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담보와 보증에 대한 의미

윤주만목사 2019. 2. 14. 08:52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잠언 6:1-5절을 보면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담보. 보증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보증과 담보가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하면 담보가 있어야 합니다, 집을 살 때도 자기가 가진 돈이 부족할 때는 집의 가치를 인정해서 담보로 대출을 해 주고 있습니다.

 

보증을 서지 말라고 합니다.

보증서는 아들이 있으면 아들이라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보증에 대한 해악이 있으면 그렇게 까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이 보증으로 한번 되게 당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남의 보증이 되는 일은 거의 없고 거의 자기가 가진 담보를 통해서 빚을 얻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20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 돈으로 해도 큰돈인데 그 당시에는 정말 큰 금액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보태면 집을 살 정도의 금액이었습니다. 그런 돈을 보증 섰다가 그대로 다 갚아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증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을 너무 쉽게 신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절대로 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그냥 주는 것이 낫지 보증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자기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지 모릅니다.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저는 절대로 반대를 합니다. 가지고 있는 돈에서 최대한 해 주는 것은 좋지만 보증을 서는 순간이 그 빚이 다 내 것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법으로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삶이 힘들어 집니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 합니다. 물론 그것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큰 금액을 보증 섰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정말 다시는 보증을 서지 않았고 남에게도 보증을 서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담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가장 흔한 담보가 집을 가지고 대출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대출을 받은 돈을 빚이라고 생각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당연히 자기 돈으로 생각을 하다가 결국에는 집까지 다 빼앗기고 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는 그런 세상일에 별로 관심도 없고 그런 일을 하지도 않겠지만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사람이 힘들어 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내가 부자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자라도 이 담보와 보증에는 못 당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우리나라도 IMF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그렇게 운영하던 곳은 거의 다 망하고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계에서 몇 번째 하던 그룹도 이것으로 인하여 해체가 되어 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성경에 제목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도 제목에 실제적 교훈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실제적인 교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실제적으로 담보를 서거나 보증을 섰다가 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실제적인 것으로 보고 이 성경 말씀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제목을 붙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래도 신학에서는 박사라고 하고 있고 당대에 보통의 사람이 이 성경을 편찬한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사람이 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 이 제목이 붙여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인쇄술이 발달하기 시작을 하면서 그렇지 않은가 싶습니다. 사실 필사를 하던 시대에는 감히 성경에 첨언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 모를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사를 해서 내려온 성경을 저 역시도 아직까지는 못 봤습니다.

 

장절이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사실 장절이 구분이 되어 있는 것도 성경을 바로 아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자기들의 생각을 첨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제목을 너무도 당연히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면서 먼저 이 제목을 보고 그 제목을 연상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대로 바꾸어 버린 정말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 성경에 첨언이 되어 있는 제목 중에서 성경과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제목을 보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저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 구원을 받기 힘이 듭니다. 이렇게 첨언이 되어 있는 말을 마치 성경처럼 보고 있는 상태에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순수하게 그 성경만 보아도 구원을 받는 것이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첨언을 해서 본다는 것은 마치 스스로 그물에 걸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고 싶습니까?

내가 보고 있는 성경에서 먼저 제목부터 지우시기 바랍니다. 이 제목이 하늘의 일을 땅의 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단이 무엇으로 미혹을 하는가 하면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 미혹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2:20절을 보면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세상 초등학문입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너무 무지합니다.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이 세상의 어떤 학문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다시 초등학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신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초등학문을 만들어 버렸고 이 시대 그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절대로 첨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곧 영생을 방해하는 아주 악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첨언을 해서 이 잠언의 말씀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절대로 보증을 서면 안 되고 담보를 해서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압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만 담보를 해서도 안 되고 보증을 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도 너무 잘 압니다. 굳이 이 성경을 안 보아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알 수 있는 것을 이 세상의 초등 학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등학문을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곧 사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의문이라는 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텍스트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의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말씀을 보고 담보를 안서고 보증을 안서는 것은 의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증서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보증을 서라는 것이냐고 묻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질문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쌍한 생각밖에는 안 듭니다. 그들이 얼마나 마귀에게 세뇌가 되어 있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보증서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목사들이 설교를 하면서 보증서지 말라고 이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어디로 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안타깝습니다. 잠언을 마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탈무드라는 책을 마치 잠언과 같이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그렇게 잠언을 보고 있다면 그는 의문에 순종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 그런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을 이 세상 지혜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어느 것 하나도 이 세상 지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고자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보는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으려고 상고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말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말씀을 듣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이 세상 초등학문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왜 초등학문으로 만들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이 말씀을 보고 이 세상에서 보증을 서서는 안 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힘주어서 이야기 하는 그들이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이 교회를 지을 때는 교인들에게 다 보증을 서라고 하면서 건축헌금을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 때는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합니다. 그때는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그 일을 했습니다. 집사로서 그 일을 하면서 너무도 자랑스럽게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아니 하나님을 모르면 그렇게 사람의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성경이 육의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혹시라도 보증을 섰다가 힘들게 될까봐 그것을 염려하셔서 우리에게 잠언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의문에 순종하는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늘 말씀드리지만 영의 일입니다.

문자 그대로는 분명히 보증을 안서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 때문에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보증을 서서 이 세상에서 힘들게 사는 성도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잠언에 이 말씀을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보증의 피해에 대해서 혹시 모를까봐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입니다.

영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의 생명에 관한 말씀이지 육의 일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의 말씀과 같이 보는 것이 의문에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자기 육체로 행하려고 하는 것이 의문에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의문으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성경을 의문으로 만들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문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의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를 잘 믿고 있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고 의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한술 더 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의문으로 만들어 버리는 순간 사망이 함께 찾아온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본 이스라엘이 성경을 보고 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다른 것을 보고 악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이 성경을 보고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방의 교회 역이 성경을 보고 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니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을 보는 모든 교회가 의문에 순종을 하다가 결국에는 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두 짐승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의 짐승과 이방의 교회라는 짐승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선지자를 보내 주셨지만 그들은 짐승이 되어서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에는 이제 완전히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주셨지만 그것을 보고 짐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의문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지 의문에 순종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거의 다 의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가를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을 하였으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은 없지만 이런 일이 있으면 하는 말씀입니다. 정말 성경을 연구를 하고 해석하는 사람은 국어를 먼저 공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국어를 너무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들이 조금 아는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또한 헬라인도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으로도 우리가 충분히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번역을 해 놓았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글 개역 성경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부족하지 않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다만 왜 성경을 바로 해석하지 못하는가 하면 국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지적인 능력을 자랑하느라 히브리어 헬라어를 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국문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국어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한글 개역 성경을 볼 수 있습니까?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이야기 하고 중요한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보면서 반드시 국어를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만일

연결 어미 ‘-과 함께 쓰여, 이 말이 포함된 앞 내용이 가정된 일이나 상황, 또는 조건이며 뒤 내용이 그에 따른 결과나 반응을 말할 때 쓰여 앞뒤 문장을 이어 주는 말. 현실 세계에 있을 수 없는 반 사실적 가정이나 사실적 가정에 두루 쓰인다고 사전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반 사실적인 가정입니다.

그리고 사실적인 가정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앞 내용의 상황이나 조건이며 뒤 내용이 그에 따른 결과나 반응을 말할 때 쓰여 앞뒤 문장을 이어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지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지혜가 있으면 어찌 음녀를 이방 계집을 연모할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네가 네 이웃을 위하여 담보를 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을 하였으면 하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에 담보를 서는 것과 보증을 서는 것과 같이 했으면 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이 말씀은 사실적 가정이 아니라 반 사실적 가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담보를 설 수 있고 보증을 설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담보나 보증을 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네 이웃이 빚을 얻기 위해서 보증을 서는 것입니다.

 

비유와 은유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 비유와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해석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네 이웃을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로 네 이웃을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제 네 이웃과 타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웃과 타인이 누구입니까?

이 말씀을 모르면 잠언의 말씀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이웃과 타인이 누군가를 모르면 절대로 해석이 안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이웃과 타인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인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4:7-8절을 보겠습니다.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담보입니다.

그리고 보증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언약서를 가지고 낭독을 하니까 이스라엘이 뭐라고 했습니까? 율법을 모두 듣고서는 이 율법을 우리가 준행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준행하겠다고 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기들을 선택하셨으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그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준행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이미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가지고 여기서 다시 말씀을 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시는 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이 언약을 지키면 너희가 열국 중에서 내 백성이 되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이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이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이 언약에 자기들이 다 준행하겠다고 언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을 못 지켰을 때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담보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생명을 걸고 담보를 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담보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이 말씀에 피로 언약을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생명을 담보로 걸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했습니다.

그리고 피로 보증을 하면서 언약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그렇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겠다고 하시니까 그것이 정신이 팔려서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인생이면서도 자기 생명을 담보로 해서 피로 보증을 했습니다.

 

이때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이스라엘은 사실 이 언약을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겠다고 하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그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담보하며 보증을 했다는 것을 지금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자기들의 생명을 담보로 했고 또 피로 언약을 하면서 보증을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역시 교회에만 나오면 자기들 스스로 그렇게 담보와 보증을 서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이스라엘은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하늘의 지혜가 있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혜가 없는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이 담보와 보증으로 어떻게 될지를 모르고 그저 모세의 말을 듣고 다 준행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지혜에 주의하고 내 명철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담보가 되고 보증을 하면서 스스로 미련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를 알았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을 이스라엘은 겁도 없이 자기 생명으로 담보하고 피로 보증을 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결국 이 율법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아니 신학교에서 목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부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누구의 입의 말입니다.

이스라엘 스스로 율법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도 하지 않고 그것을 지키라고 요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스스로의 입의 말로 그들은 얽히게 되었고 그들의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7:6절을 보면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무엇으로 얽혔습니까?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으로 얽혔습니다. 율법을 지키겠다고 함으로서 죄를 범하게 되고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얽매였던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얽매였던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까?

바로 음녀가 되어 버린 교회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자체가 지금의 교회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교회가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는데 사도바울은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는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성도입니다,

성도는 영으로서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문의 묵은 것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실제 이 담보와 언약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까지 아니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은 의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자기들이 담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보증을 했습니다. 그것을 자기 조상들이 했고 또 이제까지 수천 년 동안 그대로 해 왔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아도 그렇게 보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그 율법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었고 마귀에게 사로 잡혀서 마귀의 자식들이 되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아직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왜 이방의 교회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했습니까?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을 가지고 이 시대 교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 그것이 사망으로 간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율법을 지키는 그 일로 사망에 이르렀는데 이방의 교회는 말을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비유입니다.

그것을 반 사실적인 가정을 통해서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지혜를 주의 하지 않고 명철이 없어서 만약에 담보를 하는 것과 같이 보증을 서는 것과 같이 하여서 네 입의 말로 얽히고 네 입의 말로 잡혔으면 하나님께서 가서 겸손히 이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손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빠뜨리신 것이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가 빠졌습니다. 율법을 지키겠다고 자기 생명을 담보로 했고 또 피로 언약을 해서 보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언약으로 인하여 너희는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에서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혜와 명철이 없어서 그렇게 했을지라도 그런 성도를 보고 하나님께서 내 아들아 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언약에 대해서 없던 것으로 해 달라고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담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보증을 섰습니다. 이것을 풀어 달라고 간청하라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내 아들아 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간곡하게 우리 성도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 아들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가서 간청을 해서라도 그것을 풀어달라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풀어 달라고 해야 하는가 하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고 율법은 진노를 가져 오기 때문에 영혼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이것을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것을 풀려 고는 하지 않고 있고 도리어 더 얽매이고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생명의 지혜입니다,

잠언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니라 우리 생명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간청해서 풀어 달라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를 않고 오히려 더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잠언19:15절을 보면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베드로후서1:8절을 보면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에서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게으름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쓰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와 가라지의 차이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부지런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부지런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알아야 율법을 지키지 않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율법을 지키는 일에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실 성도보다 더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부지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졌습니까?

내 아들아 율법주의에 빠졌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행위로는 너무 부지런한 그들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일에는 너무 게으릅니다.

 

생명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고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 말씀을 아는 것으로 자기가 지혜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이 사람을 깊이 잠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게으름으로 깊이 잠들어서 율법을 지키다가 결국에는 열매 없는 자가 되어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잠언6:26절을 보면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잠언13:14절을 보면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

 

사냥하고 있습니다.

귀한 생명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서 귀한 생명들이 사냥을 당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녀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두가 다 하나님께 나와서 율법을 다 준행하겠다고 자기 생명을 담보하며 피로 언약하며 보증했습니다.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 영혼이 사냥을 당하는 줄도 모르고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지혜가 없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망의 그물입니다.

율법은 사망의 그물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정말 잠을 자기 않고 우리는 성경에서 이 생명에 대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구하는 것이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부르시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고 자기 생명을 담보하며 피로 보증을 하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어서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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