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12:9-13절을 보면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히브리서11장입니다
믿음의 장이라고도 합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왜 성경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을 하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입니다
그들을 열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거의 다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11장을 보고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서 그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을 증거를 받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믿음을 주셨고 역사를 하게 하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인생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깨달을 수 없는 말씀들입니다 아니 인생의 언어로 설명한다는 것부터가 실상은 불가능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입니다
자기들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 언어를 아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본성에 따라 율법주의로 가다가 결국에는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종교는 자기들의 의식적인 행위를 보고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이 말씀부터가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바라게 하시고 있고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믿을 수 있게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습니까?
그리고 보이는 교회를 다니고 그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자기들이 신을 믿기 위해서 종교를 만들어서 그 의식에 따라 행하는 행위를 보고 믿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종교인으로 사는 것과 성경에서 영의 일을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그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인생들의 종교성에 따라 자기들이 그 종교 안에서 의식적인 행위를 하고 있고 그 종교인들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믿는다고 하고 있는 것이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믿음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행위가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니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종교의 교리에 따라 잘 하는 것을 보고 믿음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상하게도 인생들은 세상에서 그렇게 지혜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도 해도 종교 안에 들어오는 순간 소자가 되어서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이 가르치는 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잘 하기 위해서 아니 진실을 알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이 종교 안에 들어오는 순간 그 거대한 힘에 굴복을 해서 감히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경을 보고 또 보면서 상고를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구해야 하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을 보고 자기들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깨닫지도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왜 사도 행전에 베뢰아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어느 특정 교회가 베뢰아를 사칭을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그 말씀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실상은 우리 인생들이 복음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복음을 전하는데도 베뢰아 사람들은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상고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의 말을 듣고 성경과 맞는가 하여 상고도 하지 않고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리스도편지입니다
설교말씀만 1000여 편 이상이 올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예전에 쓴 설교는 제가 새로 쓰고 있습니다. 그때는 저 역시 종교 안에서 제가 배운 지식으로 설교를 작성을 했기 때문에 지금 보면 복음에서 벗어나 있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진보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까지 이르도록 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늘 성경을 해석하고 있고 강해를 하고 있지만 그것을 다시 보면 늘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에 해석한 말씀까지도 그런 것을 볼 때는 제가 얼마나 미약한가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오묘한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늘 생각합니다.
제 앞에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의 글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사도들이 잇을 때 복음을 들은 성도들이 행복하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탄압이 심했고 또 죽임을 당하는 인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의 대상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그를 바라보자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 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길이 아니라 영적으로 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견디고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는 것에서 출발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바라보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단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11장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나서 이제12장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인생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언어로 설명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헬라어입니다
주목하다, 보다 등의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의 언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12장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늘 말씀을 하지만 지식의 수준이 높아지다 보니까 인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저 언어의 뜻을 아는 것으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그런 것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 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했고 그 말씀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는가에 대해서 맞는가 하여 성경을 상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12장입니다
이 말씀도 인생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기록이 된 것을 보고 정말 많은 오해를 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일을 가지고 설명할 수 없으니까 이 말씀을 이용을 하고 있고 마치 하나님께서 지금도 간섭을 하시는 것과 같이 이용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2:15절을 보면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징계입니다
우리 언어로 번역이 될 때 징계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헬라어로는 교육, 양육, 훈련 등의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징계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잘못이나 허물 따위를 나무라서, 벌을 내리거나 제재를 가하는 것을 징계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그 뜻을 아는 것으로는 성경이 절대로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인생의 언어의 뜻을 먼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쉽게 보고 상고를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1장입니다
믿음의 장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12장에서 와서 그 믿음이 무엇인가 하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믿음이 선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믿음이 있는 성도가 아니라 그저 인생의 지식에 따라 성경을 보고 종교인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밖에 말씀할 수 없습니다. 지금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의 선진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영의 일이고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을 보고 그 언어의 뜻을 아는 것을 가지고 이용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체 말씀입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알고 징계를 말씀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그저 징계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성경을 해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합리화 시키고 이용하기 위해서 히브리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징계입니까?
육의 일을 가지고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육체의 아버지는 당연히 육체에 징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말씀 그대로 영의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은 표현입니다 그분이 우리 육체의 아버지와 같이 똑같이 육체를 징계를 하십니까? 지금 히브리서에서 그 징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육체의 아버지를 비유로 해서 영의 아버지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말씀은 육체의 아버지가 징계를 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징계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12절에서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에 대해서 다 말씀을 했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세상의 아버지에게 징계를 받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아버지입니다
때로 때리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솔직히 아버지에게는 맞지도 않아보았고 제 아들을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벌을 한번 힘들게 준 적이 있지만 그것이 수십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제 마음에 남아 있고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이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아버지에게 아들이 잘못을 해서 징계를 받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지금의 종교가 된 교회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교회에는 사도들이 있었고 그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있는데 어느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세상 아버지의 징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힘든 일이 있습니까? 그것을 보고 지금 히브리서에서 징계라고 말씀을 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징계가 아니가 내가 세상에서 그렇게 산 삶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고루 해가 비추는 가운데서 내가 산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징계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이고 세상 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아버지와 영의 아버지를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마치 세상에서 자기가 잘못 살아서 힘든 일이 있는 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히브리서의 말씀을 종교인들이 이용을 하고 있고 또 교인들은 이 말씀을 생각을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이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습니다.
아니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일이지 지금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에서 힘든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징계라고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사람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 영생을 얻고 자기 믿음에 대해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있고 믿음의 선진들이 어떻게 믿었는가를 알고 있고 사도들이 믿음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고 구속의 은혜로 온전케 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입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는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복음을 들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주이고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는 말씀이고 마치 세상 아버지가 잘못한 아들을 징계를 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면서 왜 내가 징계를 받는가를 생각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 합니다.
그것을 다시 말씀을 해서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더러움에 대해서는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에서도 우리의 의를 하나님의 진에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대변을 통할 때는 삽을 가지고 진 밖에 가서 땅을 파서 덮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세상 아버지의 징계입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 아버지의 징계를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를 한다고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고 성경을 이용을 해서 교인들에게 스스로 정죄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2장입니다
이 징계를 말을 하는 사람들을 들어보면 100명이면 100명이 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교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정죄에 빠지게 만들고 있으면서도 성경이 해석이 안 되니까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16절에서는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무슨 말씀인지를 모르니까 그저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억지로 풀다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고 이용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가장 악한 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종교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징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입니다 그저 단번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징계는 다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있지만 그것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그것이 마치 세상 아버지에게 징계를 받고 스스로를 고치는 것과 같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세상 아버지입니다
순전히 자기 이성적 지식에 따라 아들을 징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복음을 깨닫고 나니까 아이가 어렸을 때 단 한번 혼을 낸 적이 있는데 그것이 아직까지도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아이는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런 육체의 징계를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세상 아버지에게 받는 징계와 같이 받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저 징계라는 단어만 보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2:11절을 보면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징계가 무엇입니까?
세상 아버지는 자기 뜻대로 징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유익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유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익합니다.
어떻게 유익한가 하면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는가를 히브리서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입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입니다 다 하나에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가 예수의 생명을 얻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그러니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예수의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징계입니다
세상의 징계가 아니라 예수의 생명을 얻어 거룩함을 입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자기 안에 예수의 생명으로 거룩함을 입었다고 하는데 나는 믿어지지가 않고 있고 그것을 마치 세상 아버지가 징계를 하는 것으로 비유로 해서 참 아들은 징계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복음을 전해지고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함을 입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같이 듣지만 아직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는 사람을 비유로 해서 마치 세상 아버지가 징계를 하는 것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징계입니다
세상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세상 일로 생각을 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직 복음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거룩함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자기는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고 있고 그것을 이 세상에서 아버지에게 징계를 받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습니까?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나면 믿음이 없으면 그 복음을 듣는 것이 즐겁지도 않고 도리어 슬픈 일이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월절을 같이 먹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순절이 같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 오순절이 임하는 것은 예표로서 보여주신 것이고 이제는 각자에게 따라 성령이 오시는 것이 다르고 그렇다 보면 이렇게 슬퍼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듣습니다.
그러면 이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어 거룩함에 참예할 수 있다는 말씀이고 그것은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먹는다 해도 사람에 따라 성령이 오시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징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갈라디아서6:9절을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초기 교회입니다
지금 이방의 종교를 보고 이 말씀을 적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먼저 교회 안에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방의 종교는 믿음보다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의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건입니다
복음도 전해지지 않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합리화를 시키고 이용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망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피곤한 손에 대해서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강해 때에 아주 자세하게 말씀을 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보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일은 인생에게는 정말 피곤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역시 복음을 듣고 믿는다는 것이 그러니까 성령이 오셔서 내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거룩하심에 참여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는 것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이 시대는 종교의 의식적인 예배를 참석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든든히 설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하루아침에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보는 성경의 두께를 보시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주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줄줄 외우고 있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길에 대해서도 진리에 대해서도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면서 그저 인생의 언어를 외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길입니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는 길을 바로 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곧은 길로 가고 고침을 받기 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동안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은혜를 얻기 위해서 늘 깨어 성령을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먼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종교의 교리에 따라 성경의 문자를 듣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히브리서의 말씀과 같이 마치 세상 아버지의 징계를 받는 것과 같이 오래 복음을 들음으로 해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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