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복음 강해

264-2,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윤주만목사 2025. 1. 5. 20:04

종교입니다

대제사장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자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오해를 하고 있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종교인이 잘못 이야기를 해도 실수를 해도 자기만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합니까?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요한복음3장에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가 주님과 하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그가 거듭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너무 놀라고 있는데 그가 어떻게 이스라엘에게 가르칠 수 있는가를 정말 조금만 생각을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만 잘 믿으면 됩니까?

그런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은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 안에 있는 교인들에게 자기가 잘못해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종교인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그 종교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율법을 안 지킬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너무도 쉽습니다.

 

대제사장입니다

그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그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도 강도의 굴혈이라는 것을 모르는데 일반 백성이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강도의 굴혈입니다

이미 강도가 되어 있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에서 누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역시 종교인들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같습니다.

종교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교인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보시기 바랍니다. 대제사장이 주님을 빌라도의 법정에 세워서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곁에 있는 하속도 역시 대제사장이 하는 말을 듣고 주님을 손으로 치고 있습니다.

 

만약입니다

그가 조금이라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아니 그런 말을 들었다면 감히 주님을 손으로 칠 수 있습니까? 더구나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그 종교의 어른이라고 하는 자를 그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이 하속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종교에 빠지면 이렇게 됩니다.

겁이 없습니다.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주님을 손으로 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의 담대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기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까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달기 까지 유대교인들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시키는 대로 주님을 죽이기 위해서 빌리도의 법정에 압박을 했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840절을 보면 빌라도가 주님을 놓아 주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소리를 질러 이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강도인 바라바를 놓아 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유대인만 이렇게 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종교가 탄생이 되고 난 후에 수많은 종교재판이 있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때마다 종교인들은 종교에서 교리로 정한대로 그대로 따라 가면서 군중심리까지 이용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는 변하지 않았고 다만 세상의 정치 상황만 변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시편에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렇게 종교에 의해서 핍박을 당할 것을 다윗의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종교는 원수라는 것을 우리 성도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보더라도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들이 종교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사람의 철학을 따라 도덕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힘이 강해지면 어느 때 돌변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입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대로 된다는 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내 원수가 나를 친다는 그 말씀 그대로 종교인들이 대제사장의 하속이 주님을 치고 있습니다. 물론 번역 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나 저는 이 시편의 말씀은 실제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원수에게 고난을 그러니까 종교에 의해서 고난을 당하시는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자기들의 철학으로 생각할 때는 주님은 그저 이단에 속한 이상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손으로 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용감합니까?

우리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하속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결국에는 자기를 사망의 길로 가게하고 있고 하나님을 자기가 손으로 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인생들은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열심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아는 것이 기초가 되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인들은 아는 것보다 자기들의 행위로 열심을 내려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의 열심입니다

이 하속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하속도 자기가 대제사장을 어른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 자책하는 것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주님을 손으로 치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손으로 때립니다.

그러면서도 이 하속은 얼마나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겠습니까? 자기는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대제사장의 하속이고 그 대제사장을 위해서 주님을 손으로 때리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열심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행위 하나를 하더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무슨 짓이든지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대제사장의 하속이 대제사장이 섬긴다고 하는 하나님을 손으로 치는 일을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열심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8:23절을 보겠습니다. (18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다면 어디 대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 하셨다.”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먼저 인생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인생들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자존감에 대해서 낮추고도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인생들을 참으로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을 보고 또 이스라엘을 택하시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마치 특별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사실 불교인들이 생각을 하는 것보다 더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지금 이방의 종교인들은 교만함이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분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분을 알면 알수록 우리 인생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존재를 대단하게 생각을 하게 되어 있고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많이 알면 알수록 인생이 한 없이 미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례입니다

주님을 아는 것이 커지면 내 존재는 점점 더 작아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아는 것을 모르게 되면 자기 존재가 커지고 종교 안에서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물이 연결이 되어 있는 주머니가 어디에 차는가에 따라 한쪽이 차면 한쪽은 비워지는 원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5장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작아지게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보이게 되고 그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도 예전에는 다 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지만 어떠했습니까? 영생을 얻지도 못했으면서도 마치 영생을 얻은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었고 또 자기가 마치 선택을 받은 대단한 사람과 같이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나니까 그런 생각은 다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종교인들보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많이 받고 있지만 역시 끝까지 푯대를 향하여 그것을 붙잡으려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 많이 증거를 받고 싶어 하고 있고 그런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스스로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헛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그림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인생이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벌레라는 것을 구더기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종교인으로 있을 때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기를 원했지만 이제는 구더기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도리어 은혜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입니다

지금 주님을 죽이려고 하는 대제사장과 그리고 주님을 손으로 치고 있는 하속과 같이 자기들이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아는 것과 같이 자기들의 이성적 생각에 따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입니다

과연 똑같은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다고 해도 사람을 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손으로 사람을 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아무 거리낌이 없이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무지합니다.

종교인들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하는 일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라면 설령 내 감정이 폭발을 한다고 해도 손으로 치는 일을 하기 보다는 사도 바울과 같이 그가 이단이라고 해도 한두 번 훈계를 한 후에 멀리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욥기42:3절을 보겠습니다. (80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는 자들만이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종교 안에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들도 역시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도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어느 것 한 가지를 말씀할 때도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이 기록을 했지만 거의 모든 말씀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감동을 받아서 기록했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어느 성경보다도 요한복음에서 영생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 거의 다 율법주의로 빠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들의 본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가 이 율법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혜가 있습니까?

지식이 있습니까? 아니 평생을 수도원 같은 곳에 처박혀서 밖에 나오지 않고 성경만 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라도 해도 율법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니 도리어 그렇게 성경에서 진리를 알고자 하면 할수록 율법주의에 더 깊이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실제 수도원이라는 곳이 많이 생겨났고 어느 수도원 같은 경우에는 정말 사람의 접근조차 거의 불가능한 곳에 세워졌고 거기에 들어가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안에서 오직 성경만 보면서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하는데 그들이 지독한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율법주의입니다

그들이 종교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종교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사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서로 칭찬을 해 주고 있고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그 하속입니다. 대제사장이 율법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지킵니다. 그러면 그를 모시고 있는 하속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할 수 없고 그러면 자기들이 하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사람들도 그들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대제사장입니다

그는 율법대로 살아야 자기 존재가 부각이 되는 사람이고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속 역시 대제사장이 많은 일을 해야 그로 인하여 자기가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대제사장의 말을 따르고 대제사장을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왜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되는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종교 안에서 평생을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다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지만 자기가 어디로 가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욥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기본적으로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 차원을 넘었다는 것을 욥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어느 정도로 율법을 지켰는가는 이제는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욥입니다

왜 그렇게 율법을 잘 지켰습니까? 하나님이 두려워서 율법을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율법을 잘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까봐서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았고 그렇게 율법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성도라는 생각을 했고 그는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이상으로 율법을 지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율법을 그렇게 지켰습니까?

우리는 욥이 왜 그렇게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욥은 무지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무지한 자입니까? 그는 당시 족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지역에서 왕과 같이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의 무지함을 말하면서 그런 무지함이 자기가 율법주의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을 하면서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를 한다고 하면서 욥기를 마치고 있습니다.

 

무지합니다.

무엇에 대해서 무지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있어서 무지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왕과 같이 산 사람이고 율법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지킨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뜻을 알고 나니까 자기가 율법주의로 산 그것이 얼마나 무지한 일이었는가를 고백을 하고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우리 피조물들은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구속의 일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분이 하신 일을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명을 얻은 자가 됨으로 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약속을 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지한 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욥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명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행한 행위를 잘 함으로 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고 그러나 그것은 전부 무익한 것이 된다는 것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무지입니다

아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욥은 인생의 철학에 따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교훈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그런 마음에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율법주의의 행위가 무엇인가 하면 무지에서 나온 것임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그것을 깨달은 욥이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가 지혜가 있습니까? 그는 무지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이 있다면 그는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 무지한 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키고자 하는 무지함에 빠져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무지한가 하면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습니다.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나타내셨지만 그들은 죽이려고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자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무엇이 잘하는 일인가 무엇이 잘못하는 일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님을 치는 하속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얻은 양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지금 그 일의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지시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입니다

그들은 이 영의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는가 하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만 생각을 하면서 무엇이 잘하는 일인가를 그리고 무엇이 잘못하는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뭐 합니까?

그가 이 세상에서 대제사장으로 살면 뭐 합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안개 같은 존재가 무엇을 잘 하고 잘 못하고 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귀결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가 세상에서 대제사장으로 살았던 종교에서 열심을 내면서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았던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저 티끌과 같은 존재가 되어 그가 죽으면 바람에 날리는 티끌이 되어 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무지합니다.

대제사장은 주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속은 겁도 없이 주님을 손으로 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들이 깨달았다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무지한 자는 모릅니다.

그들은 영의 일에 있어서 그래서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소경이 사물을 보고 아는 것과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 성경을 보는 것임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먼저 유월절을 먹어야 하고 성령을 구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늘 성경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모든 사람이 인정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무지한 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 그만 무지한 자인가 하면 그것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에 있는 신학자라는 사람들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경계로 삼아야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이 시대를 보면 거대한 종교의 힘이 너무 강해서 어느 누구도 그 종교의 교리의 포승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0:13절을 보겠습니다. (3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홀로 계실 수 있는 분입니다. 또 천천의 천사와 만만의 천사가 영광을 돌리고 있고 인생의 언어적 표현으로 생물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있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분이 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분이시지만 우리 양들을 창세 전에 예정을 하셔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그러니까 구속의 은혜로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심으로 함께 살기를 원하셔서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에 어느 누구도 그냥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하신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이루시고 우리로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 하심으로 해서 그것이 실상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영광에 참예를 하게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성경은 이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모르고 있고 영의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그들이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행위를 보고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우리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과 같은 형상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종교가 되어 있는 유대교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에게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성경을 보고 육체의 일을 알고 그 소욕에 빠져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인생들은 모릅니다.

주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도 모르고 있고 주님이 어떠한 일을 이루시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 백성들을 위해서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없는 종교인들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대제사장이 죽이고자 하니까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잘못입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잘못하셨습니까?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의 철학적 지식에는 그저 잘못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그것 한가지만으로도 주님께서는 잘못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들은 결국에는 주님을 당시 사형 제도인 십자가에서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우리 양들로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무엇이 잘못하는 일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포도원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포도원의 비유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포도원입니다

주님께서 일군들을 부르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부르시고 있고 그들에게 포도원의 일을 마치고 나서 약속을 하신 대로 한 데나리온씩을 주고 있습니다. 그 한 데나리온은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하고 있고 주님께서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는 일을 한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이 한 데나리온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더 많은 데나리온을 받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나중 온 자부터 품삯을 주는데 기대를 했다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 원망을 하고 있고 그것을 주님께서 포도원의 주인의 입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입니다

주님이 우리 양들에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가 아무리 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그 이상을 주실 수 없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한 사람도 똑같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망을 하는 그들에게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잘못 하셨습니까?

주님은 할 수 있는 것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도 모르고 믿는다고 하고 있고 이 포도원에 아침 일찍 온 일군들과 같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받은 한 데나리온을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군들에게 그러니까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일을 한 양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고 또 그 하속은 주님을 손으로 때리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이 하속과 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잘못하신 일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일을 다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못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내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는 일이 주님께서 하신 일에 그러니까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는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8:24절을 보겠습니다. (180)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를 묶은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냈다.”

 

종교입니다

우리는 종교의 실상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교라는 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 모든 종교를 대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의 철학으로만 종교를 바라보고 있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의 영광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도덕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논어와 맹자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를 하는 그 자체가 속이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이 영생은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가는 생명을 얻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같이 이방의 종교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입니다

그들은 당시 유대교의 어른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의 결정에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를 하던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종교가 되어서 자기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죽이고자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하셨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들은 이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으로 해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들은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end next 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