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3:1-8절을 보면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다윗의 시편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윗의 신앙을 말씀하는 것으로 시편을 보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다윗이 아무리 당대의 왕이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 해도 역시 인생이고 그리고 그 역시 선지자로서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는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다윗 역시 선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경에 미리 예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는 반드시 이런 기초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다가 종교인으로 살다가 구원을 얻지 못하는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들입니다
성경에 그의 아들에 대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나 후세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생의 철학적 지식에 따라 보다가 문자를 고집하게 되고 그 문자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다가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것이 종교의 교리가 되고 매너리즘이 되면서 인생들의 철학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철학입니다
그리고 역사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많은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근동 지방에는 더욱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 성경을 정경화 하는 가운데서 성경이 되지 못한 기록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어느 종파에서는 결국에는 그것을 성경에 편입을 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철학입니다
그 수많은 책들을 공부를 하면서 또 고고학적으로 연구를 하면서 수많은 지식들이 난무를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성경을 마치 그런 책들과 같이 보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학자들은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 그들의 마음은 인생의 과학과 철학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와 성경을 왜 기록하게 하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믿으려고 하니까 그들의 지식으로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고 그런 그들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성경을 폄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모든 근거는 성경이 되어야 하고 가능한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고 그것이 영의 일에 있어 실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이미 20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종교를 만들고 그들의 교리를 처음부터 만들기 시작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교리가 이제는 고착화 되어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 성경을 성경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번역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번역이 된 성경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가 되기 시작을 한 후에는 로마어로 된 성경만이 독점을 했고 그것 역시 교황청이라는 곳에서 독점을 해서 일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그들이 자의적으로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 해석해서 들려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세월입니다
거의 1500년 동안 진행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인쇄술이 발달을 하고 난 후에 처음으로 그리스어로 번역이 된 성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른 나라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이 되기 시작을 했다는 것 역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입니까?
그리고 복음을 마음대로 전하고 성경을 마음대로 볼 수 있었던 시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인쇄술의 발달로 해서 성경이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되면서 편찬이 되었고 그리고 교리라는 것도 인쇄물로 많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성경을 성경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 풍조가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생각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번역이 된 성경에 대해서는 폄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왜 그런가 하면 그것 역시 성경에 대해서 그 기초를 모르고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1.“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성경의 번역입니다
15세기 넘어서 번역이 되기 시작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먼저 독일어로부터 시작을 해서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고 한글개역 성경은 1950년대에 번역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해서 성경이 한글로 번역이 되기 시작했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으로 해서 어렵게 한글개역성경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원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된 성경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한글의 사용 시작도 그렇고 번역도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되다보니까 한글개역성경에 대해서 폄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정경화가 될 때도 그렇고 그리고 방언의 은사를 주어 성경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될 때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셨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번역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 왕 느고 입니다. 그가 유다 왕 요시야를 죽일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입에 있었다고 했지만 요시야 왕이 듣지를 않고 전쟁을 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을 역대하에서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될 때 그 성경을 보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도 거짓이 되고 성령의 은사도 거짓이 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합니까?
서론이 너무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그런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그리고 진리를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한글개역성경을 저는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무엇입니까?
인생의 철학적 지식이 스스로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그리고 헬라어로 기록이 된 성경에서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언어로 번역이 된 성경에서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는 그는 차라리 성경을 안 보는 것이 더 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언어입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런 하나님께서는 한글개역성경을 보고도 충분히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게 하셨다는 것을 믿고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구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 은혜를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 진리를 아는데 있어서 번역이 된 한글개역성경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부터가 거짓이 되고 성경말씀이 거짓이 되면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모든 것이 거짓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믿으시고 그리고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의 번역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실상은 내가 그런 믿음이 없어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지 한글개역 성경의 번역이 문제가 아니고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원어를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영생 같은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7장3절에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언어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편을 보고 있으면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행전4:26절을 보면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사도행전4장입니다
물론 시편2편1-2절의 말씀을 인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종교는 자기들이 아는 것만을 각주로 성경에 달아 놓고 그렇게 성경을 편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고 시편3편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일을 증거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윗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인생 다윗도 전쟁을 많이 하고 또 이 시편의 말씀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을 제목에서 붙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선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기초로 세우고 성경을 보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시편2편입니다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사도행전에 인용을 해서 각주로 달라 놓아서 종교인들이 다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3편 역시 물론 실제 일은 압살롬에게 피하는 일이지만 그것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실제 유대인들이 주님의 대적이 되어 주님을 치려했다는 것을 복음서에서 보고 있습니다.
대적입니다
누가 주님의 대적이 되었는가 하면 바로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각 정파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교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주님의 대적이 도리어 주님을 치려고 했다는 것을 제가 굳이 신약 성경을 인용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대적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주님의 대적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대적이 되었고 그리고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적합니까?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교인들이 대적이 되었는데 왜 대적이 되었는가 하면 바로 율법의 문제로 대적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입니다
그 날에 병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고 대적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면서 이삭을 잘라 비벼 먹자 그것을 보고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자 주님께서 다윗이 도망할 때 진설병을 먹은 것을 말씀을 하니까 그들이 대적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종교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도 역시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또 자기들이 만든 절기를 지키면서 그 날에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신 일을 믿지를 않겠다고 하면서 행위로 하고 있고 그것이 대적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주님의 대적이 얼마나 많은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고 그것은 시편의 말씀과 같이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그저 대적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이해를 하고 있고 그 대적을 합리화를 시키면서 자기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선지자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면서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려 하는 자가 많다고 하면 그런 것인데도 인생들은 성경을 자기들의 철학으로 보고 있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누가복음23:35절을 보면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다윗의 시편입니다
선지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이 말씀을 신약 성경 어디에서도 인용을 하지 않고 있고 인용의 첨삭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종교는 자기들이 편찬한 성경대로 보고 있습니다.
도움입니다.
히브리어로 구원이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예언을 하고 있고 저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대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입니다
실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때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라고 시편에서 다윗이 예언을 하고 있는 그 말씀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이 성취가 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밝히 볼 수 있는 말씀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인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저 믿는다는 것은 무당이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율법에서 무당이 있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무엇이 무당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증거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든든히 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무당과 같이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시편3편입니다
분명히 다윗이 압살롬을 피할 때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일이고 영의 일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저 압살롬에게 피하는 것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종교인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사도행전5:31절을 보면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시편의 말씀과 같이 머리를 높이 드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그 머리를 드심으로 해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입니다
시편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일을 이루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임금입니다
그리고 구주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했지만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신 성도만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있고 그렇게 성경에서 많이 증거를 받으면 믿음에 더욱 든든히 서고 그것이 역사를 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것의 실상의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못하니까 믿음의 비밀도 모르고 있고 그런 그들이 그저 종교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다 진노를 받고 있습니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누가복음22:42절을 보면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과 같은 형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구속의 일을 이루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 인생과 같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로서 나타내 보이시고 계십니다.
길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와 같은 고난을 받으시고 또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가를 보여주시면서 우리가 그 길을 보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다윗이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것을 주님께서 누가복음에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시편의 말씀과 같이 그 성산에서 응답을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역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5.“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요한복음19:41절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길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길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이 역사를 해서 정말 놀랍게도 예수의 생명을 얻어 주님께서 가신 그 길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믿음으로 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고 깨었으니
마치 이 세상에서 잠을 자고 깨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을 하시는 것을 시편에서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입니다
그 자는 것에 대해서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무덤에 장사를 지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고 우리는 그 길을 보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입니다
그 형상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또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6,“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요한복음8:12절을 보면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우리 피조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 영원한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생명의 원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은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타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시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셨지만 그 육체의 생명이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이 생명을 얻은 자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의 빛을 비춰주시고 예수의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천만인입니까?
아니 그들이 내 육체의 생명을 빼앗고 있습니까? 그 생명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보여주셨고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우리 안에 그 생명이 있기 때문에 설령 육체의 생명이 죽임을 당해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입니다.
인생은 다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거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생명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고 우리가 얻은 예수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께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6.“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베드로전서3:18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생의 형상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입니다. 인생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지금 시편에서 다윗이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고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형상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보여주신 것은 바로 우리가 그렇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우리 역시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는가 하면 이것이 우리의 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보여주시고 있지만 인생들은 자기 철학적 상식에 따라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장사 지내시고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우리 인생이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심으로 해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고 그 믿음으로 예수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6,“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구원입니다
우리 인생의 형상을 입고 오신 주님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주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있고 주님께서 왜 우리 인생의 형상을 입고 오셨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종교의 교리를 따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주의 복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복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복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말씀 그대로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많이 가졌다고 그것을 누린다고 해서 그것을 복이라고 하는 사람은 세상 종교를 믿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의 복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으로 이 복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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