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디모데후서 4:16-18절을 보면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사도 바울은 이방의 사도였습니다,
그가 이방에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복음이 사라졌습니다, 자기 종교를 전하고 자기 교회를 전하는 사람들은 있을지 몰라도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처음 복음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구약의 다윗 왕과 같이 그가 어떤 싸움을 하든지 다 이기게 해 주실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자기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보면서 마치 모든 일이 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왕으로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윗 왕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도와서 왕국을 건설하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시대 성도들에게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육의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영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과 같이 육체를 돕지 않으십니다, 이제 참 빛이 우리에게 비춰졌기 때문에 그림자의 모습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께서 육체적으로 도와주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에서 영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영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일은 육체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육체의 싸움을 하느라 모든 진을 다 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육체의 싸움을 하느라 영의 싸움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영의 싸움은 외롭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 곁에서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의 일을 할 때에 반대를 하는 자들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도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육체적인 싸움에서 성도는 늘 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진리를 따라 행하면 상대가 그 진리에 굴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크게 반발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인은 편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정말 힘이 듭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를 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이스라엘로부터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외로웠습니다,
선지자들은 늘 다수의 이스라엘에 의해서 외롭게 지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수의 이스라엘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다수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어리석어서 다수가 진리에서 벗어났고 이 시대는 지혜가 있어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그 시대에는 주님께서 세우신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그 시대는 순교를 당하는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래도 사도들이 있었고 또 그들로부터 배운 사람들이 장로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집사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지나갔습니다,
로마에 의해서 약 300년간 박해를 받으면서도 초대 교회는 그 명맥을 유지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믿고 싶은 것은 박해를 받던 그 300년 동안에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었다는 일입니다, 그러나 300년이 지나면서 복음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가 더 암흑의 시대라고 보면 맞습니다.
초대 교회는 그래도 로마의 의해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성도들은 아예 그 자취조차도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그러하다는 것이 실감이 날 정도로 성도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아니 그 흔적을 볼 수 없습니다, 물론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지난 1700년 동안에 중간 중간에 성도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어떤 글도 남아 있지가 않습니다. 설령 그들이 복음에 대해서 글로 남겼다 해도 아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하셔서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700년이 지나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완전한 율법주의가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가 지나고 지금 이방의 교회가 1700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의 이스라엘보다 지금 이방의 교회는 더 타락을 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가 정통이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이 이 시대 역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성경을 누가 바로 해석하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이 시대 목사들은 이스라엘보다 성경을 더 율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그 말 한 마디에 모두가 속고 있습니다, 속이는 자도 속고 있고 속는 자도 자기가 속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냉정하시기 바랍니다.
감성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철저하게 성경으로 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너무 성경을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초대교회와 같이 핍박이 없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스도편지와 그리고 복음과 율법입니다,
이 사이트를 통해서 설교를 올리고 있습니다, 다운 받은 사람의 숫자를 보면 대강 300명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저와 교제를 하고 있는 사람은 10여명 조금 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이 설교를 보고 구원을 받는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회의적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쓰고 있습니다,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지금 종교화되어 있는 그런 교회를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에서 교회를 말씀하고 있고 그 교회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성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이 서로 교제를 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제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에게 쓴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기도 합니다, 이 서신을 보면서 과연 이 시대는 어떤 가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변론할 때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처음 나를 변론할 때에, 내 편에 서서 나를 도와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물이 돌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디모데에게 쓴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사도 바울이 가르쳐 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 디모데 서에서도 내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자기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이 디모데후서가 가장 후에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디모데후서에서는 이 문제를 거론하고 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제 사도 바울이 사역을 마치는 시점에 와서 디모데에게 이 사신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만을 생각했습니다,
정말 죽을 때가 임박했어도 그는 늘 복음을 전하는 일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라고 부르는 디모데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그 시작을 내가 그리스도 앞에서와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명하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역시 이 시대 똑같은 말씀으로 명하고 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성도가 말씀을 전할 수는 없지만 그대로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성도는 전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목사에게만 해당이 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목사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반 성도들에게도 역시 해당이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디모데후서 마지막에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로마서16장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해서 자기 목이라도 내 놓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변명할 때에 모두가 나를 버렸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디모데에게도 똑같은 상황이 올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디모데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할 때 아마도 모두가 너를 버릴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정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 곁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있었고 오네시보로의 집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면서 아마도 네가 말씀을 전할 때 분명히 너를 모두가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스보로의 집에 있었던 것과 같이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은 인간적으로 행복했던 사람으로 생각이 됩니다,
솔직히 이 시대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마지막에 서신을 쓸 수 있다면 인간적인 행복을 조금이라도 누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초대 교회와 지금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로마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지만 이 시대는 그래도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입니다,
그 자유가 오히려 복음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더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솔직히 초대 교회는 이방에 처음 복음이 전파되었던 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도 있고 수많은 이단들도 있다 보니까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저 역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에 올리고 있는 말씀들을 통해서 구원을 받든지 못 받든지 저는 주님께서 주신 이 복음을 올리고 있습니다, 정말 한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인터넷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에 묻히고 마는 것 같이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이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가 이 시대 교회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수많은 말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을 보고 그저 이런 말씀이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 정말 가슴이 답답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말씀을 올리고 있지만 솔직히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모두가 다 떠나는 느낌입니다. 마치 벽에 대고 말씀을 전하는 느낌을 지을 수 없습니다,
빌립보서1:7절을 보면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사도 바울이 무엇을 변명했습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내 곁에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편에 서서 도와 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때도 있었고 도와 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로마서16장에서 한 사람씩 열거를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내 편에 서서 도와 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처음 복음을 전할 때는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정말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은 사람도 있었고 자매 뵈뵈와 같은 사람도 있었고 사도 바울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는 그의 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방에 복음을 전파하러 갔는가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라는 것을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입니다,
예수가 누구입니까? 더구나 이방입니다, 이스라엘 같으면 그래도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방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성경을 편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시대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환경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사람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벌써 4-5대가 기독교인으로 살다보니까 이제는 그것이 정상화 되어 있습니다,
육의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래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 사이트에 와서 말씀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몇 백 명이 다운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믿는지 안 믿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몇 백 명이 보고는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몇 명이 구원을 받더라도 사도 바울이 명한 것과 같이 기회에 따라 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제 편에 서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솔직히 사도 바울의 말씀이 절실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으면 많은 사람이 들을 것 같지만 오히려 내 편이 되는 것은 고사하고 대적이 안 되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시대도 구리 장색 알렉산더와 같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해만 안 끼쳐도 됩니다.
복음에 대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에도 가끔 가다가 심하게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대적을 하는가 하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 때문에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에 어느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까?
하지만 대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으로 대적하지는 않지만 율법의 문제로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가끔 그렇게 심하게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이 시대는 그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영혼을 구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사람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을지 몰라도 그 안에서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한 것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떠났습니다, 이 서신을 잘 이해를 하고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일을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면서 너에게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는 장로입니다,
이 시대 목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모두가 너를 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설령 그들이 너를 버리더라도 내가 그들을 허물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을 허물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다보면 버릴 수는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제 생각과 다르다고 하는 사람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영의 일을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 허물을 그들에게 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함부로 대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버리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가는 것은 얼마든지 용납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대적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를 괴롭게 하면 주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겁이 없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저주를 받는 자가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나는 더 이상 이 말씀을 듣기를 원치 않고 천국도 마음에 와 닫지도 않으니까 안 믿겠다고 하면서 세상으로 가는 사람이 낫 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복음에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14절에서 구리 장색 알렉산더에게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차라리 가만히 있으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정확히도 모르면서 복음을 대적하는 일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설령 안다 해도 무시하고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허물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되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냥 조용히 가면 됩니다, 그런데 왜 굳이 대적을 해서 화를 당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지나친 열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그것으로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몰라서 그랬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안다고 확신이 되더라도 대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냥 돌아서 가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그 허물을 돌리지 않을 수 있는데 대적을 하다가 화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새번역입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서셔서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통하여 전도의 말씀이 완전히 전파되게 하시고, 모든 이방 사람이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이방에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나에게 힘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말씀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한 것과 같이 너도 이렇게 할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국어의 문법은 잘 모르지만 그러나 왜 이렇게 말씀하는 가는 깨닫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이 설교를 보고 있습니까?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히브리어 헬라어 공부를 할 시간에 국어를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우리나라 말을 하고 사니까 국어를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대학을 나온 사람도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릅니다, 더구나 이 성경은 고어체이기 때문에 국문학을 공부해도 잘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3:16절을 보면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주께서 나를 강건케 하셨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는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사도 바울을 강건하게 하신 것은 성령이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영이 사도 바울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두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강건케 하셨다니까 육체를 강건하게 하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그리스도의 영이 그의 안에 거하여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된 그것이 강건하게 된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 같이 너 역시도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전도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도 역시 이렇게 주님께서 그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성도가 전도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독려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입니다.
복음의 아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자기가 죽기 바로 전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 말미암아 말씀이 전파되어 이방인들이 듣게 하신 것과 같이 너도 말씀을 전하면 그렇게 주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사자의 입에서 나를 건져 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8절을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자의 입입니다,
그것은 마귀의 입입니다, 주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 역시도 주님께서 사자의 입에서 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를 따라 말씀을 전하면 주께서 너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사자의 입에서 건졌습니까?
주의 성령을 보내 주셔서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들에게 똑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듣고 믿음으로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도 바울이 쓴 성경을 보고 다 다른 복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사자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 스스로 사자와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져 주셔야 합니다,
마귀입니다,
우리는 싸울 수 없습니다, 주님이 건져 주시지 않으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마귀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복음을 알고 있는 성도는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마귀에게서 우리를 건져 주셔서 구원을 받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구원하셔서 그분의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사자의 입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자의 입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스스로가 사자의 입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귀에게서 건져 주셔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사자의 입으로 들어가겠다고 통곡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자의 입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것을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사자의 입에 무엇이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셨다고 하니까 사도 바울이 악한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악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왜 지금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라고 하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디모데에게 네 직무를 행하라고 하면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이 시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을 보내 주셔서 사도 바울을 강건케 하셔서 이방에 복음을 전해서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고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시대는 악을 모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모든 악한 일에서 건짐을 받았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이 하는 악한 일에서 사도 바울이 그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하고 있는 그 모든 일이 역시 악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지만 그 일 역시 악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악합니까?
주님이 하신 일이 아닙니다, 설령 성령이 오셔서 하신 일이라 해도 그것은 사도 바울이 한 일이기 때문에 악한 일입니다. 이 시대 악을 모르는 사람은 이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의 설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한 모든 행위는 그것이 복음을 위해서 한 일이라 해도 악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악한 일입니다,
남이 악한 일을 하는데 사도 바울이 그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한 모든 일이 악한데 그 일에서 자기를 건져 주셔서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한 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 주님께서 자기를 건져 주시고 또 구원해 주셔서 그의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내 명을 받아서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모든 악한 일에서 너를 건져 주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한 모든 일도 그 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그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면서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내 명을 받아 하는 모든 일이 역시 나와 같이 모든 악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모든 악한 일에서 나를 건져 주신 것과 같이 너도 건져 주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주님께서 너를 구원해 주셔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명한 대로 너는 네 직무대로 말씀을 전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 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악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내가 이 복음의 일을 하면 주님께서 모든 악한 일에서 나를 건져 주셔서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악한 일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라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디모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모든 악에서 건져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그것이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셨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든 안 전하든 우리는 악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셔서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내가 어떠한 일을 했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 역시 주님께서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셔서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심을 믿는 성도가 되어서 그의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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