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에스라의 기도

윤주만목사 2019. 2. 16. 19:09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에스라 10:1-4절을 보면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성경은 예표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너무 문자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 초등학문을 목사들은 자랑하고 있고 그것을 가르치느라 정작 영의 일에 대해서는 점점 더 소경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점점 이스라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스라엘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약에 와서는 주님께서 그들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사단의 회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행하던 모든 것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들을 마치 형제 국가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목사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형제가 될 수 있습니까? 심지어는 그들이 보는 탈무드라는 책을 마치 성경을 대하듯이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보는 책과 그들의 행위를 닮아가려고 하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망 합니다.

그들을 주님께서 분명히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마귀의 자식에서 회개를 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신약 성경은 아예 보지도 않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우리 성도들과 형제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형제입니다.

이 시대도 마귀의 자식들은 이스라엘을 형제라고 합니다. 그들이 형제같이 대하는 것은 자기들 역시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거를 해 주고 있는 우매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은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회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아직까지 그런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성도들의 형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을 형제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마귀의 자식이 되기를 자청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사상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왔습니까? 물론 성경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 이스라엘이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보면 명확하게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스라엘을 보고 형제라고 합니다. 실제 이스라엘에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은데 자기들이 좋아서 형제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형제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비록 이방인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하면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으니까 우리는 형제입니다. 라고 말하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그래 우리는 당신들과 형제라고 하면서 손을 내 밀러 줄 것 같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경멸이 여기면서 개 같이 취급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스라엘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가고 싶어 합니다. 예루살렘을 성지라고 하면서 순례를 가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이 오는 것을 반가워하지도 않고 단지 관광으로 수입을 올리는 그것으로 용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알지도 못하는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닌 그들이 와서 마치 형제처럼 대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 그들은 속으로는 조롱을 하고 있습니다. 관광 수입을 위해서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그 속으로는 별 이상한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먹여 살려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성경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이성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왜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형제도 아니고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다 성경을 모르는 데서부터 시작이 된 일입니다. 얼마나 웃기는 코미디입니까? 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은데 성경에 이스라엘에 대해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들을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예표의 나라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어쩌면 불행한 민족입니다.

물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나 모든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가는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 구원을 받은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서 구원을 받은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의 육적인 자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버림을 받는 예표와 모형으로 보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보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초대 교회에 순교자들이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받은 사람보다 더 많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분명히 그렇게 보입니다. 아브라함부터 해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바다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 모래는 셀 수 없지만 남은 자는 셀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럼 이방은 어떻다고 생각을 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역시 이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초대교회를 제외하면 과연 구원을 받은 성도가 얼마나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우리가 셀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입니다.

물론 이제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한 사람들은 적어도 수십억명 이상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그 중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남은 자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셀 수 있는 남은 자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이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영생에 대해서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1절을 보면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거울이라는 것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다면 우리 이방인도 그런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다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했던 모든 일들을 우리가 이 시대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거울을 보면서도 그 거울 속에 있는 자기는 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했습니까?

그럼 이 시대 우리도 역시 똑같이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아내와 간음을 했습니까?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거울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한 것이 이 시대 그래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거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겼습니까?

만약에 거울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 시대 역시 어떤 모양으로든 바알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들이 거울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울이 된다는 것을 그대로 지금 이 시대도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잘못 보는 그 순간에 그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거울이라는 것을 모르게 되면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겼어도 자기들은 바알을 안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 시대 교회는 이스라엘보다 더 바알을 심각하게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이스라엘은 보이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바알의 모양들을 고고학적으로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런 바알이 교회 안에 없는 것을 보면서 마치 자기들은 바알을 안 섬기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거울이라는 뜻도 모르는 미련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바알이 온 교회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는 바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알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거울을 안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혜가 없어서 그런 일을 했어도 이 시대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실상은 이스라엘보다 더 심각하게 바알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의 말입니다.

그들의 입어서 나오는 말이 무엇입니까? 다 바알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잘 믿으면 축복을 받는다는 온갖 감언이설로 교인들을 바알에 귀속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 예수를 믿으면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있습니까? 그저 문자적으로 성경을 보다보니까 바알이 어떻게 자기들에게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일들은 지금 이 시대 그대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 우리는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모든 사건들은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바알이 없으면 설교도 못 합니다.

아니 목사가 그것이 바알이라는 것을 알아도 교인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목사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보낸 40년이라는 기간은 우리에게 있어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시간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들이 간음을 했습니까? 그들이 원망을 했습니까? 그들이 우상 숭배를 했습니까? 그들이 주를 시험했습니까?

 

이 시대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를 보고 그것을 자기들이 안 한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이스라엘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그들보다 더욱 심하게 그런 일들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림자에 갇혀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성경입니다.

왜 우리에게 이 성경을 주셨습니까? 물론 이 성경에서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고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표가 되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왜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 그들의 잘못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모릅니다.

바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바알이라는 것이 교회 안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바알이 없는 교회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에게 우상으로 보였던 바알이 이 시대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바알을 섬기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있고 바알에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은 이 시대 예표입니다. 그것은 구약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신약 역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선지자는 없습니다. 성경을 더 기록할 선지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성경의 모든 사건들이 그대로 일어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가 되어 이방 땅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황폐화 되었고 그렇게 70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70년 동안 포로로 있다가 이방에 고레스라는 왕이 나타나면 너희를 다시 돌려 보내주시리라고 하신 그대로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입니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와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70년이라는 기간은 2세대만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한 세대가 거의 지나갔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포로로 갔으면 나이가 칠십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말씀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면서 기도하며 죄를 자백하자, 이스라엘 사람도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많은 무리가 에스라 주변에 모여서, 큰소리로 슬피 울었다.”

 

왜 울었습니까?

이스라엘이 포로로 가서 혼혈이 되었습니다. 사실 70년 이라는 기간을 생각하면 이것이 울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일본에 의해서 36년 동안 강점이 되었는데도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나라는 그래도 포로로 가지 않고 이 땅에서 강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솔직히 살인이라는 죄만 범하지 않으면 거의 다 그대로 용납이 되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힘으로는 그들을 막을 방법이 없고 그대로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가서 70년을 이방의 땅에서 살았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 중에는 예레미야로 하신 약속을 믿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언제 돌아갈지를 몰랐고 아니 죽을 때까지 자기 자손들이 대대로 그 땅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혼인을 할 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명히 율법에는 이방 여인과 혼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분명히 율법에는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 때문에 이 시대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더 율법적인 여자들이 남자들과 혼인을 할 때 그 조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런데 안 믿겠다고 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 여자에게 눈에 콩깍지가 끼었는데 어떻게 안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혼인을 해서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 말씀이 지금 실제 우리가 예수를 안 믿는 사람과 혼인을 한 것으로 죄를 범했다고 하면서 에스라가 울면서 기도하면서 죄를 자복하고 있는 것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 율법은 다 폐하여 졌습니다. 이것을 보고 마치 그 율법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합니까? 너희에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있을 때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13:26절을 보면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솔로몬 왕이 혼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워낙 부강하고 그 당시 패권 국가였기 때문에 이방 여인들과 정략적으로 혼인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그 일로 솔로몬이 나중에 이방여인들의 신을 섬기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어느 사람들은 이방 여인의 신을 섬겼다고 하면서 그가 범죄를 했으니까 구원을 못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예표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지혜 있다고 한 그 솔로몬도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하니까 이방 여인의 신을 섬기게 된다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신 것이지 그 사건을 보고 마치 솔로몬이 구원을 못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방의 신을 섬긴 솔로몬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도 못 받은 사람이 쓴 성경을 왜 보고 있습니까? 만약에 솔로몬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아마도 잠언, 전도서, 아가서는 성경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그 사건만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깊은 뜻을 모르고 그저 사건을 보고 솔로몬이 이방 신을 섬겼으니까 구원을 못 받았다고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 여인과 혼인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하는 것을 솔로몬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지혜의 왕입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가진 자가 없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하는 순간에 그렇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사건입니다. 단순이 이방 여인과 혼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이 시대 어떻게 합니까?

자기도 이방 여인이면서 결혼의 조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얼마나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이 성경을 초등학문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자기가 이방인아라는 것을 왜 모릅니까?

예수를 믿으면 자기가 마치 이스라엘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믿지 않으면 결혼을 안 하겠다고 말 합니다. 그것은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문선명의 피가름 주장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자기가 대단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왜 에스라가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자복합니까?

그것이 죄입니까? 육적으로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하는 것이 죄입니까? 만약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율법을 어긴 사람이 되고 그 율법에 의해서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가 이방인이면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잠언23:7절을 보면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포로에서 돌아온 육적인 이방 여인입니다.

그것은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이방 연인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와 음행을 하는 사람도 죽고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하는 사람도 죽습니다.

음녀는 교회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거의 모든 교회는 음녀라고 보시면 맞습니다. 진짜 주님의 아내인 교회는 솔직히 이 시대 찾기가 힘이 듭니다. 그 음녀에 의해서 깊은 구렁으로 빠져 있으면서도 소년과 같이 도살장으로 가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다 결국에는 주님께서 오실 때 아주 특별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 여인입니다.

그것은 다른 종교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방의 사상이 그대로 들어와 있는 교회를 말씀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방의 어떤 사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면 그것은 이방 여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이 이렇게 이방 여인과 혼인을 했습니다.

 

실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실제 사건을 통해서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비유를 모르고 마치 실제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성도는 맞지만 육적으로는 우리는 분명히 이방인입니다.

 

70년을 포로 생활 했습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육적으로는 얼마든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육적인 일이라면 에스라가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실제 육의 일을 통해서 이방 여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 연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있는 사상의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에 빠지면 그것은 죄입니다. 사망을 당하는 죄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에스라가 엎드려 울면서 기도하며 죄를 자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이방 여인이 들어왔다는 문제의 심각성입니다.

 

육적인 이방 여인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예수를 믿는 사람이냐 안 믿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의 사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이방 여인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바벨론에서 70년을 살았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포로에서 돌아온 거의 모든 사람들이 포로 중에서 태어난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1세대 지도자들은 거의 죽었습니다.

그리고 반 세대나 2세대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방 여인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이방 연인과 혼인을 한 것으로 보고 지금 에스라가 엎드려서 울며 기도하면서 죄를 자복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어떻습니까?

너무도 많은 이방의 사상이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제가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탄절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성탄절을 지키면서도 죄를 자복하지도 않고 있고 오히려 그것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해마다 더 성대하게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엘람의 자손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변에 있는 이 땅의 백성에게서 이방 여자를 데려와서 아내로 삼음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었지만, 아직도 이스라엘에 희망은 있습니다.”

 

이방 여자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한 사람의 이방 여자와 혼인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반대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우리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단지 교회에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 하는 문제로 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습니다.

 

이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으로 하여금 좁은 함정에 빠져 그들이 죽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시대 교회를 보면 음녀가 되어 있고 또 이방 여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의 육적인 문제를 가지고 우리 이벙인들에게 영적인 문제로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소망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해서 결혼을 했을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알고 이제 죄를 자백하고 있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이방 여인과 혼일을 하고도 그것을 모르고 죄를 자백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정말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소망이 없는 민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단순히 육적인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 육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방 여인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이방 여인을 알아야 회개를 할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이방 여인에게 너무 푹 빠져서 그것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들어와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교회에 만연을 해 있지만 좁은 함정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잠언2:16절을 보면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에스라에게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라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한 것이 어떠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지혜가 없어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속아서 자기 영혼을 팔고 있습니다.

 

이방 여인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내 보내겠다고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사실 사람이 만나서 혼인을 하고 사는 것이 나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가 이방 여인이라고 해도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다 해도 혼인을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책망을 하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의 사랑입니다.

그것을 종교와 결부 시키는 자체가 이미 육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성도는 자기 환경과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에스라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은 그런 육적인 혼인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아무리 구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매일 이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내 영의 생명을 얻는 일인데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정말 애원을 해서라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문자적으로 성경을 조금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에게 지혜가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안 구합니까?

그것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늘 깨어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음녀에게서 그리고 이방 여인에게서 내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누가 나를 사망에 빠뜨리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음녀와 이방 여인이 내 영혼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새번역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일어나십시오. 이 모든 일은 제사장님이 맡아서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제사장님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용기 있게 밀고 나가십시오."”

 

에스라는 지혜가 있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은 에스라가 전하는 말을 듣고 에스라에게 이제 일어나서 그 일을 행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이 일을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힘써 행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사장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는 잔인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고 행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혹시라도 우리가 포로가 되어서 돌아왔을 때 이방 여인과 혼인을 하지 않았는가를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음녀에게 그리고 이방 계집에게 모두가 사로 잡혀 있습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반드시 우리 안에서 이방 여인과 그에게서 난 아들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것을 육적으로 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영적으로 우리 교회 안에 이방의 사상이 그대로 들어와 있다면 정말 육의 아내와 아들을 쫓아내는 것 같은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성도만이 이 이방 연인과 혼인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혼이 구원을 받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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