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창세기 4:1-7절을 보면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생명입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보고 있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인과 성도가 다르다는 것을 또한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방의 교회는 이스라엘보다 더 타락의 길로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되었다면 이방의 교회는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교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교회를 통해서 성도가 탄생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가 종교가 되고 음녀가 되어 사람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영생을 얻는 사람은 지극히 적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고 물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정말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시대에 그 백성 모두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절대 다수는 늘 종교가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갔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왜 사망으로 갔습니까?
믿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를 가지고 마치 믿음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전적인 뜻도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수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 중에 다수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절대 다수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 절대 다수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절대 다수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는 것이 맞습니까? 성경이 맞습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우리 인생들에게 아니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절대 다수가 믿음이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기독교라는 종교에 있는 절대 다수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고 영생을 얻는 성도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예표와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입니다, 구약에 있었던 일이 그리고 신약에 있었던 일이 지금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서 가인과 같은 살인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면 뭐 합니까?
그리고 그 안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적 지식이 많으면 뭐 합니까? 그런 것은 다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인이 살인을 했으면 이 시대 교회 안에 가인과 같은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말씀들은 실제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인이 살인을 했습니까?
그럼 이 시대는 살인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다 살인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살인을 하면서도 살인했다는 것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 바로 영의 일이며 성경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담대합니까?
가인은 아벨의 육체를 살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혼을 살인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어느 특정한 사람이 살인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정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그 말씀은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살인을 하기 때문에 율법에 기록했습니다,
가인만 살인자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인은 아벨 한 사람을 죽였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살인자들은 무참히 영혼들을 죽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여서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성경을 모르면 가인과 같은 살인자가 되기 때문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모릅니까?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보면서 실제 육체를 죽이는 살인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도피성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 도피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살인자들은 그 도피성으로 피하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또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면 뭐 합니까?
바로 근처에 살인자가 피할 수 있는 도피성이 있으면 뭐 합니까?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태평하게 살다가 보수자가 뒤 따라와서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보수자가 누군가 하면 바로 사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 알면 뭐 합니까? 살인한 자들이 도피성으로 피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이렇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죽였다고 말하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살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인생의 지식의 한계입니다,
사람의 지식으로는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 이 시대 교인들에게 살인자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들은 저를 심하게 욕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살인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그러면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를 살인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지혜롭습니다, 내가 왜 살인한 자인가를 알고 우리의 도피성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하는 성도가 지혜롭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니까 자기 이성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못한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고 도리어 그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새번역입니다,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다. 하와가 말하였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남자 아이를 얻었다."”
첫 사람 아담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아담의 자손입니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을 해서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화론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그 진화론을 전부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으면 믿어야 합니다.
억지가 아닙니다,
사실 과학이라는 것도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추측이고 가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설령 그 과학이 어느 정도 성경과 다르게 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분명히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것을 우리가 보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과학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작은 것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경륜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바로 알고 있다면 설령 과학이 설득력이 있다 해도 그것을 뛰어 넘어 영의 일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과학에 성경을 굳이 꿰마주려고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는 영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에덴입니다,
그때에 아담과 죄를 짓고 난 후에 아담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아가 죄를 짓기 전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있었지만 자기들이 벗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범죄를 하고 난 후에는 벗은 것을 알게 되어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서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벗은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에는 육체적은 관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눈이 밝아지지가 않아서 벗은 줄을 몰랐을 때는 굳이 육체적인 관계를 하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고 난 후에는 벗은 줄을 알게 되었고 사람의 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저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줄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가인을 낳았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와와 동침을 해서 가인을 낳았습니다, 아담은 가인을 얻는 후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아들을 얻었다고 하면서 그 이름을 가인이라고 지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문자에 사로잡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생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건과 인물은 예표적인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담이 자녀를 몇 명 낳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인이 장자인지 그리고 그 이전에 딸을 낳았는지는 성경에 기록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모르고 있습니다, 왜 가인과 아벨을 성경에 기록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남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왜 아담이 가인을 보고 남자 아이를 낳았다고 했습니까? 그것은 아담이 볼 때 자기와 같이 구원을 받은 남자가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남자를 구원받은 사람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인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볼 때는 남자로 보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것은 예표와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부의 모형으로 보여주셨지만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면 하와는 그의 아내이므로 교회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교회를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 남자가 태어났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교회에 사람이 들어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이제 가인이라는 남자가 태어났습니다, 성경은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보아야 합니다,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새번역입니다.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교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낳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기부터 교회 안에서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니라 창세기는 아담이 첫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 안에 하와를 통해서 남자를 낳게 하셨습니다,
성경의 예표입니다,
성도와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합니다, 또 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하기도 한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보아야 합니다, 그저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은 영생의 말씀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예표와 비유, 은유와 그림자로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인이 그리스도와 교회가 지금 우리에게 있고 또 그 교회 안에 가인과 아벨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각각의 사람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영생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그저 문자적으로 보면 어떻게 됩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가인이 누구고 또 아벨이 누군가를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 중에 가인과 같은 사람이 있고 아벨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성경을 보면서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내가 가인인가 아니면 아벨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가인과 아벨의 말씀을 그저 그 두 사람에 대한 말씀으로만 알고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습니다,
그리고 아벨은 양 치는 자였습니다. 성경은 그냥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혜가 없어서 깨닫지를 못해서 그렇지 사실은 다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누군가를 암시를 해 주고 있고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성도는 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20:10절을 보면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요한복음21:16을 보면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가인과 아벨입니다,
이미 창세기에서 그들이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저 농사를 짓는 사람이고 양을 치는 자가 아닙니다, 농사를 짓는 자가 누구고 양을 치는 자가 누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포도원을 만들고 그 종들에게 맡겼습니다,
포도원은 농사를 짓는 일입니다, 그 농사짓는 자들이 어떻게 했는가는 우리가 누가복음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농부는 가인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가인과 같은 자들이 있다는 것을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의 가인을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 치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벨과 같은 사람이 바로 베드로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에 베드로는 양을 치는 일을 하면서 살다가 순교를 했습니다. 마치 가인에게 죽은 아벨과 같이 베드로도 순교를 했습니다,
성경입니다,
창세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일이 신약에 와서 그대로 있었고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가 하면 자기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에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누구를 죽입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입니다, 역시 가인과 같은 자들에 의해서 베드로가 죽었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로마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지만 실상은 유대인들의 핍박이 더 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더 많이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가인과 아벨을 예표로 보여 주셨지만 실제 교회 안에는 가인과 같은 자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새번역입니다,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가인의 제사입니다.
그리고 아벨의 제사입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어서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 합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려서 하나님께서 안 받으시고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양을 드려서 받으셨다고 말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려서 안 받으셨고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양을 드려서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정말 성경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땅의 소산도 받으셨다는 말씀이 있고 그것을 드리라고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3:19절을 보면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신명기15:19절을 보면
“너는 우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네 소의 첫 새끼는 부리지 말고 네 양의 첫 새끼의 털은 깎지 말고”
하나님께서 양만 받으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분명히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출애굽기에서 토지소산의 첫 열매를 여호와께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의 소산을 드려서 안 받은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려서 안 받았다고 하는 말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율법에서 토지소산의 첫 열매를 여호와께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드리라고 한 것은 그것을 받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가 무엇이 다른 가를 알아야 합니다, 가인이 농사지은 것을 드려서 안 받은 것이 아니고 또 아벨은 양을 드려서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가인과 같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가인과 같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사입니다.
분명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성경에 있는 대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땅의 소산을 가지고 제사를 드려서 안 받으신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제사를 드리지 않아서 안 받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우리도 가인과 같은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인과 같은 제사를 드리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성경을 기록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지만 사람들을 이 성경을 자기 이성의 생각을 따라 보고 있고 그것이 가인의 제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 11:16절을 보면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입니다,
그들이 드린 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땅의 소산과 양을 드린 것이 다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율법에 말씀을 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토지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라고 말씀을 하셨고 또 양의 첫 새끼를 여호와께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 것이 무엇을 상징 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첫 것을 가지고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그저 땅에 있는 소산의 것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는데 가인은 땅의 소산의 첫 열매를 가지고 드린 것이 아니라 그냥 땅의 소산으로 드렸습니다,
두 사람의 제사입니다,
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제물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예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땅의 소산이냐 양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입니다,
가인이 땅의 소산의 첫 열매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고 아벨이 양의 새끼를 가지고 드렸다면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첫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저 제사를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그리고 양의 첫 새끼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었고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어떤 제물을 드렸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입니다,
가인과 같은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도 않고 제사의 형식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이 시대 역시 이렇게 가인과 같은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제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제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누가 더 제사를 잘 드렸습니까?
물론 땅의 소산과 양이라는 제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여기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가인이 왜 분을 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자기가 아벨의 제사보다 더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벨은 그 보지지 않는 것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보이는 것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 자기가 아벨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자기 제사를 받으시지 않으니까 분이 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새번역입니다.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가인이 분을 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분명히 가인이 드린 제사가 더 좋았습니다, 만약에 가인이 자기가 드린 제사가 좋지 않았다면 절대로 분을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가인은 자기가 드린 제사가 더 좋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분을 낸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을 향해서 진심으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것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안에서 정말 감동을 주는 찬양대가 있어서 찬양을 부르고 있고 자기들이 믿음으로 드린다는 십일조를 마음껏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화를 낼 것입니다,
거지와 같은 사람이 그저 가슴을 치며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하는 그 예배를 받으시지 않는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거지 같은 사람은 그냥 풀이 죽어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교회는 분명히 화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분을 내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그것을 비유로 말씀을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주님께 분을 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데 주님은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자기들을 영접하지 않고 죄인과 가난한 자를 영접하시니까 분이 났던 것입니다,
가인의 제사입니다,
그것은 행위의 재사입니다, 아벨은 믿음의 제사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드리고 있는 모든 예배를 행위의 예배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는 이상한 말로 미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제가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다고 하면 분명히 화는 낼 것입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새번역입니다.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가인은 선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선이 무엇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하신 이를 믿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선하신 이를 믿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선하신 이를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마찬가지입니다.
선하신 이를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선하신 이를 믿는 것을 땅의 소산의 첫 열매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양의 첫 새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의 첫 새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보다는 자기가 드린 제사를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안 받으신다고 분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받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렸고 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땅의 소산을 드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제물이 무엇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11:4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그 예물이 무엇입니까?
양이 그 예물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제물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벨이 드린 예물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물이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물이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 예물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단순히 양의 첫 새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받아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양이 그 예물이 되어서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물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면 예물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의 첫 열매를 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이 두 가지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고 그 예물이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가죽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제사를 드리는데 벌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얼마나 빨리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인의 제사입니다.
아벨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증거를 해 주고 있는가 하면 양의 첫 새끼가 증거를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 속죄를 이루신 것을 믿는 성도가 되어서 오직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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