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5:7절을 보겠습니다. (신 259쪽)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구원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한 사람을 교회 안에 데리고 들어왔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를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도입니까?
그것도 누구를 기쁘게 하는 일입니까? 내 이웃이 기쁜지 아니면 내가 기쁜지 정말 냉정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억지가 심합니다. 그저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내 이웃이 기뻐해야 합니다.
반드시 내 이웃에게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그 이웃에게 무엇으로 기쁨을 줄 수 있는가 하면 오직 구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말하는 그런 구원이 아니라 믿음으로 역사하는 구원이 있다면 이웃은 분명히 기뻐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혼 구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종교 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까?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정말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무 것이나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행위도 영광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로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이웃이 구원을 받아 기뻐하는 그 일로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아무 것이나 가지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말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 것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생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그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미사여구를 써 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시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한 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같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이 같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입에서는 오직 복음의 말씀만이 나왔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도 내 이웃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에서도 역시 천국복음이 나와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누가 할 수 있는가 하면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입니다 이 성도를 로마서15장에서는 강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한 자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을 이기신 것과 같이 우리 안에 그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강한 자입니다 이 강한 자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 일로 우리 이웃이 구원을 받는다면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이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로마서15장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로마서15장에 와서 이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13장까지 정말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그 복음을 보고 듣고 믿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장에서 우리를 남의 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인인가 하면 복음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남의 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 성도가 복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면서 우리 성도들을 남의 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장입니다
이제 우리를 강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든든히 서 있는 강한 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 강한 자는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 성도는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강한 자는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이웃을 기쁘게 하고 있는가 하면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그가 복음을 듣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마음과 한 입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우리 이웃을 기쁘게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삶입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3장까지 우리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로마서13장까지 복음을 듣고 믿으면 이제 성경을 스스로 볼 수 있을 정도가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사람들의 말 따라 성경의 기초가 되는 모든 말씀들이 다 있다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 모든 말씀을 보고 듣고 함으로 해서 강한 자가 되었으면 이제 스스로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로마서 강해를 거의 마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로마서15-16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말씀은 13장까지 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듣고 믿어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우리 성도는 강한 자라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그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우리 강한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면서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같이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성도는 마땅히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강한 자가 되어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는 마땅히 이 일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9:10절을 보겠습니다. (신 128쪽)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 전하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받으셨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찾아 왔는데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받으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복음을 전파를 하시고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다 하신 일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이 조금 더 쉽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여러분을 받아들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신 것이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 주시고 그 빛을 보고 믿고 있는 우리 성도를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먼저 주님께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두움에 거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는 어떻게 해도 이 복음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먼저 찾았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삭개오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삭개오가 먼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께서 삭개오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왜 삭개오를 만나로 오셨는가 하면 삭개오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만나셔서 그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보면 삭개오를 만난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과 같이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순서는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 성도는 그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선지자들이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신 그대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전제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된 그대로 이미 모든 것을 이루셨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입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육체를 입고 있어서 천국에 가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삭개오를 받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시간적으로는 삭개오를 만나신 것이 그리고 그를 받으신 것이 먼저지만 주님은 성경에 기록이 된 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영광을 돌리신 것이 먼저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냥 우리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파를 하시면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입니다.
앞으로 되어 질 것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영의 일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믿고 있는가 하면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사람의 이성을 따라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다보니까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미리 이루어졌습니다.
아니 이루어진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영의 일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고 우리를 받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잃어버린 자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우리를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복음을 전파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고린도후서4: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90쪽)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강한 자입니다. 마땅히 이 세상에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믿으면 마치 주님께서 우리를 받으시는 것과 같이 우리도 역시 그들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고린도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1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자기가 직분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직분을 받았는가 하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나타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복음을 전파를 했습니다. 그리스도 영광의 복음의 광체를 너희에게 비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떠한 마음으로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이 너희를 위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하면 사도 바울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이 일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고 또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해서 이 시대 우리가 복음을 듣고 주님께서 받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강한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4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입은 자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입은 자는 이 세상에서 영광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듣고 믿음으로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살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맹목적으로 자기들이 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불교에서 말하는 사는 것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는 것이 차이가 없습니다. 이 세상 종교에서 말하는 사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를 하면서 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영광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영으로 부활하셔서 천국에 올라가신 것과 같이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영이 거하시고 우리도 역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복음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서로 받기만 하면 됩니까?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의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합니까?
그리고 교회 안에 한 사람이 들어옵니까? 그것을 보고 서로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그가 구원을 받아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그것을 서로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구원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삽니다.
어떻게 삽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육체는 절대로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육체가 다시 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체가 다시 산다는 것은 불교의 사상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누구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수 있습니까? 그것을 미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살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강한 자가 되어 있는 성도도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받음으로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내 이웃이 사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렇게 기쁜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네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떻게 해야 기쁜 줄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기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어떻게 받으셨습니까? 우리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강한 자도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함으로 해서 그를 살리게 하는 일을 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이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너무도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종교를 전하고 있다면 사도 바울은 굳이 로마서15장을 기록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습니다.
적어도 너무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이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시대 우리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가 1.000명만 되도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더욱 많이 은혜를 받은 우리 강한 자가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부탁하셨습니까?
기독교인들과 같이 많은 사람이 이 일을 하고 있다면 굳이 그렇게 까지 부탁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100명만 되어도 저는 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제 곁에 10명만 있어도 굳이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한 마음입니다
제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물론 이 일을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적은 숫자가 이 복음을 듣고 있고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강한 자로서 더욱 이 일에 힘써야 합니다.
로마서15:8절을 보겠습니다. (신 259쪽)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를 받은 사람의 종이 되셨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증하시고,”
복음입니다
율법을 모르면서 복음을 안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기독교 사를 보면 율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은 문자적으로 세상 초등학문으로만 율법을 보았지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교에 빠지는 것을 아주 싫어하시고 있습니다. 왜 종교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시는가 하면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요한계시록의 환상 그대로 이 세상은 두 짐승에 의해서 완전에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먼저 유대교가 짐승이 되었고 이제 그 유대인을 버리시고 주님께서 오셔서 이방에 빛을 비춰주셨지만 이방의 교회 역시 짐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그대로 이 시대는 종교가 되어서 짐승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방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방인들은 유대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고 난 후에 불과 200년이 지나기도 전에 이방의 교회는 역시 종교가 되어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감히 건들 수 없는 거대한 짐승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교회 역시 유대교인들과 같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는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 초등학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빛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같이 어두움에 거하고 있습니다. 왜 어두움에 거하고 있는가 하면 이방인들 역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빛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반드시 빛을 보아야 합니다.
어두움에 거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 무엇인지 어두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소경이 되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소경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 소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율법으로 생각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종교에 의해서 끊임이 없이 세뇌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는데도 율법으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우리를 받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받아주신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제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강한 자 역시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우리 이웃을 기쁘게 함으로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이웃이 듣고 믿음으로 해서 천국의 기쁨을 누릴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편33:4절을 보겠습니다. (구 824쪽)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진실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행사는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그런가 하면 우리 구원에 대해서 그렇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복음의 빛을 못 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볼 때 이 영생을 생각하면서 보면 최소한 실수는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진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 진실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행사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살아가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자기들의 행위가 마치 하나님의 행사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오직 우리 구원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구원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행사가 얼마나 진실하신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생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은 오직 우리 영생에 대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영생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 신체가 영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그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고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진실하심입니다.
다른 것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 일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모두가 종교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바로 이 영의 일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우리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창세기입니다
아담이 범죄를 하자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죽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혀주시는 것을 상징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음으로 해서 아담이 구원을 받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담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시대는 아담이 구원을 받은 것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담은 가죽 옷을 입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아담의 구원을 예표로 보여주시면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구원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의 구원에 대한 예표입니다 아담과 같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진실입니다 그것을 누가 이루셨는가 하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이 시대 역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예복을 입기를 거절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에 옷입니다
아담은 그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지만 그들은 입기를 거절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만나는 대로 부르셨지만 그들 역시 입기를 거절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에 대해서 진실하심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 주셨지만 사람들이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실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기보다는 자기들의 행위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의로 옷을 입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진실하심을 보여 주셨지만 사람들은 끝까지 거절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거절을 하는 것을 아시고 주님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실하신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에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진실함을 나타내셨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진실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성경입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선지자들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의 아들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하면 아담에게 의에 옷을 입히시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밝혀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말씀을 하는 영의 일입니다
구원입니다
우리의 영의 구원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진실하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왜 진실하신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막연함이 행위로 빠져 들어가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도 이 시대는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거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할례를 받으신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과 같이 할례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으셨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지금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께서 할례를 받은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3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로마서15:8절 킹제임스번역을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말하노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할례의 일꾼이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고히 하시고”
킹제임스 번역이 잘 번역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내가 말하노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할례의 일꾼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번역들을 참고 해야 합니다. 물론 한글개역성경이 기초가 되고 있지만 그것으로 뜻을 알기 어려울 때는 다른 번역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번역을 볼 때는 그것이 복음에 맞는가를 늘 생각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도 킹제임스 번역이 복음에 근접하게 번역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한글개역성경으로 그 뜻을 알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한글개역성경으로는 그 뜻을 다 알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그러나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례의 일꾼이 되셨다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한글개역성경에서는 할례의 수종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성경 다 같은 뜻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알고 있다면 어느 번역을 보든지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번역을 보더라도 그 뜻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할례의 수종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육체적으로 할례를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로마서 강해를 했을 때는 그렇게 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롭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누가 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로마서15장에서 그것을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할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례라는 율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대표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할례라는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이 할례입니다 그런 의미를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 성경이 바로 보일 수 있습니다.
대표성입니다
율법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이 할례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어떻게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킹제임스 번역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할례의 일꾼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의미에서 입니까?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같이 입니다. 할례를 받은 각 사람에게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할례의 일꾼이 되셨다는 말씀은 율법을 지키셨다는 말씀입니다 할례의 수종자라는 말씀은 율법을 마치 종과 같이 이 세상에 오셔서 지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4가지 속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각각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으로서의 예수님, 종으로서의 예수님, 사람으로서의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각각의 제자들이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종으로 오셨습니다.
어느 의미에서 종입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종의 의미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할례의 수종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심으로 해서 스스로 종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의 대표입니다. 그리고 그 할레를 지키는 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지키는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할례의 수종자입니다. 어떻게 할례의 수종자인가 하면 모든 율법을 지키는 종이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진실을 위하여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셔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그것을 마태복음에서 내가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의 수종자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할례를 행한 각 사람에게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할례의 수종자가 되셔서 율법 전체를 지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지키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진실을 위하여 지키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종입니다
어느 의미에서 종입니까?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주님이 종이 되어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부요하신 자가 되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에게 꾸어 부요하게 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부요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진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진실입니다 만약에 이 진실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진실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만약에 지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율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실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문자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왜 주님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말씀하신 영의 일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실 수 있는데 이 시대 교인들은 모두가 할례의 수종자가 되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할례는 받지 않고 있지만 할례의 수종자와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1: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할례의 수종자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까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 복음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키신 일입니다.
다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키신 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아니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그렇게 믿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15장에서 말씀하는 이 말씀에 대해서는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일에 대해서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문자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지를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주의 형제 야고보가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로마서의 말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의 말씀은 더욱 더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을 지금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례의 수종자가 되었습니까?
그것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야고보서 강해를 통해서 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실행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실행을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온전히 지키신 율법을 보고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실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은 종으로서 율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진실하심 속에서 구원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실행을 하는 자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려다보고 실행을 해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따라 복을 받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주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왜 되셨는가를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유하는 율법을 들여다보고 실행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영의 일들을 보고 믿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성경의 문자에 갇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는 이것을 들여다보았으면 실행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을 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릴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0:4절을 보겠습니다. (구 292쪽)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할 것이며”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님이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율법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는가를 이 시대 목사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만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할례의 수종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 인생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할례의 수종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주님은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는가 하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기 위해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진실하심을 미리 성경에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조상입니다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무슨 약속을 하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약속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하나님이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율법입니다
골로새서에서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이 누군가 하면 바로 율법입니다 이 시대는 율법이 어떻게 대적하는 줄을 전혀 모르고 그저 교회에 나오면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대적이 누군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대적을 치고 구원을 하셨는가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의 대표성을 갖는 것이 할례입니다 그 율법이 우리를 대적하고 거스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대적을 치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하면서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견고케 하시기 위해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대적이 이스라엘에게는 보이는 대적이었지만 이 시대는 우리 영혼을 죽이는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아담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진실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셔서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들이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대적입니다
그 대적을 치고 구원을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하면서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영의 비밀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세상 초등학문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 복음의 비밀을 보고 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그들의 대적을 치고 구원을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 성도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실행을 할 수 있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믿음입니다.
이렇게 믿는 성도들에게 복이 있다고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말씀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어떻게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할례의 수종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러한 일을 하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영혼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육의 이스라엘의 대적을 치고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을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성경을 보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그 약속들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기 때문에 구약에 하신 약속들이 견고케 되어서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그들이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인데 그저 교회에만 나오면 자기들이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그런 막연함을 주고 있고 그것이 모두를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로마서15:9절을 보겠습니다. (신 259쪽)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방 사람들도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주님께 찬양을 드리며, 주님의 이름을 찬미합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 그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보고 실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보고 믿는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믿는 성도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온전케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례의 수종자가 되셔서 율법을 지키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로마서의 말씀을 보면서도 할례의 수종자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로마서의 말씀을 보면 할례의 수종자가 무엇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 주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는가 하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실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범죄를 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죽이시지 않고 그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에게 이 구원에 대해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견고케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신 것을 문자적인 지식으로는 알고 있지만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믿지 못하는가 하면 성경을 보면서 우리의 구원에 대한 말씀으로 보고 있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입니다
정말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다 거짓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우리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성경을 바로 볼 수 있게 하시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 성경은 아무에게나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성경을 바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것을 이렇게 믿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주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심으로 해서 더욱 견고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도서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9쪽)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에게 이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복음이 무엇인가도 모르면서 그저 성경의 문자를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복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내가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조상들의 대적을 치는 것을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육의 일을 영의 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더욱 견고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심으로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영의 일인데 그 일로 인하여 우리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입니다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래도 성경이 있었고 믿음의 조상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없는 그저 우상을 따라 가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모두가 우상을 따라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든지 모두가 우상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우상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주님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신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이방인들은 주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주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 이방인들이 그의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정말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의로워서도 아니고 내가 선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우리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긍휼하심을 어떻게 받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심으로 해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 어느 것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구원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성경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할례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할례에 대해서도 모르다보니까 로마서의 말씀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것을 야고보서에서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야고보서의 말씀을 보고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려다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들여다보아야 행할 수 있는데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너무 맹목적이라고 밖에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이방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그것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할례의 수종자가 되셔서 율법을 지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 역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셔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의 긍휼하심을 받을 수 있어 구원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님이 이렇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셔서 우리 인생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것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로마서를 보고도 무슨 말씀인가를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시편18:49절을 보겠습니다. (구 815쪽)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15장에서 또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고 우리 이방인들이 그의 긍휼하심을 인하여 구원을 받았고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강한 자로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이 은혜를 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시 로마서15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다시 상기시켜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이방인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은 모두가 사망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아담이 범죄를 하는 그 순간에 벌써 멸망을 당했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히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님께 감사하는 사람도 없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열방입니다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심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고 우리 이방인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면서 사도 바울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 일을 늘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그 사실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이 일을 깨닫고 주님께 감사하고 있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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