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17:21-28절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지혜는 명철한 자의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이 선치 못하니라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성경입니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인생들은 종교 안에 들어와서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철학적 지식이 이 세상의 보편적인 지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데도 인생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잠언입니다
특히 더 그렇게 보고 있는 성경말씀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마치 이 세상의 철학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대표적으로 그렇게 보고 있는 성경이 잠언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인생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기록이 된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것을 철학적으로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철학을 공부를 한 사람들이 대학에서 거의 종교 철학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알고 있는 그 언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런 사람들이 기회만 되면 종교인들이 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운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공부를 한 것이 많이 있고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렇다보니까 정말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말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일반 사람들이 접하기 힘든 학문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이 종교인이 되어서 그런 자기 지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유식하다는 것만으로도 마치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는 종교인들입니다
그래서 철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면 거의 이 세상의 철학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철학적 지식을 가지고 성경과 접해서 이야기를 하면 마치 그것이 성경말씀을 아주 잘 아는 것과 같이 교인들은 받아들이고 있고 점점 더 인생의 철학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인생의 철학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철학이라는 학문이 인생들이 듣기에는 너무도 합리적이라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의 학문을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당연히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그것이 옳은 말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그런 인생의 철학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 철학적 사상에 뿌리 깊이 자기 생각을 빼앗겨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잠언입니다
지혜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미련한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교를 영의 일을 여러 가지 단어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철학이라는 것은 그 언어의 뜻을 아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고 종교인들 역시 철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아 그렇게 종교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혜입니다
21장에서 말씀을 하는 지혜라는 단어의 히브리어의 뜻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내부 인간, 마음, 정신, 의지, 이해력 등의 뜻이 있고 또 영혼이라는 뜻으로도 사용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단어에 대해서는 많은 말씀을 할 수 있으나 그런 것이 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말씀을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 뜻입니다
성경이 해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철학적 자식으로 해석을 해서 종교 안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그런 인생들의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피조물들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기초로 세우고 보아야 합니다.
철학입니다
그것이 종교인들을 도덕 선생으로 만들고 있고 실제 이 시대 종교 안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거의 도덕 선생이 되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거기에 단지 그저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을 한두 마디 하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지혜가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철학이 성경말씀을 보고 도덕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인생의 철학적 기준으로 이야기를 하면 잘 사는 것일까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종교는 그런 철학적 사상에 너무 깊이 빠져 있고 이제는 어느 누구도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저 종교 안에서 자기들이 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생을 얻는 일보다는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에 따라 종교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까를 고민하고 그럼으로 해서 더욱 종교인의 삶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21.“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잠언입니다
거의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자기의 삶이 인생의 철학적 지식에 따라 종교인으로서 삶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을 원하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아니 그런 행위를 잘 하는 것을 보고 믿음이 좋다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피조물들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그것은 단지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고 거기서 영생에 대한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잠언입니다
그 시작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잠언 전체가 영생에 대해서 비유로 해서 우리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 시작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시작의 말씀은 생각을 하지 않고 그 문장에서 그 단어의 뜻을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묘한 말입니다
알기 어려운 문제, 은밀한 말, 그리고 복잡한 영적인 문제 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언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 철학적 지식으로 그 언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마치 잠언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7장도 그렇습니다.
거의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를 낳았다는 그 말씀을 보고 마치 세상에서 자녀를 낳은 것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리고 미련하다는 인생의 언어의 뜻을 아는 것을 가지고 철학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종교인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미련한 자입니다.
계속해서 히브리어를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자체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너무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이 다 그렇게 성경을 보기 때문에 히브리어의 단어의 뜻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보, 멍청이, 어리석은 사람 등의 뜻이 있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부모가 자녀를 낳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비유조차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인생의 언어를 철학적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이 말씀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런 말씀들은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종교인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비유입니다
그리고 오묘한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지혜를 구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저 샤머니즘적으로 지혜를 구한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종교 안에 참 많이 있고 그리고 그런 가운데서 자기가 조금 배운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무엇을 비유로 하고 있는가를 성령이 오신 성도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저 세상에서 미련한 자를 낳은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의 말씀이라면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는데도 인생의 철학적 지식이 아는 것이 병이라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교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에 빠져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내가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이 예수의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사도 바울은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잠언에서는 미련한 자를 낳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5:8절을 보면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성경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그리고 왜 믿어야 하는가를 모르면서 그저 종교에 빠져 있습니다.
미련한 자를 낳은 자입니다
사람이 자식을 낳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복음이 전해지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생명을 얻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초적인 비유도 모르면서 성경을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고 있고 그 언어를 아는 것으로 철학적으로 종교 안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그 중에 다섯은 등과 기름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다섯은 등은 가지고 있는데 주님께서 오실 때 기름이 떨어졌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기름이 없는 자를 미련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등입니다
빛을 비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무슨 빛인가 하면 생명의 빛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가 복음의 말씀을 듣는 단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예수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등이 있습니다.
반드시 빛이 비춰져야 그것을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등은 기름이 떨어지면 등이 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이 오시면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나는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나를 믿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등입니다
생명의 빛이 비춰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세상의 등이 기름이 떨어져 그 등이 꺼지는 것과 같이 그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만 실상은 등이 꺼져 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빛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면 그가 나를 증거를 하실 것이요 그럼으로 해서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제자들 역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실 것이라고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합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생명의 빛의 등이 꺼져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생명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미련한 자가 누군가를 이렇게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잠언의 말씀을 보고도 그리고 마태복음의 말씀을 보고도 미련한 자가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가 근심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말씀을 하면서 사라를 비유로 해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면서 자유 하는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생명의 빛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예수의 생명을 얻지 못한 자가 미련다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니고데모는 두 번 나는 것으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 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를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해서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평생을 신앙생활을 했는데 생명의 빛이 비취는 등이 꺼져 있다는 것은 생명을 얻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자를 교회 안에서 미련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그런 자를 아무 낙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 피조물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생명의 빛을 얻은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미련해서 이 생명을 얻지 못한 자가 교회 안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낙이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낙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의 생명을 얻는 일을 전혀 모르로 있습니다. 아니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미련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그런 자가 있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잠언에서는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오묘한 말씀입니까?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그저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평생을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영적으로 미련한 자라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슬기롭습니까?
누가 이 시대 슬기 있는 자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까?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도 모르고 예수의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에서 문자를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그들은 슬기로운 자가 아니라 미련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22.“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인생사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미련한 자식을 낳은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인생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마음이 즐거운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우리 피조물들이 영생을 얻는 일을 비유로 해서 우리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오묘한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지만 그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들에게 다 성령이 오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입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이것을 인생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일로 생각을 하고 있고 마음을 즐겁게 하라고 강요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종교 안에서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는 자는 즐겁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보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안에 그 보화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잠시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는 자는 비록 세상에서는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다고 해서 마음이 즐겁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모르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뼈를 마르게 한다고 영적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3.“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악인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인생들이 언어의 뜻을 아는 것을 가지고 성경을 말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의 철학적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성경은 영생의 일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이 오묘하다는 것을 늘 생각을 하면서 지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입니다
이 악인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악, 악인, 행악 등의 단어가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 누구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는가 하면 미련해서 예수의 생명을 얻지 못하고 종교 안에서 그 의식적인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을 굽게 합니다.
그들은 늘 하나님 나라를 그리고 지옥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하는 말이 다 굽은 말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틀린 말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종교인들이 얼마나 정죄를 하고 있고 지옥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재판을 굽게 하는 일이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24,“지혜는 명철한 자의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의 눈은 지혜를 가까이에서 찾지만, 미련한 사람은 눈을 땅 끝에 둔다.”
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지혜는 명철한 자의 앞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새 번역에서는 슬기로운 사람의 눈은 지혜를 가까이에서 찾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생명의 빛에 비췸을 받아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입니다
그 눈은 땅 끝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은 이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종교 안에는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온갖 것을 구하게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 자체가 미련한 자라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지만 바알의 사상에 빠져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골로새서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생명을 얻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것을 구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정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땅에 것이 무엇인지도 위엣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자기들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철학적 지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듣다가 다 사망의 길로 가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25,“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교회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세상에서 자녀를 낳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생을 얻는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다가 세상사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이 진리에 반하는 말이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라입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의 어머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은 자가 없으면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된다고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마치 세상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아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미 앞에서 이 미련한 자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종교 안에서 그들의 교리에 따라 의식적으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그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생명을 얻지 못한 자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미련한 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말씀들이 있는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구약 성경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다윗이 보낸 소년들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모욕을 하고 돌려보냈다가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죽은 나발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이 나발과 같이 미련한 자입니다.
26,“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이 선치 못하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무죄한 사람 벌주는 것은 옳지 않다. 점잖은 사람 때리는 것은 당치 않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구약의 율법에서도 비유와 예표로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셨을 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여자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정죄를 하지 않는가 하면 주님께서는 율법을 완전케 하시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이 여자가 지은 죄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율법을 범한 죄가 아니라 도덕적인 죄이기 때문에 정죄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인들 역시 죄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나를 믿지 않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가 죄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죄는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그런 세상의 죄를 가지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성도들을 말로 때리고 있습니다. 지금 종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의인이 누군지 정직한 자가 누군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릅니까?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그 단어를 보고 아는 것을 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종교 안에서 이러한 일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7,“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말을 삼가고, 슬기로운 사람은 정신이 냉철하다.”
지식입니다
말을 아끼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6절에서 때리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면서 말로 때리는 것을 비유로 하고 있고 그런 세상사에 대해서 지식 있는 성도는 말을 아낀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마태복음25장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들은 등과 기름을 가지고 있고 생명의 빛을 얻은 자로서 예수의 생명이 거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는 명철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생명의 빛에 비췸을 받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를 명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이런 말씀들도 거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고 있고 그렇게 아는 것을 가지고 마치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가 명철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8.“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교회입니다
잠언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그 안에 미련한 자들이 오히려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고 예수의 생명도 얻지 못한 자들이 떠들고 있다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이방인들 역시 종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에 빠져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미련한 자들이 큰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입니다
복음을 듣고 있지만 생명을 얻지 못한 자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방의 종교는 아예 복음을 전하는 곳이 없지만 잠잠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슬기로운 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어 생명을 얻는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은혜와 진리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56,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0) | 2024.11.02 |
---|---|
1155,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1) | 2024.10.30 |
1153,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2) | 2024.10.23 |
1152,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0) | 2024.10.19 |
1151,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1) | 2024.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