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54강, 은혜

윤주만목사 2019. 4. 4. 21:20


54, 은혜

 

요한계시록 22:21절을 보겠습니다. (423)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절에 성경을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성경 맨 처음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고 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야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를 만드시고 그 안에 우리 인생들을 만드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우주에 대해서 거의 모른다고 해야 맞습니다. 별이 몇 개나 있는지 그리고 어느 별에서 무슨 일이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담으로 말을 하고 있는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우리 인생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지구는 그렇습니다.

대기권이라는 것이 있어서 마치 우물과 같습니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을 해서 그 우물을 이제 겨우 조금 벗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화성에도 인류는 발을 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탐사선을 보내서 거기서 보내오는 자료를 가지고 화성에 대해서 아주 조금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지구에서 미물들을 볼 때도 그것과 인생들의 차이가 얼마나 큰 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과 우리 인생의 차이는 상상이 안 된다고 보면 맞습니다.

 

창조주가 이 세상을 창조했습니다.

그냥 심심해서 내가 이것을 만들어 보겠다고 해서 창조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만드시고 우리 인생들을 지으신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재미 삼아서 그냥 만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아니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인생들을 통해서 나타내시고자 창조를 하셨습니다.

 

처음 만드신 것이 에덴입니다.

그 에덴은 우리가 부활을 해서 가는 곳 천국을 예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시작과 끝은 바로 천국에서 시작을 해서 천국으로 끝이 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함으로서 더 이상 천국에서 영생을 할 수 없는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에덴에는 생명나무 과실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또 생명나무 과실을 따 먹었다면 아마도 이 지구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죄가 있는 인생이 생명나무 과실을 따 먹게 되면 영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병이 듭니다. 죄로 인하여 찾아온 것이 바로 이 병과 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사람이 생명나무 과실을 따 먹고 영생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이 지구는 정말 지옥으로 변하고 말았을 것이고 아니 사람들은 자기 자손을 낳는 것을 벌써 포기를 해서 이 지구 안에서 병들어 고통 하면서 영생을 하는 사람들도 가득 차 있는 정말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옥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에덴을 감추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니 지구에 있던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을 왜 창조를 하셨는가 하면 처음에 있던 에덴을 다시 주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습니다. 처음에 있던 에덴은 이 지구에 있지만 하나님의 장막이 있는 곳에서 우리 구원을 받은 성도들과 함께 살기 해서 창조를 하셨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시고 그 은혜를 우리 인생들이 받아들여서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셨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있어야 우리 인생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

 

유일한 방법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나에게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 마지막에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의 은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고도 남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데 있어 전혀 부족하지 않고 넘치게 하기 위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든 인생들에게 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 2:4절을 보겠습니다. (338)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의 은혜를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정녕 죽어야 하는 그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고 그 아담의 자손들이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시고 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삼일 만에 부활하게 하시고 예수와 함께 우리도 부활을 해서 천국에 오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영생에 대해서 너무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이 진리를 알아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경을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다 보니까 구원에 이르는 방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아야 하는데 그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가 성경에 무슨 말씀이 있는 줄을 아는 것으로 마치 진리를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을 보면 마치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으면 다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 것 같으면 성경 맨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모든 사람에게 주 예수의 은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는 이 은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이 세상에서 생각하는 그런 정도의 은혜로 알고 있습니다.

 

은혜

사랑으로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을 은혜라고 사전에서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은혜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아주 특별한 혜택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이며 천국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악의 종자들은 다시 에덴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인생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은혜를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이 은혜가 어떤 것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천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다 보니까 주 예수의 은혜가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주 예수의 은혜를 입어서 천국에 오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부모가 아무리 자녀를 사랑해도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잘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주는 쪽과 받는 쪽의 차이입니다

사랑을 주는 쪽에서는 자기가 얼마나 큰 사랑을 주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지만 사랑을 받는 쪽에서는 그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해 주고 있는 줄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한계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그 은혜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있어야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주 예수의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주 예수의 은혜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어디로부터 오는 줄을 성경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16-17절을 보겠습니다. (142)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은혜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고 할 때는 그 은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를 말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말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은혜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아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은혜를 어디서 받는가 하면 그의 충만한 데서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충만하게 우리 인생들에게 임하고 있는 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은혜를 받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아주 쉽게 은혜 받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자기에게 은혜가 임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하는 이 말씀은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셨는데 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고 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때나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보고 은혜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율법은 법대로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은혜를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은 주 예수의 은혜를 입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을 받았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았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라고 말 합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은혜라고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보고 은혜라고 하는데 그것은 성경적으로 얼마나 무식한 말인가를 모르고 그저 은혜라고 하면 겸손하게 보이니까 은혜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말입니다

 

은혜가 어디서 오는 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은혜는 육적인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들이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8절을 보겠습니다. (311)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데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선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선물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선물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선물을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선물은 그냥 선물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거저 주고 있습니다. 이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은혜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떤 은혜를 입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영의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성도입니다 또 영의 일을 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얻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성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받은 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반드시 천국만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은혜를 말할 때는 반드시 천국에 것을 선물로 받았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지 이 세상의 어떤 것을 받는 것을 가지고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또 이 세상의 어떤 일을 하는 것을 가지고 은혜로 한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그 은혜를 인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은혜를 말할 때는 주 예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 선물입니다

선물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데나 은혜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받았는지를 모르고 은혜라는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반드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을 때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이루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지 내가 무엇을 잘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니 구원을 받는데 있어 내가 조금이라도 보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은혜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은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것에 내가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은혜라고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밖에 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오직 한 길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은혜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율법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셔서 그 택하신 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 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쉽게 가슴에 와 닫지가 않아서 그렇지 막상 지금 당장 죽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은혜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은혜라는 말은 너무도 쉽게 잘 사용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아 오는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8:24절을 보겠습니다. (31)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비유입니다

회계를 할 때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라고 하니까 어떤 한 사람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는 바로 나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빚진 자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일만 달란트를 빚을 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도 비유로 해서 그래도 우리가 어느 정도 빚을 진 자인가를 깨닫기 위해서 일만 달란트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실제로는 일만 달란트로도 안 되는 빚을 진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만 달란트는 지금 돈으로 하면 약 20조가 넘는 돈입니다 우리가 20조가 넘는 빚을 졌다는 것이 상상이나 됩니까?

 

비유입니다

사실은 20조도 더 넘는 빚을 진 자들입니다 20조가 있으면 뭐 합니까? 그 생명이 죽는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20조라는 돈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20조가 아니라 100조가 있어도 살 수 없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빚을 진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000만원의 빚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10억의 빚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이 빚을 탕감을 해 주었다면 누가 더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겠습니까? 아마 1000만원의 빚을 진 사람은 은혜라고 까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감사한 정도지 은혜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1000만 원 정도는 자기도 얼마든지 벌어서 갚을 수 있는 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1000만원 큰돈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정말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의 돈은 갚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10억을 빚진 자는 다릅니다. 그것은 평생을 벌어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 빚을 탕감을 받은 사람은 은혜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감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은혜입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자기가 얼마나 빚을 진 자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자기 빚이 얼마 인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자기 빚을 아는 사람과 자기 빚을 모르는 사람의 생각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빚이 1000만원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 빚을 어떻게 하든지 갚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10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더구나 일만 달란트입니다

성경은 내가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 빚을 아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저 은혜입니다 그러나 자기 빚을 모르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지식적으로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지고 가셨구나 하는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은혜가 되지는 않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은혜가 쉽게 와 닫지가 않습니다. 자기가 정말 일만 달란트를 빚졌는가 하는 것부터가 쉽게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자기가 율법을 지키고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이 세상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기가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빚이 얼마나 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빚을 진 자인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어느 한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 모두가 이렇게 일만 달란트를 빚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 빚을 모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1:15절을 보겠습니다. (337)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누가복음 18:10-12절을 보겠습니다. (126)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사도 바울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그 역시도 바리새인들과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사도 바울은 자기를 스스로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율법주의자로 살았고 또 사도 바울 역시도 자기 말대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나니까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십일조를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 주일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바리새인들입니다

십일조를 믿음의 증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하나님의 날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절대로 깨닫지를 못 합니다 아니 죄인이라고는 합니다. 그것은 실제 죄를 진 것도 있지만 죄인이라고 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죄인인 줄도 모르고 그저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은혜를 거절했습니다.

아니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 말씀을 있습니다. 자기들은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다고 말을 하고 있고 또 십일조를 내고 있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있는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무엇이 다릅니까? 아마 금식을 하는 것 말고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불의 토색 간음을 하지 않고 나는 교회 안에서 믿음의 증표로 십일조를 내고 있고 주님의 날이라고 하는 주일을 아주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무슨 죄인인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악을 행하면서 자기들이 의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은혜를 알겠습니까?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 해도 은혜가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게 율법을 많이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은혜입니다

말로 은혜 은혜라고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은혜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도덕적으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서 정말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은혜가 어디로부터 오는 줄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입니까?

정말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헌신을 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나니까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죄인 중에 죄인입니다

 

죄인입니까?

그런데 자기가 무슨 죄인인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실제 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껏 교회 안에서 죄를 회개하라고 하면 아주 작은 죄를 가지고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일상생활에서의 죄를 가지고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죄로는 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은혜가 그에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최소한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합니까?

내가 세상 사람들보고 죄인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은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이성적으로 볼 때는 세상 사람이 분명히 더 죄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 똑같은 죄인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살인을 했습니까? 내가 살인을 안 했을지라도 나 역시 살인자입니다 세상 사람이 간음을 했습니까? 나는 분명히 간음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나 역시 똑같은 간음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도 더 큰 죄인입니다

세상 사람은 육적으로 살인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남을 속이고 또 간음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그런 일들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적인 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사실 더 큰 죄인은 영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지만 사람에 따라 그 은혜가 있을 수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아예 믿지를 않아서 은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누군가를 모르기 때문에 은혜가 그에게 있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5:20절을 보겠습니다. (246)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를 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에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달랐습니다.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를 구했습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고 바리새인이 되면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알게 되면 우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몰랐을 때 한 모든 행위가 사실은 다 살인을 한 것이고 또 간음을 한 것이고 또 내 마음에 다른 신을 두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집니다.

 

왜 유구무언이 되는 줄 압니까?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유구무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자기에게 있게 할 수 있는데 혼인 잔치에 들어와서도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다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킨다 해서 바리새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단 한 가지의 율법만 지키고 있다 해도 나도 모르게 바리새인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칠 수 있는데 자기가 무슨 죄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보지마시고 그 율법에 담겨져 있는 영적인 의미를 알게 되면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로마서에서 죄를 더 지라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율법에 가입을 해서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보고 있지만 자기들이 무슨 죄인 인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모르고 오히려 그 율법을 아주 잘 지키다 보니까 죄가 더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점점 없어지다 보니까 은혜가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인만 있게 됩니다.

자기가 죄를 별로 진 것이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렇게 와 닫을 수 있습니까? 율법을 바로 알고 정말 내가 살인자이고 내가 간음을 한 자이고 또 내가 도적질을 한 자이고 내가 우상을 섬긴 자이고 내가 하나님이외에 다른 신을 섬긴 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겠습니까?

정말 복음을 위해 그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살았는가를 성경이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가입해 보니까 사도 바울이 자기를 죄인 중에 괴수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율법을 자세히 알고 보니까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모르면 절대로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이 말씀이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겸손한 척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가증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죄도 모르면서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구하는 이에게는 얼마나 가증한 일입니까? 그것은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된 말로 염장을 지르는 일입니다.

 

우리 아이가 있습니다.

분명히 잘못을 했습니다. 그래서 혼을 내려고 하니까 자기가 잘못을 했다고 말 합니다. 그래서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하니까 엉뚱한 이야기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를 용서해 주고 싶어도 용서해 줄 수 없고 오히려 더 화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모르고 고백하는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더욱 진노를 하게 부채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왜 주셨습니까?

그것은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져서 깨달으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영적인 죄를 얼마나 짓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를 깨달으라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을 보고도 자기가 무슨 죄인 인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까?

율법에 간음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까? 또 율법에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이 말씀은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율법에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십계명이 있습니다.

내가 그 중에 하나라고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십계명을 보고 내가 그것을 다 지켜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율법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니 예수 그리그도의 은혜가 그에게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십계명에 있는 모든 것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들이 어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마 이 말씀을 보면 내가 언제 살인을 했느냐고 저에게 따질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이 십계명 중에 어느 한 가지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율법을 바로 알고 있기 때문에 잘 지키고 있는 것도 있지만 역시 사람인지라 이 십계명을 어기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이 십계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아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래도 십계명은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사실은 십계명의 하나도 지키지 못하고 있으면서 율법을 모르니까 자기에게 무슨 죄가 있는 줄을 모르고 그러다 보니까 은혜가 그에게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은혜는 반드시 죄가 더한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 죄가 더한 것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눈으로는 분명히 죄를 더 진 사람이 있고 죄를 안 진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에 저울에 달아보니까 입김보다 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입김보다 경하게 거의 모든 사람이 죄를 똑같이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그런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게 됩니다. 왜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게 됩니까?

 

갈라디아서 5:4절을 보겠습니다. (307)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그런데 죄를 안 지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고 죄가 사라지는 것을 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은혜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갈라디아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죄를 더 많이 지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가 문제입니다

죄가 더 해야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어 있는데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게 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들이 있습니다. 십일조도 있고 주일도 있고 절기를 지키는 것도 있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있고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율법을 아주 열심을 내서 지키고 있습니다.

 

죄가 없어집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보니까 이 세상 사람에 비해 분명히 죄가 없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가 없어지기 시작을 하면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된다는 것을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더 해야 은혜가 더욱 넘칠 수 있는데 율법을 너무 잘 지키다 보니까 세상 사람들과 비교를 해서 죄가 넘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문자 그대로는 폐하여 졌습니다.

의문의 쓴 계명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폐하여 졌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지키느라고 죄를 없이 하고 있습니다. 실제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데 율법은 사람들의 눈을 그렇게 소경으로 만들어서 자기 죄를 못 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소경이 되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은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모르고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다 보니까 죄가 없어지고 있고 그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더 해야 은혜가 더욱 넘치는데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율법의 모습을 자기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율법 안에 있는 그 의미를 모르고 영적으로는 살인을 하고 있고 간음을 하고 있고 우상을 섬기고 있고 다른 신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

은혜에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말씀을 하면 그렇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초가 되는 말씀은 절대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주 예수의 은혜가 그에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오히려 율법을 더 많이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 문제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있어야 하는데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지키면서 그것을 자기 눈으로 보고 있다 보니까 죄는 안 보이고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만 보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은혜에서 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를 보고 있는 사람은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율법을 그들의 마음에서 이제는 지울 수도 없고 아니 어느 누구도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폐할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에게 있게 하려면 반드시 이 율법을 버려야 합니다.

 

내 몸으로 지켜서는 안 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안 지킨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 율법이 어떻게 작용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자기에게 은혜가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지키면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주 예수의 은혜가 있는가 없는가를 아는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내 몸으로 지키고 있다면 그는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말씀입니다 은혜가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말씀이 바로 갈라디아서 말씀입니다

 

그런데 깨닫지 못 합니다.

아니 성경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말씀이 바로 이해가 안 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있게 하는 가장 기본 적인 조건입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은혜를 말하고 있다 해도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역시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율법을 모르다 보니까 오히려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 마치 은혜를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으로 의로워지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의로워지기 위해서 지키고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가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미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그 자체가 스스로 은혜를 받지 않겠다고 거절을 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에서 떨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은혜에서 떨어지게 되면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 이유는 은혜가 있게 하기 위해서인데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은혜에서 떨어져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 우리에게 주 예수의 은혜가 있어야 하는 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7절을 보겠습니다. (310)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죄 사함입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죽어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냥 죄인이 아니라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성경이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용서를 받아서 죄 사함을 받고 있습니다.

사형수가 있습니다. 왕이 특별히 그를 사면해 주면 그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누군가에게 실수를 해서 죄를 졌는데 그것을 용서 받으려고 하면 그에게 가서 고백을 하고 용서를 빌었을 때 그가 용서를 해 줌으로서 용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용서는 분명히 용서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깨끗해 질 수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방법으로는 설령 내가 용서를 받았다 해도 그것으로 깨끗해지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죄가 계속해서 생각이 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록 용서를 빌어서 용서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죄가 계속해서 생각이 난다면 완전한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10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통해서 용서를 받았지만 그것이 해마다 생각이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 해도 죄는 생각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죄가 생각이 나는 것은 완전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는데 그 죄가 생각이 난다면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인생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죄를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죄가 생각이 난다는 것은 우리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피로 죄 사함을 받으면 더 이상 죄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있어서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우리 인생은 분명히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성경이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율법이 있는 법궤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죄가 생각이 나면 그 법궤가 있는 곳을 두려워서 지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어떻습니까?

지성소에 들어가면 죄가 있는 사람은 법궤를 지나갈 때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성도는 죄가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기 때문에 지성소에 들어갈 때 아무 거리낌이 없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율법에 의해서 죄가 생각이 나기 때문에 율법에 의해서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은혜의 풍성함에 따라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자기가 죄를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것은 내가 죄를 짓기도 전에 내가 용서를 빌기도 전에 아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셔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사실 은혜로 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죄를 짓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오셔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해 져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은혜가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은혜를 모르고 자기 죄가 생각이 나기 때문에 아직도 교회 안에서 기도만 하면 자기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서 고백을 하는 이 세상의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은혜

반드시 죄 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를 빌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를 짓기도 전에 내가 죽을 때 까지 짓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었어야지 그것이 은혜가 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종교에서도 없고 또 이 세상의 어떤 국가의 법에서도 있을 수 없는 죄 사함이 바로 은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죄에 대해서 무감각하라고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죄를 짓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가 가진 복음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역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연약해서 죄인으로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죄에 대해서 떳떳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늘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하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또한 믿어야 합니다.

 

이 죄 사함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다 보니까 아직도 세상의 방법으로 용서를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죄가 생각이 나니까 늘 교회에만 나오면 아니 기도만 하려면 자기 죄를 먼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인입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지은 죄를 생각해서 하나하나 용서를 받으려고 하는 행위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은혜를 거절하면서 이 세상의 방법대로 죄 사함을 받고 싶어서 자기 죄를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피로 구속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죄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는 죄만 지었고 그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내 평생의 죄가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않고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3:24절을 보겠습니다. (24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죄 사함은 우리가 천국에 가는데 있어서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것인 천국에 가는 일에 있어서지 이 세상에서는 죄 때문에 우리가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망에 이르는 것은 죄에 따르는 보응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성도를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값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을 합니까? 아마도 그 값을 따진다면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를 흘려서 얻은 것인데 그 값은 인생이 값을 논할 수 없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내가 의로워 진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는 내가 의로워져서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이 세상 죄를 십자가에 지고 가게 하시고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은혜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은혜가 아니고는 도무지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이 은혜를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어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있으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죄인입니다.

그 죄인이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이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의 일을 통해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가 아니라 구원을 받는 영의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구속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디도서 3:7절을 보겠습니다. (350)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함을 얻어서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은혜가 아니고는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셔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었고 그 은혜를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영생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영생에 대해서 솔직히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세상에서 고난과 환란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슴에 와 닫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게 된다면 그 영생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아담이 범죄를 한 이후로는 우리는 반드시 한번 죽는 것이 정해진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게 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저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은혜를 모릅니다.

아무데나 은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어 영생을 얻었을 때 은혜라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일상생활을 보면서 그리고 신앙생활을 보면서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영생에 대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 은혜라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성도는 말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 말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그것을 함부로 사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로 인하여 오히려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가 아닌 것을 은혜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도는 말을 한 마디 할 때도 가려서 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좋은 말은 무조건 사용을 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은 사단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단이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도 세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모든 교회가 사단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내 눈으로 보이는 것을 가지고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하면 사단에게 은혜를 받았다는 말이 될 수 있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을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는 죄 사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의롭다 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생이 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영의 일을 가지고 은혜를 말해야지 육의 일을 가지고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하고 또 내 육체적으로 어떤 좋은 일이 있다 해서 그것을 은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영생에 관해서이지 육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게 되면 사단에게 은혜를 받아 나중에는 버림을 받게 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들 중에 누가 육체적으로 은혜를 받았습니까? 또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육체적으로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들은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버림을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분명히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자 같이 보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을 모르고 육에 사로잡혀서 자기 육체의 어떤 모양을 보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 은혜를 거절하고 있고 주 예수의 은혜가 무엇인줄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잠언 29:26절을 보겠습니다. (944)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하나님께 은혜를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정말 진심으로 천국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거짓으로 가식으로 한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진심으로 마음에서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은혜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무식한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알아야 구할 것 아닙니까?

자기에게 어떤 은혜를 주는 줄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은혜를 구할 수 있고 또 그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불행하게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은혜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말로는 은혜라고 너무 많이 하고 있지만 실제 그들은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교인들의 마음이 거짓이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도 정말로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은혜를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은혜가 아니 주어진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셨지만 주 예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1:5-6절을 보겠습니다. (254)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만 해도 천만 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수많은 교회들이 있고 아마도 수십억명이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미리 예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은혜를 얻기를 그렇게 사모를 하고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실제 구원을 받는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선택을 합니다.

이 선택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자는 많지만 실제 은혜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은혜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은혜는 영의 일이다 보니까 육에 빠져 있는 인생들에게 이 은혜가 가슴에 와 닫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셔서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선택을 하지 않고는 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를 사도 바울이 행위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보고 있기 때문에 은혜를 은혜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모든 교인들이 다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가 어떤 은혜를 받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기초로 든든히 세우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 은혜를 풍성하게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서 영의 일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뭐가 방해를 합니까?

행위입니다 행위에 빠져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지키고 있는 이상에는 절대로 주 예수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더 행위에 빠져 들어가면서 주 예수의 은혜를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 예수의 은혜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주 예수의 은혜를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 예수의 은혜가 어떻게 임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를 이스라엘이 모르다 보니까 결국에는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입니다

다른 것이 내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없을지라도 주 예수의 은혜만 내게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 예수의 은혜는 사라지고 있고 자기들의 종교적인 행위만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6:8절을 보겠습니다.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홍수입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습니까? 정확한 인구를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시대 못지않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있을 때는 다른 신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노아만 은혜를 입었다고 성경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노아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 교인의 숫자는 중요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말 주의 깊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닙니다. 노아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이 있었지만 노아 한 사람만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수많은 교인들이 있지만 역시 똑같을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표로 보여 주시면서 경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사건들을 너무 자기들에게 편리하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 당시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노아 한 사람만 은혜를 입었으면 지금 이 시대도 똑같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는 성도는 주 예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될 것이고 그에게 주 예수의 은혜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의 마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진심이라는 것은 내 마음입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진심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주 예수의 은혜가 자기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진심만을 이야기 하고 있고 주 예수의 은혜가 무엇인줄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보신즉 선을 행하는 자가 있는 가 찾아보신 즉 하나도 없다고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가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를 바로 알고 그 은혜가 내게 있어야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15:13절을 보겠습니다. (105)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불러 믿음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나님께서 구속을 하셔서 은혜로 인도하시고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속을 받은 성도를 주님께서 은혜로 인도를 하시고 있습니다. 은혜를 내가 얻고 싶다고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신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우리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은혜를 주시고 있고 그들을 주의 은혜로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인도하심은 오직 주의 힘으로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신약 성경의 거의 모든 마지막에 주 예수의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 예수의 은혜가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역시 주 예수의 은혜가 성도들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씀을 하고 맺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주 예수의 은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한 이 말씀을 늘 가슴에 깊이 새기고 내가 청함을 받은 자인가 아니면 택함을 입은 자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그리고 주 예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까? 그리고 내 안에 영생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이런 성도만이 주 예수의 은혜가 있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그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있어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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