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복음과 율법

80강,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윤주만목사 2019. 5. 29. 06:40


80,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창세기 28:13-15절을 보면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보는 대로 보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도 신기해서 자기가 보는 그대로 보여 집니다.

그래도 눈은 이성적이라서 좋은 것을 보면 대부분 좋은 것에 대해서 공감을 하고 또 나쁜 것을 보면 보이는 그대로 그것을 판단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 마음에서 한번 싫어지기 시작을 하면 절대로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아무리 좋게 보이는 이성적인 것이라 해도 마음에서 싫어지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좋다고 나를 설득을 해도 싫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이성도 바꾸는 것이 마음의 눈입니다

보는 눈과 마음의 눈이 함께 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믿음에 대해서 불신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 두 가지 눈이 서로 다른 것을 보는 순간부터 믿음을 갖고 싶어도 도저히 가질 수 없게 되고 맙니다.

 

눈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것이 참으로 이성적인 것으로 생각이 되어 지기도 하지만 실제 눈으로 보는 것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성이란 사물을 판단하는 힘. 참과 거짓, 선과 악을 식별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는 그 이성이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면 그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성적인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 잔의 겉은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실 정도로 그들은 이성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성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들의 풀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들의 풀이 정말 아름답게 보여도 잠시 후에 썩어 버린다면 그것은 잠시 감성에 취해서 아름다운 그 순간 필름의 한 장면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들풀이 썩어지면 어떻습니까?

그때도 정말 아름답게 볼 수 있습니까? 아무 썩는 냄새를 맡기 싫어서 코를 막고 그 곁을 비켜서 지나칠 것입니다 냉정하게 보면 들풀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아름다움을 주고 그 이후에는 썩어져 오히려 고개를 돌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잠시 취하는 것은 감성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잠시 잠깐의 순간을 보면서 자기들이 이성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다이아몬드가 아주 오래 시간이 흘러도 그 빛이나 모형이 전혀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렇게 변하는 것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 있는 장미도 잠시 후에는 썩어서 냄새가 나서 쓰레기로 버려진다면 어떻게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주 잠시 아름다웠을 뿐이지 자기가 본 그 아름다운 것은 그 순간에 취해 감성에 따라 움직인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이와 같습니다.

그런 육체를 보면서 좋다, 나쁘다 를 이야기 하는 것은 영의 눈으로 볼 때는 너무 감성에 빠져 있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영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그런 감성적인 것에 취하기보다는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좋은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물론 육체를 가지고 사는 인생이 어떻게 육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것을 아예 무시하고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원론적인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이며 감성적이지만 우리는 또 다른 영혼에게 좋은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그 감성적인 것이 필요 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을 뜨는데 있어 그 감성적인 눈은 절대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영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마음에 이성적으로 자리하고 그 말씀이 절대적으로 믿어지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영의 눈을 가지려 하기 보다는 육의 눈으로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역시 육의 사람이 있고 말씀을 통해 자기 믿음을 확증해 나아가는 영의 사람이 있습니다. 육의 사람은 영의 사람을 분별할 수 없지만 영의 사람은 육의 사람을 아주 쉽게 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몇 마디만 들어도 저가 육의 사람인가 영의 사람인가를 너무도 쉽게 분별을 합니다.

 

분별의 영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분별할 수 있는 영이 있지 못하면 저가 영의 말을 하는지 아니면 육의 말을 하는지 도무지 분별을 하지 못 합니다 그렇게 분별을 하지 못하게 되면 들의 풀과 같은 사람의 육체의 보습 또 그 행위를 보면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있지만 사실은 들의 풀과 같은 육체의 것을 보면서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대단히 죄송하지만 한국 교회의 경우 최소한 90%이상이 육의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의 사람은 자기가 교회에 나온 그것으로 교회에서 어떤 신앙생활을 하는 그것으로 자기가 마치 영의 사람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신령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의 행위들을 보면서 마치 자기들이 신령한 것으로 착각을 하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야곱은 지금 에서를 피해 도망을 가는 중입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사실 혼자서 가기에는 너무 먼 길이고 쉽지 않는 여정입니다 요즘 같이 비행기나 차가 있어 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아주 먼 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야곱은 도망자입니다

어느 정도로 힘든 여정인가 하면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할 정도로 그렇게 힘든 여정입니다 하란에 가기까지는 짐승들도 있고 또 도적 떼들도 있어 잘못하다가는 노예로 팔려 갈 수 있습니다. 야곱은 실패자로서 그리고 낙심을 하면서 지금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피난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면 좀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지금 돌베개를 베고 잘 정도로 힘든 여정 속에 있는데 그것을 쉽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먼 미래의 말씀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너무 고달픈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는 않고 내가 너를 어떻게 해 주겠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어떻게 마음에 와 닿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지금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면 그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니까 필요 없고 지금 내가 고달프니까 나를 편하게 해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이 야곱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준다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하란으로 외삼촌 집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나중에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인들이라면 나중에 주는 것 보다 지금 내 어머니 리브가 에게 가서 살게 해 달라고 요구 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외롭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나 혈혈단신으로 얼굴도 모르는 외삼촌 집으로 가야 하는 처지입니다

 

지금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하란으로 가는 너무 먼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또는 사나운 짐승을 만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그런 미래의 말씀 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당장 자기가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이 달콤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은 가나안의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눈으로 보이는 땅을 본 것이 아니라 영의 눈을 뜨고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시는 천국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은 그 땅을 떠나 하란으로 도망을 가고 있지만 자기가 반드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육에 빠져 있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솔직히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한다는 그 사람들을 보면 거의 다 육적인 문제를 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세상의 점쟁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야곱의 육적인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금 영적인 문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우리 육적인 것도 채워 주시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나타나시거나 감동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은 잠깐입니다

들의 풀과 같은 그 잠깐의 시간에 조금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그것을 채워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설령 그것을 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지 않습니다. 지금 야곱이 너무 힘든 상황입니다 돌베개를 하고 잠을 자야 하는 그런 환경에서 아주 먼 미래에 가나안 땅을 준다는 것은 지금 돈이 한 푼도 없어 굶고 있는 사람의 집에 금괴가 있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가나안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

지금 야곱은 가나안에서 쫓겨나가 하란으로 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너와 네 자손에게 네 누운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인들은 그 따위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고 당장 자기가 처한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천국 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나안 땅 보다 더 귀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야곱은 자기가 다시 하란을 향해 나그네와 같이 혈혈단신으로 떠나가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시겠다고 하는 그 언약이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아마 지금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해 주신다면 그것 말고요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지금 당장 내가 필요한 것을 채워달라고 때를 쓸 것입니다

 

천국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언약을 해 주셔야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교회에 나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자기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언약이 있어야 합니다.

천국이 누구 소유냐면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잘한다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유의 주인이 들어오라고 약속을 해 주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지금 야곱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육적으로 볼 때는 도무지 천국에 다시 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

형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시 가나안에 올 수 없습니다. 그가 다시 돌아올 때도 얼마나 형 에서를 두려워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두렵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땅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보면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에 나를 비추어 보면 두려움이 생기게 되고 스스로 좌절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아무리 두렵게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면 내가 갈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믿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지금 야곱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야곱은 지금 홀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삭의 축복을 받은 후 혼인을 하기 위해 하란으로 가고 있지만 그에게는 가는 길이 너무 멀고 험난한 길입니다 당장 눈앞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복으로 편만할 것이라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역시 미래의 것입니다

지금 당장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씀을 해 주시지 않고 야곱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섭리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번성할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야곱의 처지에서 나중에 자기 자손이 이 땅에 편만하고 하는 것은 마음에 와 닫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내 처지가 괴로운데 나중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영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자손이 아무리 많으면 뭐 합니까?

그들이 다 지옥에 떨어져 사망을 당한다면 멸망하는 짐승이 된다면 그 자손으로 기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통해야 할 문제입니다 저도 제 아이가 있지만 솔직히 아직 복음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아직 나이가 있고 젊은 세대들이라서 그런 것이 자기들 마음에 와 닫지가 않습니다.

 

물론 그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가 아무리 좋은 것을 다 해준다 해도 그 아이의 영혼이 멸망을 당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자손을 구원해 주시기로 약속을 해 주신 것과 같이 제 아이를 구원해 주실 줄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복음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장 큰 축복입니다

자기 자손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들도 구원을 하고 있는데 자기 자손이야 말로 다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도 자기 골육이 구원을 받기를 간절하게 원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에게 허락한 것이 무엇입니까?

너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신다는 것과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많아져서 동서남북으로 편만하리라는 언약입니다 가나안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고 그 자손이 이 땅에 편만하게 많아지리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다 이루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가나안은 천국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을 하신 허락한 것을 다 이루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을 해 주셔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허락을 해 주셨습니까?

언제 어떻게 여러분에게 가나안에 대한 허락을 해 주셨습니까?

만약 그런 허락을 받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만 하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야곱에게 허락한 모든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육적으로 야곱이 고생을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을 안 하시고 오직 가나안에 대해서만 허락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에 대한 허락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브엘세바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생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났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을 한다면 아직 육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를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역시 우리 육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는 고생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반드시 가나안으로 너를 인도하겠고 네가 다시 이 땅 가나안에 들어오는 때 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비록 육체는 고생의 길을 가고 있지만 정처 없이 나그네의 길을 가고 있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견인에 대해 부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견인에는 어떤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에게 어떠한 조건을 달지도 않고 무조건 너를 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의 견인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는 자들은 이 성도의 견인을 부정하고 있고 야곱이 외삼촌 집에 가서 무슨 실수를 하면 마치 가나안에 다시 오지 못할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무조건 들어옵니다.

그것은 야곱에게 있어 어떤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죄를 짓던 선하게 살던 아니면 하나님을 모르고 떠나 자기 구차한 생활에 찌들어 살든 가나안 땅에 들어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약 야곱의 어떤 문제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시는 분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야곱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으면 그대로 이루어 주셔야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가나안 땅으로 네가 들어오기 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시고 난 후에 야곱이 어떤 실수를 했다고 해서 못 들어오게 한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악해서 자꾸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만 믿어서 되느냐고 조건을 달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조건을 달았다면 절대로 야곱은 가나안 땅에 다시 돌아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죄를 한 번도 안 져본 아담도 단 한 가지 조건 때문에 에덴에서 쫓겨났는데 사기꾼 같은 야곱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조건을 안 다셨습니까?

만약 어떤 조건이라도 다는 순간 야곱은 절대로 다시 가나안 땅에 들어 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의 체질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조건을 달겠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천국에 가야하는데 아주 까다로운 조건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조건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조건에 충족을 하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해 버립니다. 오직 믿음으로 천국에 가야 하는데 조건을 만들어서 그것을 믿음과 연결을 시키니까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가 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데 믿음이 있는 자가 되려고 하니까 어떤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아주 교묘하게 미혹을 하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소자들을 미혹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행위가 믿음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마음에 있는 것이고 행위는 자기 몸으로 행하는 것인데도 자기 몸으로 행하는 그것이 믿음과 결부가 되다 보니까 믿음이 있는 자가 되려고 하면 그들이 요구하는 행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 조건을 만들어서 괴롭게 합니다.

 

우리는 조건이 있으면 천국에 못 갑니다.

그것을 모르고 자기가 행하고 있는 아주 작은 조건을 보면서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과 같이 거저 주어야 갈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셔야 내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 만의 하나라도 어떤 조건이 있다면 우리는 미리 포기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조건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들을 보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나를 믿고 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그 어떤 조건도 없는데 사람들이 악해서 행위와 믿음을 교묘하게 연관을 시키고 있습니다.

 

야곱을 통해 창세기부터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고생입니다 그 고생길을 걷고 있는 야곱과 같은 나에게도 지금 찾아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믿음을 보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하시고 또 너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때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믿지를 못 합니다.

믿지를 못하는 이유는 자기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영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조건도 없는 은혜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믿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반드시 천국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