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44강,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윤주만목사 2019. 7. 29. 07:44


144,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요한계시록14:1-5절을 보면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하나님의 명령은 영혼 구원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았다 해도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닌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또 칭찬을 받았다 해도 그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구원을 받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결말을 아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의 대부분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말씀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단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 안에는 너무 많은 이단들이 있고 또 그 세력이 너무 커서 그들의 교회를 성장 시키고 있으며 그것을 보면서 자기들의 교회가 정통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으면 안심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지 이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치 자기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내가 정통의 교회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은 선민이라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천주교가 천년이 넘게 정통이라고 하면서 지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 때 천주교가 이단이라고 감히 생각을 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천주교를 피해 다녔습니다.

형제교회, 왈도파 등 많은 깨어 있는 성도들은 천주교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고 또 오지로 가서 자기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감수하면서 살아왔던 것을 교회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들은 천주교를 정통의 교회로 생각하고 지기들이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정통의 교회가 그럴 수 있습니다.

물론 천주교와 같이 그렇게 피해 다니고 있는 남아 있는 성도들을 붙잡아서 죽이기까지는 않고 있지만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정통이라는 교회가 천주교와 다를 것이 없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이 죽은 것같이 지금 이 시대도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다 그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세 시대와는 다릅니다.

시대적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도 역시 정통의 교회만이 구원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주변에는 아주 작은 모임 들이 있는데 그들은 가능한 성경대로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의 모습은 중세 시대 천주교와 아주 흡사합니다.

그때처럼 강력한 교권이 없다 뿐이지 예배의 형식이나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것은 천주교와 아주 흡사하고 서로 무엇이 다른 가를 잘 분별을 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한나라의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의 교권을 가지다 보니 사람 하나 죽이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국가가 발전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종교는 더 이상 권력을 사용할 수 없는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그렇다 뿐이지 아직도 교회가 성도들에게 행하고 있는 것을 볼 때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어떻게 하든지 이단으로 몰아 그를 교회에서 축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왕으로 군림을 하고 있습니다.

감히 일개 교인이 교회를 상대로 교리 싸움을 할 수도 없고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모두가 공격을 해서 그를 몰아내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이단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데도 저 사람이 어느 이단에서 교육을 받고 와서 교회를 와해시키려고 한다면서 공격을 하면 더 이상 발붙이고 있을 데가 없어지게 됩니다.

 

교권이 너무 강합니다.

권위는 하나님이 세워 주시는 것이지 그것을 사람이 인위적으로 세우려고 하는 순간부터 그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두렵게 해 주셔야 하는데 인위적으로 두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 했어도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불교를 믿은 사람이나 천주교를 믿은 사람이나 이슬람교를 믿은 사람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교회 안에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타 종교에서 행하고 있는 샤머니즘 적인 것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도 모릅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들이 진리와 상반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어느 종교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조차 모르고 단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아무 거리낌이 없이 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반드시 종말이 옵니다.

그리고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하시고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구원을 받는 자와 그렇지 못하는 자는 그때에 양과 염소의 자리에 서로 다른 위치에 있게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 진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자기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그저 맹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잘못되면 그 교회는 다 죽습니다.

내가 바르다고 믿고 있는 그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그를 따라가고 있는 나는 죽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동안 내 영혼을 바라볼 수 있게 늘 지혜를 간구해야 하지만 그 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이 지혜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못된 지도자에게서 구원이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면 내가 전도한 그 사람도 역시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 해서 한 영혼을 교회 안으로 인도했는데 그가 천국을 가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더 큰 진노를 내리실 것입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그 영혼을 혹시 바른 사람이 구원을 했을지 모르는데 나로 인하여 내 열심으로 인하여 그가 죽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참으시겠습니까?

 

내 자녀를 사망의 길로 인도한 그를 참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원수입니다 원수가 집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집 안에 원수가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버지라고 믿었던 그가 내가 형이라고 믿었던 그가 원수가 된다면 나를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구원을 받지 못한 그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원수처럼 대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을 모르고 하는 열심은 하나님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방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으며 또 내가 행하고 있는 선하다고 하는 그 일들이 어떻게 선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를 따라가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보이지 않는 곳에 남아 있는 자를 구원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자기가 정통이라는 다수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혀 구원이 없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이스라엘 중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찾아 다니셨습니다.

 

1,“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사도 요한이 시온 산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서 있고 그와 함께 심사만 사천 명이 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구원을 받은 모든 자의 수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십사만 사천 명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수 자체가 하나님의 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수안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관연 십사만 사천에 들어가 있는가 조차도 모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하면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이마에 이 이름이 쓰여 있어야 합니다.

 

어린 양의 이름이 쓰여 있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쓰여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한 몸이라면 당연히 내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쓰여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면 당연히 내 이마에 예수의 이름이 쓰여 있어야 합니다. 또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신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도가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되면 신의 존재가 되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이 당연히 쓰여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어떤 존재로 여기시는 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알 수 있고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자기 이마에 쓰여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을처주셔야지만 내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구원도 자기가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기 행위를 보고 마치 구원을 받은 표징처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하늘의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천국을 갔다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사람의 말로 가히 표현 할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천국을 갔다 온 사람들은 잘도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속이는 자들입니다

 

딱히 정확히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물소리 같기도 하고 큰 뇌성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을 하다 보니 거문고 타는 것 같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프 타는 소리가 맞습니다. 이 당시 거문고는 극동 지역에서만 연주되는 악기였고 중동이나 서양에서는 하프가 연주 되었습니다.

 

듣기가 좋았다는 말씀입니다

거문고도 그렇고 하프도 그렇고 그것을 연주를 하면 듣는 사람들은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소리가 시온 산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소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시온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 듣기에 좋았다고 지금 사도 요한이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참여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시온 산에 서서 사도 요한에 들었던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해도 소망을 잃지 않고 견딜 수 있습니다.

 

이긴 자들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긴 자들이 들을 수 있느냐면 믿음으로 이긴 자들이 시온 산에서 이 소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들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기려 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행위로 이기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새 노래를 부릅니다.

이 새 노래는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이 새 노래를 불어야 합니다. 아니 배워야 합니다.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행위에 대해서는 아주 잘 배우는 그들이 새 노래를 배울 생각도 안 하고 새 노래를 부를 생각도 안 하고 있습니다. 새 노래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자기들이 부르고 있는 찬송가가 마치 새 노래가 되는 것 같이 오해를 하면서 찬송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곡조 있는 노래만 생각을 합니다.

노래는 물론 곡조를 붙여 부를 수 있게 한 것이 노래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노래의 뜻은 가곡, 가사, 시조 따위와 같이 운율이 있는 언어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노래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의 노래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곡조 있는 노래만 부르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진리는 퇴보를 하게 되어 또 바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가사 시 이런 것과 같이 그 자체에 운율이 있어 언어로 표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교회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시편 전체가 바로 그런 노래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편40:3-4절을 보면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새 노래가 무엇입니까?

바로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신 그것이 바로 새 노래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내 입으로 소리 내어 고백을 하는 것을 새 노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정말 내 영혼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깊은 사망의 수렁에서 끌어 올리신 것을 믿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을 내 입으로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다윗과 같이 이런 시를 써서 내 입술로 노래를 해야 합니다. 꼭 곡조가 붙어 있지 않아도 내 입에서 아니 내가 그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바로 새 노래입니다

 

그런데 누가 하고 있습니까?

이런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교회들이 얼마나 진리에서 벗어나 있고 또 복음이 변질이 되어 있는 가를 이 한 가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누구 한 사람도 하려고 하지도 않고 이 새 노래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시편96:1-2절을 보면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

 

새 노래는 구원을 찬송합니다.

내 입술을 벌려 그 이름을 송축하고 날마다 그 구원을 선파 하는 것이 바로 새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아는 성도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아니 성도라면 저절로 그 입술을 통해 새 노래를 부릅니다.

 

시편98:1절을 보면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구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은혜로 그것을 선물로 받았다면 당연히 노래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교회는 구원을 노래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입에 바른 말로 형식적으로나 구원을 노래하고 있지 자기가 받은 구원의 기쁨이 얼마나 큰 가를 너무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새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찬양은 잘 부릅니다.

복음성가 까지 하면 수많은 찬양이 있고 그런 찬양을 부르면서 모두가 세상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하고 있고 그 노래로 감동을 주려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세상에 살 때 세상 노래를 부르면서 느꼈던 그 감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세상 노래로 느끼냐 아니면 찬송가로 느끼느냐 의 차이 일 뿐입니다

 

시편에는 새 노래가 많이 나옵니다.

다윗은 자기가 구원을 어떻게 받았는가를 시편을 통해서 아주 잘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노래는 구원을 받은 성도만이 쓸 수 있고 또 입술을 벌려 목소리로 자기 구원을 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사만 사천에 들어 있는 성도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교회에서 부르고 있는 찬송가도 물론 새 노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찬송가나 복음성가는 새 노래라고 하기 보다는 세상 노래에 가깝다는 것을 그 노래가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상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을 하고 있고 자기가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려고도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한국 교회 뿐 아니라 세계 교회가 거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저 찬송가나 아니면 복음성가로 자기들의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여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큰 음녀의 받을 심판에서 이 여자가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점점 종교화 되어 가고 있는 이 세상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국 교회 교인들은 너무 여자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보고 기이히 여기고 또 기이히 여겼다고 하는 말씀은 그 여자가 사도 요한의 눈에는 정말 참 교회로 보였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면 사도 요한이 기이히 여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입니다

그러나 예수 보다 교회가 더 소중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보다 교회의 안위에 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 교인들이며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빚을 내서 교회를 살리려 노력을 하고 그 교회에 온갖 것으로 충성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보이는 건물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성전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몸이 성전인데 그 보이는 건물이 언제부터인지 성전이라는 말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성전만을 모시면 되는데 두 성전을 섬기면서 음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음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곳에서 자세히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어린 양에 속한 자들입니다.

교회 안에는 음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또 하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성도가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 가를 잘 분별을 해야 합니다. 자기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믿었지만 이스라엘은 모두가 사단에 속한 자였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교회 나왔다고 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진노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가 아니라 여자를 섬기고 또 사람을 섬기면서 보이지 않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자 들입니다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구원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다가 행위를 어떻게 하든지 포함을 시키고 있는 자 들입니다 내 입에서 오직 예수가 안 나오고 있다면 그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 나는 거짓말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새 노래는 오직 구원을 노래합니다.

그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입에서는 오직 예수만 나오고 있고 가리지의 입에서는 예수 이외에 것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노래하는 새 노래를 부르는 그런 성도가 되셔서 주님께서 오셨을 때 시온 산에서 주님과 함께 서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