구속의 일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라고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그 언약의 피로 인하여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종교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 복음에 열심을 내는 것도 저는 옳지 않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열심이 도리어 복음을 방해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7장에서 자기가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고 싶으나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한다고 하면서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은혜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인생들이 행하는 행위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까지도 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을 하셨기 때문에 해야 하지만 그 외에 어떠한 일도 우리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고의 일가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 사도 베드로에게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우리 성도가 구원을 받기 까지를 지켜 주시고 있다는 것을 이 말씀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입니다
저희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저희 팔이 저희를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우리 영생을 얻는 성도들을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기뻐하신 연고입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사랑을 나타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그 사랑의 결과로 사도 베드로가 영생을 얻고 우리 역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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