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역대하 12:1-8절을 보면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저에게 병거가 일천 이백승이요 마병이 육만이며 애굽에서 좇아나온 무리 곧 훕과 숩과 구스 사람이 불가승수라 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을 취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니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을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하셨다 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가로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여호와께서 저희의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저희가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대강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저희가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열국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셨더라”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우리는 성경의 문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를 늘 깨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이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성경을 너무 쉽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건들은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다 교훈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교훈을 깨닫지 못하면 그는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이 왜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가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그저 문자적으로 보고 그것이 이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변하게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모르면 나는 죽습니다. 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아는 것을 가지고 내가 성경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지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 와서 성경을 봐도 그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는 지식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성경을 그렇게 이 세상의 지식으로 보고 있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렵습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어렵다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사람을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게 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말 저 역시도 많은 설교를 작성하고 있지만 성경을 대할 때 마다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깜깜합니다.
아마도 내 이성적 지식으로 이 성경을 보려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시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경 그대로를 보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자기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고 그것이 자기 영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사망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지식입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가 신학을 하고 또 박사 학위를 받는다 해도 그것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 성경을 보고 말씀을 전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보면 바리새인들보다 더 심각하게 율법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먼저 내가 이 세상에서 배운 학문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지혜를 구하지기 바랍니다. 정말 이렇게 성경을 보지 않고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이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너무 쉽게 해석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성경을 잘못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만찬을 보고 그것을 성만찬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교회 안에서 주님이 하신 그대로 떡을 떼고 또 포도주즙을 마시는 그것을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성경을 볼 것 같으면 차라리 이 세상에서 다른 일로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 과연 성만찬을 하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이제까지 행하던 것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이 성만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혜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는 지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만찬의 문제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소경이 되어서 소경을 인도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자기 육체로 행하면서 스스로가 지혜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어느 한 문장을 가지고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모르면 절대로 성경을 보아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한 문장을 보면 우리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체가 무엇을 말씀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이 원문은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은 다 필사본입니다. 그 필사본을 마치 원문과 같이 보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비록 필사본이라고 할지라도 이 성경은 분명히 우리를 구원하는데 있어 부족하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필사본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필사본이라고 하니까 또 아주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성경에서 단어나 문장이 틀린 것을 찾아내서 마치 자기가 대단한 것을 아는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비록 필사본이라 할지라도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데 있어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찾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소행입니다. 비록 필사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충분하게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이 내게 은혜가 되어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늘 깨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는 자세부터가 달라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 보화를 찾을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서 구해야 합니다. 오늘은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율법에 대해서 모르고 있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솔로몬의 아들입니다.
르호보암은 처음부터 백성들의 말을 안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나라가 둘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던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모든 부강함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의 부가 얼마나 대단했습니까?
은과 금이 아주 흔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은과 금이 흔하지 않은데 솔로몬의 나라가 얼마나 부강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그 모든 것을 다 주셨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모든 것을 물려받았습니다. 비록 나라는 둘로 나누어졌을지라도 그 재물은 그대로 있어서 유다는 부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나라를 견고하게 했습니다.
우선은 이스라엘에 새로운 왕이 생기고 또 자기 아버지 솔로몬의 영광이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재물로 자기의 부강함을 나타내서 다시 이스라엘을 귀속시키려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나라는 둘로 나뉘어졌어도 아직까지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강해지면 반드시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르호보암을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르호보암이 강대해지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사건은 이 시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를 걷어 내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는 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의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그것을 르호보암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가 강대해 지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온 이스라엘이 본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 한 사람이 강대해 지니까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보면 이 말씀이 현실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왕이 되어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성경을 그냥 대충 보지 마시고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동전의 양면입니다.
자기가 견고하고 강대해지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왕 같은 자가 그렇게 하니까 그 백성 모두가 그것을 따라 행했습니다. 교회 안에 왕 같은 목사 한 사람이 자기가 견고하고 강해지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 안에 있는 모든 교인들이 모두가 따라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무지합니다. 율법하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를 그대로 생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지적인 수준만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율법입니다. 그것을 여호와의 율법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8:5절을 보겠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모세의 율법입니다.
똑같은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세의 율법이 있고 여호와의 율법이 있습니다. 아마 이 말씀을 보는 사람은 무슨 황당한 말을 하느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모세의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모세의 율법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를 보고 그것을 우리 육체로 그대로 행하는 것을 모세의 율법이라고 합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율법이 아닙니다. 만약에 이것이 여호와의 율법이라고 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라 해도 여호와의 율법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율법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이라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이 율법이 마치 여호와의 율법인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유명한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역대하 12장의 말씀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성경에 기록된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신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율법과 모세의 율법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봐라 여호와의 율법을 버린 이스라엘이 애굽에 의해서 결국에는 나라가 침략을 당하고 말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는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역대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성경을 주의 깊게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이 율법이 모세의 율법이라고 하면 이스라엘 전체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이것은 쉽게 말해서 이 시대 교회 전체가 십일조를 버리고 주일을 버렸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마치 모세의 율법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그래도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사도 잘 드리고 또 십일조도 잘 내고 안식일도 잘 지키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세의 율법이지 여호와의 율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사람의 육체로 지키는 것은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것을 여호와의 율법이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여호와의 율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십일조를 철저하게 내고 있고 주일을 안식일로 생각하면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7:25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킵니다,
여호와의 율법이나 하나님의 법은 같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모르면 그는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르호보암이 어느 법을 버렸습니까? 마음으로 섬기는 여호와의 법을 버렸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하나님의 법을 버렸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 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율법하면 마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율법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호와의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솔로몬 왕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고 스스로 강대해지다 보니까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고 또 이스라엘 전체가 본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르호보암이나 이스라엘이 모세의 율법을 버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제사는 드리고 있었지만 성막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마치 그것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로 알면 안 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이 죽고 난 이후에 이스라엘이 율법을 안 지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들은 모세의 율법은 철저하게 지켰지만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모세의 율법은 모두가 지켰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없고 율법의 행위를 따라 행하는 사람들만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이 시대 교회와 같이 모두가 율법의 행위는 그렇게 잘 지키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를 함께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면서 여호와의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율법은 내가 몸으로 하는 것이라 여호와의 율법은 내 마음으로 믿는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신으로는 모세의 율법은 잘 지켰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12장1절 공동번역입니다.
“르호보암은 통치권이 튼튼해지고 세력이 커지자 여호와의 법을 저버렸다. 온 이스라엘도 그를 본받았다”
시편19:7절을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공동번역입니다.
여호와의 법은 이지러짐이 없어 사람에게 생기를 돌려주고 여호와의 법도는 변함이 없어 어리석은 자도 깨우쳐준다.“
무엇이 영혼을 소생케 해 줍니까?
우리 인생은 다 죽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소생케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율법이 우리가 문자 그대로 보는 율법이라고 한다면 성경은 서로 다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율법은 영혼을 소생케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은 서로 반대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을 보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해석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과 여호와의 율법을 모르게 되면 그것으로 사망입니다. 율법이라고 하니까 마치 모세의 율법만 생각하고 이런 말씀을 보는 사람들이나 목사들이 모세의 율법을 버리면 마치 큰 일이 나는 것같이 생각을 하고 점점 더 깊이 모세의 율법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안 됩니다.
그것으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정의입니다. 만약에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괜스레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내 영혼을 소생케 합니다.
그것은 내 마음에서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그것을 믿음으로 해서 내가 율법을 지킨 자가 되어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서 내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들을 모르다보니까 그저 모세의 율법을 지키면서 사망에 길고 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보는 자들이 거의 다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우리에게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지키는 몇 가지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자기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안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주님께서 폐하셨습니다.
이제 성도는 여호와의 율법을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도 역시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모세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지키고 있으면서 그 행위에 취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요한일서 5:18절을 보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를 했습니다.
여호와께 범죄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까? 만약에 율법을 지키는 일이라면 어느 누가 여호와께 범죄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요한일서에서 여호와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린 르호보암이나 그것을 본받은 이스라엘이나 모두가 생명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왕 한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까 이스라엘 전부가 본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 목사 한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면 그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그것을 본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교회 안에서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범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과 이스라엘은 범죄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하나의 예표입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모두가 그렇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믿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면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버린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 가를 르호보암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저에게 병거가 일천 이백승이요 마병이 육만이며 애굽에서 좇아나온 무리 곧 훕과 숩과 구스 사람이 불가승수라 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을 취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니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을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하셨다 한지라”
애굽이 쳐 들어왔습니다.
르호보암이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것을 본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르호보암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따라 자기의 견고함과 강대함을 내 보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얼마나 견고하고 세력이 강대해지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어느 교회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곳이 있습니까? 모세의 율법으로 이렇게 견고하고 강대해지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버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동전의 양면입니다.
내가 강해지면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내가 약해지면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자기의 약한 것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자기의 강한 것을 보고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를 보냅니다.
그리고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표이기 때문에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미 모든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율법을 버려도 선지자를 보내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애굽 왕 시삭의 손에 이스라엘을 붙여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예표입니다. 이 예표를 다 보여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여호와의 율법을 버려도 선지자를 보내시지 않습니다. 그대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표로 이미 다 보여 주셨기 때문에 지혜를 구하면 이 예표를 알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이 예표를 마치 그 당시 이스라엘의 일로만 생각하고 자기들은 하나님을 안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면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고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가로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선지자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스스로 겸비하여 여호와는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이스라엘에게는 육적으로 나타났지만 이 시대는 영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더욱 깨닫지를 못 합니다. 이 성경을 보고 깨달아야 하는데 이 말씀이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겸비하지도 않습니다.
회개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설령 선지자가 와서 이 말씀을 한다 해도 이 시대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고 오히려 그를 이단이라고 몰아서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여호와를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버려 애굽 왕 시삭의 손에 붙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됩니까? 그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시고 사단에 손에 붙여버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줄도 모르고 교회에서 열심만 내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저희가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대강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
선지자 스마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설교를 보고도 다른 교회는 다 잘못을 해도 자기들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도무 다 하나님을 버렸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스마야가 누구입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깨달을 수 있게 성령을 구하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스마야와 같은 선지자가 이 시대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예표를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성경을 너무 쉽게 보면서 오히려 거꾸로 해석을 해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르호보암과 방백들은 선지자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선지자의 말을 들은 왕이나 이스라엘이 얼마나 되는가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든 이스라엘은 선지자를 오히려 핍박을 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깨달으면 스스로 겸비해서 회개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성경 안에 있는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면서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알아야 하나님께 회개를 할 수 있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긍휼이 풍성하심으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스마야를 보내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회개할 수 있고 사단에게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힘써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열국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셨더라”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함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사건은 다 우리의 영적인 사건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스스로 겸비하여 선지자의 말을 들었다 해도 그들은 이미 범죄를 한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어떻게 하든지 구원을 해 주시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경계입니다.
너희가 나를 버렸으니까 이제 너희가 애굽을 섬기게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표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실제 애굽을 섬기면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사단을 섬기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는 사단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거꾸로 보시기 바랍니다. 사단을 섬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 교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율법에 포로가 되어서 그것을 지키느라 온 힘을 다 빼앗기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적인 일이다 보니까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는 그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을 보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가라지는 그것을 버려도 성도는 절대로 그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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