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1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5:9절을 보겠습니다. (신 308쪽)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왜 구약에서 무교병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출애굽을 할 때 너희 집에 누룩이 있지 말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빵이 어느 것이 맛있습니까? 누룩을 넣은 빵이 맛있습니까?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 맛있습니까? 빵은 당연히 누룩이 섞여 있는 것이 더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합니다.
왜 누룩을 넣지 말라고 말씀을 하는가 하면 그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율법 한 가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 한 가지가 온 덩이를 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거짓=거짓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참이 99개입니다. 그리고 거짓이 어쩌다가 아니 이것만은 그래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이라고 하는 그것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해서 결국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같이 너희 집에 누룩이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누룩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누룩 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 안에 수많은 누룩이 있고 그 누룩이 섞인 빵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단 한가지의 할레라는 율법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에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제가 이 시대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이 다 누룩이라고 하면 그 사람들은 당연히 반문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하는 그 모든 행위가 왜 나쁘냐고 따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합니까?
그것이 누룩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구속의 일이 누룩이 아닙니다. 그 외에 교회 안에서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누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해서 저주를 받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씨가 여러분에게 거하려면 그 전제 조건이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우리에게 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씨가 우리 안에 거하는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전제 조건이 반드시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적은 누룩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온 덩이를 퍼지게 해서 의를 이룰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저 막연하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느니 라고 말씀을 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그저 문자적으로 그렇구나 하는 것으로 끝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이 어떻게 마침이 되어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건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가려면 반드시 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비자가 없이 다른 나라에 가려고 하면 그 나라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령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탔다 해도 그 나라에서 허용이 되는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는 입국 자체가 안 됩니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 갑니다.
그 나라에 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데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그가 아무리 일을 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일을 하는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려면 먼저 율법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그리스도의 의를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지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를 이루지 않겠다고 하는 의사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는 것을 거부하겠다고 하는 표현을 하나님께 하고 있는 행위의 표시입니다.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의를 이루라고 하시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를 이루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이렇게 악하다는 것을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의를 이루지 못하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애써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치 않으면서 하나님의 의를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은 자연스럽게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기12:19절을 보겠습니다. (구 99쪽)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면서 유월절을 먹게 하고 있습니다.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칠일 동안만 누룩이 없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칠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육일 동안 창조를 하시고 칠일에는 안식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칠일이 아닙니다. 성경의 숫자는 의미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3,7,12,24 등은 다 의미가 있는 숫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의미의 숫자를 그냥 칠일 동안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입니다
유월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반드시 유월절을 먹은 사람에게 오순절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같이 일 년씩 돌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일직선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단지 칠일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오순절이 오기 까지는 집에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온통 누룩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 집에 누룩이 있으면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라. 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유교물이 무엇입니까?
누룩이 있는 떡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라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누룩이 없어야 하고 누룩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는 절기입니다.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누룩이 있는 떡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을 드리면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칠일 입니까?
그 동안만 율법을 안 지키면 됩니까?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월절을 먹어야 이제 오순절이 임할 수 있습니다. 그 오순절에 받는 성령을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칠일 동안에 누룩이 있는 떡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우리 집에 누룩이 있으면 안 됩니다
누구의 집입니까? 이 시대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누룩이 있으면 반드시 끊쳐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은 누룩이 아니라 아주 많은 누룩을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 누룩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누룩입니다
빵에는 누룩이 들어가야 맛이 있습니다. 우리가 빵을 사 먹어 보아도 아무 것도 넣지 않은 빵은 정말 아무 맛도 안 납니다. 그러나 누룩만 넣어도 그 빵에 맛이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태생적으로 율법주의입니다.
그런데 누룩이 섞이지 않은 빵은 별로 맛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편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 맛이 없습니다. 찬양도 안 부르고 있고 그렇다고 교회에서 하는 어떤 절기도 안 지키고 있고 율법도 하나도 안 지키고 도무지 무슨 맛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지금 기독교에 있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영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된다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교병을 먹고 있습니다. 그 무교병은 정말 아무 맛이 없습니다. 특히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은 먹지를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룩이 있어야 맛이 납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맛이 있어야 사람들도 자기들이 느끼는 그 맛을 즐거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면 아무 맛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에게는 그것이 더 맛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무교병입니다.
이것을 먹는 사람은 유교병을 먹지 못 합니다. 또 유교병을 먹는 사람은 무교병을 먹지 못 합니다. 성경을 참으로 오묘하게 기록을 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아무 맛도 없는 그 무교병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해서 우리에게 유월절을 먹게 하고 있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의를 이룬 영이 거하게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믿는 성도는 율법의 맛을 느끼면 안 됩니다. 그 맛에 한번 길들여지기 시작하면 무교병은 이제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칠일 동안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었습니다.
이미 출애굽기에서부터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에 먼저 무교병을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무교병을 먹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반포하시니까 정신이 혼미해 져서 자기들이 율법을 다 준행하겠다고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먼저입니까?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먼저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율법을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이들이 유월절을 먹었다면 절대로 율법을 자기들이 다 준행하겠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적으로 유월절을 먹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광야는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 들어오기 전에 유월절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광야에 들어와서도 유월절을 먹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부터 합니까? 율법을 지키는 일을 먼저 배우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에는 온갖 누룩으로 가득 차 있어서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유월절을 먹을 기회조차도 주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기회도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입니까? 그래도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육적으로나마 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유월절을 먹을 기회도 없습니다. 유월절을 먹은 사람이 없으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고 율법이 마침이 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회조차도 없는 것이 이 시대 기독교입니다.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유월절을 먹는 시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데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의가 없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전제 조건이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이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비교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2: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율법의 마침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는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어야 합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
육체가 살아 있습니까?
우리 성도는 이 육체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은 자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죽었는데 왜 또 율법을 지킵니까? 저주를 한번 받았으면 되지 또 저주를 받기 위해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또 다시 저주를 받으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는 성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은 자는 율법이 이제 끝이 났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미 죽었는데 왜 지킵니까? 죽는 사람에게는 법이 적용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어도 그가 죽으면 공소권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가 죽으면 더 이상 죄를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공소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법이 우리를 관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죽은 자에게 법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세계 2차 대전 전범인 히틀러가 있습니다. 그를 법정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어 버리자 그에 대한 전범 재판은 열리지 못 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해서 죽었습니다. 죽는 그 자체로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서 율법을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는 율법이 관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다시 공소권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율법이 이제 정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죽은 자는 공소권이 없지만 율법을 지키는 자는 공소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믿어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 공소권의 문제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이제 율법은 공소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소송을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서 율법을 지키면 이제 율법은 그에 대해서 공소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공소가 되기 때문에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공소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소권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어 주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성경말씀을 모르고 감성적으로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으니까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살고 싶습니까?
구원을 받고 싶습니까?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향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소권이 없어진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이루어져서 약속의 씨가 우리 안에 거하고 그 씨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의 형상을 입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래도 율법을 지키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공소권이 살아 있는 그 율법을 지키겠습니까? 아니면 율법의 공소권이 사라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이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공소권이 있어서 나중에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해서 죽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10:5절을 보겠습니다. (신 253쪽)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모세는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것을 지킴으로써 생명을 얻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를 이룬다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거짓에 미혹을 당해서 율법주의로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폭주 기관차입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멈출 수 없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기관차와 같은 형국이 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도 이 율법에 대해서 말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이제는 감히 율법을 폐한다는 것조차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율법주의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주의가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공소권이 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 공소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공소권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을 지키면 살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우리에게는 공소권이 있게 됩니다. 그 공소권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항상 다 지키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말씀을 보고 율법을 지키면 그 의로 사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이 말씀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그 의로 삽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의가 없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율법 외에 한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의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의가 이루어져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데는 반드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해서 죽어야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에 의해서 죽은 자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를 이루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게 죽지를 않으면 율법에게 공소권이 있는데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의를 행하지 못하고 죄를 지면 율법이 고소를 해서 사망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전혀 성경을 모르고 있습니다. 신학 박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초등학문에 빠져 성경을 자기들의 이성으로 보고 억지로 풀다가 모두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5:45절을 보겠습니다. (신 152쪽)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율법,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그렇게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분명히 율법이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로서 세상 사람과 구별이 되게 살아가는 행위를 말씀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서 죽고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율법을 죽고 사는 문제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율법의 제3용도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제3용도입니까?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도덕법이 필요해서 성경에 율법을 기록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조금 더 의롭게 사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그것을 지키면 살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면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말씀이 따라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산다고 했으면 죽는 것이 반드시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는 것만을 보고 있습니다. 죽는 것은 안 보고 사는 것만 보고 막연하게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나는 진심이라는 추상적인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그런 추상적인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죽고 사는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거의 추상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죽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이미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실제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그런 감성적이 말씀이 아닙니다.
왜 죽었다고 합니까?
죽어야 공소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인을 한 죄를 지었어도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무리 법이 강하다 해도 죽은 사람을 고소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지 죽은 사람을 고소해 보아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공소권이 살아납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바리새인들을 고소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모세가 율법을 반포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이 너희를 고소해서 재판을 받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율법이 너희를 고소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너무 담대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 율법이 자기들을 고소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고소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을 지켜서 의가 있는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살고 죄가 나타나면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른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성경에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다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셨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이 내가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이미 기독교라는 짐승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 줄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이 자기들을 고소하겠다고 하는데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하면 도리어 분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은 고소를 합니다.
여러분이 이 고소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갈라디아에서 율법을 하나 지키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행할 의무가 그에게 주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야고보서에서는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모두를 범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살인 안 했습니까?
간음 안 했습니까? 우상 숭배를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십일조라는 율법을 지키고 주일이라는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고 그것에서 하나라도 거치면 여러분은 살인한 자며 간음한 자며 우상 숭배한 자가 되어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31:15절을 보겠습니다. (구 131쪽)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 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반드시 죽일지니라.
율법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반드시 죽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기록이 되어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삽니다. 그런데 율법은 그 하나를 지키면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율법을 지켰습니다.
나중에 반드시 죽을 때 뭐라 변명을 하겠습니까? 성경에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변명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습니까? 문자적으로 있을 수 없는 짐승과 행음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면 이 모든 율법을 다 범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있습니까?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누가 안식일을 대신해서 주일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아니 설령 그것이 맞다 해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안식일에 불을 안 피웠습니까? 출애굽기에서 불 피운 자를 어떻게 했습니까? 돌로 쳐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래도 율법을 지키고 싶습니까?
성경을 보면서 감성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런 어리석은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를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 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어떠한 결과가 자기에게 따라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반드시 그 의로 여러분은 살아야 합니다. 나는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그런 상투적인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분명히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되지도 않는 말을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그 의로 살아야 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우리도 같이 죽었다는 것을 믿은 성도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살지도 못하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감성에 젖어 하나님을 위해서 성도로서 살겠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율법을 지켰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의로 살아야 합니다.
살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을 하나라도 거치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율법에 의해서 고소를 당해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next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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