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장자의 권리

윤주만목사 2019. 2. 10. 22:58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신명기 21:15-17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소생이 장자여든 자기의 소유를 그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로 장자를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율법입니다

율법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아는데 있어서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그림자를 통해서 실체를 보아야 합니다. 어떤 실체를 보아야 하는가 하면 복음에 대해서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어렵습니다.

저는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에서 실체를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고 또 보고 하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도 쉽게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율법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율법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아무리 세상적으로 지식이 있다고 해도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그 말씀에서 의미를 하고 있는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이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그렇게 보다가 주님이 오셨을 때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 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냥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 우리의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풀어지지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율법을 성경에서 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 하나님께서 율법에 이렇게 정해 놓으셨구나 하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그렇게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왜 망하는 길로 갔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왜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이 율법을 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의미를 아는데 조금이라도 성경을 상고했다면 그런 불행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성경을 보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역시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본 것과 같이 이방인들 역시도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단지 이스라엘은 구약을 보았고 이방인들에게는 신약이 있다는 그 차이지 지금도 구약을 보는 생각은 거의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성경을 보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지금과 같은 종교의 형태에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정말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자세하게 보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생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이 세상 지혜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살피고 또 살펴서 그 안에서 하고 있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하고 또 혹시라도 모를 일이 있으니까 지혜를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1:10절을 보면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영생입니다

구원을 그냥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구원을 받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재능을 활용할 수 있게 누군가는 성경을 연구하고 살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이 너희에게 임할 은혜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 구원에 대한 말씀을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그냥 한 것이 아니라 그들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쉽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언을 하던 선지자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연구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했다고 말씀을 하니까 이 시대 신학을 공부를 하고 또 박사 학위를 받는 것으로 연구를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세상공부를 한 것이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연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 박사 학위를 받은 목사들입니다

그들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 세상 지식을 쌓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연구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전에서 어떤 일이나 대상을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이치나 진리를 밝히는 일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연구를 했습니까?

겨우 신학을 공부를 하면서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공부를 하는 것으로 연구를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또 이제까지 기독교에 있었던 신학자들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것으로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것으로 연구를 했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 것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구원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구원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일을 연구를 하면서 그것이 마치 구원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지 구원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한 예언입니다

기독교사가 무슨 우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한 예언입니까? 그들이 칼뱅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알미니안주의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고 기독교조직신학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구들이 우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한 예언입니까? 그런 모든 것은 그들의 종교의 교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칼뱅주의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칼뱅주의자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임할 은혜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교리로는 절대로 성경에서 우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살피시기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연구를 하고 부지런히 살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기 위해서 성경을 그렇게 연구를 하고 부지런히 살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기독교입니까?

제가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를 하고 부지런히 살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를 비난을 해도 좋습니다. 네가 뭔데 이런 말을 하느냐고 비웃는다 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언제 한번이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적이 있는가를 성경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책망을 들었다면 이방인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잘못 믿었어도 우리는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을 연구를 하지 않고 부지런히 살피지도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 그냥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것을 사람의 지혜로 연구를 하고 부지런히 살핀다고 해서 풀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만 보고 사는 사람도 스스로의 지혜에 올무가 되어서 소경이 되어서 성경을 보는 것이 사람의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목사들입니다

솔직히 그들이 하고 있는 목회는 절대로 성경을 연구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그렇게 하고 찬양을 그렇게 부르고 예배를 그렇게 많이 드리고 있고 또 교인들과의 교제도 해야 하고 하는 그들이 언제 성경을 연구를 할 수 있습니까?

 

설교도 너무 많습니다.

과연 그런 환경에서 그들이 성경을 연구를 하고 부지런히 살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성경만 보면서 지혜를 구해도 하루 한편의 설교가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일주일에 최소한 10번 이상의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저는 세상 적으로 지혜도 부족하고 지식도 부족해고 암기를 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은 성경을 연구를 하지도 않고 또 부지런히 살피지도 않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보는 시각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소생이 장자여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는데, 한 사람은 사랑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하다가, 사랑받는 아내와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가 다 같이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이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의 아들일 경우에,”

 

어떤 사람입니다

성경입니다 그 실체가 분명한 사람은 반드시 그 이름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창세기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것을 어떤 사람이라고 특별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실체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기가 어려울 때 자주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말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아내입니다

성경을 거의 육의 일을 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에서는 네 명의 아내까지 둘 수 있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그들은 지금도 아내를 그렇게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보니까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말씀을 보면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구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살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율법으로 허용을 하신 이스라엘의 혼인 제도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두 아내가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100여 년 전만 해도 양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두 아내는 허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첩이라는 말로 해서 얼마든지 첩을 둘 수 있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두 아내입니다

지금 중동 권에 있는 이슬람을 빼고는 어느 나라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법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거의 모든 나라는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정해 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법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이 율법은 참으로 이상하기만 합니다.

 

이상합니까?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상하다고 우리와 관습이 다르다고 폐하여졌다고 하지 마시고 연구를 해서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두 아내를 둘 수 있게 율법에 정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니 두 아내가 아니라 야곱과 같이 네 명의 아내를 둘 수 있게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이 율법을 보고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시민법은 폐하여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법이라고 하면서 아예 성경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연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 폐하여 졌습니다.

저는 모든 율법이 폐하여 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법과 시민법만 폐하여 진 것이 아니라 도덕법도 폐하여 졌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은 폐하여 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제사법과 시민법과 도덕법을 구분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율법을 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보고 연구를 하고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구를 하지 않고 있고 그냥 폐하여진 율법으로 생각을 하면서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22-23절을 보면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에베소서 5:32절을 보면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남편입니다

그리고 아내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나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아내는 누군가 하면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아내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자세히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냥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두 아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아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교회는 주님의 아내가 아니라 계집종이 될 수 있고 음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아내에 대해서 신명기에서는 어떤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두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저 사람의 아내라고 하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성도 없습니다. 그러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이 율법은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일부일처제가 법으로 제정이 될 것을 모르시고 이 율법을 정하셨다면 우리는 솔직히 하나님을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모르면서 율법에 정해 놓으신 하나님을 무엇 하러 믿습니까? 이 시대 속된 말로 아주 쌩뚱맞는 말이 아닙니까?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율법을 정하시고 그것을 성경에 기록을 하시고 우리에게 이 성경을 보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말씀을 보고 루터는 종교 개혁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야고보서를 보면서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하면서 강해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가 야고보서를 보고 강해를 하지 못했는가 하면 그는 세상적으로는 지식이 뛰어난 신학자임에는 분명하지만 사도 베드로의 말씀과 같이 성경을 연구를 하지 않고 부지런히 살피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인간적입니다

그를 절대로 폄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가 율법을 보고 연구를 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았다면 그는 분명히 야고보서를 바로 풀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두 아내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두 아내에게서 났습니다. 그 두 아내를 하나는 계집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만약에 사도 바울이 신명기에 있는 율법을 보고 비밀을 알지 못했다면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기록할 수 없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신명기에 있는 말씀을 보고 갈라디아서를 기록을 했고 아브라함의 두 아내를 비유로 해서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둘 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신명기에서도 두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에서도 분명히 두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성경은 이렇게 놀랍게도 우리에게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고 이것이 풀림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아내가 아닙니다.

신명기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는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실제 두 아내를 비유로 해서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두 아내가 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있는 아내고 하나는 미움을 받고 있는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실제적 사실입니다

누가 사랑을 더 받았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는 쉽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라가 그 계집종과 아들을 내어 좇으라고 말을 하니까 아브라함이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께서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을 하니까 내어 좇았습니다. 우리는 성경만 보아서는 어느 아내가 사랑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사라와 하갈 두 아내 중에 누가 인간적으로 사랑을 더 받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영의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육의 사랑을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대로 추측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분명히 둘 다 아들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창세기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하갈과 사라도 역시 아들을 낳았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오묘하게도 이렇게 정확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그런 말씀들을 우리는 연구를 해야 하고 또 부지런히 살펴서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9절을 보면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아브라함입니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습니다. 누가 사랑을 받았는지 누가 미움을 받았는지는 우리는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은 내어 쫓김을 당했고 사라와 이삭은 아브라함과 함께 살면서 유업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이 교회를 비유로 할 때는 그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라가 아브라함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함께 살 수 있는 아내가 사랑을 받았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사라가 사랑을 받은 것이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입장에는 누가 사랑을 받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의 교회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편지도 교회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건물도 없고 그렇다고 기독교와 같이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아니 그들이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사랑을 받습니까?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에서 세운 교회는 사랑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종교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복음을 다 전파를 하시고 난 후에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미움을 받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이 미움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미움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예언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우리 복음을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는 세상에서 아니 모든 민족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시대 우리 그리스도편지에 모여 있는 성도는 어느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 다 교회에 있습니다.

실제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왜 미움을 받고 있는가 하면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성도들의 숫자가 많지 않고 잘 알려지지가 않아서 그것을 직접적으로는 느낄 수 없지만 우리가 세상에 알려지면 반드시 미움을 받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세상에 계시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는 믿음으로서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로부터는 우리는 절대로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종교에서도 사랑을 받을 수 없고 또 어느 민족으로부터도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우리의 행위를 더럽게 생각하는 것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이 영의 일은 믿음이 아니고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세상의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참으로 이 믿음이라는 것은 놀랍게도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연구를 해서 부지런히 살핌으로 해서 이 믿음이 역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창세기 25:31절을 보면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히브리서 12:23절을 보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교회가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교회가 있고 믿음을 받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모두가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장자입니다

이 장자는 그냥 첫째 둘째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먼저 낳았느냐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장자에 대해서 이미 창세기에서 야곱과 에서를 통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에서에게 팔라고 야곱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두 아내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에게 있는 두 아내가 아니라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자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미움을 받는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이미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는 교회 안에 장자가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반드시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움을 받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는 사랑을 받을 수 없는가 하면 우리는 보이는 건물을 교회로 세우지도 않고 있고 그렇다고 사람들의 눈에 거룩하게 보이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볼 때 우리에게 와서 보면 이것이 교회인가 하면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그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로 장자를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남편이 자기의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날에,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에게서 난 맏아들을 제쳐놓고 사랑받는 아내의 아들에게 장자권을 줄 수는 없습니다.”

 

자기의 소유입니다

이제 앞에 있는 말씀과 조금 달라졌습니다. 앞에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6절에서는 자기의 소유를 그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유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14절을 보면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자기의 소유입니다

그것을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달란트의 비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소유는 생명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재능을 다 주셨습니다.

 

성경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주님에게는 두 아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아내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장자의 명분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장자인가 하면 하늘의 기업을 얻을 수 있는 장자입니다 그런데 이 장자에게 자기의 소유를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들로 장자를 삼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움을 받는 아내의 아들 곧 참 장자를 앞세우지 말라고 말씀을 하면서 이 세상에서 복음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살아갈까를 미리 율법에 말씀을 하시고 그에게 생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장자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을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장자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서 어떻게 장자의 명분을 얻을 수 있었는가는 이제까지 설교를 통해서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게 야곱과 같이 장자의 명분을 얻은 자를 사랑을 받는 아내의 아들로 앞세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 장자입니다

하늘의 유업을 얻은 성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도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미움을 받는 아내에게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반드시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의 아들을 맏아들로 인정하고, 자기의 모든 재산에서 두 몫을 그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 아들은 정력의 첫 열매이기 때문에, 맏아들의 권리가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자입니다

율법에 장자는 장자로 인정을 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내가 미움을 받는 것과 상관이 없이 장자로 인정을 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교회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장자로 인정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소유입니다

거기서 두 몫을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두 몫이 아닙니다. 생명에는 두 몫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장자에게 주라는 뜻으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을 받는 아내의 아들인가 아니면 미움을 받는 아내의 아들인가가 아니라 장자의 명분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장자입니다

야곱과 같은 장자라는 것을 성경의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교회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미움을 받을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생명을 주시겠다고 율법에 정해 놓으셨고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6:10절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시편1:6절을 보면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인정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장자로 인정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왜 우리를 장자로 인정을 해 주시는가 하면 우리는 의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인인가 하면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사람이 없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되었습니다.

 

장자의 권리입니다

누구에게 있습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에게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세상 사람이 볼 때는 미움을 받는 교회에 있지만 우리는 장자의 명분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도 자기의 소유를 주심으로 해서 장자의 명분을 인정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장자의 명분을 받을 수 있는가를 우리 성도는 이미 성경에서 알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 성도를 주님께서 장자로 인정을 해 주시고 자기의 소유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장자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