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율법으로 재판하는 교회

윤주만목사 2019. 2. 14. 07:47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전도서 3:16-22절을 보면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헛됩니다.

인생은 다 헛됩니다. 전도서는 우리 인생들이 얼마나 헛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고 자기가 하는 신앙생활이 헛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코스모스라는 우주에 대한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져 있는 모든 별에서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있을 별은 찾지를 못했다고 말하는 것들 들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에 있는 별이 얼마나 많은가 인생들이 그것을 다 셀 수도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인류는 은하계를 탐험하기 위해서 보이저 호를 보냈습니다.

30년이 지나서 겨우 태양계 밖을 지나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태양계를 지나면서 방향을 잠시 바꾸어서 우리가 사는 지구를 보게 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습니다. 그 점 안에서 인생들을 싸우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 또 죽기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 얼마나 우리 인생이 헛된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푸른 점입니다.

그 점 안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있었고 그 안에 솔로몬 왕이 있다가 사라졌고 그 안에 문명의 꽃을 피운다고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걸면서 살아갔습니다. 아직까지 그 이름이 회자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푸른 점 안에서 모두가 사라지고 이제 우리 세대가 살아가고 있으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세대가 사라지면 그 다음 세대가 나와서 그 전 세대와 똑같은 일을 하다가 그들도 역시 이 푸른 점 안에서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우주에서 보면 그저 점 하나에 불과한 이 지구에서 그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겸손의 모양을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 인생은 그 앞에서 한 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도 모르고 있고 하나님도 모르면서 영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수만 개는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중에서 악을 행하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과연 몇 개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한 개 아니면 다섯 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의인 십 인을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이 시대 전체 교회라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 시대 악을 행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교회가 몇이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모두가 자기 교회 안에서는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없습니다.

제가 보고 있는 교회 중에서는 악을 행하지 않는 교회는 이제까지 보지를 못 했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선을 행한다고 하는 그곳에서 악이 넘쳐나고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악한 일이 열심을 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이 시대는 진리가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 일을 앞장서서 하는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이 시대 그래도 이름이 있다고 하는 목사들에 의해서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일을 만들어 일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진리를 깨달을 시간도 주지 않고 있는 악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지혜가 없는 사람은 그저 짐승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물론 지혜가 있다 해도 그 역시 짐승이 가는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전도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 성경이 짐승에 의해서 마음대로 왜곡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부르시면서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고 이 세상에서 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렁이 같은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악이 넘쳐 납니다.

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했습니까?

 

없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그랬습니까? 우리가 시편에서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그가 비록 왕이었지만 그 시대 역시 악한 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시편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오셨지만 이스라엘 역시 악한 자가 더 많았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 예표들을 보고도 자기들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악이 넘치고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 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악을 행하면서 자기들이 선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럼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성경적으로 정립이 안 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

 

해 아래입니다.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의 왕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평화의 왕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솔로몬이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재판을 합니까?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법정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서 재판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곳에서 악이 있는 것을 보았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법원에 가면 저울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재판은 돈이 있는 사람이 이기고 돈이 없는 사람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재판이 아닙니다.

이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이 세상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재판은 이 세상의 재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레위기 19:15절을 보면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하나님은 재판장이십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종말이 왔을 때 선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그리고 악한 일을 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와서 재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의 일을 가지고 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 왔을 때 영의 일을 가지고 재판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이 정해졌고 또 그 율법대로 살아간다고 하나님과 언약을 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에서는 언제든지 재판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서로 분쟁이 있고 또 여러 가지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살인을 할 때도 있습니다.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습니다.

이 세상 재판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얼마든지 자기들이 편리에 따라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재판을 하는데 있어 악이 있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솔로만이 지혜를 깨닫고 보니까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악이 있습니까?

재판하는데 악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 세상의 재판이라면 이해가 되도 이 재판은 영혼 구원과 관계가 있는 재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재판은 그 백성이 되느냐 아니면 재판을 받아서 죽임을 당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재판을 잘못하면 아니 그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으면 선한 일을 하는 자가 죽임을 당하게 되고 악한 일을 한 자가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재판장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재판장이 재판을 할 때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다.

이 문자 그대로 재판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행하는 재판에서 악이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법대로 재판을 했는데 그 재판에서 악이 나왔습니다. 재판하는 그곳에서 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이 없어야 할 곳에서 악이 있습니다.

 

야고보서2:6절을 보면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가난한 자라고 해서 편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부자들이 가난한 자를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재물이 없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행위의 의가 없어서 가난한 자를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가난한 자를 어떻게 했습니다. 정죄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부자가 누구입니까?

율법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율법을 못 지키는 사람입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어디 법정으로 끌고 갔는가 하면 율법의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따라 그들을 정죄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이 시대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합니다.

무엇으로 재판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대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대로 재판하는 그곳에서 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이성으로 볼 때는 전혀 악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재판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자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는 율법을 못 지키는 사람입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 법정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율법의 법정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법정에서 어떻게 합니까? 부자는 칭찬을 받고 있고 가난한 자는 정죄를 받고 있습니다.

 

부자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는 악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재판장에 가면 부자는 의인으로 대접을 받고 있고 가난한 자는 죄인으로 판결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재판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재판하는 것을 보고 솔로몬이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갔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는 누가 악한 자인가 하면 부자가 악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혜가 없어서 부자를 의인이라고 하고 있고 거지 나사로를 죄인이라고 하면서 정죄를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재판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율법의 재판자리로 사람들을 끌고 가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부자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신앙생활의 의도 좋은 부자가 그렇게 율법의 법정으로 끌고 가서 그 법정에서 악이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사야59:4절을 보면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이스라엘은 공의를 몰랐습니다.

공평한 도리를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은 공의를 주장했지만 그 공의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에 의한 공의를 말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공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기준을 가지고 공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킵니다

그리고 안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히 자기들이 종교에 따르면 주일을 지키는 것이 맞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옳다는 것이 공의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 이성적 공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공의를 행하는 곳에 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공의라는 그것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7:24절을 보면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하지만 그것은 무엇입니까?

공의가 아니라 외모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율법을 따라 행하는 것이 공의라고 생각을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공의가 아니라 외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자기 육체로 행하는 모든 것이 다 외모입니다, 그 외모는 악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그 외모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행하는 그 외모를 보고 옳다고 하고 또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공의가 있는 곳에 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 교회 안에 일입니다.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모르다보니까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무엇을 행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자기들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악을 행하는데 아주 빨리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는 악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공의라고 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모입니다. 외모이기 때문에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는 무엇인가 하면 바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이 공의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공의대로 판단을 하면 악이 없는데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 시대도 역시 공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께서 때를 정하시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심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바른지 아니면 거짓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솔로몬은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께서 때를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서3장 시작이 범사에 때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일을 했습니까?

그리고 선한 일을 했습니까? 그러한 일을 할 때도 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때를 정하셔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구원을 받는 성도들은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이 우리를 감동하셔서 우리가 성경에서 진리를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습니다.

공의를 행한다고 하는 그것에도 악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교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도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한정 없이 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입니다.

우리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입니다, 그 시간은 분명히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서 자기 생명에 대해서 알기를 원한다면 저는 충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알게 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영혼 구원에 대해서 간절히 구한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좋은 때를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청년의 때를 그냥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분복이라는 것은 이미 다 두신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복에 더 욕심을 내기 보다는 나에게 정하신 때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가를 바로 알고 청년의 때를 정말 잘 보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5:33절을 보면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이렇게 교회 안에 있는 양과 염소 중에 누가 옳고 그른가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때에 따라서 자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는데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심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꼭 이렇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비유를 마치 실제 이런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평생을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이 때입니다. 그 때에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일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마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와 같이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심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판이 아닙니다.

그냥 판단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해야 하는 것에 악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분명히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재판하는 곳에서 악을 행하고 또 공의를 행해야 하는 곳에서 악을 행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악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 이 시대는 악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생각으로 악을 행하고 있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 때를 정해 놓으셨고 결국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염소가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 많은가 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성도라고 하는 그 사람들이 다 염소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깨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또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이 짐승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을 시험하신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입니다.

정말 그가 기록한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보면 그의 지혜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에서는 말할 필요성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솔로몬이 기록한 성경은 정말 우리 인생들이 깨달을 수 없는 지혜를 다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종에서도 전도서는 믿음의 철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전도서를 알아야 합니다.

모르게 되면 결국에는 다 행위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서 시작부터 우리 인생이 얼마나 헛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그 모든 일이 다 헛되다는 것을 전도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전도서를 안 보고 있고 또 그 뜻도 모르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것에 악이 있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다 악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시험을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느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까? 문자적으로는 이 세상의 짐승입니다. 그러나 이 짐승은 종교화 되어 있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짐승이 되어 있는 교회는 악만 행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두 짐승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악만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짐승과 같이 악을 행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시험하시면서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지만 자기들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것이 신앙의 출발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공동번역입니다,

사람의 운명은 짐승의 운명과 다를 바 없어 사람도 짐승도 같은 숨을 쉬다가 같은 죽음을 당하는 것을! 이렇게 모든 것은 헛되기만 한데 사람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무엇인가!”

 

짐승

사단이 만든 거대한 종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영적인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우리의 육의 일이 아닙니다. 사람과 짐승이라고 하니까 마치 진짜 사람과 짐승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전체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이해하고 있어야 이 짐승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사람도 숨을 쉽니다. 그리고 짐승도 숨을 쉽니다. 실제 짐승이 숨을 쉰다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종교가 마치 사람이 숨을 쉬는 것 같이 그렇게 생명체와 같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이스라엘이라는 짐승이 살아 있고 이 시대 이방의 교회라는 짐승이 살아 있습니다. 그것이 마치 사람과 같이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호흡이 있다는 말씀은 살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문자적으로는 짐승이라고 하고 있지만 거대한 종교를 마치 의인화 하듯이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일반인가 하면 사람이 이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서 재판을 하는 곳에서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해야 하는 곳에 악이 있기 때문에 일반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도 죽고 저도 죽습니다. 실제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이 어떻게 죽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악을 행하게 만들고 있고 그 악을 사람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이도 죽도 저도 죽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정말 성경을 바로 알면 짐승보다 뛰어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서 그 짐승을 경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짐승보다 뛰어 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뛰어나지 못하니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도 짐승이 되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짐승이 되는데도 그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진짜 짐승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짐승은 교회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교회가 되어 있는 짐승을 실제 짐승으로 비유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짐승으로 비유를 하니까 다 흙으로 돌아가고 한 것으로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렵습니다.

늘 성경을 보고 말씀을 쓰고 있지만 이런 비유와 은유를 모르면 도무지 해석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짐승이라는 문자가 있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알아야 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성경을 보는 눈이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람의 숨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숨은 땅 속으로 내려간다고 누가 장담하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는 짐승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남들이 다니는 교회는 혹시 짐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영은 하늘로 올라가고 짐승은 저주를 받아 땅으로 내려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그것을 누가 알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잘못된 교회를 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교회를 보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까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다니는 교회는 참 교회라고 생각을 하고 재판하는 곳에서 악을 행하면서도 공의를 행해야 하는 곳에서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누가 알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더구나 짐승에게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왜 깨닫지 못하는가 하면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서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들은 공의를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이 일을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장담을 하고 자기는 천국 티켓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곧 그가 받은 몫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에게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를 데리고 다니며 보여 주겠는가?”

 

솔로몬이 지혜로 다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자기 소견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소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 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자기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주님께서 아버지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일, 구원을 받는 그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통해서 아주 조금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천국을 그리고 지옥을 보여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고 있고 심지어는 지옥에도 갔다 왔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없다고 하는데 그들은 성경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분복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천국의 복입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서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즐거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짐승에 의해서 사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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