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98-2,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윤주만목사 2025. 2. 19. 08:24

로마서10:6절을 보겠습니다. (253)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영생입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신비로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 신비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도 몰랐기 때문에 모세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이 명령이 어렵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너무 쉽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켜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고시를 공부하는 것과 같이 이 성경을 달달 외울 정도로 파고들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령이 오셨어도 성경을 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같은 성령을 받아서 성경을 바로 풀어서 가르치고 있다면 이 명령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달란트의 비유에서 모두에게 재능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스스로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명령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에 누가 올라가서 이 명령을 가져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서 이 명령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오직 믿음으로 이 명령을 지킬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서 성령을 받아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지키는 것을 어렵게 생각을 해서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이 명령을 가져 와서 우리에게 지키게 할까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믿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믿음이 없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믿음이 없어서 이 명령을 지키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면 너무도 쉬운 이 명령을 마음이 콩 밭에 가 있어서 성령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명령을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까?

아니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 어렵습니까? 성경에서 복음을 아는 성도는 얼마나 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너무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들이 영생을 얻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쉽습니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하늘에 우리가 올라가서 가져와서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늘에 올라가서 가져오겠다는 것은 율법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반포를 하셨으니까 그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호세아서에서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모르니까 하늘에 올라가서 자기들이 가져와서 그 명령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서 가져오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포하신 율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의 명령은 영생입니다

이 명령을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너무 쉽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지혜를 구하지 않고 성령을 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면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이 명령을 아주 쉽게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하늘에 올라갈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먼데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이 명령을 가져와서 우리에게 가르쳐서 행하게 할 수 있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8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도 이미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명령을 지킬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령입니다

그것이 영생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고 하면서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통해서 사는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아들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아들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는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의 아들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그 생명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말하면서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말씀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역사를 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영생은 그의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합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세는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율법을 가져와서 행하게 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게 할 수 있느냐고 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어떻게 지킵니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서 지킵니다. 그런데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올라가겠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사는데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하늘에 올라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이것은 영의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의 일을 모르고 믿음이 없으면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고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구원을 믿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면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이미 그 마음에서 다 이루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모르면 사람들은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10:7절을 보겠습니다. (253)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누가 저 깊은 땅 속까지 내려갈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음의 세계에서 모셔 올리기 위하여 땅 속까지 내려갈 필요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입니다

그 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은 저도 모릅니다. 말씀 그대로 영이고 또 내세의 일이다 보니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내세의 일을 명확하게 사람의 이성으로 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 믿음을 주셨습니까?

왜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영의 일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이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는 이 영의 일을 믿을 수도 없고 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이 영의 일을 어떻게 알아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로마서를 통해서 영의 깊은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믿음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의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 어떻게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영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예표와 그림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이 한 모든 행위를 통해서 우리의 경계가 되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예표와 비유가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에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다는 말씀이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내 안에 거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절대 그렇게 못 합니다

이 영에 대해서 알아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믿음은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가 무엇인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문자만 보고 그것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의 의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으로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는 것이 믿어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에게 세뇌를 시키는 학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학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의 일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어떻게 거하실 수 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고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음부에 내려 보내시겠느냐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혹 지옥에 내려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것은 정말 무색무취합니다. 그러다보니까 늘 자기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믿음에 굳세게 서 있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초대교회와 같이 복음을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막 복음을 듣고 아직 믿음에 굳게 서 있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안 합니다

자기에게서는 의라는 것을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이성은 어떻습니까? 의로운 사람이 좋은 곳에 가고 의롭지 못한 사람은 나쁜 곳으로 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믿음에 굳세게 서 있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하게 되어 있는 생각입니다.

고린도전서16:13절을 보겠습니다. (285)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믿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믿음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처음에 이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몇 번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보았다고 해서 그가 믿음이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성경은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100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복음의 말씀을 1000개를 보고 믿었습니다.

막연하게 남자답게 강건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많이 보고 그것이 내 안에서 믿어지는 역사가 있을 때 그것이 100개가 되고 1000개가 되고 그 이상이 될 때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설 수 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믿음에 굳게 서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막연한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이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이제 나옵니다.

아니 나온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오래 교회에서 성경을 배웠다고 해도 이 믿음의 말씀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는 믿음에 굳게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모든 행위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씀이며 이 영의 일을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까?

그들은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행위로 굳게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그것을 의지해서 굳게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행위를 버리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세상을 살면서 행위를 버리고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신다고 하니까 도깨비 방망이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성경에서 복음을 계속해서 보고 믿음으로 해서 믿음에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에 굳게 서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성도들에게 내가 삼년 동안 밤낮으로 눈물로 너희를 훈계 하였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정말 성경에서 모든 복음을 다 알고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히 계시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삼년입니다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에베소에서 성도들을 밤낮으로 훈계를 했습니다. 복음을 가르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있을 때는 이들이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것과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떠나고 나자 흉악한 이리가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까?

그들은 에베소교회에서 그들이 배운 교훈에 근접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사도 바울이 가르쳤던 복음을 들으면 아마도 이상한 이단이 나왔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대는 아예 처음부터 복음을 듣지 못한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도 나중에 흉악한 이리들에게 잡혀 먹혔습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복음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아니 교회에 들어가는 자체가 흉악한 이리에게로 들어가는 형국입니다. 복음을 들어야 믿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아예 원천적으로 봉세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믿음에 서 있지를 못하고 아니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저주를 받게 하는 행위만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무슨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누가 지옥으로 가게 할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없으니까 누가 지옥에 갈까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누가 지옥에 간다고 생각합니까?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과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자기들이 이단이라고 정한 그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지옥에 내려갈까를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습니다.

지옥에 대해서 생각합니까? 우리는 지옥에 대해서 알 필요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옥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이 지옥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천국도 믿지 않고 지옥도 믿지 않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걱정합니까?

이 세상 사람이 걱정을 합니까? 그들은 지옥을 절대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누가 보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천국이니 지옥이니 해도 니들이나 가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해도 나 지옥 갈 테니까 너나 잘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너나 천국 가라고 합니다.

나 지옥 가는 것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 믿어서 천국에 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지옥을 걱정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모르는 사람이 아직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까? 영의 일을 알면 우리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모르면 누가 지옥에 갈까를 걱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걱정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3:3절을 보겠습니다. (327)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함께입니다.

성경에는 이 함께 라는 단어가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 함께 라는 단어를 거의 못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또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성경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은 간단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감추어져 있다고 하면 그렇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어떻게 감추어져 있는지를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입니다. 우리는 이 함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늘 함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나를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은 육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성경에서 깨닫게 되면 이 함께 라는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내 육체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 영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떻게 감추어져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함께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늘 함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리도 함께 죽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죽었는가 하면 율법에 대해서 우리는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함께 죽은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모두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죽은 것만 함께 입니까?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우리도 역시 함께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천국 보좌에 앉으실 때 우리도 역시 함께 앉았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옥에 갈까를 걱정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것을 다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갈까를 걱정하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직 없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고 거하지 않고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혹 음부에 내려갈까를 걱정하는 사람의 생각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면 주님은 다시 죽어야 하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게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아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지식이 없으니까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갑니까?

믿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갑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올라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해서 믿고 있습니다.

왜 영입니까?

바로 이런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의 신비로운 일로 우리를 구원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 아니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영의 일을 믿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이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행위를 의지하다가 부딪칠 돌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로마서10:8절을 보겠습니다. (253)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다시 강조를 하지만 믿음입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성경은 이 영의 일을 믿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니 누가 지옥에 가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이 영생에 대해서 바로 알 수 있고 이 영의 일을 깨달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믿음이 없습니다.

신명기30:14절을 보겠습니다. (310)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어떻게 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이 우리 육체가 아니라 영입니다. 이 영의 일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올라가서 그것을 가져오려고 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전혀 못 보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지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지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이 하늘에 있습니까? 아니면 아주 먼데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이스라엘과 같이 이 시대 역시 행위에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인 영생을 얻기 위해서 점점 더 행위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구원을 얻는 지식의 말씀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주셨지만 이 성경을 안 보고 있습니다. 보아도 다 문자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마귀가 무엇을 가지고 우리를 미혹합니까? 성경의 문자를 가지고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의 문자를 가지고 그대로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사용을 하면 그것은 마귀의 말이 되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양날의 검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하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왜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었는가 하면 성경을 가지고 다른 날을 사용했기 때문에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명기의 말씀을 보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행할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율법을 행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저주를 받는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명령입니다.

영생이 그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앞뒤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도 무조건 행할 수 있다고 하니까 율법을 행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모세는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명령인 영생을 행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행합니까?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말씀이라고 하지 않고 이 성경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보고 믿을 때 행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복음은 안 보고 율법만 보고 있습니다.

그 말씀입니다

어느 말씀입니까? 율법입니까?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모세가 그 말씀이라고 합니까? 만약에 모세가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행할 수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인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15:7-8절을 보겠습니다. (28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가 다 믿음의 말씀을 전파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파하는 말은 믿음의 말씀이 아니라 행위의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 믿음의 말씀만 가지고 말씀을 드리려면 한 시간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말씀입니다

어떤 말씀이 믿음의 말씀입니까?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것으로 믿음의 말씀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할 때 거의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겨우 한 마디 오직 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그가 믿음의 말씀을 전파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그 오직 믿음이라는 단 한 마디에 모두가 속고 있습니다.

믿음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게 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어떤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나 초대 교회에 사도들이 전파했던 믿음의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믿음의 말씀이 사라졌습니다.

전혀 믿음의 말씀이 전파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말씀이 전파가 되어야 그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나님의 명령인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형제입니다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난한 형제에게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는 것은 믿음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자이시고 우리 인생 모두는 가난한 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이 율법대로 우리의 쓸 것을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꾸어 달라고 하면 이것이 믿음의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하라고 하면 그것은 믿음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보고 천국에 가고 싶으냐 그럼 네 능력으로는 안 되니까 아니 너는 가난한 자이니까 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네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요구하라고 해서 그것을 넉넉히 받아서 천국에 가라고 하면 이 말씀이 믿어져서 그 쓸 것을 요구해서 넉넉히 받으면 믿음의 말씀이 됩니다.

믿음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추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성경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알고 이 말씀을 믿고 천국에 갈 수 있게 꾸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믿음의 말씀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다 이렇게 믿음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에 믿음의 말씀이 있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이렇게 성경에서 믿음의 말씀을 보고 믿어서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next 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