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5:3절을 보겠습니다. (신 259쪽)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성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도가 아주 적습니다. 아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성도는 적은 숫자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수가 많다면 로마서15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렇게 와 닫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적습니다.
어느 정도 적은가 하면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숫자 중에서 남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20억 명을 모아 놓으면 아마도 바다모래 같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독교인의 숫자가 많다 하더라도 우리 성도의 숫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선지자입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지만 로마서13장까지의 복음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복음을 듣기 보다는 모두가 다른 복음에 빠져 정욕을 위해서 육신의 일을 도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습니다. 이런 성도를 사도 바울은 강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이 강한 자가 너무도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우리 강한 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삶입니다.
로마서14장부터는 우리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15장에 와서는 우리 이웃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4장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끼리의 말씀이라면 이제15장은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를 강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연약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는 늘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까지 6-7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갔습니다. 그들이 왜 돌아갔는가 하면 연약한 자로서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복음을 듣지 못하고 돌았습니다.
그들이 돌아갔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그들이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연약한 자입니다 그리고 약점이 있어서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반성을 하고 있지만 정말 우리가 그들의 연약한 것을 담당했는가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담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연약함을 담당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도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한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저는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성도님들은 강한 자입니다 이제 교회 안에 그들이 들어오면 그들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을 어떤 모양으로든지 연약한 자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것을 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장성한 자의 분량에 이르러 강한 자가 되어 있는 성도는 그것을 담당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입은 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잇습니다. 그러나 이제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이웃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는 성도의 삶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성도입니다 그것을 나 혼자만 누리고 있다면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입니다 세상은 소중한 것을 알면 자기를 기쁘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성도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살아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화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 복음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더 귀한 보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보화로 자기 혼자만 기쁘게 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혼자 누리고 있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이 보화를 가지고 있는 성도는 그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귀한 것을 감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보화로 우리 이웃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기쁘게 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에
게 유익을 주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선을 이루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덕을 세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옷이 얼마나 귀하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일입니다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은혜를 입은 우리 성도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5장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그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다" 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만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과 똑같이 아는 것으로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문자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보고 그 안에 있는 의미를 알 때 그렇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의미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 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논어를 보듯이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의 소설책을 보듯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면서 이성의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에 빠져서 행위에 열심을 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의미를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다 함축을 해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비밀을 모르고 성경을 보면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복음 안에서 교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경을 볼 때 진리를 볼 수 있게 역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로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으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에 대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는가를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구속의 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주님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십자가를 지신 것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주님은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22:42절을 보겠습니다. (신 135쪽)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를 강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강한가 하면 보이지 않는 믿음에 든든히 서 있기 때문에 강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강한 자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든든히 서 있는 성도는 절대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자기를 기쁘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시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성경을 인용을 하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기쁘게 하시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을 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생각해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지키신 분입니다
마태복음의 말씀 그대로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분입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셨으면 주님은 죽지 않아도 됩니다.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완전케 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물론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 십자가를 지시지 않아도 되는가 하면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를 부르시면 이 세상에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 해도 그것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내가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주님이 하나님께 부탁을 해서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달라고 하시면 이기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충분히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자기를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의인이 되셨습니다. 의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충분히 자기를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자기를 기쁘게 하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영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인간 예수입니다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당하는 고통은 우리 인생이 당하는 것과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주님도 우리와 같은 인생으로 오셨기 때문에 자기를 기쁘시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시지 않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강한 우리에게 주님께서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강한 성도들에게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서 보여주신 본을 따라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구속의 일을 이루시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강한 자는 주님이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음으로 해서 또 우리와 같이 있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함으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실 수 있습니다.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은 의인으로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을 하셔야지 만 우리 믿음이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일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부르시면 사단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나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 그대로 이 세상에서 의인으로서 왕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 성도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사도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성도는 늘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저 역시도 늘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보면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자기 생명까지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당당하면서 살았는데 저는 그렇게 까지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 역시도 못하고 있습니다.
겨우 복음을 전하는 일만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를 보면서 우리 강한 자라고 하는 성도들이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제 자신부터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저 역시도 한 없이 연약한 인생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록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주셨지만 과연 사도들과 같은 마음으로 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라고 하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69:9절을 보겠습니다. (구 851쪽)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주님은 의인입니다
영광을 받으시고 자기를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훼방을 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춰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주님을 미워하고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구속의 일을 훼방을 했습니다.
시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입니다 다윗이 고백을 하는 것과 같이 시를 쓴 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실 구속의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종이 되어 있었던 유대교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이 되어 있는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지만 도리어 하나님을 훼방을 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훼방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악한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훼방이 주님께 미쳤습니다.
주님은 이 훼방을 받지 않아도 되지만 주님께 미친 이 훼방을 주님은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훼방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렇게 성경에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이 오셔서 하실 일이 기록이 되어 있고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은 자기에게 미친 훼방을 그대로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입니다
다윗도 선지자입니다 그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주님께서는 이루시기 위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그것이 이루어 진 것을 보고 우리가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자기를 기쁘게 하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선지자들이 미리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그래도 하시지 않고 자기를 기쁘시게 하셨다면 우리는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을 수 있게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해 주셨고 그것이 그대로 응해서 주님께서는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 선지자들이 미리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시편을 인용을 하면서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에 기록이 된 그대로 이루시기 위해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경에 미리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하시기 위해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강한 자로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음으로 해서 영으로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입은 자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말씀을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런 자유만 누리면서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를 강한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당당하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주님에게 그대로 미쳤습니다. 주님은 그대로 미치는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분입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하셔서 이 세상에서 왕으로 영원히 사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고 우리 성도도 자기를 기쁘게 하면서 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기록이 된 그대로 사신 것을 말씀을 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도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성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를 통해서 이 복음을 전하다보니까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줄을 모를까봐 이제 14장에 이어서 1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웃을 기쁘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주님께 미친 것을 그대로 이루신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5:4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이며,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것이 마귀의 말이 될 수 있고 복음의 말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로마서를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성경에서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태동이 되면서 사람들은 급속하게 다른 복음에 빠져 들어갔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이 시대 로마서 강해라고 하는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말씀은 찾아볼 수 없고 모두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 그가 듣는 것이 복음이냐 다른복음이냐에 따라 그가 행복한 성도가 될 수도 있고 저주를 받는 악한 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독교라는 종교는 모두가 다른 복음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통입니까?
이단입니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정통이고 이단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성경에서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같이 다른 복음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복음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자 그대로는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복음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성경을 보면서 다른 복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복음으로 만들어서 교회 안에서 전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듣고 있는 것이 복음인지 다른 복음인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 안에서 복음을 보는 성도는 삽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을 보고 있는 사람은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빛이 무엇인지 어두움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로마서 강해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복음의 말씀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이 복음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적다는 것을 또한 로마서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여러 가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바다모래 같은 이스라엘이 왜 멸망을 당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12장에 와서는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를 말씀을 하면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입니다
과연 이 시대 누가 이 복음을 듣고 있습니까?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남은 자인 우리 성도들에게 이 복음을 들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잘 나서도 아니고 또 특별해서도 아니고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해서 우리가 복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로마서를 통해서 복음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가 복음을 보고 있고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기록했습니다.
로마서13장까지 사도 바울은 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이 복음을 들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고 그 복음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함으로 해서 믿음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강한 자입니다
이제 우리 강한 자는 우리를 기쁘게 하면서 살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한 말씀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깨달음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는데 어떻게 은혜를 입은 우리가 우리를 기쁘게 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디모데전서1: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37쪽)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히브리서13:9절을 보겠습니다. (신 369쪽)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성경입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이 로마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를 기록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로마서를 보고도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문자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특히 목사들은 성경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목사들은 성경도 안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설교를 어떻게 하면 교인들에게 인간적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그런 글을 인터넷에서 찾는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는 바른 교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그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이 이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초대 교회 안에도 있었다는 것을 히브리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저희 믿음을 본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에게 오직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교훈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교훈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히브리서의 말씀과 같이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믿음을 본 받고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이 교훈이 아니고는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끌려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아니 사도 바울이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교훈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 교훈이 무엇인가 하면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을 본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믿음을 본 받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같이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이끌리어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하셨습니까?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믿으라고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의 선진들을 말씀을 하면서 믿음을 본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한 성경을 보고 사람들은 다른 교훈에 이끌려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교훈입니다
그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자를 보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복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까?
그것이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이미 이렇게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이 성경이 왜 기록이 되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기록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믿는가 하면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성경에서 알아서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이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그 복음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보고 믿어야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교훈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서 전혀 복음을 못 보고 있습니다.
영광의 복음을 쫓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위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성경에서 영광의 복음을 보고 그것을 믿음으로 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반드시 이 복음을 보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강한 자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교회 안에서 연약한 자의 약한 것을 담당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고 이것을 인내하면서 소망을 가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정말로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친절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영광의 복음을 아예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모두가 종교의 포승에 묶여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감사합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영광을 복음을 쫓을 수 있게 하시고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살 수 있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강한 자로서 살게 하시면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살게 하시고 그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소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영광의 복음을 쫓는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기쁘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저 역시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인내를 하라고 말씀을 하면서 소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0:36절을 보겠습니다. (신 364쪽)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교훈입니다
영광의 복음을 쫓아가면서 교훈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어쩔 때는 고행을 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고 싶은 소욕이 끊임이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교훈이 무엇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도 알고 있습니다.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정말 인내를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고 있는 교훈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끊임이 없이 죽이고 있습니다.
율법주의가 쉽습니까?
영광의 복음을 쫓는 것이 더 쉽습니까? 사실 인간적으로는 영광의 복음을 쫓아간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율법주의는 그들의 생각대로 적당하게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영광의 복음을 쫓아가면서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 인생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인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우리 성도들에게 인내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복음을 쫓아가면서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 쉬울 것 같으면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인내를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교훈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훈대로 살면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끊임이 없이 우리를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미혹을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인내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인내가 무엇인가 하면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갖게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내를 하는 이유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6: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58쪽)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안위
몸을 편하게 하고 마음을 위로한다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율법을 지키지 않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자유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가 그런 것이 아니라 바다 모래 같은 사람들 중에서 남은 자만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율법주의입니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율법주의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 시대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는 안식일 교회와 그리고 어느 특정한 이단들이 율법주의라고 하고 있고 자기들은 율법을 폐했다고 하면서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두를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하나를 지키면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단 하나를 지켜도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종교에서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613가지를 이야기를 할 때 분명히 율법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지키는 그 율법을 율법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십계명도 분명히 율법613가지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십계명을 안 지키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하나라도 율법을 지키면 분명히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지키는 것은 율법이라고 하지 않고 자기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곳에서 지키면 율법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100명입니다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천만 명이 있는데 절대 다수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나 혼자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못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바른 교훈을 알고 있는 성도는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내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로 큰 인내입니다. 그것이 인내로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갖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바른 교훈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을 성경이 안위를 해 주고 있고 그 위로가 있어서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위로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을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주변에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광의 복음을 쫓아가기 때문에 선지자들의 믿음을 본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인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안위를 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이 없으면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선지자들의 본을 받아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성경의 안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에게 소망의 말씀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큰 안위를 받고 있습니다.
성경이 없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을 바로 풀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안위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안위를 받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훈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영광의 복음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그 교훈을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도로서 산다는 것이 우리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편지만 보아도 세상 교회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하게 보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끝까지 인도하시라고 믿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이 모두가 율법을 지킬지라도 주님은 저를 인도하시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인내를 하라고 말씀을 하면서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산다는 것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율법의 문제 한 가지만으로 이 세상의 종교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으면서 살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로마서15:5절을 보겠습니다. (신 259쪽)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인내심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게 하시고,”
성도의 삶입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쉬운 일이 아닌가 하면 우리 성도는 자기를 기쁘게 하면서 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강한 자는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이웃을 기쁘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이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오직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 15장에 와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외롭습니까?
지금 그리스도편지는 그래도 십여 명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덜 외롭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우리끼리 교제를 할 수 있고 그래도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때는 정말 단 두세 명이 예배를 했습니다.
처음에 10여 명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이 하나 둘씩 나가고 단 두 명이 남아서 예배를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누군가 위로를 한다고 해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내를 하게 하셨고 또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복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우리 성도님들이 믿음으로 든든히 서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심하게 다툰 것과 같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그때는 또 홀로 남는 것과 같은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고 있습니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인내하게 하시고 또 위로를 해 주시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성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내를 하게 하시고 또 위로를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내를 하게 하시고 안위를 받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성도가 얼마나 적은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강한 자가 얼마나 적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내를 하게 하시고 안위를 받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많습니다.
그럼 서로 하면 됩니다. 정말 10여명만 되도 얼마나 큰 안위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사람에게서 받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인내를 하게 하시고 또 안위를 받게 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는 성도가 많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면 초대교회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표를 보더라도 지금 10 여명은 정말로 많은 숫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인간적으로 외롭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끼리 안위를 받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 그런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경계를 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내심과 위로로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도의 교제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적으로 변하지 않기를 정말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물론 그것까지도 제가 방해를 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성도의 교제를 하기 위해서 여기에서 복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갖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내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위로를 우리 끼리 받으려 하는 것도 역시 경계를 해야 하는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 말씀을 로마서에 기록을 했겠습니까?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우리 성도들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계입니다
꼭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이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를 잊지 않으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만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서 서로 뜻을 같게 하여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2: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79쪽)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인내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위를 받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살아가면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과 같이 우리도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기쁘게 하시지 않으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왜 인내와 안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이라는 것은 겨우 세상 사람이 받는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는 아직까지 고난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어떻게 하든지 분명히 고난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 교훈으로 영광의 복음을 쫓아가면서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 성도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고난을 받으셨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본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고난이 오면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에게 미리 경계로 말씀을 하면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본받아서 서로 뜻을 같이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뜻을 같이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고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음으로 해서 이웃을 기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본받는가를 미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심으로 말미암아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주님께 미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시 강한 자로서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럼 우리 역시 그분을 본받아서 우리 이웃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서 서로 뜻이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입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은 것과 같이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내를 주시고 안위를 주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정말 이 일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면서 이웃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입니다 다 하나에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주님께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복음이 되었다면 우리 역시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함으로 해서 우리를 기쁘게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우리 가난한 자들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본받아서 우리도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성도들은 강한 자입니다. 이제 강한 자가 된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전하는 일을 해서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5:6절을 보겠습니다. (신 259쪽)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그 일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로 십자가를 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복음을 다 전하고 나서 이 말씀을 하는 이유는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 없습니다.
우리 성도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오직 주님께서는 이 일만을 우리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 성도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나라고 말씀을 하면서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역시 이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마음입니다
다른 마음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복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마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십자가에서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주님만 이루시면 됩니까?
그것을 누군가는 전해야 합니다. 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 성도가 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 역시 이웃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고 그것이 한 마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2:5-8절을 보겠습니다. (신 319쪽)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한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주님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이제까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경에서 주님의 마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 마음이 있으면 한 마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죽으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고난을 당하시면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입니다 충분히 영광을 받을만한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본받고 있는가 하면 주님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입은 것과 같이 우리 강한 자이지만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한 입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마음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만을 전파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으로 이웃을 기쁘게 함으로 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본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무엇을 본받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함으로 해서 인내를 해야 하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안위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뜻이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로마서14장부터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4장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의 관계를 말씀을 하고 있고 15장에 와서는 우리 성도를 강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강한 자가 이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한 입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이성으로 가능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야지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한 마음이 무엇인지 한 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들이 주님을 위해서 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주님도 구원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기쁘게 하시지 않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면 한 마음이라면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이 구원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입으로 말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굳게 서서 강한 자가 되어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한 마음으로 그리고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성도들에게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입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이 한 입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입에서 다른 복음이 나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갈라디아서를 보면서도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 강한 자입니다 이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는 우리 강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마음이 되어서 이웃을 구원하는 일만을 생각하고 있고 또 한 입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해서 주님이 우리를 기쁘게 하신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4: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47쪽)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님께서 부탁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하심으로 해서 구원을 받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입니다
누가 전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1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 많이 있다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습니다.
강한 자가 너무도 적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연약한 자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이웃이 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복음을 듣고 믿어 영생을 얻는 우리 성도들이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하고 난 후에 자기들의 마음에 좋으면 그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영광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만이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음으로 강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서 이웃을 기쁘게 함으로 해서 그가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이 외에는 어느 것으로도 영광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아니 그 외에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반드시 구원을 받는 그 일로만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어느 것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내가 영광을 돌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 강한 자들이 어떻게 영광을 돌려야 하는가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영광을 돌리는가 하면 내 이웃이 기뻐하는 것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그 외에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오직 영혼 구원의 일만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이웃을 기쁘게 함으로 해서 영광을 돌리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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