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는지라
느헤미야 8:13-19절을 보면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율법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찌니라 하였고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는지라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무 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 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에스라, 느헤미야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 징계는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방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표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생명입니다.
우리 육의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보면 과연 영의 생명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저 육체가 되어서 자기들의 종교에 깊이 빠져 그 종교에 의해서 포승으로 묶여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이라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 영의 일을 모르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만 구원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전하는 말을 듣는 모든 사람 역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초대교회가 지나가면서 이미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목사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까?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그 말 외에는 육의 말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이 시대는 완전히 교회가 종교가 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교회를 보고 정통이라는 사람들이 정해 놓은 그것을 보면서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할례를 받고 또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가 이스라엘에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유대인의 회입니다.
그것이 유대교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니골라당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기독교가 되어 있습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똑같이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 같이 이방인들도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에서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구원파라고 이야기를 하는 무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파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편지를 보라고 하면 그 사람들이 전혀 다르다고 하는데 그저 몇 가지 설교를 보고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구원파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이 무엇을 전했습니까?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무엇이지도 모르고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어느 특정 이단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마치 주님이 오셔서 천국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이스라엘이 주님을 대적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 대적을 합니까?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 때문에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그리스도 편지를 이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단입니까?
누가 다른 복음입니까? 갈라디아교회에 누가 다른 복음을 가지고 들어왔습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유대인들이 다른 복음을 가지고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율법 613가지를 지키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자기들의 이성에 타당성이 있는 것을 가지고 성경에 있는 율법을 가지고 갈라디아 교인들을 꾀어냈습니다.
누가 이단입니까?
성경대로 하면 율법을 지키자고 하는 그들이 이단입니다. 아니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무조건 이단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이 세상 사람들이 보고 이해하는 방법으로 자기 육체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 이단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율법을 안 지키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정통 교회가 안 지킵니까? 그렇다고 구원파가 안 지키고 있습니까? 모두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종교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다만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이 약간 다를 뿐이지 율법의 어느 한 모양이라도 지키지 않는 교회는 없습니다.
다수입니다.
아니 절대적인 다수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주의 깊게 보시고 그 말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는데 절대적인 다수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모두가 율법 안에서는 하나입니다.
구원파가 십일조를 반대합니까? 구원파가 주일을 반대합니까? 이 한 가지 율법만 같이 지켜도 그들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는 행위가 조금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역시 율법을 지키는 것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튿날에 모든 백성을 대표하는 각 가문의 어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함께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자 에스라에게로 갔다.”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아니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도 신학을 공부를 했거나 또 세상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읽으면 그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문자를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기초는 우리가 육체적으로 지켜야 하는 율법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셨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고 율법을 자기 육체로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거절하는 일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에스라에 율법을 문자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에스라가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마치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율법 책을 가져다가 읽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늘 말씀드립니다.
정말 성경을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대강 보지 마시고 성경의 문장과 전체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고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성경을 쉽게 보고 있습니다. 일반 교인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목사들도 성경을 너무 쉽게 봅니다. 그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성경에서 고민한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이 말씀을 보고 자기들이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서 누가 보이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까? 하지만 이 시대는 우상을 너무 많이 숭배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그들이 몰라서 그렇지 교회 안에는 온갖 우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지금이 이 시대는 다를 것 같습니까? 그 바알과 아세라가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우상들이 교회 안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그것을 우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상은 우상을 너무 많이 섬기고 있으면서도 우상이라는 그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자기들이 우상을 안 섬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예전에 이스라엘에 세웠던 바알이 우상입니까? 아니면 아세라 상이 우상입니까? 아니면 부처가 우상입니까? 단군 상이 우상입니까? 아니면 무당들이 신을 모셔 둔 것이 우상입니까? 우상이라는 것을 모르다 보니까 그런 것을 하지 않는 자기들을 보면서 우상을 안 섬기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것 역시 우상이고 또 목사가 우상이 되어 있고 교회가 우상이 되어 있고 부자가 되기 위한 기복 신앙이 우상이 되어서 교회 안에서 다 섬기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마음껏 섬기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상을 섬기면서도 그것을 왜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율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우상 숭배하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우상이 지금 교회 안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일에 너무도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에스라 앞에 왔습니다.
무엇을 모른다는 것입니까? 살인하지 말라는 그 율법을 몰라서 에스라 앞에 모였습니까? 아니면 구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제사법을 잘 몰라서 그것을 바로 알고자 해서 에스라 앞에 모였습니까? 아마도 이 말씀을 보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실제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 합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와서 무엇을 배웠는가를 보라고 말 합니다. 그들이 율법을 잘못 지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아 바벨론에 의해서 70년 동안 포로로 갔다 온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 다시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에스라에게 율법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대도 율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배운 이 세상 초등학문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오는 가를 모르고 그저 이스라엘이 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을 하면서 자기들은 이스라엘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8:8절을 보면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율법 책을 그냥 낭독을 했습니까?
모세 오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 613가지를 낭독을 했습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너무 오랜 기간 있다 돌아오다 보니까 이제 그들이 율법을 잊어버려서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지금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그저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율법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율법을 바로 해석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 중요합니다.
제가 지키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뜻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모르면서 은혜를 말하는 사람은 다 거짓입니다. 그저 은혜라는 문자를 보고 사람들이 은혜라고 하니까 따라하고 있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율법을 왜 주셨습니까?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보고 은혜가 넘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리를 몰랐을 때 영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인했는가를 깨닫는 성도만이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에스라는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낭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이 세상 책을 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뜻을 해석하여 낭독하는 것을 백성으로 깨닫게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뜻을 해석을 해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이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살인하지 말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해석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육적인 살인이 아니라 영혼을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석해서 백성들로 그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학사 에스라입니다.
이 시대 이런 학사가 없습니다. 율법을 해석해서 그 뜻을 백성들로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에스라와 같은 학사가 없고 그저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이 세상 초등학문을 만들어서 가르치고 있는 사람만 있습니다.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을 알면 뭐 합니까? 그 뜻을 모르니까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단순히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그 뜻을 모르고 자기들의 육체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던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내가 너희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알고 지키면 마귀의 자식들이 됩니다. 하지만 그 뜻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넘치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도적질 하지 말라는 뜻을 모른다면 그는 율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에스라는 그 율법을 보고 영혼을 도적질 하지 말라고 그 뜻을 알게 해서 백성들로 깨닫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누가 율법의 뜻을 알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그것은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지 그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 뜻을 알려하기 보다는 십일조를 자기 육체로 내는 것을 잘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율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밝히 알고자 합니다.
골로새서 2:14절을 보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율법입니다.
그것을 문자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그 율법에 담겨져 있는 정사와 권세를 밝히 드러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있는 문자를 보면서 자기가 율법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도 지금 계속해서 율법을 해석하고 있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율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학사 에스라는 그 율법들을 밝히 알게 해서 그 율법에 있는 정사와 권세를 밝히 드러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것을 자기 육체로 지키면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 밝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사람은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 어렵습니다.
그것을 다 밝히 드러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성령의 감동으로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에스라가 이스라엘이 포로로 갔다 오면서 율법을 잊어 버려서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율법을 낭독하고 그 뜻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 담겨져 있는 뜻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보고 오히려 율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뜻을 모르니까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지키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목사들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육체로 지키라고 하면 그는 지혜가 없는 미련한 자입니다.
에스라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율법의 뜻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어두움의 그림자를 벗겨내고 환히 밝힐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어느 시대에도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말 에스라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이고 그를 통해서 포로로 잡혀갔다가 온 이스라엘이 율법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뜻을 모르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믿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예수를 믿지 않는 이스라엘과 같은 종교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 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찌니라 하였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축제에는 초막에서 지내도록 하라는,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서 명하신 말씀이,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율법 책을 보았습니다.
계속해서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의 뜻을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막절에 대한 말씀을 보고 그것을 깨달았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포로로 갔다 왔다 해도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초막절을 몰랐겠습니까?
더구나 에스라입니다.
그는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늘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을 믿었습니다.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기간이 오니까 정말 언제 돌아갈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언제 보내주실까 를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에스라가 초막절이 성경이 있는 것을 몰랐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성경을 잘 이해를 하고 보아야 합니다.
마치 모른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 다 그렇게 됩니다. 더구나 제사장인 에스라는 제사에 대해서 그리고 절기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마치 모른 것같이 기록이 되었다 해서 몰랐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몰랐습니까?
초막절 자체를 몰랐다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율법을 낭독하고 그 뜻을 알아서 백성들에게 알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다 알았는데 그 뜻을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절기의 뜻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육체로 그 절기를 지켰던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초막절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 절기 자체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문자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절기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초막절을 대신해서 심지어는 미국의 청교도들이 만들어 놓은 그 나라의 명절을 마치 초막절 같이 지키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7월 절기입니다.
우리나라 달력으로 하면 10월 중순에서 11월초 정도 된다고 보면 맞습니다. 마침 에스라가 율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었는데 이 절기가 가까이 왔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지 마시고 그 뜻을 아는데 집중하시고 모르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는지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하나도 빠짐없이 저희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산에 가서 올리브 나무 가지, 들 올리브 나무 가지, 소귀나무 가지, 종려나무 가지, 참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책에 있는 대로 초막을 만들어라.""
초막절의 의미입니다.
성도는 초막을 지어야 합니다, 이 초막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사는 기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성도는 나그네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성도는 천국을 생각하면서 초막을 짓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22절을 보면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스라엘은 실제 초막을 지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서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초막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 성도들에게 예표로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와서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초소가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실제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알고 지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지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안에서 함께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짓는 것임을 알고 지었다는 말씀입니다.
에스라가 실제 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표로 지은 것입니다 왜 예표인가는 이제 뒤에서 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초막절의 뜻을 알고 그 절기가 되어서 실제 초막을 짓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를 예수 안에서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뜻을 알고 지었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자기들이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제 초막절 절기가 왔으니까 지은 것이 아니라 율법 책을 보다 보니까 초막절의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백성들이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실제 에스라가 짓게 했는가 하는 것은 그 다음에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무 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래서 백성은 나가서,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지붕 위와 마당과 하나님의 성전 뜰과 수문 앞 광장과 에브라임 문 앞 광장에 초막을 세웠다.”
어디에 지었습니까?
지붕 위와 마당과 하나님의 성전 뜰과 수문 앞 광장과 에브라임 문 앞 광장에 초막을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전의 뜰과 광장에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여기다가 지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잠언1:20절을 보면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왜 성막론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하는가 하면 이 성전은 주님의 육체고 그 성전을 알아야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성막론 책들을 봅니다.
물론 어느 것은 어느 정도 맞게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물두멍과 분향단과 그리고 속죄소에 대해서 바로 해석을 하고 있는 성막론 책은 아직 보지를 못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 성막에서 조차 예수 그리스도가 발견이 안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혜가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이스라엘의 성전입니다. 지금 에스라는 이 초막절에 대해서 그 뜻을 바로 알고 이스라엘에게 각자의 초막을 세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초막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실제 이 초막절을 제대로 지키지를 못 했습니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온 모든 사람이 초막을 세우고 거기에 머물렀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렇게 축제를 즐긴 일이 없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크게 즐거워하였다.”
초막절입니다.
여호수아 때부터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온 이제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렇게 행함이 없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천국에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를 짓는 일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모두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부터 이제까지 이렇게 초막절을 지킨 적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초막절을 지키지 않았겠습니까? 더구나 율법에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일 년에 3번 하나님께 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초막을 짓는 초막절을 지키지 않았다기 보다는 이제까지 구원을 받는 그런 행함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우리 성도가 즐거워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절기를 지키는 그것으로 즐거워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초막을 짓는 행함이 없었는데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이 에스라가 율법의 뜻을 가르쳐 줘서 구원을 받아 즐거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이 행함이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행함이라는 말씀은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혜를 얻어서 초막절에 대한 뜻을 알고 초막절을 지킴으로 해서 구원을 얻고 즐거워했다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조금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여호수아가 있은 때 이후로 이렇게 초막절을 지키는 때가 없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지만 이것을 이스라엘이 행함으로서 크게 즐거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자기들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율법을 통해서 그 뜻을 앎으로 초막절을 지키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 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에스라는 첫날로부터 마지막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규례대로 성회를 열었다.”
율법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에서 그 뜻을 알게 해서 가르쳐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문자에 적혀 있는 율법은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이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릅니다.
율법의 문자는 이스라엘 못지않게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뜻을 모르고 지키는 것은 오히려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에스라가 초막절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이 초막절을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 예표로 보여 주시는 사건입니다, 이 초막절의 의미를 알고 이스라엘이 지킴으로 해서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것을 알고 크게 즐거워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 뜻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뜻을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에스라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의 뜻을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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