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너희는 귀를 기울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성막에 대하여

제6강, 진설병상

윤주만목사 2017. 1. 19. 06:01

출애굽기25:30절을 보겠습니다. (구 121쪽)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찌니라”

 

성막이 있습니다.

성막 문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있는 것이 번제단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와 번제단 사이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이 물두멍 속에 있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미하고 물로 씻는다는 것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사장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있고 제사장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할 때 반드시 물두멍에서 씻고 했습니다. 씻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씀을 하면서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 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번제단에서 화제를 드릴 때나 성소 안에 있는 진설병상, 등대, 분향단을 섬길 때 반드시 물두멍에서 씻었습니다.

 

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데 성소에는 진설병상과 등대 그리고 향단이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면 증거궤가 있고 속죄소가 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있는 진설병상입니다. 성소에 들어가자마자 우편에 진설병상이 있는 것으로 성소의 모형에서 보여 지고 있습니다.

 

성소의 크기입니다.

지금 치수로 하면 세로가 9미터 정도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로는 4.5미터 정도 됩니다. 그리고 지성소의 크기는 정사각형으로 가로세로가 4.5미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크기 안에 우측에 진설병상이 있고 좌측에 등대가 있고 휘장 앞 중앙에 분향단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신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이제 하늘에 올라 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그래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이스라엘에게는 단지 이 성막을 보여 주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 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모형과 그림자를 보고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정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을 보고 알아야 했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하늘에 올라 가셨는데도 역시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고는 사람이 아무리 성경을 많이 보아서 영생을 얻으려고 한다 해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늘 깨닫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13장에서 짐승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신 후에 믿는 이방인의 교회도 역시 짐승이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을 보고 제사제도를 통해서 직분을 행하고 하면서 또 율법을 지키면서 종교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다릅니다.

성경에서 모든 것을 계시를 해 주고 있지만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제사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제는 자기들의 지식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의 지식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상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그래도 지금 70세 이상 된 목사들은 아마도 성경을 백독 이상씩은 했을 것입니다. 예전에만 해도 목사가 성경을 그렇게 읽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목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인터넷이 발달을 하다 보니까 굳이 성경을 안 보아도 목회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시대입니다.

 

설교 사이트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저 신학에서 종교적인 것을 배우고 나면 성경은 얼마든지 자기들 마음대로 전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목사가 남이 쓴 설교를 그대로 한다고 해서 다 나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이 진리를 전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 설교를 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 사이트에 수십만 건의 설교가 있지만 실제 진리를 말씀하고 있는 설교는 지극히 적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을 먹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지식과 그리고 예화와 세상의 것을 듣고 있습니다.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들으면서도 이 세상의 종교적인 생활을 하는 자기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짐승이 되어서 우상숭배를 했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교회가 짐승이 되어서 우상숭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입니다

육체는 늘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무한정하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먹지 말아야 하는 것도 또한 그만큼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을 하지 못하면 다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부모가 주는 대로 다 먹습니다. 그것에 독이 있든지 아니면 좋은 먹을거리든지 부모가 주면 그대로 받아먹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모라 해도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것에 조금이라고 의심을 하고 있다면 절대로 먹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주는 대로 먹고 있습니다. 이제 때가 오래 되었으면 내가 먹어야 하는지 안 먹어야 하는지 스스로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도 아직까지도 어린아이와 같이 아무 것이나 다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사가 주는 것은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더 믿으면서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먹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기 생명에 대해서 지혜를 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자기 생명에 대한 문제라면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가를 스스로 살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주면 그냥 받아먹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당장 육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있어서 그저 주는 대로 받아먹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3:9절을 보겠습니다. (신 369쪽)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성경 식물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텍스트는 식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텍스트가 마치 생명의 양식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텍스트가 생명의 양식이었다면 이스라엘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저 식물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텍스트로 보고 있는 말씀은 이 세상의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을 했다 해도 그 말씀에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이 세상의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식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식물로 말미암은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람들이 지적인 수준이 높아지고 모두가 대학을 나오다 보니까 성경을 쉽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 안에 있는 텍스트를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면서 자기가 영생에 대해서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식을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는 것을 절대로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내가 성경의 모든 비밀을 안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자기에게 있지 않다면 그는 버림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조금 더 아는 지식을 가지고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지식이 앞섭니다.

솔직히 머리들이 좋다 보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들이 줄줄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머리가 나빠서 외우지를 못하는데 너무도 잘 외우면서 자기가 필요한 말씀을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성경적 지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안다고 해서 마치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로서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 상고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안다 해도 그것으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에게 있지 않다면 유익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상대가 거저 주는 것입니다 내가 받고 싶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나를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는 가 정말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에게 은혜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 다른 교훈들이 세상의 교훈이 아니라 성경 안에 있는 교훈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교훈이라고 하니까 이상한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다른 교훈은 이미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 있었고 고린도교회에도 다른 교훈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있었지만 가만히 들어와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다른 교훈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율법의 교훈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발람의 교훈도 있습니다. 또 니골라당의 교훈도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교훈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수도 없이 많은 다른 교훈들로 인하여 진리가 훼손이 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가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다 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똑같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면 이 시대는 하늘에 계신 주님을 다시 끌어 내려서 십자가에 못 박고 현저히 욕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교회 안에서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주 쉽게 다른 교훈에 빠지고 있으면서도 주여 주여 하고 있는 자기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은혜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요한복음5:39절을 보겠습니다. (신 151쪽)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을 왜 봅니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그 안에 있는 말씀들을 듣고 이해를 하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시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조상대대로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고 연구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늘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성경을 보았는가 하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많이 보고, 바리새인들 같은 경우에는 평생을 성경을 보면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생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까?

그리고 매주 설교를 듣고 있고 또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반드시 영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늘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예표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살았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인들 역시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지혜가 부족합니까?

그들은 더구나 히브리어를 어려서부터 사용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 신학자들이 아무리 히브리어를 공부를 많이 해서 설령 유창하게 구사를 한다 해도 이스라엘에게는 따라가지를 못 합니다. 그런 그들도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게 대해서 증거 하는 것을 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자기들의 육체의 일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신앙인으로는 모범적인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경륜하시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믿음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알아야 믿을 것 아닙니까?

성경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내게 대해서 기록한 말씀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못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을 많이 보고 많이 문자적으로 안다고 해서 말씀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그저 이 세상의 지식이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지식을 많이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설병입니다

이 진설병은 지극히 거룩한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 문자 그대로가 지극히 거룩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여렸을 때는 성경을 정말 조심스럽게 간직을 했습니다. 오래 사용을 해서 찢어진 성경책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 줄을 몰라서 고민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언젠가도 그런 질문을 받는 적이 있습니다. 떨어진 성경책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 가를 상담을 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가 하면 지극히 거룩한 떡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것을 함부로 처리를 했다가는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그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도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 가슴에 대고 들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이 너무도 거룩한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이 지극히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책입니다

이 세상의 책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그 안에 있는 말씀이 거룩한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거룩한 성경에서 말씀을 어려서부터 보고 연구를 했지만 그들은 지극히 거룩한 진설병을 전혀 먹지를 못했습니다.

 

요한복음6:48절을 보겠습니다. (신 154쪽)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주님이 생명의 떡입니다

성막에서 성소에 올려 졌던 지극히 거룩한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생명이 떡이 아니라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먹어야 생명의 떡을 먹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읽고 듣는다 해서 생명의 떡을 먹는 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스라엘은 이 성경을 보았지만 생명의 떡을 먹지 못했습니다.

 

왜 못 먹었습니까?

그들에게 생명의 떡이 안 주어져서 먹지를 못했습니까? 이미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은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아서 생명의 떡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았습니다.

사실 율법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 계시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율법을 해석한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자가 누구라는 것을 이미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생명의 떡을 먹지를 못했습니다.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생명의 떡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진노의 포도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정반대로 해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도 오묘해서 진노의 포도주를 먹여도 사람들이 그것이 옳다고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이 생명의 떡은 내가 성경을 본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반드시 하늘에서 내려 주셔야 내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지식이 뛰어나다 보니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산 떡을 먹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육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이 이해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가를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 생명의 떡을 먹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다른 것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이 떡을 먹어야 합니다. 그냥 한번 먹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이 떡을 계속해서 먹어야 합니다. 내가 아주 조금 먹은 것으로 마치 생명의 떡을 다 먹은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시대 목사에게서는 이 생명이 떡이 사라졌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본 목사들 중에 생명의 떡을 먹이고 있는 사람은 못 보았습니다. 제가 잘 났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저 역시도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역시 진노의 포도주를 먹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듣는 것은 이 세상의 종교입니다

그것을 듣고 있다고 해서 마치 생명의 떡을 먹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다 구원을 받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들이 어떻게 악한 행위를 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경계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생명의 떡을 먹기 보다는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목사도 진노의 포도주를 먹입니다.

그것을 교인들이 싫어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만약에 제가 생명의 떡을 일반 교회에서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에 의해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에게서 쫓겨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여 주셨듯이 지금 이 시대 교회는 다 짐승이 되어서 우상에게 경배를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생명의 떡은 단단해서 도무지 먹을 수도 없고 소화도 못 시킵니다.

 

진설병입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산 떡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이 떡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행위로 이 떡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이 떡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율법에 아론과 그 자손들이 먹으라고 하니까 의무적으로 이 떡을 먹고 살았습니다.

 

출애굽기25:23절을 보겠습니다. (구 121쪽)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상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상은 떡을 올리는 상입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면 우측에 이 떡 상이 있습니다. 떡 상이라고도 하고 진설병상이라고도 합니다. 이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떡 상은 넓이 90, 폭 45, 높이 70cm밖에 안 되는 낮고 작은 금상입니다. 이것의 수치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말씀을 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떡 상을 왜 만들라고 하십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을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생명의 떡을 먹이기 위해서 이 진설병 상을 만들라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전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저 율법에 따라 이 떡 상을 만들고 또 율법에 따라 떡을 올리고 율법에 따라 내려온 떡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먹었습니다.

 

출애굽기25:24-28절을 보겠습니다. (구 121쪽)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달라 이는 상 멜 채를 꿸 곳이며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조각목으로 만듭니다.

이 조각목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떡 상을 만드는데 조각목으로 만들고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고리 넷을 만들어서 그 네 발위 네 모둥이에 달되 턱에 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만듭니까?

성소의 기구들 중에는 반드시 채로 꿰어서 어깨에 메고 가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떡 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막이 이동을 할 때 그냥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 율법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금은 생명을 상징합니다.

성막의 기구들 중에 금으로 한 것이 있다면 다 생명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있어 생명입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고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오직 예수가 아니라 다른 교훈들이 들어와서 미혹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떡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만들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생명의 떡을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생명의 떡이 올려지고 내려온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조각목에 금으로 싸서 만들었습니다. 모세가 하늘의 것을 보고 그림자와 모형으로 이 진설병 상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형식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형식을 보고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떡 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찬 예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떡과 포도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런 형식의 행위를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성찬기라고 하면서 거의 통일되게 만들어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성물이라고 하면서 아무나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흰 장갑을 끼고 분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식을 보면서 그 떡을 먹으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를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것 같이 생각하면서 그것을 얼마나 거룩하게 진행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성찬기입니까?

그 떡이 거룩합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떡은 사람이 만든 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기념을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성찬기라고 하는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뭐가 다릅니까?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식양대로 떡 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얼마나 거룩한지 그것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하는 그들이 그 예식을 섬기고 있었고 그 떡 상을 지극 정성으로 섬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이 떡 상을 만들라고 하신 것이 절대로 아닌데도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습니다.

 

성찬기가 왜 필요합니까?

솔직히 구약의 제사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기념해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 성찬기를 아주 보물 다루듯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면 이스라엘과 같이 버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를 만드는 순간 그것은 이미 짐승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그런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마치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떡에 참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성찬기가 거룩해서 그 떡이 거룩한 것으로 알고 그것을 먹을 때 얼마나 경건하게 먹고 있습니까?

 

떡 상입니다

그것이 정말 거룩했다면 하나님께서 왜 성전을 무너뜨려 버리셨겠습니까? 지극히 거룩한 떡을 먹이려면 반드시 이 떡 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그저 거룩한 떡을 먹는 행위에 빠져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성전을 다 무너뜨리셨습니다.

 

떡 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떡은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생명의 떡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떡을 육적으로는 먹었지만 생명을 얻지 못 했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그것을 아무리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것이라 해도 그것을 섬기다가는 망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성막을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섬겼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도 그렇게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만든 것을 거룩하다고 여기면서 정성을 다 해서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24:5-7절을 보겠습니다. (구 184쪽)

“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둘을 굽되 매덩이를 에바 십분 이로 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고운 가루입니다

이 가루는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소제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가루를 취해서 떡 열둘을 굽되 매덩이를 에베 십분의 이로 하여 여호와 앞에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열둘입니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전혀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런 의미도 있겠지만 이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숫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숫자 가운데 1, 3, 7, 12, 24 등 이런 숫자들은 하나님의 완전 숫자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바 십 분의 이는 지금 단위로 하면 4.4리터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적은 떡이 아닙니다. 4.4리터에 물론 누룩을 섞지 않았다 해도 작은 크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에바 십 분의 이로 하게 하셨는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떡 상과 떡이 중요하지 그 크기는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시편12:6절을 보겠습니다. (구 811쪽)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 앞에 순결한 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상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하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순결함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깨끗함을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의 문자 그대로가 순결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가 순결하다는 말씀이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 못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순결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지만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는데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다면 이 시대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도 종교에 빠져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순결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제자들이 이미 깨끗해 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떡 상이 순결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순결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그 떡 상이 순결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순결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이 떡 상에 올려지는 떡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결하게 보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시대는 지식이 병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마음부터가 벌써 잘못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가 나타내고 있습니다.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기 까지는 우리를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을 했다는 것을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깨닫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 은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순결하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마음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를 통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행하기까지는 정말 우리를 흙 도가니에 넣고 일곱 번을 단련을 했다는 것을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두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주셨지만 그들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방인들에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도 은혜를 주셨고 또 이방인들에게도 은혜를 주셨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에게 생명의 떡을 주셨지만 그들은 먹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주셨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먹지를 못했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 초대 교회를 제외하고는 이 거룩한 떡을 먹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두 줄로 떡을 진설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떡은 정결합니다. 부정한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24:8-9절을 보겠습니다. (구 184쪽)

“항상 매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찌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찌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항상 매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왜 이 떡을 진설을 하게 하셨는가 하면 이스라엘을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떡을 받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떡을 매안식일에 진설을 합니다. 그러면 새 떡이 올라가고 이제 떡 상에 있던 떡이 내려옵니다. 그 떡을 누가 먹는가 하면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돌리고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막 안에서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매안식일에 새 떡이 올라가고 그러면 일주일 동안 있었던 떡이 내려옵니다. 그 떡을 아론과 그 자손들이 먹는데 이 떡이 지극히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영원한 언약입니다.

 

고린도전서10:16-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75쪽)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이 떡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어떤 언약인가 하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를 하는 언약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만찬을 하시면서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떡은 주님께서 영적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영원한 언약입니다 주님께서 살을 떼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한 떡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직접 본을 보여 주시면서 주님의 몸에 참여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떡을 먹는 자는 주님과 한 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이 떡을 먹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이 떡을 먹고도 주님과 한 몸이 되지를 못 했습니다. 이 떡의 의미를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매안식일에 이 떡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떡 상에 있던 떡을 가지고 내려와서 그것을 아론과 그 자손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었습니다.

 

올라갈 때는 이스라엘이 만든 떡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내려오는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매안식일에 떡을 만들어서 떡 상에 올렸습니다. 그 떡을 고운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내려오는 떡은 지극히 거룩한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떡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서 올려지는 떡입니다

그 떡을 안식일에 내려와서 아론과 그 자손들이 먹었습니다. 그 자손들이 먹었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것을 먹음으로 해서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떡은 하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생명을 얻는 떡은 하나입니다 성도는 이 떡에 참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이 떡을 먹었지만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를 하지 못 했습니다. 그저 규례대로 이 떡을 먹었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지를 못 해서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떡은 하나입니다. 다른 떡이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세상에 어떤 떡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오직 이 떡에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먹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떡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이 떡을 먹어서 자기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영생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떡을 먹다가 결국에는 망하는 길로 갔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방의 교회들도 역시 이 세상의 떡을 먹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세상의 떡을 먹었다면 지금 이 시대는 두 가지 떡을 다 먹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떡입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 해야 자기들이 원하는 좋은 곳으로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은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 차이입니다

이 세상 떡은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고 또 선하고 의로운 행위들을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고 천국이든지 극락이든지 갈 수 있다고 말 합니다. 세상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 이 떡이 분명히 맞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에 합당한 일을 한 사람이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누룩이 섞인 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가는 것이 당연히 맞지만 하나님의 법 아래서는 아무리 선하고 의롭다 하는 사람도 다 죄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누룩이 섞인 떡을 먹고 있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교하는 눈이 있어서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율법의 떡을 먹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실제 분명히 사람의 이성으로는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안 됩니다.

테레사 수녀의 행위가 아무리 선하고 의롭다 해도 그 역시도 사망의 죄 아래 살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종교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성인이라고 합니다. 성인이 천국에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복음이 있는 성도가 테레사 수녀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하면 그들은 절대로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한 떡을 먹어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가 먹은 떡은 이 세상의 누룩 섞인 떡입니다 그 떡으로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그 떡 먹기를 좋아하고 있고 그 떡이 사망으로 끌고 간다는 말을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56절을 보겠습니다. (신 154쪽)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주님의 살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성소의 떡 상에 올려 있던 떡입니다 그 떡이 매안식일에 내려와서 제사장들이 먹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주님의 살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주님의 살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마치 주님의 살을 먹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하늘의 일을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의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 살을 먹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지 않으면 주님이 내 안에 거할 수 없고 또 주님 안에 내가 거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떡입니다

그 떡을 먹어야 한 몸입니다 이것은 우리 이성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영의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겠습니까?

 

이것이 영의 비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지극히 거룩한 떡을 먹으면서도 그것을 육적으로만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떡을 먹는 자기들이 지극히 거룩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 시대 성찬을 하면서 떡을 떼어 먹으면서 자기들이 성도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보기에 거룩한 의식을 행하면서 그 떡을 받아먹으니까 자기들이 지극히 거룩한 제사장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 하면 어떻습니까?

솔직히 성찬 예식을 안 하면 어떻습니까? 그것을 안 한다고 해서 우리가 주님의 떡을 안 먹습니까? 우리가 한 떡에 참여를 하지 않고 있습니까? 성도는 늘 이 떡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 의식이 아니라 영의 말씀을 통해서 이 떡을 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성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살을 먹을 수 있습니까? 설령 주님의 살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안다 해도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있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이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주님이 거하신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까? 그것을 겉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도는 성경 안에서 한 떡에 참여를 함으로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 내가 믿기 싫다고 안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그것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 떡을 제사장들이 먹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제사장들이 누구입니까?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이 떡을 먹어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떡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떡을 안 먹습니다.

그들은 진짜 성소에서 나오는 떡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살을 먹는 것을 거절을 했습니다. 지금도 이 떡을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을 보면서 문자에 갇혀서 육적으로 살아가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자기들이 생명의 떡을 먹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51절을 보겠습니다. (신 154쪽)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입니다

성소에 있는 떡 상에 올려 졌던 진설병이 안식일에 내려오는데 그 떡이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예표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이 떡을 지극히 거룩한 곳에서 먹었지만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은 것이 아니라 제사에 의한 떡을 먹었습니다.

 

제사 원치 아니하십니다.

율법에 정해진 제사에 따라서 그 떡을 먹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너무 몰랐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그 행위를 보면서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하늘의 지혜를 구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자기들의 행하는 것을 보고 지혜롭다 생각해서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떡을 먹어야 영생을 합니다.

제사 제도에 율법으로 지극히 거룩하다고 하는 그 떡을 먹어야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깨달아야 자기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정말 오묘합니다.

이 떡이 사람들의 지혜로는 절대로 안 보입니다. 물론 문자적으로 들어나 있는 것은 지식적으로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이 떡이 다 비유로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성경을 수백 번을 읽고 평생을 성경을 연구해도 이 떡을 먹을 수 없습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 주셔야지 먹을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새 떡을 올립니다.

그러면서 다시 안식일이 오면 새 떡이 올라가고 이제 떡 상이 있던 떡이 내려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이 내려와 제사장들을 먹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사장들이 지극히 거룩한 떡을 먹어야 이스라엘 백성이 그 떡을 알고 제사를 드릴 수 있는데 제사장들이 몰랐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행위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 떡이나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축복만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화도 같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복과 화에 대해서 너무 몰랐고 스스로 화를 자초하면서 율법에 점점 빠져 들어갔습니다.

 

신명기30:15절을 보겠습니다. (구 310쪽)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율법과 성막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의 복과 사망의 화를 네 앞에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리석게도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을 먹지 않고 사망과 화를 당하는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생명의 복과 사망의 화를 이스라엘 앞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떡을 먹기를 사모하기 보다는 사망의 화가 있는 율법의 떡을 먹기를 즐겨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신약에서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생명의 복과 사망의 화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누구는 생명의 복을 받고 누구는 사망의 화가 임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적습니다.

어느 정도 적은 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성령으로 난 사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도 다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세뇌가 되어 있어서 자기들이 성령을 받아서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성령으로 난 사람이 그 교회사에서 보입니까? 제가 보는 교회사에서는 한 사람도 안 보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교회사에서 성령으로 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역시 성령으로 난 사람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성경이 예표를 해 주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노아 한 사람만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할 때 의인 다섯이 없어서 그 성이 불과 유황불로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갈 때 단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얼마나 빨리 타락을 했는가를 사사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타락을 하면 그들을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나 반복을 했는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있는가 하면 그들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감겨져 있어서 그런 말씀들을 보고도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만큼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스스로 자부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이 세상에는 믿음이 있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 시대도 믿음이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성경을 비추어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화 있을찐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 일곱 번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이 생명의 떡을 먹지를 않고 있기 때문에 화가 그들에게 임하고 있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자기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33-36절을 보겠습니다. (신 153쪽)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떡입니다

이 떡을 먹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먹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떡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거룩한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이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달라고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제자들은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극히 거룩한 떡을 먹고도 그 떡이 무엇인가를 몰았던 것과 같이 아직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지 않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너무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육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상이 다 자기가 율법을 잘 지켜서 선하고 의로워져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시면서 이 떡을 먹어야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 없어서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이 떡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의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야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믿을 수 있습니다.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소의 떡 상에서 내려온 거룩한 떡을 먹었지만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 떡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믿을 수 있는데 그저 하나님이 거룩한 떡이라고 하니까 거룩한 떡으로 알고 거룩한 곳에서 그것을 먹고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물두멍에서부터 씻지를 않았기 때문에 제사를 성소를 섬기는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행위로만 했습니다. 실체를 보아야 믿을 수 있는데 그림자만 보다 보니까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실체를 못 보았으면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지혜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6:63절을 보겠습니다. (신 155쪽)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육적으로 어떤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이 얼마나 무익하다는 것을 모르고 이 시대는 완전히 행위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막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육으로 보고 있다면 그는 성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른 말씀은 모두가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영의 일을 우리에게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을 보고 의롭다 하시도 또 영화롭게 하셔서 생명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영의 일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다 육의 종교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했으니까 너희는 믿기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믿는 것이 바로 영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모릅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이 영의 일을 우리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주님이 생명이 떡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영의 일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가 믿는 것은 떡을 먹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 먹고 있습니다.

아니 안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거치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을 믿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종교적인 행위에 빠져 그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몰랐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제사의식이 얼마나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 했습니다. 그저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거룩한 떡이 안식일에 내려오면 그 떡을 거룩한 곳에서 먹고 있는 자기들을 보면서 스스로 거룩해 지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를 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렀으나 믿지를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고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은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성소에서 내려온 거룩한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떡이 무엇인가를 알고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믿으라는 그 말씀입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성도고 믿음을 모르고 그저 자기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보면서 믿고 있다고 하는 사람은 이스라엘과 같이 결국에는 화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사망과 화입니다

그러나 성막은 생명의 복입니다. 이 성막에서 매안식일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떡을 제사장들이 먹었습니다. 이 시대 제사장들이 그 떡을 먹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는 성도들이 이 생명의 떡을 지금도 나눠주고 있습니다. 다른 것을 먹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5:8절을 보겠습니다. (신 268쪽)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누룩을 썩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생명의 떡을 못 먹습니까? 그것은 누룩을 섞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룩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누룩이 아니라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그림자를 보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누룩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무교병입니다

그 무교병에 누룩을 섞으면 그것은 금세 부풀어 오릅니다. 사도 바울이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 누룩이 너무 많아 온 덩이를 퍼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교병을 안 먹습니다.

무교병을 주면 오히려 싫어합니다. 자기들이 예수를 믿는지 오래 되었고 구원을 받았는데 매일 그런 이야기만 하면 지겹다고 합니다. 조금 새로운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라고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목사가 아무리 무교병을 전하려고 해도 교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설령 어느 목사가 진리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무교병을 먹이려고 하면 싫어하고 있습니다.

 

누룩 섞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 율법을 섞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괴악하고 악독한 율법을 섞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얼마나 많은 율법이 성행을 하고 있는지 이제 그 누룩을 어느 누구도 걷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누룩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 누룩입니다 성경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마치 무교병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성경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누룩이 섞여 있는 떡을 먹다가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육의 일로 받아들이면서 누룩을 섞은 떡을 먹고 망 했습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소에서 매안식일에 나온 지극히 거룩한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누룩을 섞었습니다. 그 떡을 먹는 그것으로 자기들이 거룩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행위가 다 누룩을 섞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육적으로 그 떡을 먹으면서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5:12-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57쪽)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때가 오래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한 때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젖입니다 선해야 의로워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의 사상입니다

 

그것은 젖입니다

누가 그것을 모릅니까? 정말 때가 오래 되었으면 이제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젖을 먹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 젖을 먹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젖을 먹고 있는지 단단한 식물을 먹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 다 압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도 다 아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은 젖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젖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젖을 먹으면서 율법을 지키는데 너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때가 오래 되어서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면 뭐 합니까? 아직까지도 율법을 지키고 있고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의에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입니다

아니 알고는 있지만 실제 그것을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을 받는다고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합니까?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누룩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 볼 때 당연히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의롭게 보입니다. 그것은 육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말씀은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그 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의의 말씀입니다

 

알면 뭐합니까?

제가 이런 말씀을 가르쳐 드리면 뭐 합니까? 아직까지 율법에 사로 잡혀 있다면 그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이제 육의 무익한 것을 버려야 하는데 그저 지식으로만 알고 있으려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정말 냉정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내 생명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무도 여러분의 생명에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 스스로 하나님께 의지를 하고 지혜를 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내가 이 성경의 비유와 은유를 다 알 수는 없을지라도 누군가 그것을 가르쳐 주면 이제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도 율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복음과 율법에 한 발씩 걸쳐 놓고 마치 보험을 들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단단한 식물 영의 일에 대해서 먹어야 하는데 때가 오래 되었어도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에게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고는 있지만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율법의 결박을 끊어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부탁드리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먹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경 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 있습니다.

 

출애굽기25:30절을 보겠습니다. (구 121쪽)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찌니라”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상 위에 생명의 떡이 있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떡이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왕 같은 제사장은 항상 이 떡을 먹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생명의 떡을 먹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 생명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진설병입니다

다른 것을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이 이 진설병만 먹였는데도 다른 복음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오래 되어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다른 곳으로 간 사이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진설병이 있게 하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떡 상에 누룩을 섞어 떡이 올려 있습니다.

 

생명의 떡입니다

주님께서 내 살이 생명의 떡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떡을 먹어야 합니다. 실제 우리가 먹는 다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진설병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모든 일들입니다. 이 시대 제사장인 성도는 항상 그 떡을 먹고 있습니다. 그 떡을 먹고 의롭다 함을 얻어 생명을 얻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외에 다른 떡은 없습니다. 이 시대 거짓 선지자들은 이 진설병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룩을 섞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떡이 무슨 떡인가를 바로 알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영의 일을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이 떡만 먹습니다. 진설병을 먹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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