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97-1,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윤주만목사 2025. 2. 15. 17:59

로마서10:4절을 보겠습니다. (253)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의를 알려면 반드시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보고 그 율법을 누가 지키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았을 때 그 율법이 주님이 지키신 율법이 되어야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있는데 도리어 율법을 보고 그것을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까?

그 문자를 보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없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를 몰랐는가 하면 율법을 보고 그것을 자기들이 지키려고 하면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나님의 의를 모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의 일을 모르고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지난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9장까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율법을 여러 가지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10장에 와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른다는 말씀을 왜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로마서에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겠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한 것과 같이 이방인들 역시도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면서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자기의 의를 세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지 않아야 하나님의 의에 복종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기초가 되는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국어만 알아도 그리고 자기의 의라는 국어만 알아도 되는데 그 쉬운 국어를 몰라서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국어를 어느 정도 모릅니까?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하고도 그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 자체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자기의 의를 세우느라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오셔서 하실 일을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대표가 되는 것이 바로 율법을 완전케 하신 일입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하신 일들이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하신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의고 우리는 그 의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함을 얻고 있습니다.

의롭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 분이 영으로서 부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의로우신 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의로운 영이 거함으로 해서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는가 하면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함으로 해서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면 그것에 대해서 의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죄가 따라오고 그 율법을 지키면 의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의를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게 반드시 의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의를 세우지 않으려면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내가 율법을 안 지키면 의가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의를 세울 수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의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의가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왜 복종치 못하게 하는가 하면 이 둘이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율법이 복음을 대적하게 해서 복종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들에게 똑같은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의가 서는 순간에 복음에 복종치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적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서 있어서 복음에 복종을 하지 못 했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는가를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단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율법이 복음에 복종치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보고 하나님의 의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이 지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이 왜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못하게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까지의 교회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신학자들 중에는 율법이 복음을 복종치 않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시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습니다. 만약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이성에 나쁘다고 생각이 되면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에 대해서 굳이 말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의입니다

이 의에 대한 문제를 바로 정의를 해야 합니다. 그냥 쉽게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는 계속해서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로마서를 보고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의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비교입니다

두 가지를 가지고 성경에서 비교를 해서 말씀할 때는 반드시 하나가 되면 하나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는 믿음이 좋으면 율법도 잘 지킨다는 성경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모든 사람이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의를 얻었고 이제는 율법의 의를 더 이상 얻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끝이 났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어 주셨습니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어 주셔서 이제 더 이상 율법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른다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 못지않게 아니 기독교인들보다 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믿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복음에 복종치 않게 해서 믿음을 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13:39절을 보겠습니다. (210)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의를 얻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성경은 의를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모세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율법은 모세의 율법입니다. 분명히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반포를 한 율법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림자인 율법을 가르쳐 모세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이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하면 우리 인생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법대로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법대로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법이 모세의 율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고 하니까 마치 하나님께서는 법을 당신의 마음대로 하고 사랑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법대로 하십니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의 율법 이면에 있는 법대로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모세의 법대로 하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법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말씀과 같이 모세의 법입니다. 이 법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30:15절을 보겠습니다. (129)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디모데전서2:6절을 보겠습니다. (338)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 할 것이라

이스라엘의 인구조사입니다

우리는 왜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기의 말씀대로라면 이스라엘이 인구조사를 할 때 온역을 당해서 죽지 않으려면 은 반 세겔을 내면 됩니다. 이것을 속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속전을 드림으로 해서 온역에서 죽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구원을 받는 성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살 때 그 백성을 계수를 하면 반드시 은 반 세겔을 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정해 놓으시고 부자라고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해서 덜 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은 반 세겔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을 정도의 돈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모르는 일입니다. 아니 이 시대 저 아프리카의 오지에 사는 한 끼 겨우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이 반 세겔도 그림의 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것으로는 우리는 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령 우리가 은 반 세겔이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우리의 생명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온역으로 죽지 않고 생명이 보존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거하고 있는 생명은 이 지구를 다 준다 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모세의 율법으로는 안 됩니까?

모세의 율법으로는 생명을 속하는 속전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디모데전서에서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생명의 속전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생명의 속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것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그림자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그림자를 걷어 내고 사도 바울이 생명의 속전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께 단번 속죄 제물로 드려진 것이 생명의 속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분명히 출애굽기의 말씀과 같이 은 반 세겔을 드려야 합니다. 부자라고 더 내지 말고 가난하다고 해서 덜 내서도 안 됩니다. 모든 율법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두고 있지만 이 속전만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같이 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냅니까?

부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되고 가난한 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됩니다. 우리는 육적으로도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이 생명의 속전을 낼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이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율법의 이면을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전으로 우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많은 율법을 인용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는 모세의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누가 감히 모세의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모세의 율법에는 그 이면에 담긴 뜻이 있는데 그 율법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를 꾸어 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것 한 가지도 못 합니다. 가난한 자가 와서 꾸어 달라고 하면 누가 넉넉히 꾸어 줄 수 있습니까? 나부터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인데 누가 누구를 꾸어 줄 수 있습니까? 모세의 율법도 지키지 못하고 그 이면의 율법도 우리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면에 있는 뜻을 알면 더욱 더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믿는 자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는 주님께 꾸어 달라고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손을 펴서 넉넉히 우리가 쓸 것을 그 요구하는 대로 꾸어 주시고 있습니다.

안 꾸어 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율법을 지키지 않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반드시 꾸어 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율법에 우리 가난한 자의 쓸 것을 반드시 꾸어 주시게 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루고 있는가 하면 율법에 그렇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율법에 우리 가난한 자가 꾸러 가면 주님은 반드시 손을 펴서 우리가 쓸 것을 요구하는 대로 주셔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우리는 이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가능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믿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을 율법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전케 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하면 꾸어 주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꾸어 주어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쓸 것을 요구하는 대로 넉넉히 꾸어 주셔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가 하면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해서 주님께서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면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율법은 마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율법을 다 지킨 부자입니다. 우리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부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자이신데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하니까 우리가 쓸 것을 요구하는 대로 넉넉히 꾸어 주셔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는데 또 율법을 지킵니까?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또 율법을 지켜야 합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주님은 또 다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지키신 율법이 유효하지 못하다면 주님은 계속해서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또 의를 이루어야 합니까? 왜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되는가 하면 우리 안에 있는 약속의 씨는 의를 이룬 씨입니다. 그 씨가 있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 씨는 우리 육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을 때 우리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육체가 의를 세우려고 율법을 지키면 이 복음에 복종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의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믿기 때문에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의 의를 세우면 복음에 복종치 않아서 사망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복종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끝이 났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문자적으로도 율법은 이제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 성도는 이제 의를 얻었기 때문에 굳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그 행위가 도리어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4:19절을 보겠습니다. (307)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꽤나 지식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식에 자라 가는데 있어 너무 게으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서 의가 없다면 죽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오셨고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우리에게 그의 영이 거함으로 해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영의 일입니다.

의를 이룬다고 하니까 내 육체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썩어 없어집니다. 그 썩는 것을 가지고 의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그 썩는 것으로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하심으로 의를 이룰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내 안에 의로운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모두가 자기들의 행위로 의를 이루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외식으로 자기들의 걷을 회칠하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그것을 보고 의롭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썩는 것입니다

아니 냄새가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육체가 아니라 영으로서 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이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지만 이 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분이 아니고는 우리에게는 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을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의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게 의가 이루어지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의로운 씨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씨는 의로운 씨가 아니라서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이 거하는 역사가 우리 안에 있어야 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곳에 장로를 세우고 다시 다른 지방으로 가서 또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떠나 있는 상태에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할례의 타당성을 이야기를 해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613가지를 대표하는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할례라는 율법을 가지고 대표로 해서 말씀을 한 것이지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할례를 행하지 않고 율법을 지킨다 해서 자기들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짓 형제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게 하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거짓이라고 할 때는 그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거짓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이라고 할 때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그것으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면 거짓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형제가 가만히 들어왔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거짓 형제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게 들어왔다는 말씀입니다. 이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무엇을 하게 했는가 하면 할례라는 율법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 할례는 율법을 지키게 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가 율법을 지키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가고 나니까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가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들이 왜 할례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가 하면 성경에서 할례의 당위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할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왜 주일을 지킨다고 생각합니까?

성경에서 주일에 대한 당위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각종 헌금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그것에 대해서 당위성을 말하니까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자의적으로 풀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줄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례라는 율법이 들어옴으로 해서 내가 해산의 수고를 다시 해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이 모든 말씀이 같은 말씀인데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행하고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마침이 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는데 할례라는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리스도 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면 이 두 가지의 의는 서로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마침이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율법이 마침이 되지 않아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의 교회입니다

어느 교회가 율법을 안 지키는 교회가 있습니까? 그들이 저를 비난하고 또 욕을 해도 좋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다보니까 지금은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게으르고 악한 종이 누구입니까? 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비유의 말씀들을 깨닫지를 못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7:19절을 보겠습니다. (359)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다.

왜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까? 율법으로는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어 주심으로 해서 더 이상 율법이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사람들은 왜 율법을 지켜야 하는 줄도 모르고 성경에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고 더구나 그 율법을 하나님께서 친히 쓰셔서 모세를 통해 반포를 하셨다고 하니까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 줄도 모르고 막연하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온전케 되기 위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율법은 온전케 하기 위해서 지킨다고 말씀을 하는데 나는 하나님의 성도로서 의롭게 살기 위해서 지킨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생각입니다.

너무 감성에 빠져 있습니다.

아니 문제는 성경을 성경으로 안 보고 있습니다. 이미 자기들의 이성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자기들이 배운 신학의 기초를 가지고 성경을 보다보니까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 줄도 모르고 신학에서 배운 그대로 율법의 제3용도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온전케 하지 못 합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분명히 율법은 온전해 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늘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에서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입니다

온전해 집니까? 아무 것도 온전케 하지 못 합니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어느 정도 온전해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있어서는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히브리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온전케 못 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왜 지켜야 합니까? 생명에 대해서 온전함을 줄 수 없는 것을 왜 지켜야 합니까? 온전함은 고사하고 그 율법으로는 온전케 되지 못해서 도리어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지 않고 저주 받게 하는 율법을 주님께서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여러분이 이 율법에 대한 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으면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온전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율법을 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더 이상 율법이 우리에게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아예 보지도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지켰던 그리고 초대 교회에 율법주의자들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로 보이는 그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지 율법에서 우리는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의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조건입니다

의를 이루기 위한 조건이 율법의 마침입니다. 율법이 마침이 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왜 의를 이루지 못하는가 하면 율법이 아무 것도 온전케 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의를 이룰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참입니다.

거짓+거짓=거짓입니다. 그런데 참+거짓=거짓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상식이 무엇입니까? 참이 있으면 거짓이 그 참에 묻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참이라 해도 거짓이 하나라도 있으면 거짓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next 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