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강,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사사기 2:1-5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사사시대가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그 자손들을 통해 이루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한번 세우신 언약은 절대로 변치 아니하시고 지키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약한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까지 광야에서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했었고 그 광야 생활에서 믿지 아니하던 20세 이상으로 분별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그리고 20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이 성장을 해서 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 버렸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애굽에서 네 후손이 애굽에서 400년 종살이를 하고 난 후에 그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언약을 해 주셨습니다. 아마 시대에 깨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다수는 자기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400년이라는 시간은 꽤 깁니다
불과 한 세대만을 살았어도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고향처럼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400년을 살던 그곳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조선족들이 많이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또 모든 전통적인 생활이 아직도 교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아마 그들이 중국이라는 나라에 편입이 되어 살아가고 있던 것이 불과 100년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중국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잘 사는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중국에 가서 잘 살고 싶은 것이지 한국으로 와서 정착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입니다 이제 어느 누구도 그들을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고 또 그들 스스로도 중국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동포라는 말도 무색합니다.
그런데 400년을 거주 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애굽의 모든 문명과 그리고 그들의 사상 속에는 애굽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그 조상들과 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마 조선족이 우리나라에 와서 살려고 하면 모든 것을 다시 다 배워야 합니다. 중국에서 사는 습관대로 살려고 하다가는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을 하게 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로 용납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400년 동안 애굽에 살다 보니까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버리지 못 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조상들이 믿었던 하나님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400년이 지난 시점에서 과연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정말 가나안으로 인도하실까 하는데 있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선 시대에 내 조상이 어디 딴 나라에서 이주를 해 왔는데 하나님께서 구전으로 내 조상에게 언약을 했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 언약을 기억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대해서 확신을 하기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정말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애굽의 강한 군대와 그리고 사막의 건조한 땅을 40년이나 지나와서 아낙 자손이 있는 가나안 땅을 점령했지만 역시 그들은 사람이었습니다. 불과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잊어버리고 아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선교 120년이 되었고 우리 할아버지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지금 내 아들이 믿고 있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참 대단합니다.
그 대단한 신앙이 사실은 더욱더 암흑기를 가지게 하고 있습니다.
모태 신앙이라는 그 사람들에게 사사기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의 행위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현실입니다 내 할아버지가 믿던 하나님을 내가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사기의 이스라엘은 정말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 사시기를 기록 했습니까?
육적인 이스라엘을 보면서 영적인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가를 돌아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 같이 우리 역시 하나님을 버리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되물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버렸냐고 말 할 것입니다
행위로는 안 버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는 이미 한국 교회는 절망 적인 수준에 가깝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어쩌면 1%도 안 되는 일본의 기독교인들 보다 더 하나님을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한국 교회는 이미 세속화 되어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 온 이스라엘이 급속히 그곳에 살던 토착민들의 문화를 받아들인 것 같이 지금 한국 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보다도 더 세상과 타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세상 기념일을 지키고 있고 또 타 종교에서 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이 교회 안에 살며시 들어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 하나도 책망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책망을 했다가는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고 또 너무 편협적이다. 라는 소리를 듣기가 십상입니다. 교회의 본질 영혼 구원에 대한 것 보다는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게 칭찬을 받게 되면 교인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그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의 구원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를 공격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고 있는 한국 교회는 절망적입니다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나 될까 생각해 보면 암담하기 까지 합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보다 더 타락을 하고 있고 하나님을 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교회는 세상에 있는 하나의 종교로서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사사기에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하나님을 버렸겠습니까? 그들이 불과 한 세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하나님을 버렸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들은 모세를 통해 반포한 율법과 규례를 아주 잘 지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자기들의 눈으로 목도를 했고 바로 아버지 세대에서 자기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에 들어 왔는가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타락을 한 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버려서가 아니라 그곳에 남아 있는 세속적인 것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있지만 그들은 세속화 되어서 자기들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책망을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다른 성경에는 천사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에게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명세한 가나안 땅을 지금 너희에게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금세 잊었습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가를 불과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잊어 버렸습니다. 아마 그들의 아버지들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무용담을 그 자녀들에게 수도 없이 이야기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번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럴 수 있겠구나 하지만 나중에는 자기들의 조상들이 잘 해서 잘 싸워서 마치 자기들이 지금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내 아버지가 교회에서 무엇을 하고 또 내 어머니가 교회에서 무엇을 하고 하면서도 은혜를 이야기 하지만 나중에는 은혜를 지워지고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교회에 헌신한 그것만 남게 되고 자기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세뇌를 당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 온 것은 은혜입니다
자기들 스스로도 아낙 자손을 보고 메뚜기 같다고 말할 정도로 자기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싸워서 이길 수 없고 점령을 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다 죽을 것을 염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앞서서 행했지만 이스라엘이 한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아버지가 행한 무용담에 더 감명을 받았을 것이 뻔합니다.
그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자기가 어떤 은혜를 받고 있는 가를 모르는 사람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리 은혜를 설명을 해도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몸으로 그리고 자기 재물을 드리고 또 자기 시간을 드려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은혜를 말해 주어도 그 은혜가 은혜 되지 못 합니다 지금 그것을 천사를 보내 이스라엘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또 언약에 대해서 다시 확인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그 언약을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리라는 언약을 상기 시키고 있습니다. 도저히 가나안 땅에 자기들의 힘으로는 들어올 수 없는 그들을 인도하신 것 같이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언약은 변치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그 언약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해 주시겠다는 언약을 이미 예표로 보여 주셨지만 그들은 믿지를 못 했습니다 역시 지금 이 시대도 언약을 믿기 보다는 자기들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모든 간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혜가 부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사거리에서 지혜가 큰 소리로 부르고 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언약을 해 주신 그 언약을 믿기 보다는 자기들의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그 언약을 부정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에는 조건이 따르지 않습니다.
물론 상호 언약을 했다면 조건이 따르겠지만 구원에 대한 언약은 은혜 언약이기 때문에 조건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은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조건이 없는 은혜의 언약을 일방적으로 선포를 해 주셨지만 그 언약을 가슴에 새기기 보다는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가나안에 있는 모든 족속을 진멸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랜 광야 생활과 전쟁을 겪으면서 거기에 남아 있는 민족을 다 진멸하지 않고 그들의 일부를 살려주고 말았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해가 안 됩니다.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잔인하고 또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을 모르고 성경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가나안은 천국 모형입니다 이 가나안은 그 조상들이 값으로 산 땅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사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천국에는 택하신 백성이 아니고는 살 수 없습니다.
천국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방 민족에게도 충분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사기를 보면 라합이 구원을 받았고 기브온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화목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진멸을 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지 않고 그들과 언약을 세우고 일부를 살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화목하기 위하는 사람들과 언약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싸우다가 지쳐서 이제 그만 싸우고 싶어서 가나안 땅에 있는 사람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천국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천국을 들어가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그들의 단을 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의 풍습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그들의 문화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천사가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이 세상의 문화가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습니까? 그리고 세상 기념일을 교회력에 포함을 시켜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세상의 기념일을 지킨다는 것은 사사기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단을 헐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상과 언약을 하지도 말아야 하고 또 세상의 단을 헐어야 하는 이스라엘이 그 세상의 모든 것을 지금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어버이 주일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국가 기념일을 기념해서 지키라고 하신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 거리낌이 없이 그런 세속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다른 종교에서 행하고 있는 그들의 영성 훈련을 교회 안으로 끌어 들여와 죄의식도 없이 그것이 죄라는 것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또 다른 종교에서 진리를 찾으려 한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행하고 있는 것을 통해 진리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용납하는 자체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교회 안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 영적으로 얼마나 큰 타락을 가져오고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안 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세상을 떠나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가 이 세상의 세속적인 것에 물든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하는 그런 일들을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교회 안으로 들여오는 것에 그리고 그것을 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무리 인간적으로 또 교인들을 성화 시키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도 그것을 끌어 들이는 순간 타락을 하고 맙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그리고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과 친근해 지려고 하는 것을 분별하지 못 한다면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같이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책망을 받아도 듣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성령께서 감동을 해 주시는 시대인데 마음에서 이것은 아닌데 하면서도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서도 다수를 따라 그저 끌려가고 있는 것이 지금 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들의 단을 헐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기념하는 것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내 열심이 나를 사망에 이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그 열심이 오히려 영적으로 타락을 하게 만들고 있고 그 한 가지가 무너지기 시작을 하면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자기 생각에서는 그것이 좋다고 한 것이 사실은 자기 영혼을 사망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지만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한 가지의 타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그것이 과연 내 영혼에 올무가 되고 있는 가를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행한 그것을 육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보아서 내가 지금 어떤 올무에 걸려 있는 가를 천사의 책망을 통해 들어야 합니다.
시편106:36절을 보면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그 우상들이 올무가 됩니다.
이 시대 우상이 무엇입니까? 세상에 있는 그것이 우상이 아니라 교회 안에 너무 많은 우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고회가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또 내 교회의 목사가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내가 행하고 있는 어떤 행위들이 우상에 빠져 있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책망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책망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더 불행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충분히 성경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행위에는 관심이 많지만 자기 영혼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이스라엘은 모든 백성이 울었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 가를 알고 회개를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자기들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고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열심을 보면서 마음에는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천국에 갈 줄 압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느냐면 자기는 그래도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보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자기 행위를 보면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행위를 보고 잘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주는 감동을 무시하고 지나치고 있습니다. 자기 눈으로 보면서 뻔히 자기 양심에서는 이것이 잘못된 것인 것 같은데 하는 감동을 받고 있으면서도 귀찮고 모르기 때문에 무시를 하고 지나갑니다.
의문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마음속에서 성령이 의문을 주고 있는데도 우상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그런 감동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서 바로 알려고 하는 마음조차 가지지 않고 있는 것은 마음에 우상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보김은 누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천사의 책망을 듣고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알고 그 자리에서 울었습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책망했기 때문에 천사의 말을 듣고 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울지 않습니다.
그저 운다는 것이 자기 처지와 형편을 생각해서 울지 자기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울지 않고 있고 그 영혼의 문제는 막연히 잘 될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에서 산 다는 것은 천국에서 사는 것을 예표 하는 일입니다 다행히도 이스라엘은 울 기회가 있었지만 영적인 이스라엘은 성령께서 감동을 주지 않으면 울 기회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경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려고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늘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에게는 울 기회가 주어지지만 성경을 보지도 않고 지혜를 구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자기의 영적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울 기회가 없습니다.
사사기를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육적인 문제는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내 영혼의 문제를 바로 분별해서 혹시라도 내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있다면 빨리 회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기회는 지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내 영혼의 문제를 바로 분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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