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강, 종과 아들 (1)
(갈 4장 강해)
갈라디아서 4: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라디아서 4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3회에 걸쳐 갈라디아서 4장의 말씀으로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종과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4장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우리가 종인가 아들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두 사람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과 이 세상 사람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거의 모든 성경에 있는 두 사람의 비유는 교회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교회에 들어와 복음을 듣고 있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그 비유를 성령의 감동으로 볼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가 아들이 될 수 있고 또 소경이 되어서 종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다고 하지만 역시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늘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속담에 눈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눈뜨고 코를 베이는 세상인데 영의 일은 더욱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것이 상상이나 됩니까? 그러나 실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큰 경험을 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적으로 깨닫고 우리가 눈으로 보고 하는 그것도 쉽게 눈 뜨고 코 베이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하물며 영의 일은 너무도 쉽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진리 안에 들어와 있어서 종교의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으니까 지금은 그럴 일이 없지만 예전에는 우리 역시 종교에 의해서 눈뜨고 코 베이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을 하고 마치 공산주의 사상에 세뇌가 되어 철저히 학습이 되어 있는 사람과 같이 그렇게 행동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내 코가 베이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것이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의 은혜로 진리를 알고 나니까 그때는 내가 너무도 바보 같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자입니다
누가 보아도 그는 이 세상에서 정말로 학식이 높은 자입니다 그런 사람도 일단 종교 안에 들어오는 순간에는 자기 코가 베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가 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 폐부에 비수가 뚫고 들어와도 그래서 사망을 당할 때 까지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평생을 하나님을 믿고 살지만 버림을 받는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으로는 자기가 세상에서 정말로 지혜가 있는 자일지 몰라도 영의 일은 그런 세상의 지혜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영의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비밀은 나 외에는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만약에 나 외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비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영의 일이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다 비밀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비밀을 가진 자가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가 가르쳐 주지 않고는 이 비밀에 대해서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것이 비밀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고 이 비밀을 알기 위해서 성도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세상의 비밀과 다릅니다.
세상은 누군가 그 비밀에 대해서 폭로를 하면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더 이상 비밀이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비밀이 너무도 오묘해서 누군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정말 영생에 대한 비밀을 가르쳐 주지만 오히려 그 비밀을 거절을 하는 것이 영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 모두가 율법에 의해서 종이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구원을 해 주시고 이 세상에서도 자유하면서 살아가라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기가 종이 되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법에 매여 살아가고 있고 그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법에서 자유하게 해 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누르고 있는 아니 우리를 종으로 삼고 있는 율법에서 자유하게 해 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가 믿고 있는 가 아닌가 하는 것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법에 매여 있다면 그는 아직도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고 법에서 자유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각합니다.
흰 쥐를 검은 쥐라 해도 검으로 쥐로 믿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어린 아이도 아는 흰 쥐를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그것이 검은 쥐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종으로 꼼짝을 못하고 붙들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1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종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법에 의해서 운행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이 법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법에 순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주인입니다
이 말씀은 선택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세 전부터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에서 에서와 야곱을 말씀을 하면서 그들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택함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야곱을 사랑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선택입니다
이것은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입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진심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선택이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언제 선택을 하셨습니까?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믿음이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이제 네 속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낳기도 전에 이 세상에서 모든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선택을 하셔서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렇게 선택을 받은 성도는 은혜가 되고 선택에 대해서 부정을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은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자기가 유업을 이을 자인지 아닌지를 모릅니다. 자기 부모가 아무리 부자라 해도 어린 아이는 자기가 유업을 이을 자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자기가 유업을 이을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았지만 사람은 자기가 유업을 이를 자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어렸을 때는 종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실제 어렸을 때를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복음이 그 안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을 어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그때가 어렸을 때가 아니라 아직 믿음이 없는 상태를 어렸을 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고 있지만 그래서 구원이 작정이 되어 있지만 아직 그 안에 믿음이 없었던 때를 종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아니라 종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그러나 아직 믿음이 없기 때문에 종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가 종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이 말씀을 보고 종이라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을 하고 있지만 아직 믿음이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유업을 이을 자이지만 아직 그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마치 종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5: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57쪽)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교회는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구원을 해 주시기로 작정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종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을 자이지만 의의 말씀이 없어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역시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사도 바울 역시도 아들이지만 분명히 종과 같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을 하지 못해서 어렸을 때는 종과 다름이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종과 같이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해서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아들이 아닙니다.
또 아들이라고 해도 자기가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을 하지 못하면 종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도 진리를 알기 전에는 종과 같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진리를 알고 나니까 자유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젖을 먹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지만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을 그대로 먹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까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구원을 못 받는 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맞지만 처음 복음을 들을 때는 거의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듣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복음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그 자리에서 구원의 확신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면 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한두 번 듣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설교를 수백 편을 올리고 있지만 지금도 역시 새롭게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의의 말씀 분명히 한 시간 만에도 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을 때는 그 동안 그가 그만큼 진리를 사모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었던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한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경험을 해 보아서 잘 아시겠지만 제가 올려 드린 설교를 얼마나 많이 보아야 의의 말씀을 경험할 수 있는 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성경을 기초부터 든든히 세우지 않고는 의의 말씀을 경험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자기는 의의 말씀을 들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라도 성경의 기초가 되고 있는 말씀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들이 다 믿어져야 그때 의의 말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아무리 교회 안에서 성경을 많이 보고 있다 할지라도 그는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2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세상의 예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예를 들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종으로 있다가 아들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택을 믿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에서와 야곱을 말씀을 하면서 그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그 모태에 있을 때 야곱을 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예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직 모태에 있기도 전에 우리가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미 아들로 선택이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 해서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기본 교리가 흔들리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치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선택을 받았습니다. 선택을 받았지만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이 세상의 예와 같이 후견인 아래 있는 것과 같이 율법 아래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후견인으로 두셨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율법이 청지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진짜 율법이 후견인이 되어서 그의 종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물론 그것은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물과 성경으로 거듭나는 중생을 통해서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 됩니다. 이 아들이 되는 것은 율법의 종으로 있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로 작정이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복음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들이라 해도 처음부터 복음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누구라 해도 율법의 종으로 살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후견인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마치 그와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의의 말씀을 경험하기 전에는 율법이 후견인이 되어서 나를 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알고 나니까 이제는 내가 주인이 되어서 율법을 폐하고 은혜 아래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마치 하나님께서 율법을 후견인으로 둔 것과 같이 사도 바울이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아들입니다 그러나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을 하지 못하다 보니까 종과 같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강의를 듣고 있는 성도님들은 이 말씀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세상의 예를 들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산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종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들로 살기를 원하시지 종으로 사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복음을 깨닫기 까지는 어쩔 수 없이 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때까지입니다.
저도 이 복음을 깨닫기 까지 시간이 필요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율법의 종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율법의 종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자체가 율법이고 또 모든 사상이 율법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율법 아래 있을 때도 우리를 보호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까지였습니까?
그리스도인을 잡아서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까지입니다 그때까지 사도 바울은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이제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듣기 까지를 마치 후견인으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한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의의 말씀을 경험을 하는 때입니다 저 역시도 그때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지나고 나니까 이제 율법의 종에서 완전히 자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예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자의 아들로 태어났을 때는 그 아들에게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주지 않습니다. 반드시 청기기를 두어서 그 아들이 잘 성장을 하게 해서 아들로 인정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1-2절은 이 세상의 예를 들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청기기라고 하니까 진짜 율법을 청지기로 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이 말씀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율법을 청기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먼저 율법을 배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부자가 자기 아들을 위해 청지기를 두는 것을 비유로 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하기 전에는 마치 그와 같이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4:3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이와 같이
바로 1-2절에서 말씀하는 같이 이 세상의 부자도 자기 아들을 후견인과 청지기 밑에 두어서 가르치는 것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지만 그때는 후견인에게 꼼짝을 못합니다. 후견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고 그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의의 말씀을 들어 아들이 되기까지는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다 이 세상의 초등 학문에 종노릇 하고 살았습니다. 사실 태어나자마자 이 복음의 비밀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다 종입니다
내가 종이 되고 싶어서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자체가 법이기 때문에 사람이 태어나면 육체적으로 이 법에 의해서 배우게 되어 있고 이 법에 종노릇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서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스스로 어려서부터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안 됩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 하셨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보면 맞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하고 난 후에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는 율법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초등 학문입니다
자기의 눈으로 보이는 것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고 받으시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점점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 의인이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이 이 세상에 없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한탄하시고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시고 그의 자손으로 세상에 다시 사람들을 두셨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셨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율법주의에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렇게 어렸을 때는 다 초등 학문에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실제 어렸을 때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의의 말씀을 경험을 하지 못한 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문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이 세상 초등 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에서 배운 어떤 학문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이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하나님의 학문을 배우고 있고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초등학문에 사로 잡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성경을 누가 보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지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이 두꺼운 성경을 읽는 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세상 사람들은 특별히 자기가 학문적으로나 사상 적으로 배우려 하지 않고는 절대로 이 성경을 안 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오해를 합니다.
자기가 성경을 보고 있으면 초등학문이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으면 영의 말씀을 보고 있고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안 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초등학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이 초등학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반대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도 역시 초등학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사람보다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있지만 그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초등학문을 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을 하셨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다섯 처녀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염소들이 다 쫓겨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초등학문을 배운 사람입니다
교회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초등학문 아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거의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은 복음을 듣기 보다는 초등학문을 듣고 있습니다. 사실 영의 비밀이라는 것이 이 세상의 초등학문에 세뇌가 되어 있는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아니 복음에 대해서 가르쳐 줘도 처음에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5: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57쪽)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제가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내세에 대해서 강의를 해 드렸습니다. 아마도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이 드는 말씀들이라는 것을 아카데미 강의를 듣고 있는 성도님들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영의 일들이 너무도 단단한 식물과 같아서 받아들이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세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가 내세에 대해서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5차례 정도 강의를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 있는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들어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씹어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말씀을 드리면 소화가 안 되어서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내세에 대해서 어떻게 배우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 있는 것 같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내세에 대해서 바로 가르쳐 준다 해도 그것이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상한 이단의 주장이라고 까지 이야기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고 히브리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5장12절을 보면 저희가 때가 오래 되어 선생이 되어 이제는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하는데 먹지를 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때가 오래 되었어도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초등학문 아래 있기 때문에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고 있기 때문에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고 아직도 젖을 먹는 어린 아이와 같이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종노릇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들들은 언젠가는 종에서 벗어나고 택하심을 입지 못한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초등학문에 종노릇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단한 식물이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25쪽)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이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행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 믿음이 우리를 얼마나 굳세게 해 주고 있는 가를 모르기 때문에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입니다
든든한 뿌리가 우리 마음에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까지 젖을 먹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은 아직 젖을 먹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 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단단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행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는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 믿음을 폄하하고 있고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가를 깨닫지 못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을 때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줄 믿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것이지 그 믿음이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오히려 행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
믿음이 아니고는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 합니다. 영의 부활과 내세의 일은 믿음이 아니고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 가를 모르고 있고 초등학문에 빠져서 그저 막연하게 천국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문이 무엇인가를 너무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2:20절을 보겠습니다. (신 326쪽)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초등학문이 무엇입니까?
의문을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있지만 아직까지 의문에 순종을 하고 있다면 그는 아들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도 많은 의문에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은 초등학문입니다 그것은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고 국가의 제도가 다 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의 국가의 법을 안 지켜도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상 법을 지키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종이냐 아들이냐를 분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아직도 율법의 한 모양이라고 지키고 있다면 그는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 중에 단 한 가지라도 그것을 문자 그대로 내 육체로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직 종이라는 것을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율법은 폐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살인을 해도 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들은 제가 십계명이 폐해 졌다고 하면 그럼 살인을 해도 되고 도적질을 해도 되느냐는 유아적인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 국가의 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살인을 하고 도적질을 하면 국가가 가만히 두지를 않고 그 육체를 구속을 해 버립니다. 성경에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이 폐해졌다고 해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안사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유치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의문에 순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직도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렇게 의문에 순종을 하면서도 자기가 의문에 순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믿음이라고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 합니까?
그것은 의문에 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주인을 폄하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믿음이라고 격상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고 있기 때문인데도 자기는 종노릇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을 때 까지 모릅니다.
유업을 이을 자가 아니고는 전부다 교회 안에서 그렇게 의문에 순종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십일조와 주일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아무리 믿음이라고 해도 성경에는 그것이 율법입니다.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단단한 식물을 먹고 선악을 분별을 하는 성도에게는 분명히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의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입니다
이스라엘은 다 아린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렇게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시인을 하고 있지만 행위로는 그렇게 부인을 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과 영의 차이입니다
육에 있는 사람은 영의 비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육에 있어 의문에 순종을 하고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끝까지 의문에 종노릇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의문에서 벗어나 단단한 식물을 먹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해야 합니다.
성도는 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물론 구원은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우리는 늘 깨어 지혜를 구해야 의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의문에 순종을 하는 종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종은 버림을 받습니다.
반드시 아들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과 교회가 아니라 교회 안에 종이 있고 아들이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종과 아들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초등학문과 같이 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지만 아들이 아니라 종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면서 아들이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2강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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