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복음과 율법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윤주만목사 2019. 4. 14. 22:21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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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2:1-7절을 보면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의인의 생각은 공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궤휼이니라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잠언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그렇게 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잠언의 말씀은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혜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성경은 처음부터 우리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잠언이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잠언을 유대인들이 보고 있는 탈무드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리고 탈무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조상들의 지혜를 담은 책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우리 영의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탈무드를 마치 성경을 보듯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잠언을 마치 세상의 지혜를 얻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 이유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종교는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구원은 받은 것이 되고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까 그 다음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고 그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시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절대로 부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우리 안에 이 생명이 있는가를 계속해서 성경을 통해서 확증해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물론 단회성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에 대해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을 하고 있고 거기에 우리는 하나라도 걸림이 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릅니다.

자기가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찾아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악인이 많다는 것을 성경이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그리고 악인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의인과 악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의인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인입니다. 이 악인에 대해서 거의 모든 말씀이 다 비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경에서 악인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자기가 악인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인입니다

그 악인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고 악인에 대한 말씀이 있으면 내가 그렇게 행하지 않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의 단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유입니다

잠언도 시작할 때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지혜 있는 자는 학식을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말씀도 비유로 되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이 비유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그냥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있는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묘한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오묘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특히 이 잠언은 그저 자기들이 이성적으로 아는 단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오묘한 말씀을 깨달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입니다

그것으로 이 잠언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만약에 인생의 지혜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들은 모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조상 대대로 믿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에서 악인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그 악인이 누군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오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시대 긍휼히 여기시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저 역시 모든 성경을 다 풀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복음을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다가 망하는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지금 편찬이 되고 있는 성경들은 복음을 깨닫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열심으로 인하여 성경에 자기들이 깨달은 것만 각주로 달아 놓음으로 해서 그것 외에는 인용을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신학자의 열심입니다

그것이 성경을 오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그 오묘한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텍스트만 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각주를 달아 놓았거나 제목을 달아 논 것은 우리가 복음을 아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그것은 성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처음 성경입니다

누가 각주를 달아 놓았습니까? 인용이 되어 있는 말씀은 성경 자체에 인용이 되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학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각주를 달아 놓고 제목을 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마치 그것을 성경과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성경만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비유의 말씀과 오묘한 말씀을 찾아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제목을 보고 먼저 그 말씀의 뜻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그 제목 중에서 성경과 일치하는 제목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훈계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지만, 책망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짐승같이 우둔하다.”

사도행전 20:31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훈계

잘못하지 않도록 타이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에 훈계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잘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들 중에 누가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 있었습니까?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입니다 물론 신약에 와서 이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복음을 가진 자보다는 다른 복음을 따르는 자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다른 복음에 미혹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훈계를 했습니다.

왜 훈계를 했습니까? 그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이미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할례를 받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잘못된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훈계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은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면서 성령이 오시면 세상에 대해서 책망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책망을 하고 있는가 하면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는 진리를 알기 때문에 훈계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우리 인생은 율법주의로 태어났습니다. 그 율법주의를 훈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훈계를 듣는 자는 지식을 좋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면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잘못 믿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은 다 율법주의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셔서 그리고 이 시대 성령을 받은 자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 율법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훈계하시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훈계를 했습니다. 그 훈계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훈계를 들은 에베소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지식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로부터 훈계를 들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입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을 때 훈계를 했다는 말씀입니까? 자기가 율법주의로 잘못 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훈계를 하심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으니까 여호와를 송축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까?

아니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은 절대로 훈계를 듣지를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지만 그들은 한 사람도 듣는 자가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지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식을 좋아하기 보다는 율법의 행위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까?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그들은 훈계를 듣지도 않고 있고 성경을 보고 지식을 좋아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6절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징계입니다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지각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의 일을 깨닫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율법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징계를 싫어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욥입니다 그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기 순전함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주의에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실 때 그는 징계를 받아들였습니다.

징계입니다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다. 육적으로도 올 수 있고 영적으로도 올 수 있습니다. 또 세상의 일로도 올 수 있습니다. 그 징계가 왔을 때 더욱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징계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사람들은 징계를 받을 때 그 징계 자체에서만 벗어나려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짐승입니다

이성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복음을 깨달을 수 있는 이성이 없기 때문에 싫어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그런 사람을 잠언에서는 짐승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도 율법주의자들에게 징계를 주시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싫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선한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지만, 악을 꾀하는 사람은 정죄를 받는다.”

선인입니다

그리고 악을 꾀하는 자입니다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입니다

이 선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가 선을 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선인입니까?

선하신 이를 믿는 성도가 선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선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이성을 따라 어떤 선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선인이 아니라 선하신 이를 믿는 성도가 선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하신 이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육체로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을 따라 선하게 하고 있는 그 행위를 생각하면서 선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입니다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선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게 하시고 그렇게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를 잠언에서는 선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 16:27절을 보면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6:19절을 보면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악을 꾀합니다.

누가 악을 꾀합니까?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입술에는 명령한 불같은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악을 꾀한다는 것은 율법을 지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악을 꾀하는 것이 무엇인가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선을 행하기보다는 이렇게 악을 꾀하다가 맹렬한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아무리 강조를 해도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가 율법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반문합니다.

우리가 언제 율법을 지켰느냐고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면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아니 하나님을 믿기 위한 행위라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하는 행위는 율법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죄하심을 받습니다.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정죄하심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의 행위를 더 사랑해서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율법의 행위를 단 한 가지라도 하고 있다면 그는 정죄하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정죄하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악이 무엇인가를 아니 율법을 지키는 모든 행위가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람은 악행으로 터를 굳게 세울 수 없지만, 의인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악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 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도 이 악에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성에 생각을 해서 악하다고 판단이 되는 것을 그저 악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까? 찬송입니까? 기도입니까? 헌금입니까?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는 평생을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 뿐 입니까?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에 굳게 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는가 하면 바로 이 악으로 인하여 그렇다는 것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악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악이 한 가지라도 있으면 그는 믿음에 굳게 설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각이 없이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아무 거리낌이 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16절을 보면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로마서 11:24절을 보면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의인의 뿌리입니다

그 뿌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뿌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영의 일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인의 뿌리에 있는가 하면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뿌리입니다

우리는 원돌감람나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가지를 찍어 본성을 거스리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접붙임이 되어서 뿌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그 악을 행하는 율법을 지키는 본성을 거스리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으로 말미암아 뿌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어진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이지만, 욕을 끼치는 아내는 남편의 뼛속을 썩게 한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악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다가 갑자기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쌩뚱 맞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악을 꾀합니다.

어디서 악을 꾀합니까? 이 세상에서 악을 꾀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악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악을 꾀하고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면서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인입니다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선인이 있고 악을 꾀하는 자가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는데 어진 교회는 지아비에게 면류관이 되지만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정말 우리는 이 교회를 바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교회를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다수가 다니는 교회를 정통이라고 하고 있고 그렇게 사람들에 의해서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에 들어가는 것으로 자기들이 마치 복음을 듣고 있는 것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여인입니다

그 여인을 아내라고도 합니다. 이 아내가 어질면 그러니까 덕이 있으면 그 지아비로 면류관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다스리는 자로 하여금 면류관이 되게 하고 있지만 욕을 끼치는 여인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를 썩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뼈가 썩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 기독교는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미 뼈를 썩게 만들고 있습니다.

의인의 생각은 공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궤휼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의인의 생각은 곧지만, 악인의 궁리는 속임수뿐이다.”

의인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이 곧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의인의 생각은 흔들리지가 않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 그대로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도모는 궤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그 안에는 의인이 있고 악인이 있습니다. 의인이 있는 교회는 어진 여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악인이 있는 교회는 욕을 끼치는 여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의인도 모르고 악인도 모르고 어진 여인이 누군지도 그리고 욕을 끼치는 여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사야 32:7절을 보면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어니와

악인의 도모입니다

그것을 궤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련한 자가 누구입니까? 구원을 받을 수 없어서 슬픈 마음이 들고 가엽고 불쌍한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련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은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악한 계획을 세우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게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악인은 교회 안에서 도모를 하고 있고 그것을 궤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소년과 같은 사람들은 이 악인의 도모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악인이 하는 말은 피 흘릴 음모뿐이지만, 정직한 사람의 말은 사람을 구하여 낸다.”

갈라디아서 2:4절을 보면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악인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엿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서 피를 흘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망을 당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사실 사람을 엿볼 필요도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율법에서 자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언제든지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종으로 삼아서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말입니다

누구의 말입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모든 말은 악인의 말입니다. 그 악인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잠언에서는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자의 입입니다

의인의 길은 정직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인입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자의 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악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지만 악인은 율법도 지키라고 하고 있고 정직한 자의 입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해도 율법의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악인은 쓰러져서 사라지지만, 의인의 집은 든든히 서 있다.”

히브리서 3: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악인입니다

누가 악인입니까? 그 시체가 광야에서 엎드려진 자가 악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그 결론을 말씀을 하면서 이로 보건데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광야라는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악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들이 광에서 그러니까 교회에서 엎드러진 자가 악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악인이 누군가 하면 저희가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거절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악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인은 소멸이 됩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에서 둘째 사망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진노를 쌓은 악인들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든든히 서 있습니다.

의인의 집입니다

우리가 성전을 지어간다고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를 사도 바울은 누룩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