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64강,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윤주만목사 2019. 8. 22. 07:49


164,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로새서 2:16-19절을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너무 태평합니다.

마치 교회에 나온 것으로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청함을 받았을 뿐인데 마치 자기가 택함을 입은 자나 되는 것 같이 행동을 하고 있고 또 그렇게 맹신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침노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남의 나라를 불법으로 쳐 들어가는 것을 침노하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누구도 불법으로 쳐들어 갈 수 없지만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불법으로 쳐 들어가서 얻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불법을 하는 인생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음으로 말미암아 침노를 할 수 있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침노는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해서 쳐 들어가서 그곳을 점령하는 것을 침노한다고 말 합니다

 

그런데 싸우지를 않습니다.

아니 싸운다고 하는 것을 보면 육적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영의 문제인데 육적인 싸움을 해서 그것을 침노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육의 일과 영의 일을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는 육의 싸움을 하고 있으면서 마치 그것을 영의 싸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너무 심각하고 자기가 싸우는 목적을 모르고 싸움을 한다면 그는 백전백패를 당하게 되고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되기보다는 천국에서 쫓겨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영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육의 싸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니 자신이 싸우고 있는 그 싸움이 육의 싸움인지 영의 싸움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단의 계략에 철저하게 놀아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겨우 일요일 날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가지고 마치 영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요일에 교회 나가고 안 나가고 하는 문제는 영의 싸움이 아니라 육의 싸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이것을 모르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문제가 육의 싸움이라고 하면 저 보고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를 영의 문제로 생각을 하고 있고 영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육에 있는 사람은 도저히 영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것이 영의 문제입니까?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영의 문제로 보여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간을 정해 놓고 하고 있고 또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싸움에서 승리한 자처럼 기세가 등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도 육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루 종일 예배를 드리고 또 하루 종일 기도를 하고 또 하루 종일 찬송을 하고 하는 것은 모두가 육의 싸움입니다. 그런 것으로는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 하고 있는 그런 자기들의 행위들을 보면서 마치 자기들이 꽤나 신령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유치한지를 모릅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 아주 잘 정돈이 되어 있는 산책길이 있습니다.

정말 하루에서 그 산책을 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얼마나 큰 기쁨의 시간인 줄을 모릅니다. 그 시간만큼은 모든 시름을 벗어 버리고 땀을 흘리고 나면 기분까지 상쾌해 집니다.

 

그런데 가끔가다가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몇몇 여자 들이 올라와서 아마 목회자쯤은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이 산책을 하는 그 길에서 나름대로는 방언이라고 하면서 크게 소리를 내면서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 밖에는 안 듭니다.

 

기도할 곳이 없습니까?

아마 그들은 그런 자기들의 행위가 영의 싸움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더욱 큰 소리를 내면서 아주 뻔뻔스럽게 방언 기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사단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자기들은 영의 싸움에서 승리를 한 개선장군이나 되는 것으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 그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서울의 한 절에서 땅 밟기 사건과 일맥상통한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이 승리를 했다고 돈키호테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모두가 육의 싸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그렇게 함으로서 마치 천국에 가까이 간 것으로 마음에는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내 육체를 통해 하고 있는 모든 싸움은 그것이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는 것이든 아니면 찬양을 하는 것이든 기도를 하는 것이든 모두가 육의 싸움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천국을 침노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기들의 행위를 나타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그런 행위들을 다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일요일 날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또 교제를 해야 하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 합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들은 육의 싸움이지 천국을 침노하는 영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내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모르면 죽습니다.

아주 넓은 골짜기가 있는데 거기를 뛰어 넘을 수 없는 사람이 자기 능력도 모르고 뛰어 넘으려 하다가는 골짜기에 빠져 죽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으로 안 되는 골짜기를 넘으려면 반드시 다리가 있거나 그와 비슷한 무엇인가의 도움을 받아서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겁이 없습니다.

골짜기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께 열심을 내겠다고 하면서 무조건 뛰어서 건너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는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바른 가 틀린가도 분별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육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싸움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 들이냐 아니면 믿지 못해서 자기가 어떤 특별한 행위를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 하려고 하는 그 행위가 영의 싸움을 방해하고 있고 그 싸움에서 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나중에 주님께서 오실 때 슬피 우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영의 싸움은 말 그대로 영의 싸움입니다.

천국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진리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지혜로서 그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영의 싸움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전쟁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침노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너무도 중요합니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사람들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런 먹고 마시는 것이 구원을 방해하는 것으로 주장을 하면서 먹고 마시는 것으로 사람들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술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또 소식을 하는 편이라 먹고 마시는 것을 탐하지 않고 음료도 거의 마시지 않고 가능한 생수만 먹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먼저 하냐면 지금 한국 교회는 먹고 마시는 것을 가지고 너무도 정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립니다.

 

표준새번역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지금 교회에서 얼마나 심판을 하고 있습니까?

제가 술 먹는 것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지만 술 먹는 것이 마치 무슨 큰 죄나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술을 먹고 하는 것을 목사들이 마치 아주 더러운 짓을 하는 것으로 심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먹고 마시는 것으로 심판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술 먹는 것이 죄 입니까?

만약 그것이 죄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실 때 그 첫 번째 기적이 무엇이냐면 바로 물이 변해서 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잔치로 다들 술이 취해 있는 상태인데도 예수님께서는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생각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물이 변하게 해서 술에 취한 그들에게 새 포도주를 주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좋냐 나쁘냐는 사람의 판단이지 실제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함부로 사람을 정죄하거나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안식일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정말 깨뜨리기 힘든 바위와도 같은 것이라서 아마 이 글을 쓰고 설교를 하는 저를 정죄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정죄를 받든 심판을 받든 바른 말씀을 전해야 하기에 분명히 밝혀 둡니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실제 안식일을 범한 자를 율법에 의해서 죽이는 일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일이라고 지키고 있는 그것이 안식일과 같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 안식일 문제로 지금으로 하면 주일의 문제가 심판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일 꼭 지켜야 합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한 율법주의입니다

만약 그렇게 말하는 그가 천재지변이 일어나 주일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천국에 가는 것을 포기하겠습니까? 죄라는 것은 일부러 했던 어쩔 수 없이 했든 죄는 죄인 것입니다 그것이 어쩔 수 없이 했더라도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 일과 안식일이나 절기의 문제로 어느 누구라도 정죄를 하고 심판을 하고 있다면 그는 복음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입니다 자기들이 일요일 날 예배를 드리니까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내 몸으로 하는 그런 모든 행위는 단지 육의 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육의 일을 가지고 폄론(판단)을 한다는 것을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만약 그렇게 폄론을 받는 그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의 일입니다

내 몸으로 하는 모든 일은 그것이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일이라도 분명히 육의 일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육의 일을 하는 자가 아니라 영의 일을 하는 성도입니다 영의 일을 하는 성도는 그런 육의 일을 가지고 폄론을 하지도 않고 또 사람들을 심판하지도 않습니다.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이것들은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림자를 보고 아직도 그림자에 매달려서 그것을 쫓아가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 눈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성경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를 보면서 마치 그것이 실체인 것으로 오해를 하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그림자를 다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림자가 실체와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림자는 실체와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실제 창문에 보이는 그림자는 얼마든지 실체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어두운 밤에 산 속을 헤맬 때는 나무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형상들을 잘못 보고 귀신을 보았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림자는 생각하는 대로 보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안식일을 범하면 죽은 것이 그림자였습니다.

그 그림자를 보면 마치 반드시 죽는 것 같이 보여 지기도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헝겊 조각을 보고 마치 귀신이 나무에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반드시 그렇게 보여 지는 것이 그림자입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아직도 구약에 있는 율법에 의해서 먹고 마시는 것을 가린다면 그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구약에 있는 안식일의 정죄를 보면서 안식일을 범하면 그렇게 돌로 맞아 죽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그대로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는 것이 바로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안식일이나 절기의 문제는 이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함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그림자로 보면 돼지고기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에 나온 사람들도 돼지고기를 마음대로 먹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안식일 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집착을 하면서 안식일을 안 지키면 죽을 것이라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요일 날 예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성도라면 무리가 모여서 예배를 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안 믿는 사람들이나 이제 처음 교회 나온 사람들이 함께 풍성한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안식일의 문제를 가지고 폄론을 하는 것은 그림자를 보고 자기 마음대로 상상을 하고 이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림자를 보고 귀신이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 붙은 자입니다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는 그의 지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문제를 십자가로 해결을 하셨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서 먹고 마시고 또 안식일의 문제나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 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유를 누리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도 그림자를 보고 있습니까?

율법이라는 그림자를 보는 사람은 절대로 실체를 바로 분별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율법에 매여 있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 그리고 안식일의 문제에서 자유 함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이미 안식을 누리고 있는데 아직도 그림자를 보면서 주일을 성수하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육의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주님 안에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해결이 안 되어 주일을 성수해야 하고 또 음식을 가려야 하고 술을 먹는 것을 아주 심하게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그들이 더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악인이 죄인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죄인은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악인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모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성도는 육체를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영을 따라 행하고 있고 그 영혼이 구원을 이미 받았다는 것을 모르고 아직도 먹고 마시고 하는 것이나 절기나 안식일 같은 것에 매여서 진리를 알아 가는데 있어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다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알려 고는 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문제나 절기나 안식일을 어떻게 지킬까를 고민하고 있고 자기가 조금 지키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참 빛이 와서 그림자가 다 사라졌는데도 아직도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을 따라 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림자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림자가 있다가도 빛이 오면 그림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들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빛이 그들의 마음에 비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림자인 옛 것을 따라 행하려고 하고 있고 그것을 안 하는 사람들을 폄론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0:1절을 보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먹고 마시고 절기를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고 하는 모든 것은 다 그림자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면 그림자는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림자에 매여 현재 이스라엘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이 아니 그들보다 더 그림자에 매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짓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모여서 예배 하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지만 안식일 개념의 주일 성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림자가 뭔지 모릅니까?

그림자는 빛이 오면 사라지는 것이 그림자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율법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이제는 영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림자가 없어도 성도는 얼마든지 이 세상에서 선하고 의롭게 살 수 있는데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아니 율법이 없어지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 어린아이와 같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그림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약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확증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을 마치 실체처럼 보고 그것을 그대로 행하려고 한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로 보다가는 잘못 볼 수가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영혼이 사망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가 안 보입니까?

예수가 보이는 성도는 절대로 그림자를 따라 먹고 마시고 절기를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고 하는 것으로 절대로 폄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육적인 일로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누가 일부러 겸손합니까?

굳이 겸손하지 않은 것을 겸손해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분량대로 지식이나 은사나 주셨는데 그럼 그대로 살면 되는데 자유하면서 편하게 살아도 되는데 굳이 겸손의 모양을 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안 하면 됩니다.

또 내 능력이 안 되면 안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구원받은 성도라는 것을 티내기 위해서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서 굳이 일부러 겸손하게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외식 적으로 하는 기도들이 있습니다.

 

굳이 기도를 안 해도 되는 자리에서 기도를 합니다.

그것도 자기가 무슨 신령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 남들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식사 기도를 아주 길게 합니다. 가만히 보면 식사 한 그릇에 모든 복을 담아 갚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식사기도는 율법입니다. 식사기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거기다가 더해서 간식이 나올 때 마다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모양을 내는 이유가 바로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사를 숭배합니다.

실제 천사가 보인다는 말씀이 아니라 천사와 같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 사람을 천사 같다고 말 합니다 그런 행위를 보면서 그가 하는 모든 것을 다 인정하고 쫓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우상 숭배의 표본입니다

 

한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년까지 연장을 하려하고 또 그 자식에게 까지 교회를 물려주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정년이 되기도 전에 은퇴를 하고 물러나는 것을 보면 마치 그를 천사와 같이 보고 이제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을 다 신뢰를 하게 됩니다. 몰론 그런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바로 천사 숭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자기 육체를 헛되이 과장을 합니다.

주일을 지킬 수 없는 형편인데도 억지로 주일을 성수하겠다고 하고 있고 또 십일조를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닌데도 자기 육체를 과장을 해서 십일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00만원도 못 받아는 월급에 월세를 살면서도 남들이 다 하니까 자기도 그것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자기 육체를 헛되이 과장을 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안 되면 안 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만 하면 되지 하나님께서 주시지도 않았는데 심지어는 빚을 내서라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행위가 얼마나 헛된가를 모르고 일부러 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일부러 과장을 하는 이유가 바로 율법에 미혹이 되어 있고 또 샤머니즘적이 기복주의가 교회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갑니다.

그리고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좋게 보이면 자기 능력이 되지도 않는데도 구제를 하고 또 선교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육체는 능력이 안 되는데도 자기가 성도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헛되이 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거듭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내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그림자를 따라 내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다가는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예수는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철저하게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 제도가 폐해졌는데 그리고 율법이 폐해졌는데 아직도 그것을 지키고 있고 먹고 마시고 절기나 안식일 같은 것으로 상대를 심판까지 하고 있습니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육체로 폐해 버리신 그림자의 율법을 따라가지 않고 그것을 당연히 버리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지독한 율법주의에 빠져서 자기가 율법주의라는 것조차 인식을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면 믿음으로 하는 것이고 남이 하면 율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로 하는 모든 것은 율법입니다

그리고 삼가 정해 놓고 지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조건 율법입니다 그것은 그림자를 따라가는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고 이스라엘이 망한 것같이 똑같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머리를 붙들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붙어 있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서 천국에 갈 수 있는데도 굳이 자기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를 자라게 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제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내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노력하는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을 수 있을까를 찾고 그것을 침노하라는 말씀입니다 영의 싸움은 보이는 것에 대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리를 분별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자라게 하십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에게는 붙어 있으려 하지 않고 자기 육체를 자라게 하려고 육체의 모양을 내면서 서로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와 같이 사라지고 마는 그것의 모양을 내려고 또 그 모양을 보면서 아주 좋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티끌과 같은 존재입니다

나를 모르고 하나님을 믿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림자는 이미 물러갔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육체로 어떤 모양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신비한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임하시기를 원합니다.

교회 안에는 육체의 사람이 있고 영의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스스로 분별하고 내가 영의 사람인가 아니면 육체의 사람인가 냉정하게 분별을 해서 혹시라도 내가 육에 속해 있다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영의 일을 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