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강,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잠언 7:24-27절을 보면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찌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죄가 사람을 죽게 합니까?
아직도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며 그저 종교에 빠져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죽게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내 육체가 짓고 있는 일반적인 도덕 죄는 내 육체가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 그것으로 인하여 내 영혼에 어떤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성도가 그렇게 법과 싸움을 하고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거기에 모든 기운을 다 빼앗기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죄를 마음 놓고 지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앞서서 언급을 했지만 죄를 지면 반드시 육체에 고난이 오게 되어 있고 사회가 그 사람을 그냥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내가 사는 자체가 죄 입니다
교회에 나가서 기도를 하고 열심히 예배에 참석을 하고 또 봉사를 하고 있지만 역시 우리는 늘 죄 가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도 율법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조금 지키는 그 율법의 의를 보면서 마치 자기가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는 것으로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의를 가질 수 없으며 와전하지 못하다면 그는 역시 죄인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얀 백지에 점 하나만 있어도 그것은 하얀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하얀가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점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성도는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구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너무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하다가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율법주의에 빠져 나오지를 못 합니다 선하지도 못하고 의롭지도 못한 인생이 자기 능력에 벗어나는 일을 억지로 하려고 하다가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다 걸립니다.
분명히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하는 것은 맞는데 그것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방해하고 있다면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선하게 의롭게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율법을 통해서 이루려고 한다는 자체가 문제가 되고 그렇게 율법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이스라엘은 결국 버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율법이 아니라도 됩니다.
그런데 다수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율법이 아니고는 선하고 의롭게 살 수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됩니다. 율법을 다 버리고도 얼마든지 선하고 의롭게 아니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 보다 더 선하고 의롭게 살 수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기득권자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율법을 계속해서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거의 2000년 동안 교회의 교권을 잡은 사람들은 이 율법을 가지고 교인들을 구속을 해 왔습니다. 더구나 이 율법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반포하신 것이기에 누구도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구속을 당하지 않습니다.
아니 율법을 다 버리고도 율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그들보다 더 선하고 의롭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도 철저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려 하기 보다는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죄와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죄와 싸운다고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져본 아담도 실패를 했는데 죄 가운데서 출생한 여러분이 어떻게 죄를 안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는 자체가 사단의 미혹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아무리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죄인이고 죽을 때 까지 노력을 해도 역시 숨이 넘어 가는 순간 까지도 역시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그 죄가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죄와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다만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그 마음은 심히 부패해서 만물 보다 더 부패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또 내가 숨을 쉬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말하고 먹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죄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9:28절을 보면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왜 우리를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신다고 말씀을 합니까?
죽을 때 까지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만약 죄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 문제가 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죄와 상관이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죄와 상관이 있다면 우리는 단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육체적 성화 절대 안 됩니다.
세 살적 버릇 여든 까지 간다는 우리 속담이지만 그것은 우리 인생 모두들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윗도 죽을 때 까지도 자기 정적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죽는 마당에 아들 솔로몬에게 자기 정적들을 죽이라고 유언을 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절대로 성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체면이 있고 또 세상에서 많은 경험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젊었을 때 보다 더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역시도 죄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입니다
어쩔 수 없는 육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육체를 성화시키려고 노력을 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는데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것은 창조 섭리를 무시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진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연약하게 만드셨습니다.
그 진토가 스스로 반석이 되려고 하다가는 결국 부서지고 말게 됩니다. 진토는 아무리 변해도 진토입니다 그것을 불로 연단을 해서 구운다 해서 돌멩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조금 단단해 질 수는 있어도 반석으로 변할 수는 없습니다.
돌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제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진토는 자기를 인정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은 인생일 때 하나님께서 더 불쌍히 여기시고 그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와 상관이 없이 우리를 데려 가시는 것이지 만약 반석이 될 수 있다면 반석이 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나를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안 지려고 하는 율법이 나를 죽이고 있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가져오고 그 율법으로 인하여 정죄를 받게 되고 그 율법에 의해 점이라도 있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못하고 아직도 율법에 매여 있으면서 자기 행위에 도착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으면 되는데 믿음이 무엇인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 자세하게 가르쳐 주지를 않고 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잠언은 지혜서입니다
이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시는 그런 지혜가 아니라 우리 영혼에 대한 문제를 가르쳐 주고 있는 절말 오묘한 지혜서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서를 그저 육적인 지혜로만 받아들이고 있어 영적인 깊이를 모르고 세상 사람들의 지혜와 같이 생각을 합니다.
내 아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우리말에 “아” 하고 “어” 하고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히 “아” 하고 “어”는 다릅니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서는 같이 들리기 때문에 이런 말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아”가 되기고 하고 또 “어”가 되기도 하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묘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도 될 수 있고 “어”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냥 세상의 책처럼 쉽게 풀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주의해야 할 필요도 없고 그냥 그 뜻을 보는 대로 이해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고 또 천주교가 있고 몰몬교가 있고 안식일교회가 있고 또 자칭 정통이라고 하는 교단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다른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가 되기도 하고 “어”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서로가 주장하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이것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냥 신앙생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주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결단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의하라
마음에 새겨 두고 조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늘 보아야 하고 또 신앙생활을 하면서 과연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그 말이 바른 말인가를 늘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 눈으로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그가 나를 멸망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부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사를 보면 거의 정통이라고 했던 그들로 인하여 모두가 어긋난 길로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정통이라고 믿고 있는 이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늘 주의해서 내가 바로 하나님을 따라고 있는 가를 늘 점검을 해 보아야 합니다.
제가 모든 교회를 나쁘다고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상기 시키는 것이지 모든 교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은 생각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의할 대상도 아닙니다. 정통이라고 선민이라고 믿었던 이스라엘의 다수가 멸망의 길로 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입니다
그런 그들의 다수가 멸망을 당했다는 것은 지금 내가 정통의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통이라는 교회 팻말을 보고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가복음 8:15절을 보면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그냥 막연하게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이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교회를 보면 이 두 가지 누룩이 심히 부풀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바로 율법입니다
그리고 헤롯의 누룩은 이 세상 지식과 명예 그리고 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누룩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부풀어 있고 이 누룩이 없으면 오히려 믿음이 없는 자 취급을 받는 교회로 변질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그들이 아직도 바리새인의 누룩을 먹고 있고 헤롯의 누룩을 아주 달가워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된다고 출세를 한다고 가르치고 있고 마치 그렇게 되는 것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또 바리새인들이 지키던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마음에 깊이 새기고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못해서 환장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의하라고 하는 그것을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더 많이 하고 싶어 하고 있으면서 자기가 믿음이 좋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6:1절을 보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간증에 미쳐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간증입니다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하고 있는 것을 그것을 좋다고 보고 있습니다. 너희 의를 사람 앞에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는데 주의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을 못해서 안달이 나 있습니다. 간증하는 것이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전혀 주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도 주의하지 않고 헤롯의 누룩도 주의하지 않고 또 자기의 의를 사람 앞에 행하는 것도 주의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주의하라고 하신 것을 오히려 아주 달가워합니다. 마음 깊이 새기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고 주의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망하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하라고 하신 그 말씀을 주의하지 않고 무심코 했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주의하라고 하신 이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믿겠다고 교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전혀 주의하지 않습니다.
무시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렇게 말했냐! 나는 그래도 이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네가 아무리 주의하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맞으니까 전혀 주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의하라고 하신 그것을 아예 무시를 하고 더 많이 하려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인의 모습입니다
나를 냉정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그것을 얼마나 주의하고 살았는가 냉정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것을 못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무시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찌어다”
죄에는 아주 주의를 합니다.
그런데 음녀의 행위에는 전혀 주의를 하지 않고 오히려 음여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하고 싶어 합니다. 내 영혼이 죽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음녀의 길에 미혹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 세상 죄를 다 가져 가셨습니다. 그 죄로는 내 영혼이 죽는 것이 아니라 주의하라고 하신 그것을 하는 것으로 내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음녀가 누구입니까?
두 남편 또는 여러 남편을 섬기는 여자를 음녀라 합니다.
이 음녀가 누구인지는 너무도 잘 압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음녀가 누구인가는 전혀 주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음녀의 길에 미혹이 되어 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 그리고 헤롯의 누룩이 바로 음녀의 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지키고자 했던 율법이 그리고 헤롯이 얻고자 했던 세상 부와 지식과 명예가 바로 음녀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를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와 명예와 그리고 세상 지식으로 자기를 구원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얻은 자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헤롯이 나쁜 일만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성전을 지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착한 일을 해서 자기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는 사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정말 문제입니다
이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교회가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사상이 아니라 율법은 항상 다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상에는 온 율법을 항상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구원방법을 여러 가지를 찾고 있습니다.
오직 한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데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왠지 찜찜하니까 자꾸 바리새인의 누룩도 먹어서 자기 육체를 깨끗하게 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사상에 미혹이 되어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음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음녀의 길로 가는 순간 영혼은 죽습니다. 그 음녀는 세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음녀의 길을 좋아 합니다. 왜 좋아하느냐면 이 음녀가 너무도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기 때문에 이 음녀의 길로 쉽게 치우치는 것입니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가 누구입니까? 음녀입니다
이 음녀는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음행에 빠지게 되면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상하여 엎드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음행에 빠지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다 죽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음행에 빠지니까 허다하게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당시 이스라엘은 율법의 늪에 빠져 거의 모두가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먹고 있지는 않은가 늘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통이라는 간판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민이라고 자부 하던 이스라엘의 다수가 죽었다는 것을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너무 마음이 단대해서 그런지 자기가 정통이라는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정통 안에서 음행이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고 그 음행을 가르쳐 주는 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행위 중에 바리새인의 누룩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을 정말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까? 신앙생활의 행위 중에 바리새인의 누룩이 헤롯의 누룩이 없는지 정말 주의 깊게 살펴보았는가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그 집이 어디입니까?
이스라엘 당시에는 바로 성전이고 지금은 교회입니다
성전이 음행의 장소가 되었고 지금은 교회가 음행의 장소가 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모든 교회가 다 그렇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 사망입니다
음행을 행하고 있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 있는 사람은 무조건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음행을 하지 않고는 그 교회에서 견딜 수 없고 다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음행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내어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정말 가슴 깊이 새기고 내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 가를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행위가 과연 정당한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방해하고 있는 가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러나 음녀는 아니 그 집에서는 오직 예수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하면서 바리새인의 누룩을 먹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주의해서 살펴서 자기 영혼을 보존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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