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강,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누가복음 11:45-48절을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이와 같이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율법 아직도 끊이지 않는 논쟁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두 남편으로 비유를 하면서 율법의 전 남편이 죽었고 이제 새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집을 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아직도 그 죽은 율법이 살아나서 죽은 남편을 섬기는 음행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사상이 문제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선하게도 못살고 의롭게도 못산다고 하는 사상이 너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율법에서 자유하지를 못하고 아직도 무거운 멍에를 지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율법이 아니라도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들만 율법이 있어 선과 의를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제 다시는 무거운 멍에를 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멍에를 기꺼이 지면서 그것을 멍에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믿음의 증표라고 생각하는데 있어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자기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믿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있어 문제가 됩니다.
성경을 보면 사실 율법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꼭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언뜻 이해가 되고 있는 말씀들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율법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이해가 되는 것은 말씀을 바로 해석하지 못해서이지 성경은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영적인 간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간음을 해서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겠습니까?
절대로 그런 하나님이 아니며 단지 사람들이 전체적인 성경의 구속사적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단지 그 문장 그리고 그 말씀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단 한가지의 율법이라도 있다면 여러분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문제에 이의를 가지고 있다면 정말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하면서 과부처럼 재판장에게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이라 저는 확신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신학을 하라는 권유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신학을 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을 율법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목사가 된다면 오히려 하나님께 해를 끼치는 자가 될까봐 신학을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왔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 사단은 그를 계속해서 정죄를 하면서 네가 어떻게 종교 개혁을 하겠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을 보면서 종교 개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율법적으로 볼 때는 자기 자신이 누구를 정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사실 종교 개혁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알았습니다.
믿음을 알고 나니까 자기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모두 가려지고 이제는 오직 믿음만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담대하게 나가서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바로 율법이 멍에를 씌우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자유 하는 성도는 담대하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왜 그토록 율법에 반대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성도가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을 반대한다면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율법이 아니고도 얼마든지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선하고 의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진노를 가져 옵니다
이것은 율법을 잘 못 지켜서 진노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순간 모든 율법이 살아나서 내가 버렸다고 하는 그것도 살아나서 모든 율법이 나에게 있어 잣대가 되기 때문에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완전해야 합니다.
99%가 되어도 여러분은 진노를 받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율법 613가지를 완전히 지켜야 하고 또 은사적인 것도 완전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완전하지 못하다면 그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이 세상 모든 사람은 100% 완전하게 율법을 다 지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하며 이것은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자 이루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평생에 지켜야 하는 율법의 의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구속의 은혜를 믿지 못하고 율법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지면서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고 아주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악합니다.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과 비교를 하면서 마음에는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아니 이미 왕이 되어서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가 아니라 믿음 플러스 행위라는 교리가 이 시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45절, “한 율법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율법대로 살아가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율법사들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생각하면서 자기들까지 모욕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리새인들 보다 더 율법에 철저했던 사람들이 율법사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정말 노력을 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바리새인들도 이 율법사들의 말을 듣고 율법을 지켰으니까 이 율법사들은 얼마나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겠습니까? 자기들이 율법을 연구를 했는데 자기들이 그것을 안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모욕을 느낀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율법만 연구를 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 한 구절만 보고 마치 이 율법사들이 율법을 안 지킨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당시 성경을 연구하면서 성경 안에 있는 율법을 어떻게 지킬까를 고민했고 그 율법을 바로 지키면서 또 사람들에게 어떻게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을 모범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모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시 율법이 얼마나 성행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었으며 그들은 단 한가지의 율법이라도 어기지 않기 위해서 연구를 했고 또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왔던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시대 수도사들처럼 아주 철저하게 율법대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이 무엇인가를 몰랐습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의 금욕적인 생활을 했지만 그 율법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 가를 몰랐습니다. 율법에 미혹이 되어서 성경 안에서 복음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복음이 안 보이니까 그토록 율법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철저하게 지키고자 했습니다.
더구나 시대적으로 혼란의 시대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말씀이 있은 후 400년 이상 선지자가 나오지 않았고 또 로마라는 강대국 앞에서 자기들의 존재가 너무 미약해서 언제 또 옛날 자기 조상들과 같이 로마의 포로가 되어 이스라엘이 무너질지 모른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더욱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그 율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 의해 망하고 말았습니다.
율법을 보다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율법을 보면 예수가 안 보이고 예수를 보면 율법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반드시 하나를 버려야 다른 하나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46절“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이 말씀이 문제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마치 율법사들이 율법을 안 지킨 것으로 오해를 하고 말로만 가르쳤다고 생각을 합니다. 율법을 연구 했지만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려운 짐을 지웠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율법을 잘 못 지켜서 책망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율법도 사람을 살리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온 율법을 항상 다 지키면 그는 죽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율법의 기능 중에 하나입니다 율법을 다 지키면 분명히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구원을 받지 못하면서 또 다른 사람들도 구원을 받는데 있어 어렵게 하기 위해서 짐을 지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사들이 율법을 안 지켰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을 손가락 하나도 이 짐에 대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율법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이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형식에 보이는 율법을 보고 그것을 지키면서 다 지켰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모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볼 때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예수님께서 화있을진저 라고 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8절을 보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남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물론 율법에는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이 있지만 그것을 율법으로 해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최고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율법을 다 지키는 것이 사랑입니까? 그것은 육적으로는 사랑하는 모양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으로 사랑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생각입니다.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좋은 옷 좋은 집 그리고 풍족하게 살아가는 재물을 주겠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귀한 사랑은 아들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영생의 선물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설령 율법을 다 지켜서 천국에 간다 해도 나 혼자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 혼자는 갈 수 있지만 내 이웃과 내 아들은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렇습니다.
그런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율법사들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손을 대지도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사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지만 실제 그것이 자기를 살리지도 못했고 또 이웃에게 무거운 짐을 얹어 주는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다 못 지켜서 구원을 못 받는다면 손을 대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자기들은 잘 지킨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는 율법에 대해서 손가락을 대지도 않고 이웃에게 무거운 짐만 지워준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문을 막고 서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5:14절을 보면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이룬 사람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서 영생을 얻었다며 최고의 이웃 사랑은 바로 그 이웃도 나와 같이 예수님과 한 몸이 되게 해서 영생을 얻게 하는 그것입니다.
율법사는 이것을 안 했습니다.
자기도 손가락을 대지도 못하고 이웃에게 오히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인하여 무거운 짐만 지워 주었습니다. 그들은 보이는 율법은 흠이 없을 정도로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실 정도로 겉은 깨끗했지만 자기들조차 영생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가락을 대지도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의문에 기록된 율법을 지키는 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가볍게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이 그 부분에 약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팔에 힘이 없는 사람에게 자기가 40kg를 든다고 같이 들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일입니다
또 내가 40kg를 든다고 해서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완전하지 못하다면 그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켰어도 손가락을 대지 않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어차피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은 차라리 손가락을 대지 않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주님께서 율법사들에게 하시고 있습니다.
물론 육적인 것도 포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것으로 아무리 많이 주었다 해도 그가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내 몸과 같이 그를 사랑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율법사들은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책망을 받고도 율법에 빠져 오히려 모욕을 느끼고 있습니다.
로마서13:10절을 보면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율법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사들이 지키고 있는 의문에 쓴 율법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자기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또 구원을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워주면서 구원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의문에 쓴 율법에 대해서는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지만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는 것으로 볼 때는 그들은 손가락을 대지도 않았습니다.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 얼마나 악한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데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가장 악한 일입니다
내가 그럴 수 있습니다.
내 교회가 바로 이 율법사와 같은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음행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이런 영적인 음행에 빠지면 결국 그 영혼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으로만 가능합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율법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에 불과 합니다 율법이 아니고도 우리는 내 이웃을 육적으로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그렇게 육적으로도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더욱 종요한 것은 영혼입니다
내가 악을 행함으로서 그가 구원을 받는데 방해를 하고 있다면 그는 율법사와 같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 해도 손가락도 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키고 있는 율법이 악입니다
구원을 받지도 못하는 그것을 지키는 것이 바로 악한 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율법에 대한 문제를 십자가에서 다 해결을 해 주셨는데 내가 아직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겠다는 행위입니다
그 보다 더 큰 악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사들은 바로 그런 악을 행한 사람들이고 예수를 알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대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자기들 딴에는 율법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율법의 완성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무엇이 악한 일인가를 모르고 세상의 기준으로 악을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그런 악을 행치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악한 행위들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47절,“화 있을찐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누가 선지자들을 죽였습니까?
바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이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것은 비단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초대 교회로부터 교회 안에서 종교 재판이 있을 때 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자들이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교회가 사람을 죽인 것이 수천 만 명입니다
그들이 왜 사람들을 죽였는가 하면 바로 이 율법의 문제를 가지고 자기들의 행위와 다른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을 본다는 죄목으로 교회가 교수형을 시키고 또 화형을 시키면서 죽였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과 대적을 하면서 복음을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이 성행하고 있는 교회에 복음을 가진 자는 이방인에 불과하고 발을 붙일 틈도 없습니다. 직접 죽이지는 않아도 아예 교회에 나오는 것을 방해를 하고 복음을 귀 기울여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는 단 한가지의 그것으로 내 이웃을 죽게 만들고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로부터 끌어 내리려 하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율법이 폐해졌다고 하면 아마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아예 그 교회에서 매장을 해 버리고 저는 이단에 미혹된 자라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못하게 죽이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지금의 교회는 거의 비슷합니다. 다만 다르다는 것은 우리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고 있고 그들은 아직도 율법에 매여 있습니다. 율법에 매여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나 지금의 교회나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48절,“이와 같이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율법은 사람을 죽입니다.
현장에서 간음을 하다 잡혀온 여자를 율법으로 하면 반드시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 여자를 살려 주었습니다. 율법의 기능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삼가 지키는 단 한가지의 율법으로 인하여 모든 율법이 다 살아나 나를 죽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당연하게 생각을 합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를 돌로 쳐 죽이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복음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고 이단적인 사상으로 비춰지는 것입니다
율법사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려는 사람이 되지 마시고 한 영혼을 어떻게 하면 구원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성도입니다 지금 삼가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이 복음을 방해하고 있고 또 구원을 얻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 앞에 서서 천국 문을 막고 있습니다.
율법은 다 지킬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생명을 얻지 못 한다면 그는 손가락 하나도 대지 않은 자이며 그는 결국 율법사들과 같이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율법을 버리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어 내 생명을 얻고 또 내가 생명을 얻은 것 같이 이웃에게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모든 율법을 다 지킨 성도입니다 그런 성도가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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