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강,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에스라 7:26절을 보면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찌니라 하였더라”
아직도 율법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아니 율법이 폐해졌다고 말씀을 드리면 마치 이단이나 되는 것으로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과연 율법을 지키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킨다고 하는 율법을 보면 자기들이 정해 놓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마치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율법은 분명히 폐해졌습니다.
만약 이 율법이 폐해지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헛되이 죽으신 것입니다 어느 특정한 율법만 폐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이 다 폐해 졌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시민법과 제사법이 폐해지고 도덕법은 아직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스스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제사법이 폐해 졌다면 제사 제도에 있는 모든 법이 폐해져야 하는데 아직도 제사 제도에 있는 법이 교회 안에 그대로 있고 심지어는 맥추 감사절까지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폐해진 것입니까?
맥추 감사절을 지키면서 제사법이 폐해 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 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입니다 제사법이 폐해졌다면 당연히 맥추 감사절을 지키지 말아야 하는데 맥추 감사절을 지키고 있고 맥추 감사절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유월절은 안 지키고 수장절은 안 지키고 있습니다.
기본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단들이 득세를 하고 있고 그들의 주장에 기존 교회 교인들이 쉽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제사법이 폐해 졌다면 모든 제사법을 지켜서는 안 되는데 어느 것은 지키고 어는 것은 안 지키다 보니까 기초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나오지도 않는 절기들이 지켜지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심각하게 세속화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있는 절기들도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다 폐하셨는데 오히려 성경에 있지도 않은 절기들을 만들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상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상이 다른 것이 우상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교회 안으로 들여와 그것을 절기로 만들어 지키는 자체가 우상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들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서 그것을 통해 더욱 육체의 복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절기를 만들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서 선교가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한 마디로 미국의 축제일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절기가 아니라 자기들이 만들어서 기념일로 지키고 있는 축제일인데 성경에도 없는 그 날을 절기로 만들어서 교회에서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입니다.
왜 그 나라의 축제일을 우리가 교회에서 지켜야 합니까?
수장절과 추수감사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만약 절기를 지키고 싶다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절기를 지켜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모든 제사 제도에 있는 절기를 지켜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무 생각 없이 지키고 있는 그것이 교회의 전통이라고 지키고 있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가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가장 불행한 일이기도 합니다.
도덕법이 안폐해 졌습니까?
만약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스스로 자기 양심에 손을 얻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도덕법을 잘 지키고 있는가를 생각하시고 그 도덕법에 따른 처벌을 받고 있는 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는 처벌도 받지 않는 그 법이 아직도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자체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를 곰곰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율법에 매여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는 저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니 받아들이기 힘이 들 것입니다 자기도 지키지 못하고 있고 그 법에 따라 처벌도 못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앵무새처럼 외치고 있습니다.
법이 살아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법을 어긴 사람은 성경에 나온 그대로 그에게 처벌을 해야 합니다.
법이 살아 있다고 하는 그들이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 처벌도 못하면서 그저 자기 생각에 따라 법이 살아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매 주일 마다 주일 성수를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만약 법이 살아 있다면 그들을 끌어다가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법이 살아 있다고 주장할 수 있고 그것이 맞는 것입니다
율법을 폐해야 합니다.
만약 한 가지라도 율법이 여러분의 마음에 살아 있어 그것을 삼가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모든 율법을 어긴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키고자 하는 그 율법 한 가지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를 먹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악해서 자기들을 나타내고 싶어서 아직도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폐하신 그 율법을 지키면서 행위로는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온갖 미사여구를 써 가면서 자기 믿음을 주장하고 있는 그들이 행위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에 대한 것은 벌써 구약 때부터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보면서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밝히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악해서 자기들이 그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합니다.
지키려면 제사법 시민법 도덕법을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어느 특정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합니다. 내가 지킬 수 있는 그 율법 한 가지로 인하여 모든 율법이 살아나서 나중에는 그 율법이 모든 것을 다 요구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그 기본을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무슨 대단한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들의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에 대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을 어린 양을 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세상 죄에 제사법과 시민법만 포함이 되고 도덕법은 포함이 안 된 것입니까? 그 기본을 모르기 때문에 아니 기본이 되는 말씀을 기초에 두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니까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성경을 엿 장수 마음대로 해석을 하면서 도저히 이해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가 말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또 듣는 사람도 도저히 헷갈려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도덕법은 살아 있다고 합니다. 만약 도덕법이 살아 있다면 오직 믿음으로 말은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하려면 도덕법이 폐하여지든지 아니면 오직 믿음이 아니라 믿음 플러스 도덕법이라고 해야 맞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아주 애매모호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 믿음에 무엇이 포함이 된다면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예수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미리 포기를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 같으면 믿지 않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믿음에 무엇을 더해야 한다면 저는 이 시간 부로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할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제사법도 있고 시민법도 있고 도덕법도 있습니다.
만약 이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뺀 다면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이 아닙니다. 도덕법을 빼고 제사법과 시민법만 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흠 없이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안식일 교회고 또 여호와 증인입니다
교회가 점점 안식일 교회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안식일 교회를 가서 보시고 그들과 교제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그 보다 더 이상적인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몰라서 그렇지 아니 접촉을 안 해서 그렇지 지금 한국 교회에 있는 교인들은 안식일 교회를 접촉하면 모두가 넘어갈 것이 뻔합니다. 이제까지 교회에서 배워왔던 것을 아주 잘 실천을 하고 있는 교회가 바로 안식일 교회입니다
왜 도덕법이 폐해 졌는가를 성경을 통해 보겠습니다.
신약만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도 이미 도덕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도덕법을 지켜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6절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찌니라 하였더라”
두 가지 명령이 나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왕의 명령입니다
이 당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의 왕은 이미 포로로 잡혀 가 있고 이방의 왕이 권세를 잡고 있는 시대입니다
고레스 왕 시대입니다
메데와 마사에 의해 바벨론 까지 멸망을 당하고 이제는 메데와 바사의 왕인 고레스가 통치를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왕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왕의 명령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방 왕의 명령을 지키지 않을 경우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 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분명히 도덕법이 있는데 그 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고 이방 왕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자는 그 법대로 처결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율법을 지키라고 하시지 않고 왜 이방왕의 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마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조차 모를 것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눈이 가려져서 율법에 눈이 가려서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12:50절을 보면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오직 그 한 길 뿐입니다 우리는 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직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 또 구원을 받은 자가 구원에서 탈락을 할 수 있다고 헛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구원을 받은 자가 어떤 행위로 탈락을 한다면 여러분이나 저나 이 세상에서 예수 믿지 말고 선하고 의롭게 살다가 죽으면 됩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사람이 태어난 목적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신을 믿든지 안 믿든지 만물의 영장으로서 태어나서 이 세상에 기여를 하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마치 기독교인만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고 세상 사람들 중에는 기독교인 보다 더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명령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는 성인군자로 살았을지라도 그는 멸망하는 짐승에 불과합니다.
또 왕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도덕법은 세상왕도 지키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질하지 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내 부모를 공경하라, 내 이웃을 사랑하라 이런 도덕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는 세상 왕이 있습니까?
참 생각하는 것이 이상합니다.
마치 세상 왕은 이런 것을 안 지켜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북한에서도 살인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부모를 잘 못 섬기고 하면 처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합니까? 그 처벌에 따라 죽이기도 하고 가산을 적몰하기도 하고 또 옥에 가두기도 합니다.
이것이 도덕법입니다
이미 우리는 세상에서 교육을 받고 있고 또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세상 왕이 그냥 두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미 다 지키고 있는 법을 왜 그렇게 강조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도덕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라고 가르쳐 주고 있고 그 기준이 성경에 나오는 그 도덕법이 아니라 이 세상 왕의 도덕법을 잘 지키고 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 사람보다 더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야 우리가 가진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13:1절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사도바울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해졌기 때문에 잘못하면 자기 생명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법이 다 폐해졌다고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살인을 하게 되면 세상 법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이 세상 권세가 바로 도덕법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공경하라고 배워왔고 또 내 이웃에게 해를 끼치면서 살면 안 된다다는 것을 배워 왔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도 이미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교회가 아니라 세상 법이 그를 정죄해서 죽이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또 옥에 가두기도 합니다.
교회가 이 일을 합니까?
도적질 한 사람들 옥에 가두는 일을 교회가 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도덕법이 살아 있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도덕법을 이미 세상 권세자의 명령에 따라서 지키고 있고 그것을 어겼을 때는 아무리 교인이라 해도 처벌을 받고 있습니다.
이 세상 왕도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에 양심이라는 것을 주어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는 처벌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처벌을 받을 때 법이 살아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처벌도 하지도 못하는 법을 가지고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 마디로 허무한 개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2:13-14절을 보면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도덕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안 지키면 내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도덕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도적질 한 사람을 교회는 그를 처벌할 어떤 권한도 없습니다. 만약 도적질 한 사람을 율법대로 처벌을 했다가는 세상 왕이 그 교회를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그대로 교회 안에서 처벌을 했다가는 살인한 자를 자기들 마음대로 율법에 나오는 도덕법대로 처리를 했다가는 세상 왕이 그냥 있지를 않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자를 교회가 만약에 돌로 쳐 죽였다가는 그 교회는 반드시 세상 왕으로부터 처벌을 받아야 하고 지탄을 받고 말 것입니다
이래도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까?
왜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그렇게 주장을 하는가 하면 자기들의 법으로 교인들을 구속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말을 잘 듣고 자기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는 것인 줄 모르고 그것이 영적으로 악한 일인 줄을 모르고 그저 앵무새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악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도덕이라는 잣대로 건들이면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 없기 때문에 도덕이라는 명분으로 족쇄를 채우고 있고 교인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우고 있습니다.
모든 율법은 폐해졌습니다.
왜 폐해 졌는가 하면 애초부터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보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악해서 자기들이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겠다고 언약을 하고 말았습니다.
법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말 못 합니다
아니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은 결코 자기가 법을 지키겠다고 하지 않고 은혜를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아주 작은 자기들이 지킬 수 있는 법을 지키면서 그것이 마치 대단한 일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면서 법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키려 합니다. 그것이 나중에는 진노의 잔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는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 보다 더 깨끗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저 자기들이 모여 있는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정한 삼가 지키는 것을 보면서 깨끗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정말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도를 보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법을 잘 지키면 뭐 합니까?
세상에서는 지탄의 대상이 대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면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을 방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그 법으로 인하여 내가 세상에서 더욱 선하고 의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다면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데 자기들끼리는 아주 잘하면서 서로 칭찬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면 그는 버림을 받은 이스라엘과 같이 버림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도덕법은 폐해졌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그렇고 사도베드로도 그렇고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 권세 자나 세상 권세에 복종을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아주 깨끗하게 사는 길이고 그렇게 사는 나를 보고 이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합니다
말로는 아주 잘 합니다
그런 그들이 세상 법은 세상 규례는 아주 쓰레기 취급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만 어떻게 하든지 성인군자처럼 보이려고 겸손의 모양을 내는데 미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 하신 이 세상의 도덕법을 지키지도 않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는 자기들끼리 정해 놓은 삼가 지키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정력을 다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미 가르쳐 주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에스라서를 통해서 율법이 도덕법까지 다 폐해질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이 악해서 어떻게 하든지 자기를 좋게 보이고 싶어 하고 또 교인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도덕이라는 잣대를 통해서 여러 가지 율법을 살리면서 구속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이단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를 통해서 율법이 폐하여 졌다는 것을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바로 해석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성경을 바로 안다면 도덕법을 이용해서 다른 율법을 살려서 교인들을 구속하려고 하는 것을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자유와 방종은 같이 보입니다. 자유 하는 입장에서는 자유지만 법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방종으로 보입니다. 내가 은혜 아래 있느냐 법아래 있느냐는 내가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법을 지켜서 자유 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법을 폐하시고 그 법에서 자유 하되 우리가 은혜를 입었다면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 보다 더 깨끗하게 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준은 이 세상 권세자나 왕의 법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은혜가 되어 풍성히 넘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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