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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교인들에게

57강,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윤주만목사 2019. 4. 6. 11:40


57,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마태복음 1:1절을 보겠습니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신약의 시작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시작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족보를 보면서 사람들은 왜 굳이 이스라엘의 족보를 성경에 기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족보를 기록한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을 예표로 해서 우리에게 영생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을 뿐이지 마치 이스라엘이 특별하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고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랑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을 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인생들이 조금이나마 깨닫고 그 사랑 안으로 들어가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시는 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체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일을 아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성경을 보는 마음이 다릅니다. 성경을 볼 때 영의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육의 일로 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사랑하시는데 우리 육체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연약한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을 보면서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체를 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고 있고 다윗을 보고 있고 또 자기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 육체를 보는 순간에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안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육체인 아브라함과 다윗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믿음의 선진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우리보다 잘 나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고 또 다윗이 우리보다 더 강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것을 보아야지 아브라함이라는 인생을 보고 다윗이라는 인생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세웠을 때는 그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들을 하나의 족보로 형성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어떻게 오셨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그렇고 다윗을 통해서도 그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마태복음의 시작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자손입니까?

반드시 성경에 기록을 한 그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아브라함으로 시작을 해서 다윗의 자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족보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족보는 육의 족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과 그리고 왕의 족보입니다 그런 육의 족보를 보아서는 안 되고 우리는 영의 족보를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해서 그 자손에서 또 다윗을 낳고 다윗의 자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이 되는 것을 족보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입니다 첫 번째 왕 사울이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하고 또 다윗의 자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몇 명입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스마엘과 이삭 낳고 난 후에 후처를 취해서 아들 여섯을 더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여덟 명의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22:18절을 보겠습니다. (29)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실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번제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르쳐 주시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진짜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드리려고 하는 것을 아시고 아브라함을 불러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안다고 하시고 이삭을 죽이지 말라고 하시고 숫양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 양을 잡아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누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여기서 네 씨가 누구를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삭입니까? 이삭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삭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낳을 수 없는 아들을 주신 것은 분명하지만 이삭은 육적인 아들이며 이삭으로 말미암아 온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한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3:16절을 보겠습니다. (305)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곧 그리스도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하신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이삭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천하 만민이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하신 그 자손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육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신 그 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는 것이라고 갈라디아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있습니다.

물론 자기에게서 직접 낳은 자손도 있지만 족보를 통해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낳은 자손이 얼마나 많은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그 자손들을 자손이라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네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정을 하신 것이고 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은 이 세상의 복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이 시대 천하 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늘의 복을 받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러나 족보를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경외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 난 후에 창세기 2212절에서 하나님께서 네가 이제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외

공경하고 두려워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이전에 있던 사람들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그 이전에 사람이라 해도 분명히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봅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혀 주저 하지 않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행위를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 같이 예수님께서도 역시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고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똑같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외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경외에 대해서 바로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잠언31:30절을 보겠습니다. (947)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언의 마지막입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 잠언의 모든 말씀을 다 하고 그 마지막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가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고운 것도 거짓됩니다.

이 고운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의가 다 거짓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참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됩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거짓되다는 것을 잠언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런 거짓된 것에 미혹이 되어서 거짓된 그것으로 고운 베옷을 입고 교회 안에서 점점 더 부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자가 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고운 것이 헛되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고운 것을 내 보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자기에게서 고운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잠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먼저 고운 것이 헛되다는 것을 알고 내게서 그 고운 것이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도 거짓됩니다.

육체의 아름다운 것을 좇아가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다 육체를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죽이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너무 육체가 살아 있어서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

우리의 행위 다 거짓되고 헛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거짓되고 헛되다는 것을 모르면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는 줄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잠언의 모든 말씀을 하고 거짓되고 헛된 것을 말씀을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이 거짓되고 헛된 것을 버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것을 버리기 보다는 더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있는 성도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은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세상에서 오셔서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그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히브리서11:17절을 보겠습니다. (365)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이삭을 드린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독생자를 드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약속을 받은 자라는 말씀은 이삭으로 말미암아 자손이 나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삭은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신약을 예표로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삭을 드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번 속죄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약속을 받은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니까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1:18-19절을 보겠습니다. (365)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육체의 이삭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저가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을 생각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을 정말로 번제로 드리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숫양을 준비하시고 이삭을 죽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였습니다.

그러나 진짜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진짜로 이삭을 번제로 드릴 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숫양을 준비하시고 이삭을 죽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것은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줄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자기가 죽여도 이삭은 약속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분명히 다시 살리실 줄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설령 번제로 이삭을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줄 믿었습니다.

 

그것은 네 자손은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15장에서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늘의 별과 같이 네 자손이 많으리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바로 그 자손이 이삭으로부터 많아진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가 이삭을 죽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시려면 반드시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인가 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삭을 통해서 예표로 보여 주셨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인가를 갈라디아에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심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의 복을 얻은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2:42절을 보겠습니다. (135)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육체의 모습을 그대로 입고 오셨기 때문에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정말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인생으로 오셨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었다면 이 십자가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인생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형을 받는 것을 너무도 고통스러워 하셨고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경외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인생의 모습으로 오셔서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 죽음이 끝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사실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과 같이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당신이 다시 사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그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기 독생자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은 이삭은 약속을 받은 자로서 그로 말미암아 육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는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경외하심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복을 천하 만민이 받게 하시기 위해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서 오셔서 하나님을 경외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인생으로 오셔서 십자가형을 받는 것은 너무도 힘에 겨운 일이라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5:7절을 보겠습니다. (3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경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을 줄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린 것이 4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경외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기도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경외하심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셔서 그 간구의 응답을 받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 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해서 이삭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약속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 믿고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믿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삼일 만에 다시 살리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셨습니까?

아니 마태복음의 족보의 시작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것과 같이 믿었습니다. 그렇게 경외하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씨가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에서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낳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습니다.

그러나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씨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그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고 있습니다. 하늘의 복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는가 하면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에서 오직 하나를 가르쳐 네 씨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이유는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기에 말씀과 같이 아브라함의 씨로 오셔서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시고 있고 그 복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누리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3-6절을 보겠습니다. (310)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창세기의 복이 무슨 복입니까?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복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은 바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를 원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그 복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탄생을 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안에 있는 성도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늘의 복 보다는 이 세상에 있는 복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자기 복이 어디에 있는 것인 줄 모르고 있고 또 어느 복을 주시는 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보면 맞습니다.

 

이 세상의 복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사단이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시험을 받으실 때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절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복을 누가 가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교인들입니다

 

이 세상의 복을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것은 누구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가 사단이기 때문에 그 기도는 사단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그것을 모르고 이 세상의 복을 얻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그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단에게 기도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의 속한 모든 신령한 복입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사단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것은 이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지 세상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망 합니다.

사단에게 기도를 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했어도 그 구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했어도 가지고 있는 자가 사단이면 사단에게 기도를 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천하 만민이 네 씨로 복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갈라디아에서는 아브라함의 씨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복이 무엇인가를 에베소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면 그는 사단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을 어떻게 주시고 있습니까?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이 복을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아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셔서 하늘의 신령한 모든 복을 누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의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졌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씨로 탄생이 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성도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진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로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받게 하시고 있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없습니다.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셔서 우리에게 하늘의 복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님께서 누구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눈이 고운 것을 보고 있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안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되고 헛된 것을 보고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내가 무슨 복을 받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자기가 무슨 복을 받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의 기도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위해서 기도는 전혀 하지 않고 있고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하늘의 속한 자가 아닙니다. 자기가 받을 복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아니 이 두 가지를 다 얻으려고 하면 그는 땅에 속한 자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이 세상의 복을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누리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또 이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해서 땀 흘려 일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주시는 대로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 받기 위해서 구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하늘에 속한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꿩 먹고 알 먹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예수를 안 믿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당연히 받는 것이고 그 천국을 받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도 또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 것이 아니라면 줄 수 없습니다. 만약 받았다면 그것은 누가 준 것입니까? 사단이 준 것입니다.

 

내가 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는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람이 친구에게 와서 약을 달라고 합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약을 구해서 주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은 누가 준 것입니까? 어느 사람은 친구에게서 받았을지 몰라도 그것을 준 것은 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께 이 땅에 있는 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그 기도를 듣고 그것을 들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입니다

그 외에 것을 구하는 사람은 결국 사단에게 미혹이 돼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이 그 사람을 죽이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가 하나님께 기도 하는 것을 들어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 그는 또 다른 땅에 것을 구하느라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잊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복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한 만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복을 바라고 있는 성도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사무엘상16:1절을 보겠습니다. (433)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의 첫 왕은 사울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아서 그를 버리셨습니다. 사무엘이 그 일로 슬퍼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고 하면서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서 그 아들 중에 하나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 중에 한 왕을 예선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있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왕이 있지만 그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왕의 예표는 우리 지구 안에 있는 두 왕을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처음 왕은 아담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를 한 후에 그 왕권을 사단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단에게 빼앗긴 왕권을 다시 찾아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으로 한 왕을 예선하셔서 그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다윗입니다 왕은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모든 정쟁에서 이겨야 그 백성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서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이 강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왕의 의무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왕이 지면 그 백성은 모두 포로가 됩니다. 그러나 왕이 전쟁에서 이기면 그 백성이 승리한 백성이 되어 모든 탈취 물을 나눌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왕은 물론 정치도 잘 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싸움에서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기름 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서 왕의 직무를 보여 주셨습니다. 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이김으로 해서 다윗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두 왕을 예표로 보여 주시면서 다윗 왕이 어떻게 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무엘하3:1절을 보겠습니다. (466)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두 왕이 있습니다.

이 두 왕은 사단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왕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울의 집은 약해져서 결국에는 사울이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윗은 점점 강해져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오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을 볼 때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망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다윗을 사무엘이 왕으로 기름을 부었을 때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 의해서 이리저리로 쫓기는 신세였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점점 강하게 하셨습니다. 왕은 자기 백성을 보호해야 하고 또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비록 다윗이 사울에게 좇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점점 강하게 하셔서 결국에는 통일 왕국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물론 사울이 먼저 있었던 왕이지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해서 다윗을 세우시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육적으로 이스라엘을 통치를 한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의 이스라엘을 통치 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윗과 같은 왕으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족보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같은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많은 왕이 있었고 이스라엘에도 많은 왕이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왜 다윗의 자손입니까?

물론 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어떤 왕인가를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어떤 사람들이 다윗에게 와서 피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 있었지만 다윗에게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예수님을 왕으로 믿고 있는 성도들이 누구인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무엘상22:2절을 보겠습니다. (446)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이라는 왕이 있어서 다윗은 사울을 피해 쫓겨 다녔습니다. 심지어는 타국으로 망명을 하려고 했을 정도로 이스라엘 안에서는 다윗이 거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쫓겨 다니는 왕이었지만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모였습니다.

 

환난을 당한 모든 자가 왔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합니다. 물론 초대 교회와 같이 육적으로 환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도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환난을 당한 자들이 다윗에게 왔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환난을 당하는 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33절을 보겠습니다. (177)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담대할 수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환난을 당한 자들이 피해왔지만 그들이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모든 전쟁에서 자기들을 구원해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육적으로 환난을 당하고 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이긴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너희가 이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왕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왕이 이기면 그 백성 모두가 이긴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자기가 이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대로 우리는 못 이깁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을 하시고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윗에게 온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표이고 다윗이 어떤 왕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왕으로 있는 동안에는 모든 전쟁에서 이긴 왕입니다

 

주님이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환난에 담대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는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환난에서 자기가 이기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피한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 주님께서 이기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성도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빚진 자가 왔습니다.

 

마태복음18:24절을 보겠습니다. (31)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하나는 우리 인생 모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자기가 얼마나 빚을 졌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일만 달란트를 빚을 졌습니다.

 

나는 덜 졌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이런 말씀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라고 하시니까 마치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가를 아는 성도는 자기 빚이 얼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만큼의 빚을 졌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일만 달란트를 빚을 졌습니다. 이 빚을 갚기 전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니 빚이 너무 많아 어느 누구도 이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자기 빚이 얼마인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내 빚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빚진 자들이 피한 것과 같이 나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께 피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빚을 졌는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다윗에게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빚을 진 사람은 다윗에게 모여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빚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 있지만 자기가 얼마나 빚을 진 사람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모여들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예수님께 모여들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었지만 다윗에게 온 사람은 아주 적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빚을 진 사람이나 다윗에게 왔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굳이 다윗에게 오지를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이미 사울이라는 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에게 있는 사람은 모릅니다.

이 말씀은 사단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빚을 졌는가를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안에 있었지만 빚을 진 사람만이 다윗에게 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하지만 자기 빚을 아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왕으로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6:20절을 보겠습니다. (269)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빚진 자입니다

사단에게 모두가 팔린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 값으로 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인 우리를 예수님께서 자기 피를 흘리셔서 값으로 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빚진 자들이 피한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자기 빚을 아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피할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가면 빚진 자들이 평안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지는 빚 일만 달란트를 자기 피 값으로 다 갚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를 안 믿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 빚이 얼마 인줄을 모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일만 달란트 빚진 한 사람이 어느 다른 한 사람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었을 때 누가 그에게 왔는가 하면 환난을 당하는 모든 자와 빚진 자가 왔습니다. 그리고 원통한 자가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 역시 한난을 당하는 자와 빚진 자와 원통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모여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 갚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도록 다 갚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위로 열심을 내면서 그것을 보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두 왕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두 왕이 있지만 다윗에게는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원통한 자가 모여 들었습니다.

 

마음이 원통한 자가 모여들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사단에게 다 미혹이 되어서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사단보다 우리가 강하다면 절대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단에게 졌습니다. 아담이 사단에게 진 순간 아담의 자손은 모두가 사단에게 져서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원통합니다.

분하고 억울하다는 말씀입니다 죄로 인하여 사단으로 인하여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분하고 원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마음이 원통한 자가 별로 없습니다, 그저 자기가 교회 안에 있으면 마치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울에게 있으면서 마음이 원통해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이 원통합니다.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사람은 마음이 원통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사단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가 너무 안심을 하게 만들고 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아주 평안을 누리고 있어서 마음이 원통하지가 않습니다.

 

천국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단 때문입니다 분하고 억울하게 우리 인생은 사단으로 인하여 에덴에서 쫓겨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원통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다 다윗에게로 왔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23:5절을 보겠습니다. (108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다윗은 왕입니다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모든 자에게 그리고 빚진 자에게 그리고 마음이 원통한 자에게 그가 왕이 되어서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것은 다윗과 같은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켜서 이스라엘에서 다윗에게 온 한난당한 모든 자들과 빚진 자들과 마음이 원통한 자들에게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피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물론 선지자로도 오셨고 제사장으로도 오셨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윗과 같은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그에게로 모여들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13:21-22절을 보겠습니다. (209)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사 시대를 지나면서 주변 국가들에게 왕이 있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왕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울을 왕으로 세웠는데 사울이 순종치 않아서 하나님께서 그를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을 왜 왕으로 세우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셨다고 말씀을 합니다.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이루십니까?

다윗을 통해 이루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 뜻을 다 이루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윗을 통해 이루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그 의미를 잘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 왜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을 하시고 내 뜻을 다 이루시겠다고 하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1:4절을 보겠습니다. (302)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셔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시고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 오셔서 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뜻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모두가 사단에게 졌습니다. 죄에 팔려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우리 죄에서 건지시려고 십자가에서 단번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다윗을 만나니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해서 내 뜻을 다 이루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승리 하시게 하심으로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이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승리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우리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것은 다윗의 위를 이어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셔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런데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전쟁에서 이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이 세상에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십자가에서 승리를 하셨지만 사람들은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승리 하셨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왕입니다

왕이 이기면 내가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지면 내가 지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다 보니까 이 왕의 개념을 잘 이해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왕이 없으면 그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 왕이 있던 때에는 왕이 지면 그 나라의 모든 백성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이기면 승리자가 되어서 모든 복을 다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백성들도 싸웁니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의 승리는 왕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셔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십자가에서 승리 하시고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싸움이 아닙니다.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싸움이라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히 왕 노릇 하신다고 누가복음 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잠시 왕 노릇을 했지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심으로 영원히 왕 노릇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드림을 해서 승리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42절을 보겠습니다. (38)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는 대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육적인 그리스도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과 같이 자기 민족을 이방에게서 구원할 그런 왕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있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의 사람은 절대로 못 믿습니다. 아니 다윗의 자손이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육의 것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똑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우리 죄에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모르고 이 세상의 것을 구하느라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왜 오셨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육의 다윗의 자손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두 영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루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 하시고 영원히 야곱의 집에서 왕 노릇 하시기 위해서 오셔서 그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못 믿고 있는 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영의 일을 생각하기 보다는 육의 일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 있지만 육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9:27절을 보겠습니다. (14)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마태복음 15:22절을 보겠습니다. (26)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이스라엘의 두 소경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이방의 가나안 여자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두 사건의 병자들을 주님께서 다 고쳐 주셨습니다.

 

이 육을 보면 안 됩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을 보고 또 가나안 여인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는데 그것을 고쳐 주신 것을 보면 안 됩니다. 이들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론 자기들의 육적인 것을 고쳐 주시기를 바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 두 사건은 모두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이 두 사건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소경을 눈 뜨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소경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진리에 눈이 감겨져 있는 그들의 눈을 뜨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진리에 대해서 눈이 먼 자들을 보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방의 빛이 되 주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다 소경이 되어서 소경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어두움에 거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참 빛을 비춰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같이 소경이 되어서 소경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주님과의 대화에서 주님께서 율법을 이루실 것을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기록이 된 대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개들이 먹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기록이 된 대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실 것을 아시고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가 알고 있는 율법대로 주님께 이야기를 해서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이것을 육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께서 하신 것을 자기들이 그대로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히 왕 노릇 하실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왕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왕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가지고 있는 사단과의 전쟁에서 이기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의 승립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 다윗을 만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고 내 뜻을 다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 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씨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씨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복이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셔서 지금 있는 이 세상 왕 사단과 전쟁을 하셔서 승리 하셨습니다.

 

사단은 유대인들을 미혹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렇게 죽이면 죽는 줄 알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다시 사시게 하심으로 승리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데 주님께서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심으로 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님께서 누구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저 맹목적으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왕으로 오셔서 승리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을 해 주신 하늘의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마태복음의 시작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의 싸움에서 승리 하시고 천국의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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