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28강,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윤주만목사 2019. 7. 12. 08:13


128,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언 16:1-3절을 보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사람의 마음처럼 복잡하겠습니까?

여자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라고 하지만 사실 남자도 어떤 일을 할 때 그리고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수도 없이 번민을 하고 또 생각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산책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시간 내 마음은 경영을 하고 있고 마치 금세라도 무엇인가를 다 이룬 자 같이 한껏 부풀어 있다가도 다시 마음을 잡고 있습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경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늘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저도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그 재물이 생기면 어떻게 복음을 위해 사용할까 혼자서 다 계획을 잡고 있다가는 혼자 미소를 짓습니다. 사실 그것조차도 내 정욕에서 나오는 욕심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참 많습니다.

 

아마 모두가 그렇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들이 어떤 특별한 일을 하면 자기도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고 마음속으로 경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기도도 시간을 정해 놓고 하고 싶고

또 찬송을 하루에 몇 장씩 부르고 싶고 성경 말씀을 하루에 몇 장을 읽고 싶고 또 하나님을 위해 전도도 하고 싶고 교회에 나가서 이러이러한 봉사도 하고 싶고 누구나 이런 마음에 경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 자기 생각입니다

마치 그런 생각들을 그런 마음의 경영이 성령의 감동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내 영혼의 구원과 관계가 있는 보혜사 성령께서는 내 마음에서 그러한 경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착각입니다

아니 보혜사 성령이 무엇을 하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의 경영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치 자기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오해로 그냥 그치면 좋은데 그런 생각에 점점 빠지다 보면 자기 영혼의 구원문제까지도 오해를 하게 됩니다.

 

교회를 가는 것이 보혜사 성령의 감동입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며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가서 봉사를 하고 또 여러 가지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은 사실 보혜사 성령의 감동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전혀 아니 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런 마음의 경영은 보혜사와는 상관이 없이 하는 것입니다

 

내 몸을 통해서 하는 모든 행위가 그렇습니다.

내가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또 교회에 나가고 하는 것은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모두가 내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몸으로 하는 것은 사실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 종교에 나가서 종교행위를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똑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해서 하는 행위와 그들이 자기 종교에서 하는 행위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아직 초보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한 성도는 그러한 것이 얼마나 초보적인 가를 분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초보로 마음의 경영을 하기 보다는 내 영혼을 위해 늘 은혜를 사모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생각자체가 다릅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가라지와 알곡은 그 생각이 다르며 마음에 경영하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라지는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마음의 경영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알곡은 내가 하는 그 마음의 경영이 비록 하나님을 향해 했을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 무의미한 경영을 하면서 아주 심각합니다.

자기가 하는 그 경영에 목숨을 걸고 있고 그 경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있습니다. 마치 그런 경영을 이루어야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 마음에 있는 경영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행위입니다

내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마음의 경영을 어떻게 하든지 자기가 이루려고 하고 있고 하나님의 섭리 자체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때를 쓰면서 자기 마음의 경영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경영을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데 자기 마음에 있는 경영을 이루려고 하다가 오히려 행위에 빠져 본질인 믿음을 저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그 마음의 경영이 오히려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마음에는 온각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그것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의 경영을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생이 경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마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라도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남의 도움이 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그 사람도 역시 마음의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또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얼마나 그 마음에 불이 일겠습니까? 정말 어떨 때는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복음을 주셨는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차라리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셨다면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을 텐데 하필이면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주셨는가 생각을 하고 있고 또 늘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다 마음의 경영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마음의 경영을 할지라도 말의 응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스스로 힘이 들게 됩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답답하겠습니까? 내가 복음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답답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답답하시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더 답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미운 사람도 있고 감정이 상한 사람도 있고 저 사람에게 까지 내가 굳이 애를 써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나는 요나와 같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에 별로 열심을 내려고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싫어하는 그도 구원을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를 꼭 구원하시려면 내가 가진 복음을 어떻게 하든지 전할 수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급합니다.

또 스스로 좌절을 하기도 합니다.

왜 그러하냐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고 또 자기를 통해서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하는 마음에 경영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면 굳이 그렇게 급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 내 마음이 경영을 이루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이루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면 내가 마음에 어떤 경영을 했어도 기다릴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꼭 필요하시면 그 경영을 이루어 주실 것이고 필요 없다면 안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꼭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내 생각이지 우리는 하나님의 그 오묘한 섭리를 모릅니다.

 

창세기11: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사람의 경영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를 통해 인류를 멸망시키고 난 후에 사람들에게 무지개 언약을 주시고 다시는 물로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언약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음이 없어서 자기들 스스로 살려고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경영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언약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꾸 마음에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경영이라는 것이 어떤 행위를 삼가 행하면서 그것을 보고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경영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바벨탑입니다

예전에는 실제 바벨탑을 쌓았지만 지금은 자기들의 몸에 행위로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영을 어떻게 하든지 이루려고 심지어는 눈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구원할 자로 삼으셨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무지개 언약은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는 그 언약 역시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이 두 언약은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무지개를 보면서 다시는 물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바벨탑을 쌓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으면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노아 홍수 후에 사람들과 같이 자기 행위로 바벨탑을 쌓으면서 믿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또 앞으로도 사람들의 경영은 늘 그럴 것입니다

 

시편2:1절을 보면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인생들의 경영은 허사입니다

이 인생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이방은 신약에 와서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경영이 마치 하나님을 위하는 일인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경영은 허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도는 자기가 하는 경영이 허사인 것을 알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아니 그 허사를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행위는 모두 헛됩니다.

내가 마음에 경영하고 있는 모든 생각이 허사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 영혼이 결국 그 허사로 인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허사가 아닌 것으로 거의 다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오히려 열심을 냅니다.

헛되고 헛된 그것이 마치 선하고 의로운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고 그 허사를 이루려고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생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안다면 그리고 사리지는 그림자와 같다는 것을 안다면 그 허사에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경영을 할지라도 하나님의 그 오묘한 섭리를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생각할 때 좋은 것이지 하나님의 생각에서는 나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그 경영을 막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예정하신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같은 일을 두고도 사람의 마음의 경영은 그렇게 다릅니다.

사실 그때 제자들의 입장도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을 기다리기 보다는 원래 자기들이 하던 일을 찾아 다시 그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방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이 방법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마음의 경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경영을 믿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안 믿습니까?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자기가 잘하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 깨끗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처럼 행위로 부자가 되어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있는 자기를 보고 있기 때문에 믿지를 못 합니다

 

믿음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었던 것같이 이 시대도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삼가 지키고 있는 행위들을 보면서 믿음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고 싶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삼가 지키고 있는 자기 행위가 보이는데 그것이 깨끗하게 보이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오직 믿음보다는 자기가 행한 삼가 지키는 그 행위를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억울하지요.

나는 시간을 내고 또 재물을 내고 해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아무 것도 안하는 저 사람과 같이 취급을 받는다는 자체가 불공평하게 보입니다. 내가 한 행위들이 얼마나 노력을 해서 한 것인데 아무 것도 안하고 무임승차를 하려고 하는 그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바로 행위가 깨끗하게 보이면 그렇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행위가 보이기 시작하면 할수록 비교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오직 믿음이라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 힘이 들고 자기가 한 모든 행위를 어떻게 하든지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삼가 지키는 행위는 영적으로 혼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행위에 빠져서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삼가 지키고 있는 그것을 안 하면 자기들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제가 그토록 행위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있는 가를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 행위는 자기를 스스로 깨끗하게 보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도 더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제가 이것을 부정한다면 저는 복음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를 깨끗하게 보이기 시작을 하면 그 다음 부터는 대책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 행위를 사단이 도와주면서 지키게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도와서 내가 삼가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사단이 돕고 있습니다.

그 영혼을 사망으로 빠뜨리려면 당연히 삼가 지키는 행위를 잘 하게 해 주어야 자기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은혜가 더 이상 은혜 되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이 시대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행위입니다

자기가 볼 때 스스로 너무도 깨끗하게 보이는 그 행위를 통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삼가 지키고 있는 그 행위가 믿음이 있어서 그렇게 하고 있는 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행위가 좋으면 뭐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3:25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예수님께서도 인정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깨끗하게 살아가고 있는 가를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행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겉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심령을 감찰하고 있습니다. 심령을 감찰한다고 하시니까 뭐 이스라엘의 마음만 나쁜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인 제 심령 역시도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심령에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깨끗하고 온전한 의인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그 심령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역시 믿음이 없는 자들은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의가 없다면 이스라엘과 똑 같습니다.

 

내 겉과 속 내가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속을 깨끗하게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 보다 더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을 사람이 스스로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 됩니다

행위가 안 되는 것 같이 우리 마음 역시도 깨끗하지 못 합니다

심령이 깨끗해지는 것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내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온전히 임해야 합니다. 깨끗한 흠 없는 예수가 내 안에 있을 때 내가 깨끗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예수가 있어도 역시 내 마음은 모든 만물 보다 심히 부패합니다. 예수가 있어서 깨끗하게 보아준다는 말씀이지 예수가 있다고 해서 만물 보다 더 부패한 내 마음이 깨끗해 질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가 내 안에 있어도 역시 내 마음은 만물 보다 더 부패하고 더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보이겠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만물 보다 더 더러운 그 마음을 보여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인생은 안 됩니다

예수를 믿어도 안 믿어도 역시 그 육체나 마음은 똑 같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깨끗한 예수가 내 안에 있기에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그 깨끗한 예수를 보시고 나를 깨끗하다고 인정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 안에서 이상한 행위들을 하면서 자기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겠다고 합니다. 참으로 한심한 짓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가를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내가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경영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개입을 안 하십니다. 그냥 맡기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이르시는 그 경영을 알 수 있고 믿음으로 그것을 보게 됩니다.

 

맡긴다고 말은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마음에 경영하는 것을 이루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은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맡긴다는 것은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보겠다는 뜻입니다

 

일을 맡깁니다.

그러면 나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일을 맡긴다고 하면서 같이 거들고 한다면 그것은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을 맡겼으면 그 일에 대해서 내가 거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굳이 거들려고 하다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방 청소를 아이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내가 빗자루를 들고 같이 하고 있다면 그것은 맡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온전히 맡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일을 하나님 좀 가만히 계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말리고 있습니다.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맡기지를 못하고 자기가 잘 해서 구원을 받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경영을 방해하는 일이 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의 경영을 내가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고 비록 마음의 경영은 내가 할지라도 그 경영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맡기는 성도는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맡긴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맡긴 성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구속을 믿고 온전히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맡긴 성도는 자유할 수 있고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