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66강,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윤주만목사 2019. 8. 24. 06:24


166,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사무엘상 21:1-6절을 보면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다윗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이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예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이 나오면 물론 인간 다윗을 말씀할 수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의 국기를 보면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과 같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하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더구나 메시야를 기다렸고 다윗과 같은 왕이 오셔서 자기들을 영원히 다스린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역대 왕 중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지지를 않았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기록을 말씀을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다윗 왕은 너무도 특별하기만 합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으로는 다윗과 같은 왕이 없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육의 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다윗의 위를 이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시고 왕권을 찾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왕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와 예표입니다

비유는 성경에서 인용을 찾으면 됩니다. 그리고 예표 역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근거로 해서 예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저 아무 것이나 예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예표로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성경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독교입니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성경의 문자를 그대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표를 찾지 못하고 있고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제까지 그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이 남겨 놓은 그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전혀 발견되지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성경이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가를 주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치듯이 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아주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보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억지와 같이 보인다 해도 그것이 알레고리하게 보인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면 저는 그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빌립보서에서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전파가 될 수 있다면 사도 바울은 기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가 되도 기뻐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가 되는 것을 오히려 싫어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이성의 기준을 세워 놓고 그 안에서 전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조금 억지와 같이 보인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가 된다면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어서 전파할 수 있다면 저는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해도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능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방도에서 벗어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를 해도 그것이 틀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뻐한다고 하는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싫어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기준입니다

저는 어떤 말씀이 있더라도 먼저 그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합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지지가 않으면 그 말씀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입에 바른 말만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찾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저 문자로 적혀 있는 그 말씀을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몰랐습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와의 이름을 다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쓸 때는 여호와를 의미하는 이름이 나오면 붓을 씻고 다시 썼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힘써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셔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들이 성경의 문자는 달달 외울 정도로 많이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 가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이 시대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성막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니까? 절기의 의미도 모르고 있고 제사 제도도 모르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저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 정도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를 가지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전하면 안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슨 방도든지 예수 그리스도만 전파만 되면 기쁘다고 하는데 도리어 싫어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서 전파가 되면 기뻐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다윗은 놉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렀다. 아히멜렉이 떨면서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물었다. "동행자도 없이 어떻게 혼자 오셨습니까?"”

 

사무엘상입니다

이스라엘이 두 왕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원해서 먼저 사울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할 수 있었음에도 전리품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아각 왕을 살려두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다윗에게 가서 기름을 부르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두 왕이 있습니다. 사울이 죽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이 두 왕이 있음으로 해서 이제 싸움이 시작이 되고 그것을 사무엘상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왕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단을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입니다

두 왕이 있습니다. 이 지구입니다. 두 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이 지금은 더 강한 왕입니다. 백성들이 다윗을 더 칭송을 하니까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도망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두 왕의 싸움입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제 어디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그가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사울이 더 강하기 때문에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도망을 가고 있는 중에 일어난 사건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사장입니다

아히멜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놉에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놉이라는 곳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지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성전을 짓기 전이니까 아마도 성막이 그곳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대제사장이 있는 곳에 당연히 성막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0:40절을 보면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대제사장입니다

다윗을 떨며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것을 아히멜렉이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윗이 오니까 대제사장이 떨며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히멜렉입니다

그가 다윗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물론 다윗이 아직은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름을 부은 자입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 백성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윗입니다

대제사장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울이 죽으면 왕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지 않고 도망을 하듯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알고 그 일에 대해서 떨며 다윗을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합니다.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사울의 군대 장관으로 있기 때문에 다윗이 오면 군대가 같이 와야 하는데 홀로 오는 것을 보고 사울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다윗을 영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아히멜렉이 죽습니다.

다윗에게 떡을 주고 칼을 준 일을 사울이 알게 됨으로 해서 대제사장에게 속한 사람들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김을 받고 있는 다윗을 영접한다는 것이 어떠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떨며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히멜렉은 다윗을 영접함으로 해서 그가 사울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접해야 합니다.

아히멜렉은 그저 인간 다윗을 영접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을 영접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비록 육체로는 죽임을 당했지만 다윗을 영접함으로 해서 그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입니다.

분명히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을 하면 다윗을 영접을 하면 그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떨며 다윗을 영접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히멜렉은 자기가 죽을 줄을 알고 있었지만 다윗을 영접을 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영접을 하라고 하니까 아무나 영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의 상황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것을 아히멜렉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접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그가 비록 육체의 생명은 죽임을 당했을지라도 그는 분명히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다윗은 선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를 영접한 아히멜렉은 선지자의 상을 받아서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누구의 보내심을 받은 자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그저 교회의 목사라고 하면 영접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를 영접하는가에 따라 그가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또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분별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늘 구해야 합니다.

 

2,“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임금님의 명령을 띠고 길을 떠났습니다. 임금님이 나에게 임무를 맡기면서 부탁하시기를, 나에게 맡기신 임무를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하들과는 약속된 곳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사울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히멜렉도 그 상황에 대해서 떨며 다윗을 영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그는 사울에게 자기가 쫓기고 있다는 것을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쫓기고 있는 상태를 알고 아히멜렉이 그를 영접했다면 아히멜렉에 반드시 죽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자기가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왕의 명령에 따라 자기가 길을 가고 있고 이제 약속한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2:16절을 보면

왕이 가로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다윗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가 하면 자기를 영접한 것만으로도 아히멜렉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 자기에게 비밀하게 명령을 해서 이 길을 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가고 난 후에 이 일을 사울이 알고 나서 아히멜렉의 온 집을 죽이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사단을 예표하는 왕입니다

그 왕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을 영접한 사람들을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초대 교회를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죽는가를 역사를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종교라는 곳에서는 이제까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을 합니까? 주님께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을 영접을 함으로 해서 사울이라는 사단을 예표하는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입니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쫓기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왕의 명령을 따라서 자기가 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영접하고 그에게 떡을 주고 칼을 줌으로 해서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있습니다. 그 일로 어떠한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지금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어서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를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 육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과 혈은 우리를 붙잡고 있어서 사실 그 육체가 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혈과 정을 이겨내고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해서 우리 육체에 어떠한 일이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영접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사장님이 혹시 무엇이든 가까이 가지신 것이 좀 없습니까? 빵 다섯 덩이가 있으면 저에게 주십시오. 그렇게 안 되면, 있는 대로라도 주십시오."

 

다윗은 쫓기고 있습니다.

그가 대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와서 이제 당신의 수종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떡 다섯 덩이입니다 저도 확실하게 그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보리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다 보니까 지금 함께 온 소년들도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떡 다섯 덩이를 달라고 한 것은 충분히 먹을 수 있고 남을 수 있는 양을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소년들이 몇 명인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22장에서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21장과 22장은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떡 다섯 덩이입니다

아마도 그것으로는 그와 함께하고 있는 소년들이 배불리 먹기에는 부족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섯 덩이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오천 명을 먹이신 떡입니다. 다윗과 함께한 자가 아무리 많이 있다고 해도 떡 다섯 덩이면 주님이 오셔서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의미입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떡 다섯 덩이로 누가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지금 말을 하고 있는 다섯 덩이는 단순히 다섯 덩이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을 수 있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떡 다섯 덩이입니다

다윗에게 떡 다섯 덩이만 있으면 그를 따르는 소년들이 먹고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이고 얼마든지 가능한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제사장에게 네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이렇게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떡은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자 제사장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지금 보통 빵은 내게 없고, 있는 것은 거룩한 빵뿐입니다. 그 젊은이들이 여자만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줄 수가 있습니다."”

 

항용 떡입니다

보통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먹을 수 있는 떡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성막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 성막에서 일을 하는 제사장들은 어느 떡을 먹는가 하면 안식일에 떡을 새로 만들어서 떡 상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올려 있던 떡을 내려오게 되면 그것을 제사장들이 먹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히멜렉이 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먹는 보통의 떡은 지금 없다고 말을 하고 있고 마침 떡 상에 올렸다가 내려온 거룩한 떡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떡상에 올려진 떡은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을 말씀을 하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떡에 대해서는 성막에서 우리가 이미 말씀을 들었습니다.

 

떡 상입니다

그곳에 올려 있는 떡은 거룩한 떡입니다 그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성막의 떡 상에 올려졌다고 해서 그 떡이 거룩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떡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떡이 거룩합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떡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 떡이 의미를 하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히멜렉은 그 떡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다윗에게 거룩한 떡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2:3-4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무엘상에서 다윗이 아히멜렉을 만나서 떡을 달라고 해서 먹은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그러니까 성막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떡을 자기나 그와 함께한 자들이 진설병을 먹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성전보다 더 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식으로는 아니 율법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진설병은 반드시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게 율법에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크시다고 하면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이라서 그것을 먹고도 죽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그 보이는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것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승천하시고 난 후에 이스라엘의 성전은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더 큰 이입니다

아니 보이는 성전은 그림자입니다 이제 그 실체가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실체를 예표하는 왕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래서 그가 진설병을 먹을 수 있었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가 비록 진설병을 먹었지만 죄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실체입니다

보이는 성전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 하늘에 있는 형상을 보고 성막을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이스라엘의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 성전보다 더 큰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실체를 예표하는 왕이 다윗이고 그가 진설병을 먹었지만 죄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히멜렉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년들이 부녀만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떡을 주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입니다 그가 떡을 먹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소년들이 부녀만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거룩한 떡을 주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부녀를 가까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녀는 교회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녀와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에서 율법을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소년들이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거룩한 떡을 주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입니다.

거룩한 떡입니다. 부녀를 가까이 한 사람은 이 떡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그것은 음행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은 악한 일이기 때문에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거룩한 떡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거룩한 떡을 먹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니 다윗과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이 소년들이 부녀와 가까이 하지 않았으면 주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5,“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야고보서4:8절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다윗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은 진설병을 먹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성결치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떡을 먹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경에서는 음행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생명의 떡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진설병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어느 곳에서 진설병을 먹을 수 있습니까? 모두가 두 마음을 품고 있어서 율법을 지키면서 부녀를 가까이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음행을 하는 자이고 그들이 먹고 있는 것은 결코 진설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결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야고보서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통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도리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게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그들은 성결한 자가 아니라 더러운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6,“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성막입니다 안식일에 더운 떡을 만들어서 떡 상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더운 떡을 올리는 날에 상에 있던 떡을 내려서 그것을 제사장들이 먹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아닌 사람은 그 떡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이고 주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설병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떡 상에서 내려온 떡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떡을 먹을 소년들은 반드시 부녀와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율법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로만 하고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성경에서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 오직 예수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부녀와 더럽히지 않고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