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3:24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인생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 했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담의 자손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모든 종교는 아담의 자손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아담의 자손이 잘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종교입니다.
종교가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의 자손이 잘 살았으면 좋은 곳에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아담이 자손이 죄를 많이 지었으면 나쁜 곳으로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의 사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썩어 없어질 인생이 영과 결합을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이 있습니다.
그 육이 믿으면 내 안에 영이 탄생이 됩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내가 되어서 내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진 내 신체에 깨끗한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됨으로 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것이 인생의 이성에는 너무도 타당성이 있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죄를 범했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했습니다.
왜 오직 예수입니까?
우리 인생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되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되었습니까?
육체의 내가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진 사람을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다고 하니까 마치 죄를 진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해를 못 합니다
육과 영을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 죄인을 의롭다 하시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고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합니다. 그 죄인을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 하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구속[救贖]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자어를 그대로 풀면 건져서 바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죄에서 건져서 하나님께 바치다는 뜻으로 구속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구속입니다
반드시 예수 안에 있는 구속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건져서 바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건져서 바치는가 하면 죄에서 건져서 바칩니다. 우리 신체를 죄에서 건져서 바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에서 건졌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신체가 죄에서 건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되었다는 말씀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죄를 진 신체가 건짐을 받아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그대로 한자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느 한 구절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신체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를 진 신체는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전제 조건이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주님 혼자서만 죽으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은 자가 되어서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영의 비밀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자기 앞에 보이는 말씀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성경을 깨달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1:22-23절을 보겠습니다. (구 295쪽)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했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죽을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것은 입에 바른 말로 인정을 하면서도 죽을 죄를 지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 역시도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우리는 죽을 죄를 지어서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까?
그래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내가 죽은 것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죽을 죄를 진 것을 대신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습니다.
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자기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받았다고 선언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육의 생각으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미를 모르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인한 자이며 간음을 한 자이며 우상을 숭배한 자이며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못해서 죽을 죄를 지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무에 달아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말씀 그대로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죽어야 하는 것을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어서 저주를 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것을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문자를 아는 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예수 안에서 구속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의 의미를 알려면 사람이 모두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죄를 범했는가 하면 나무에 달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하는 것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죽으신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반드시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죽어야 하는 것을 죄가 없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말로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하니까 그 의미도 모르고 자기 겸손의 말을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나무에 달려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일에 나무에 달려 죽어서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 이런 십자가의 의미도 모르고 그저 자기가 겸손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도 바울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죽을 죄를 지었다는 것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가 아닙니다.
반드시 죽을 죄를 진 사람이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합니다.
죽을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이 왜 나무에 달려 죽습니까? 아무 의미도 모르고 하는 말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냥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죽을 죄를 진 사람을 나무에 달아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역시도 자기가 죽을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비록 신체는 살아 있더라도 내 죄를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습니까? 저주를 받아 죽은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말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겸손의 모양을 내는 말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왜 죽은 자가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어떻게 되는 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막연함이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고 또 예수 안에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1:30절을 보겠습니다. (신 264쪽)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비밀에 대해서 다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자기 앞에 있는 말씀만 보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무조건 자기가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구원이 아닙니다.
이 시대 자기 신체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신체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모르고 사람의 이성을 따라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는 이미 율법에 있는 말씀과 같이 죽을 죄를 지어서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것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저주를 받은 것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고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경을 보아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구속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성경에 문자를 알고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해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어리석석은 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나야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이 말씀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말씀입니다.
영입니다
내 신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된 것은 내 신체가 아닙니다. 그 신체는 죽을 죄를 지어서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 신체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영이 내 안에 거하고 그 영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탄생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것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난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로마서에서는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고 육의 일로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 신체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자기 신체와 어떤 결합을 하는 것으로 알고 그 신체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그것은 우리 신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체는 육으로 난 것이고 육으로 난 것은 죽을 죄를 범해서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 저주를 받는 그것을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영을 의롭다 하시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얻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습니까?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야 됩니다. 우리 신체를 가지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체는 아담의 자손이고 혈과 육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죽을 죄를 지어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아 죽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이 영의 일로 예정을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2: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79쪽)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얻은 자입니다
우리는 죽을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예정하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긍휼을 얻은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성경은 영의 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의 나는 저주를 받아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영의 나를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참과 거짓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참이 무엇인지 거짓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담은 거짓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입니다. 우리는 다 거짓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 있는 참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베드로전서에서는 긍휼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우리 안에 어떻게 탄생이 되는가 하면 오직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를 로마서에서는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얻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노력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도 죽을 죄를 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탄생이 되고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스스로는 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 해서 나무에게 저주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함께 저주를 받고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으로 옮긴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아담의 나는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되었습니다.
죄인입니다
우리 신체는 죽을 때까지 죄인입니다. 죽을 죄를 진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한다면 그는 예수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겸손의 모양을 나타내기 위해서 죄인이라고 하지 마시고 율법을 보고 내가 죽을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것이 믿어져야 합니다.
죽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은혜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로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성경에서 은혜를 말씀하고 있지만 그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입에 바른 말로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것은 죽은 죄를 지어서 나무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렇게 죽으면 끝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의로운 생명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덴에서 아담을 통해서 하와가 탄생이 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고 그 영이 의로운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얻을 수 없는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전혀 모르고 성경의 문자를 앵무새처럼 외우는 것으로 자기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3:2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화목제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표면적인 일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이 드렸던 제사와 마찬가지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피 입니다
모든 것은 피로 정결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는 화목케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의인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케 하는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제사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막에서 죄를 진 사람들이 양을 잡아 가지고 와서 그 머리에 안수를 하고 양의 피를 뿌림으로 해서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의 그 제사는 신약에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속죄 제물로 내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피 입니다
그 피를 믿을 때 하나님과 우리 인생들이 화목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내어 주셨는데 이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케 되는 것이 유효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입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렸다는 것을 믿는다 해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는 자 된 것을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육이 아니라 영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목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 모두는 죄를 지어서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 아니라 아예 저주를 받고 말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주를 받아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했으나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이 영의 탄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없다면 화목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습니다. 이 둘이 같이 살아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모두가 죄를 범해서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그것을 믿을 때 유효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게 되는 것을 화목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입니다
주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화목제물이 되지 않았다면 주님의 피는 우리에게 아무 효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1: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78쪽)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영혼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대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하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믿는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영혼 구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에만 나오면 영혼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을 누가 보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영혼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말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영혼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은 영혼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왜 영혼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믿지 않고 있으면서도 믿는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예수 피에 대해서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고 이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의 탄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피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은 자로 죽으셨습니다. 그 피를 믿어야 합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신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하는 것을 주님이 대신 피를 흘려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죽을 죄를 지었다는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입니다
그 피는 점도 없고 흠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피를 흘려주심으로 해서 주님께서 다시 사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피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난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피는 우리 인생들이 흘려야 하는 피를 대신 흘려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대신 피를 흘려주심으로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그의 피로 화목제물로 삼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신 것은 우리 인생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모두가 죄를 범했습니다. 반드시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시는 중에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겨보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인생들은 다 죄를 범했습니다. 법대로 하면 모두가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죽을 몸에 죽지 아니할 것을 입혀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3: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05쪽)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입니다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은 나무에 달아 죽여야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이라고 해도 변경을 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저가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우리는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율법으로 정해 놓은 것을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살리신다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 아닙니다. 그 율법에 의해서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죽어야 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만약에 안 죽이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으로 의로우신 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이라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율법대로 하셨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율법대로 하시지 않고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셨다고 한다면 그것을 성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에 정해진 대로 하셔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셨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의로움입니다.
주님이 왜 의인이 되셨습니까? 사람들은 주님이 그냥 의인이 된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의인입니다. 죄가 없다는 것은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율법을 다 지키셨기 때문에 의로움을 나타내실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의로움을 나타내실 수 없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어떻게 의로우신 분인가 하면 율법으로 의로우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감성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감성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전에 지은 죄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전에 지은 죄는 죽어야 하는 죄입니다. 그 죄를 그냥 내가 네 죄를 사해 주시겠다고 해서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자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린도후서에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신입니다.
성경에는 이 대신이라는 말씀이 참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제사에서 예표로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죄인들이 죄를 지면 양을 잡아서 제사장에게 갑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죄를 진 사람을 대신해서 양의 머리에 안수를 하고 그 양을 죽여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죄인을 대신해서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그 죄인의 죄가 사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대신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자기가 죽어야 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 율법을 보고도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보면 내가 살인을 한 자고 간음을 한 자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을 수 없습니다.
믿는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의미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실상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전에 지은 우리의 죄는 죽어야 합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주를 받으심으로 해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율법대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죽지 않아도 되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우리가 죽어야 하는 것을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이 하나님의 의로움이 되어서 나타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죽어야 합니다. 흙으로 왔다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을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아야 하는 것을 주님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행하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의 의로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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