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복음과 율법

472강,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윤주만목사 2020. 3. 8. 13:51


472,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누가복음 20:19-26절을 보면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그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시고 이 시대 보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주신 이유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서 믿고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늘 성경에 대해서 묵상을 해야 하고 또 성경에서 진리를 알아갈 수 있게 지혜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경을 보는 눈이 그들에게는 감겨져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수백 번을 읽고 또 평생을 연구한다 해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고 하니까 그 뜻을 알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문자로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머리가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학문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또 자기가 공부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기도 합니다. 그렇게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공부를 해서 한국에만 수만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지만, 실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는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보이는 교회는 많습니다.

그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실상을 말씀을 드린다면 교회라는 간판을 세워 놓고 있는 모든 교회는 사실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사단에게 다 넘어가 있는 교회고 참 진리를 전하고 있는 교회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로 인하여 오히려 진리가 방해가 되고 있지만 거대한 종교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선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가 되었고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딴에는 하나님을 아주 잘 섬기고 있었다고 했지만, 실상은 짐승에 의해서 모두가 붙잡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포도원의 농부의 비유로 이스라엘을 책망하시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듣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단 교회가 짐승이 되면 하나님의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못지않게 이 시대 역시 기독교라고 하는 거대한 종교가 되어서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신학이라는 초등학문을 배워서 성경을 보다보니까 불행한 일이 발생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다릅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안 믿었고 지금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글을 보시는 분들이 저를 공격할 수도 있지만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성령을 보내 주셔서 교회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안 믿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종교인이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종교에 빠져 있었던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325년 니케아 공회가 있은 후로 천주교가 그랬고 또 종교 개혁을 이루었다고 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역시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도원의 농부입니다.

그러면 역시 이 시대 교회 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 같이 하나님의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하면서 나중에 아들까지 죽였다면 이 시대 역시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은 비록 그렇게 했을지라도 자기들은 안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이스라엘도 사람이고 또 우리도 사람입니다. 똑같은 사람은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맡기셨는데 그들은 소출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역시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있지만, 소출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진행형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비유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통해서 이 시대 역시 똑같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한가를 이 시대 목사들이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지라도 자기들은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아마 지금이 시대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을 수는 없을지 몰라도 테러라도 감행을 해서 죽이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종교는 자기들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단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편지를 아직은 소수의 사람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다고 해서 모두가 진리로 행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진리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편지가 세상에 조금 더 알려지기 시작을 하면 아마도 이단 논쟁부터 일어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들이 이익을 보기 위해서 지키고 있는 율법을 반대를 하다 보니까 가만히 있지를 않을 것입니다

 

19,“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당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서기관 제사장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이라는 종교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반대하시고 또 그들에게 농부로서 제 일을 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시겠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이렇습니다.

이런 일들이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만 있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의 뜻을 관철을 시키기 위해서 종교라는 거대한 힘을 사용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주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종교재판에 넘겨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천주교는 수 많은 사람들을 자기들의 종교에 반하면 무조건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개혁자들은 다릅니까?

그들도 역시 자기들의 교리를 만들어 놓고 종교재판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역시 천주교와 같이 죽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 개혁을 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정통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정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천주교도 정통이 아니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정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정통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스스로를 종교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죽입니다.

현대 사회는 국가의 힘이 커져서 함부로 죽이지를 못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저 아프리카나 중동에 있는 사람들은 부족에서 종교재판을 해서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를 믿습니까? 알라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고 그들은 단지 알라라고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종교는 그렇습니다.

자기들과 다르면 사람을 잡고 또 죽이고 있습니다. 정말 그들에게 복음이 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천주교가 악을 행했다 해도 그래서 종교개혁을 했다 해도 자기들이 복음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양비론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우리의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제가 천주교와 기독교의 어떤 행위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세상의 종교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비판한다면 그것 역시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주교부터 진리가 사라지기 시작을 했고 그것이 종교개혁을 해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탄생이 되었지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개혁을 했습니까?

사람이 개혁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그들이 세워 놓은 교리 전체를 제가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개혁자들에게 의해서 세워진 오대강령만큼은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가장 기초가 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오대강령은 그렇게 세웠을지 몰라도 율법에 대해서 그들은 전혀 진보를 하지 못했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오대강령이 그들에게 있고 기초가 되었다면 이 시대 교회들이 이렇게 까지 종교가 되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대강령을 세워 놓고도 그것을 실제 교회에서는 기초로 삼지를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로교라고 하는 신학교에서는 거의 다 이 오대강령을 기초로 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이론만 가르치고 있지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전혀 기초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그 기초가 무너지다 보니까 교회는 점점 더 종교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어느 누구도 이 종교를 개혁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령 주님이 오신다 해도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이 나온다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손해를 입을 것 같으면 반드시 죽입니다. 사실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적다 보니까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핍박을 받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예전에는 백성들을 두려워했지만, 이 시대는 국가의 법을 두려워해서 그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겠지만 역시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고 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를 향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서기관 제사장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의 모든 책망이 누구를 향해서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제사장들을 향해서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시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자기들이 그렇다고 믿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만 하시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해석하면서도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이스라엘의 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돌 위에 깨어집니다.

그리고 가루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말씀이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은 이스라엘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참으로 무서운 말씀인데도 이 말씀을 보고도 어찌 그리 태평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이 사건은 지금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농부에게 맡기신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소출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 포도원에 구원을 받은 성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소출을 안 바칩니다.

이스라엘은 소출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바치지 않았다기보다는 바칠 소출이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포도원에는 소출이 없어서 바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종교에 꽁꽁 묶어 놓고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다 종교인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다 종교인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종교인을 만들다 보니까 소출을 바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종들을 보내면 그들을 때리고 심지어는 죽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 교회들이 다 짐승이 되어 그렇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교회를 판단한다고 하면서 싫어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은지 이해가 안 됩니다. 교회가 무엇이기에 그 교회를 판단하는 것이 왜 그리 듣기가 싫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종교인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리고 있는데 그 종교를 판단했다고 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를 판단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선지자들이 교회를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판단을 받기 싫어해서 선지자들을 때리고 죽였으면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교회까지도 버릴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교회가 무엇이관데 그 교회를 판단한다고 분을 참지 못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그들은 교회라는 짐승에게 사로 혀 있기 때문에 교회를 판단하면 참지를 못하고 이스라엘과 같이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책망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나를 책망을 하고 있고 또 교회를 책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가 너무 큰 우상이 되어서 그 교회를 판단하면 심지어는 대형교회 같은 경우에는 떼로 몰려가서 실력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34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성경은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모르면 그는 죽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성경을 해석해서 말하는 것을 보면 비유를 그냥 직역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꼭 비유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도 다 비유라는 것을 먼저 깨닫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있습니다.

 

꼭 비유라고 해야 비유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 성경의 거의 모든 말씀이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지혜를 구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이야기를 하니까 이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그것이 다 육의 일이 되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비유입니다.

비유를 깨달으니까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기들을 가르쳐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 붙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것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도 그것이 자기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지혜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더 지혜가 있습니까?

그래도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기들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말씀을 보면서도 자기들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은 어리석어서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고 자기들은 지혜가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서 더 종교인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 완고합니다.

이스라엘보다 더 완고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성경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자기들의 이성에 그것이 옳다고 생각이 되면 성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철저하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고 또 성경에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늘 사모하면서 구해야 합니다.

 

20,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종교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간교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이단 논쟁이 붙으면 이러한 일들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어쩌면 이스라엘과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단이냐 아니냐를 왜 세상의 법정으로 끌고 가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뭘 압니까?

자기들 스스로 조차 이단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법정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들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종교가 이렇게 자기들의 뜻에 반하면 어떻게 하든지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고 또 그것을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다 이단입니다.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자는 다 이스라엘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있다면 아예 그 교회에서 나와야 합니다. 또 교회가 세상 법에 의지를 하려고 하면 그것은 이단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더구나 진리를 가지고 고소를 하는 경우에는 거의 다 이단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내가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설령 그것에 반한다 해도 그것을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않습니다. 그냥 그 사람과 더 이상 상종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두 번 권면을 해서 듣지를 않으면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힘을 이용해서 세상 법정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짐승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세상의 법을 따라서 자기들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이 세상 법정이 어떻게 진리를 분별할 수 있습니까?

 

말을 잡고 늘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말실수를 하면 그것을 가지고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를 보면 이스라엘과 하는 행태가 너무도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는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세상의 법정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보아도 종교의 힘이 강했을 때는 자기들이 직접 행했고 자기들의 힘이 약하면 세상의 법정으로 끌고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낫습니다.

자기들을 향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을 알고 주님을 책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이 비유를 보면서 자기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모르게 되면 어떻게 되는 가를 잘 아시기 바랍니다. 비유를 알아도 이런 일을 하는데 비유도 모르면 그저 개 끌려가듯이 사망으로 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법권이 총독에게 있습니다.

종교는 이렇게 세상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비유를 알아들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시대는 아예 그런 지혜조차도 없습니다. 자기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21, “그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이들은 주님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붙잡기 위해서 이들이 얼마나 간교하게 말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로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오직 참으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모릅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이들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종교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서 주님을 책잡아서 세상 법정에 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이렇게 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종교인 유대교를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종교입니다.

이스라엘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종교의식에 빠져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종교라는 것은 자기 땅에 오신 주님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로 그들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역시 똑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대적을 합니까?

누가 주님을 세상 법정에 세우려고 하고 있습니까? 바로 종교인들입니다. 이 시대도 역시 종교인들이 주님을 대적하고 있고 자기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 진리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수 많은 종교인들로 인하여 진리가 방해를 받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었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당시 이스라엘입니다.

로마의 통치를 받던 이스라엘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또 시민법이 있어서 십일조를 내기도 했고 또 신약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듯이 성전 세를 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중과세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식민지입니다.

모든 식민지가 그렇듯이 세금을 바쳐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또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철저하게 십일조를 냈고 그런 것이 이중과세가 되었습니다.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지 않았고 자기들의 소출에서 십일조를 레위 자손들에게 가져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입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은 한 마디로 고역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이 세를 바치는 것을 너무도 힘들어했습니다. 그것을 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정말 이스라엘을 위하는 사람이라면 이 세를 바치는 것을 반대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선민이라면 하나님께만 바쳐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주님께 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에 세를 내는 것을 너무도 싫어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율법에 비추어 보아도 로마에 세를 낸다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들의 상식으로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치외법권적인 지위를 누려야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에서 이 시대 대형교회가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소득이 있으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는데도 거대한 종교의 힘을 이용해서 법마저도 굴복을 시키고 있습니다.

세를 내야 합니다.

물론 작은 개척 교회는 세를 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형교회는 세를 내어야 합니다. 자기들의 종교 활동을 하면서 수익이 발생을 했다면 당연히 세를 내어야 하는데 종교가 너무 비대해져 있어서 아무도 건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헌금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어디에 그것을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의 종교 활동을 위해서 내고 있는 헌금을 하나님을 빙자하면서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십일조를 내고 헌금을 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께 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지도 않고 또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 순전히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 내고 있는 돈이라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교회가 타락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돈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십일조를 하나님을 것이라고 하면서 도적질을 하지 말라고까지 겁박을 주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종교고 그들은 한 마디로 강도입니다. 그 돈을 누가 만들었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전혀 헌금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금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율법대로 행하는 것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은 종교가 너무 많은 돈을 받아서 그것을 주체하지 못해서 건물을 짓는데 사용하고 있고 하나님의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기들의 기쁨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 당시 사용했던 데나리온은 가이사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돈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그 기본조차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당시 로마가 만든 화폐를 보시고 그것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헌금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가이사의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누구의 것입니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용하고 있는 화폐는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가가 만들어 낸 화폐입니다. 그 화폐를 가지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헌금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일을 돕기 위해서 내고 있다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자기가 이 복음을 위해서 가진 것은 내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한민국의 화폐입니다.

자기가 헌금을 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것을 드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보에 대한 것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가 교회에서 헌금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의 것을 드리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가이사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적으로 보다가는 다 망하는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 가이사의 것을 교회에서 헌금을 하면서 마치 하나님의 것과 같이 생각하고 드리고 있습니까? 가이사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19-20절을 보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보물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보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그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하늘에 쌓아 둘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의 가이사의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신 의를 내가 믿는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하나님의 것이고 그것을 믿는 내 믿음이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받으십니다.

가이사의 것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받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가이사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고 있고 진짜 하나님의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아무리 그것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다 해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가이사의 것을 드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연보를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연보는 하되 그것이 가이사의 것이라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성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교회에 연보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의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고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성도가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연보를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아무리 복음을 위해서 사용했다 해도 가이사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은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도는 이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의 것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것으로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고 있는 성도가 되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