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강, 깨어 있으라
마가복음 13:28-37절을 보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심오합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말씀을 해석하고 분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공부해 다 외울 정도로 박식한 지식을 가졌지만 정작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하시고 난 이후부터 종말 사상은 있었고 그 당시 초대 교회에 거의 모든 성도들은 자기들의 시대에 종말이 일어날 것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벌써 2000년이 흐르고 아직도 종말은 우리 앞에 오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 종말은 옵니다.
만약 종말이 없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이단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또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종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또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오실 것이라는 것을 여러 곳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직 종말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나온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서 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종말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어느 사람들은 종말의 날짜를 예언을 해서 그 날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수많은 종말론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초대 교회부터 종말론 자들이 있어 왔고 그들은 특정한 날짜를 정하거나 아니면 특정한 지역을 정해서 그곳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면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종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교회 안에도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소수의 사람들이 제 각각의 장소에서 종말을 기다리면서 집단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집단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만큼 종말은 대단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이 끝이 나는 그것보다 더 큰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사람들이 종말론에 쉽게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는 곳은 거의 모두 종말 사상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 나쁘다는 뜻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 세상은 성도들에게 있어 환란이 있고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고난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성도들로서 당연히 주님께서 빨리 오셔서 슬픔과 눈물이 없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정말로 고대하는 일입니다
1992년에 이 장림이라는 사람이 종말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신다고 한 그 날에 주님은 오시지 않았고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당시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시 또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지금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교회로 성장을 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장 근세에 종말의 대 사건은 바로 안식일 교회의 태동입니다
1800년대에 유럽에서 종말론이 휩쓸고 있을 때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미혹이 되어 그 날을 기다렸다가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니까 또 다시 자기들이 계산을 잘못 했다고 하면서 1년을 더 기다렸는데 역시 주님께서는 오시지 않았고 그 중에 일부 무리가 바로 안식일 교회를 설립을 했습니다.
지금도 역시 종말론 자들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래왔듯이 종말론 자들로 인하여 신앙이 바로 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의 이단으로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종말을 기다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성도라면 오매불망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말론에 빠지는 것을 스스로 자기 영혼을 파멸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 그 사람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왔는가 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빙자해서 사람들을 이용하는 사람이고 그 다음이 정치를 이용해서 자기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한편으로는 이 시대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른 믿음이 있으면 사실 종말은 그리 두려운 것도 아니요 또 그렇게 종말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안에 믿음이 바로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종말론 자들에게 미혹을 당해 자기 재산 그리고 영혼까지도 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28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실 때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찾았으나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여 나무가 말라 죽은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바로 그런 나무입니다
분명히 영생에 이르는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잎은 무성하여 참 보기에 좋은데 그곳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을 것 같은데 열매가 없는 그런 나무를 예수님께서 비유로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잎이 무성해 겉에서 보기에는 참 좋았습니다.
얼마나 좋았는가 하면 바리새인들을 보고 예수님께서 겉은 깨끗하나 그 속은 시체가 있어 썩은 내가 진동을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겉이 좋을 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잎이 풍성한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무화과나무에는 달콤하면서도 아삭 하게 씹히는 그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잎만 무성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무화과나무에서 내가 지금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여름이 가까워 오면 잎이 무성해 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좋다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에는 어느 정도 종말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잎이 무성해 져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근사하게 보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누구나 보아도 아! 저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풍성히 있을 것 같아 하는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겉이 풍성해 집니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볼 때 정말 교회가 구원 받는 사람들의 모임처럼 보여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인가를 여러분이 스스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느 날짜를 말씀을 드리고자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의미하는 그 뜻을 조금 더 정확하게 분별을 하고 종말을 생각하자는 의미에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29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무화과나무 잎이 풍성해 져야합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무화과나무 같이 이 시대 교회도 역시 여름이 되어 무화과나무 잎이 보기 좋게 나타내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때가 되어야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열매가 없는 무화가 나무 잎이 풍성해 져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풍성해 져야 하느냐면 저 나무에 가면 반드시 무화과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을 것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하고 그들의 눈에 그렇게 보여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가 되어야 주님께서는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아주 가까웠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그 날을 어느 정도 분별을 합니다.
물론 그 날과 시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날이 어떻게 가까이 오고 있는 가를 지금 마가복음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그런 때인가를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여러분이 아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무화과 잎이 풍성하여 모든 사람들의 눈에 저 나무에 가면 열매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그런 때인가는 스스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때가 되어야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무화과나무를 통해 그때를 어느 정도 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영적 이스라엘 교회를 보면 그 때가 가까이 왔는가 아니면 아직도 멀었는가를 조금이나마 분별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여러분의 눈으로 보았을 때 무화과나무가 잎이 풍성하여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일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이 말씀은 참 좋은 말씀 같지만 역발상입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 했습니다
잎은 무성해서 분명히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가보시니까 열매가 없었습니다. 바로 지금 그 나무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사람들은 많아 또 잎이 풍성한 것 같이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일 때 그러나 영생에 이르는 열매가 전혀 없을 때 그때가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그런 때입니까?
그렇다면 종말을 준비하시고 그렇지 않다면 내 개인의 종말을 기다리면서 주님을 믿고 하늘에 소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보는 눈에 따라서 그가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또 종말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30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아담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는 모두가 한 세대입니다 물론 세대마다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살던 그 세대 그리고 조선시대의 세대 또 이전에 고려 시대의 세대 그 이전에 통일 신라의 세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세대는 아담부터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의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 이 세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종말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인간 스스로가 멸망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심판을 하는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지구는 온난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행성의 충돌로 인하여 이 지구가 멸망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구는 보존이 되고 또 인류도 절대로 멸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멸망을 당하기 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걱정이 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사람들에게 주셔서 온난화로 인하여 인류가 멸망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구원을 할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그 수가 차기 까지는 절대로 인간 스스로 멸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31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오시면 이 지구는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분명하게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을 하시고 처음 땅과 처음 하늘은 사라진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 세상 우주 모든 천지는 없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32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가 이단입니다
천사도 모르고 주님도 모르시는 그 날을 자기가 안다고 하는 것은 자기를 하나님으로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러나 분명히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그때가 가까이 옴을 분별할 수 있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한 날은 천년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눈에는 무화과나무 잎이 풍성하게 보여도 하나님의 한 날이 천년과 같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날과 그때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있을 뿐입니다
깨어 있으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 날과 그때를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깨어 무화과나무를 보고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고 하니까 잠도 자지 않고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에베소서5: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들입니다
이 모든 사람은 죽은 자 이지만 주님께서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주님의 영광의 빛을 내 안에 간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을 해 주셨습니다.
이미 복음을 받은 자는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 복음을 믿는 성도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늘 깨어 있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깨어 있으라고 하니까 잠을 자는 것 까지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육적으로 깨어 있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 상태가 바로 깨어 있는 자입니다
깨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깨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종말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성도는 설령 지금 종말이 온다 해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럼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어느 정도 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깨어 있지 못하는 사람은 무화과나무를 보고도 그때를 분별하지 못하지만 깨어 있는 성도는 무화과나무를 통해 그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34절,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주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지금은 복음을 가진 성도가 깨어 있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분별하고 또 그 복음을 전파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사람들을 인도하여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깨어 있지 못하면 무화과나무를 보고도 분별을 하지 못해 종말론에 빠지기도 하고 또 주님께서 문 앞에 다가왔는데도 구원에 대해 전혀 무관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문지기입니다
내가 시대와 그때를 분별하지 못하면 내를 통해 복음을 들은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깨어 있지를 못하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종말에 대해서 날짜를 말하다가 결국 이단으로 빠져 영혼까지 잃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희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저물 때이지 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때는 모두가 어두움에 속한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 빛을 영접하는 사람은 모두가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육체적으로 자고 있을지라도 영적으로는 늘 깨어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절을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스라엘의 심령은 어두웠습니다.
주님께서 참 빛으로 오셨지만 그들은 어두움에 있었기 때문에 참 빛이 오셨지만 깨닫지 못 했습니다 깨닫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도 그런 것 같이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은 무화과나무를 보고도 주님께서 문 앞에 이르신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무화과나무를 보면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어느 정도 분별을 할 수 있는데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무화과나무를 보고도 도무지 그때와 시기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날과 그 때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이단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가복음을 통해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게 하셨고 깨어 있으면 그때와 시기가 가까이 와 주님께서 문 앞에 있는 것을 분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고 있지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어느 정도 주님께서 문 앞에 이르신 것을 분별할 수 있는데도 자고 있기 때문에 어느 때에 올지 모르고 자고 있는 그때에 주님께서 오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너희가 자고 있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는 사람은 무화과나무를 보아도 주님께서 문 앞에 이르신 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 합니다.
37절,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종말은 어느 특별한 목사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가복음의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만이 주님께서 오시는 그때를 분별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구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목사가 아니더라도 무화과나무를 보면 주님께서 지금 문 앞에 이르셨는가 아니면 아직 문 앞에 이르시지 않았는가를 분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본문 말씀은 전혀 모른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고 있기 때문에 깨어 있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를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성도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보면서 주님께서 문 앞에 이르셨는지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 날짜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겉에 잎만 무성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그때가 바로 주님께서 문 앞에 이르신 때인 줄을 아시기 바랍니다. 실제 영생의 열매는 없는데 사람들의 눈에는 잎이 무성해서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지는 그때가 주님께서 문 앞에 계시는 때입니다
자는 자들에게는 주님께서 도적같이 오십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도적 같이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0절을 보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도적 같이 오십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자든지 깨든지 언제든지 주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도적 같이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과 내가 한 몸인데 무엇을 걱정합니까? 깨어 있는 성도는 육신이 연약해서 자든지 깨어 있든지 반드시 주님께서 문 앞에 이르시면 그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게 성령께서 감동을 해 주십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이 어느 때인가를 알 수 있으며 늘 깨어 있는 성도는 무화과나무 곧 교회를 분별하면서 지금이 어떤 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종말을 분별하시고 바른 믿음 안에서 자기 구원을 이루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은혜와 진리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강,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0) | 2019.05.14 |
---|---|
49강,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0) | 2019.05.14 |
47강,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0) | 2019.05.13 |
46강,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0) | 2019.05.12 |
45강,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 하였느니라 (0) | 2019.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