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이사야 1:21-23절을 보면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성경을 바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들을 모르면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죽는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주가 함께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수많은 예표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축복을 받은 사람보다는 저주를 받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축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자기 육체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이스라엘이 섬겼던 바알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것임에도 모르고 이 시대는 기복주의가 만연해 서로 경쟁을 하면서 자기가 받은 축복을 간증하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미천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성경을 본다고 해서 마치 하늘의 지혜를 얻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성경이 세상 지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는 거대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개인입니다. 그 개인이 이 종교에 들어가면 마치 아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대통령이라고 해도 마찬가지고 또 석학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이것을 개인의 지혜로서 옳고 그른가를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게임이 안 됩니다.
마치 우리나라에 살던 사람이 미국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미국의 법과 그리고 관습 문화 등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동화가 되어야지 살아갈 수 있지 그렇지 않고 내 방식대로 하려다가는 미국에서 살지도 못하고 실패를 하게 되고 또 심지어는 범죄자로 전락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입니다.
작은 교회가 보입니까? 그것을 작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작은 교회도 역시 큰 교회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작은 교회라고 해서 목사 개인의 생각으로 교회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해도 그 간판을 내 거는 순간에 어느 교단에 속해 있다는 것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입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해도 역시 그 거대한 조직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교단에서 법으로 정해 놓은 교회법을 따라 교회가 운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목사 개인이 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그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다 해도 그것을 깬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의 신학입니다.
그것이 하루아침이 만들어 졌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25년 니케아 공회가 있은 후로부터 해서 계속해서 쌓이고 쌓여서 만든 것이 지금의 신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어느 개인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대통령도 건들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물론 중간에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대변혁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종교개혁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종교개혁입니다, 종교를 자기들의 이성에 따라 개혁을 한 것이지 성경으로 돌아간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가 말하지 않습니까?
종교개혁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종교를 개혁했다는 것입니다. 천주교가 잘못하는 것을 보고 개혁을 했다는 말입니다. 이제까지의 잘못된 신앙에서 회개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종교개혁을 했을 뿐입니다, 개혁을 한 그 주체도 역시 종교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가 종교를 개혁합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웃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종교가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종교가 종교를 개혁한 그 종교를 이 시대는 너무 맹신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교회가 한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딱 이 속담과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개인이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가 옳고 그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지혜가 사람에게 있었다면 아마도 이스라엘은 절대로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자기 땅에 오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한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종교가 세워 놓은 교회를 보고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으로 알고 예배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하면서 종교가 시키는 대로 행위를 하면서 그 행위에 취해서 자기만족을 누리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지혜로 성경을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지혜가 여러분에게 있는 이상은 성경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경을 성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성에 맞추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를 만들고 있고 그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언6:26절을 보면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교회를 판단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는 분명히 주님의 아내이기 때문에 교회를 존중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음녀입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교회와 음녀를 분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음녀인지 어느 것이 교회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이치입니다.
누가 더 자기를 아름답게 보이려고 합니까? 아내가 그렇게 합니까? 음녀가 그렇게 합니까? 아내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음녀는 어떻게 하든지 자기를 아내와 같이 보이려고 하고 있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려 합니다. 음녀는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 진짜 주님의 아내와 같이 보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를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박해가 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는 교회는 급속하게 음녀로 변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건물이 어디 있고 또 지금과 같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예배와 찬양 그리고 기도가 어디 있었습니까? 초대 교회는 지금의 교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모여서 아무도 모르게 주의 만찬을 나누는 일만 했던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일을 한다 해도 아무도 모르게 조용하게 했습니다. 세상에 자기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는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정도로 교회는 아무도 모르게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제가 글을 쓰다 보니까 집에 거의 있습니다. 그러면 가끔 가다가 주변에서 찬송가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구역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노래라고 생각이 됩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지금 이 시대는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아래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그렇게 크게 노래를 부르면 다른 사람에게 실례가 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하는데 있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들이 성경을 보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물론 다윗 왕 때라든지 지극히 일부에서 그렇게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상상도 못할 일들을 지금 교회는 아무 거리낌이 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스스로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도할 때 어떻게 하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비단 기도에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초대 교회는 예배도 그렇게 했고 기도도 그렇게 했고 찬양을 부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음녀는 그런 행위를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함으로서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만찬으로 나누고 있고 음녀는 자기들의 행위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내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와 음녀의 차이인데도 이 시대는 음녀에게 빠져 귀한 생명이 사냥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좋게 보입니까?
왜 음녀라고 하는지를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이 음녀가 더 좋게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교회는 무형이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을 볼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과 성도와의 관계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음녀로 변한다는 것을 정말로 많은 곳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아내인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지만 그 교회가 음녀가 되어서 귀한 생명을 사냥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다.
그 음녀가 오직 예수를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니 그들은 더욱 큰 소리를 내면서 자기들이 오직 예수를 믿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음녀들은 행위로서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지키게 하고 있고 성도로서 성화된 삶을 살라고 하고 있고 또 은사를 나타내면서 그것을 자랑하게 하고 있고 감성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같은 찬양대입니다.
그리고 성가대가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지금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초대 교회에 오늘날과 같은 종교의 자유가 있었다 해도 그들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 좋게 보입니다.
종교라는 거대한 집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온갖 세상의 화려한 것으로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앙에는 십자가를 걸어 놓고 있고 정말 누가 보아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솔직히 그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너무도 진심입니다. 그래서 때로 마음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음녀입니다.
그 안에서 주의 만찬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 오직 예수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교인들이 감정적으로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이 자기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악한 행위만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음녀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교회가 타락을 했으면 헌금 봉투가 수십 개가 됩니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보다 더 강도의 굴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바리새인들이나 그 당시 제사장들은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흠 없는 제물을 드리려다 보니까 돈을 바꾸고 제물을 바꾸는 그런 것을 용납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정말 칼만 안 들었지 허가 낸 강도가 따로 없습니다. 정부에서도 허가를 받아서 강도짓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입니다. 악한 일을 하면서 그리고 강도짓을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가르치면서 열심을 내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헌금으로 무엇을 하는가 하면 온갖 악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입니다.
구원 없습니다,
음녀는 귀한 생명을 사냥 합니다. 그 음녀 안에 있으면서도 자기만 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녀는 그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을 사냥해서 죽이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살려주지 않고 다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예루살렘입니다,
평화의 도시라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들이 창기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기가 되었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음녀가 되어서 귀한 생명을 사냥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음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음녀, 음부, 간음, 창기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님의 신부로서 깨끗하고 순결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창기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안 믿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았고 지금도 역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창기가 되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현재진행형이고 이스라엘이 그랬다면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복음12:46절을 보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주인이 이르러 그 종을 엄히 때린다는 말씀은 이 종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셨을 때는 정말로 신실한 종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음행을 하면서 스스로 사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12:42절을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누가 신실합니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신실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고 진실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신실하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안에 신실한 자가 없어서 창기가 되었습니다. 때를 따라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여야 하는데 지혜가 없다 보니까 생명의 양식이 아닌 진노를 받게 하는 율법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렇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 성읍이 어떻게 창기가 되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기입니다.
주님이 전해지지 않는 교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 오직 예수라고하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교회는 창기라는 말씀입니다. 창기가 되어서 이제는 귀한 생명을 사냥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조차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33:15절을 보면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율법이 공평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공평합니까? 인생은 모두가 분복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어느 사람은 이것을 받고 또 저 사람은 저것을 받았습니다. 그 받은 것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는 율법을 잘 지킬 수 있고 누구는 율법을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공평할 수 없습니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율법을 잘 못 지키게 태어났는데 그 율법의 의로 천국에 간다면 공평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율법주의자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잘 지키니까 그것이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평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100미터 달리기 선수와 일반 사람이 경주를 하면서 공평하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다릅니다.
그것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미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누가 잘 할 수도 없고 또 누가 못할 수도 없습니다, 그 공평이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에는 공평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버리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상태에서는 공평이라는 말은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공평이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하셔서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것을 믿은 성도들은 공평과 의리가 넘쳤습니다. 그러니까 다윗과 솔로몬 왕 때에 공평과 의리가 넘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재물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의리입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을 지을 때만 해도 공평이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종교가 되어서 타락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음녀가 되어서 구원을 받을 성도가 없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살인자들뿐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이 다 살인을 한 사람들이었습니까? 성경을 문자적으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입니까? 지금 이사야를 통해서 이제는 살인자들 밖에는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가지고 진짜 육체를 살인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어떻게 살인자만 있습니까?
이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다른 번역에서는 이제는 살인자들의 천지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인데 어떻게 살인을 하는 자들의 천지가 되겠습니까? 이 말씀은 지금 이 시대 교회가 살인자들의 천지가 되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무엇을 살인합니까?
영혼을 살인합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줘야 하는데 율법주의로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영혼을 살인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 음녀가 되어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전체가 영혼을 살인하는 살인자들로 가득한데도 정작 살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5절을 보면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살인자들입니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가 어디에 있는 사람인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미 설교로 올려 있으니까 여기서 더 이상 설명을 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살인자들로 가득합니다. 영혼을 죽이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 교인들입니다. 살인을 하는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위하는 믿음이 있는 성도가 해야 하는 일로 믿어지기 때문에 무차별하게 영혼을 살인하면서도 전혀 가책을 받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살인자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방의 교회 역시도 전체가 살인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살인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게 해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진노를 받게 함으로서 살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이 성도가 해야 하는 마땅한 일이라고 하면서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가장 불행한 자입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교회에 나와서 평생을 살인만 하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일을 잘함으로서 천국에 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최소한 영혼을 죽이는 살인은 하지 않습니다. 누가 이것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 전체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 역시도 이스라엘을 따라 그렇게 살인자들로 가득합니다. 그저 교회에 나온 것으로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상은 교회 안에 살인자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일입니다,
세상과 교회 밖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비유와 은유 그리고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는 눈이 감겨서 소경으로 살아가는 목자들로 인하여 모두가 소경이 되어 구덩이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귀한 영혼입니다,
창기에 사냥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있으면 참 좋은데 그렇지가 못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을 볼 때 더욱 낮아져야 하고 내 이성적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음녀에게서 그리고 창기에게서 내 영혼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너의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는 물이 섞여 싱거워졌구나.”
너의 은은 찌꺼기가 되었습니다.
은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성도의 믿음입니다. 신실한 성읍이 살인자들로 가득하다 보니까 그들은 믿음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은은 찌꺼기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 은도 역시 찌꺼기가 되어 있지만 자기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편119:119절을 보면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
악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성도가 있고 율법을 지키는 악인이 있습니다. 그 악인을 하나님께서 찌끼 같이 버린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은을 찌끼가 되게 만들고 오히려 율법의 행위에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었지만 악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이 시대 교인들보다 더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진심입니다, 그런 진심이 있다 해도 그가 행위를 하고 있다면 찌꺼기가 되어 버림을 당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다 악인이 되어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이 깨닫지 못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역시도 다 악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진심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진심을 보이기 위해서 행위에 열심을 내고 그것이 악이 되고 계속해서 순환이 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빠지면 그렇게 됩니다,
음녀 안에 들어가 있으면 자기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잘 믿는 것 같은 성도로 보여 집니다. 아니 그렇게 믿어지고 천국은 반드시 갈 수 있다고 마음에서 확신이 듭니다. 그러나 종교는 마약보다 더 심하게 사람의 영혼을 중독을 시켜서 사람의 이성으로 깨닫지 못하게 만들어서 귀한 생명을 사냥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5:38절을 보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포도주는 두 언약입니다.
율법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언약에 물을 탔습니다. 그래서 그 포도주가 싱거워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언약의 피가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 언약이 되지 않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새 포도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이 언약을 믿게 역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포도주에 물을 타서 싱겁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새 포도주에 물을 타서 언약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 교회 안에 일입니다, 성경을 보고 그저 단순하게 이스라엘의 일로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경계를 해 주시는 말씀들을 깨닫지 못하면 음녀에게 사로 잡혀서 그 영혼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너의 지도자들은 반역자요, 도둑의 무리가 되었다. 모두들 뇌물에만 마음이 있고 선물에만 생각이 있어 고아의 인권을 짓밟고 과부의 송사를 외면한다.”
지도자들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입니다. 그들은 반역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에 있는 지도자들이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인들은 성경말씀보다도 목사의 말을 더 맹신하고 있습니다.
패역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너무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것으로 보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믿음이 있다고 하는 교회 안에 지도자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적이 되었습니다.
어떤 도적이 되었습니까? 뇌물에만 마음이 있고 사례물에만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뇌물과 사례물로 도적이 되었습니다. 뇌물을 사랑했다는 말씀은 행위를 사랑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참 빛을 비춰 주셨지만 그들은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더 사랑했습니다.
이 행위를 더 사랑해서 어떠한 결과가 왔는가 하면 도적이 되어서 영혼을 도적질하는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양을 도적질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이렇게 행위에 깊이 빠져 도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렇습니까?
이 시대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스라엘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정말 교회는 더 이상 교회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가 되어서 창기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사랑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율법의 행위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적질 했습니다,
어떻게 했는가 하면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에게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지 않고 과부에게 새 남편을 만나게 해 주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한 마디도 종교에 빠져서 창기가 되어서 영혼을 살인을 하고 영혼을 도적질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그리고 이 예표는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똑같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이성으로는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창기인지 아니면 주님의 아내 인지를 도무지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안 보고 지혜를 구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당연히 그 영혼이 살인을 당하고 도적질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기는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에게 행위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단번에 주시는 믿음의 도를 따라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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