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3:23-24절을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고 그저 자기가 종교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을 믿습니다.
왜 인생들이 신을 믿는가 하면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굳이 성경말씀이 아니더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죽은 후를 우리 인생으로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의 은총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래도 내가 좀 잘못 살아도 신의 은총으로 인생들이 생각하는 내세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만약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리어 화를 당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일에 있어서 고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나와 광야라는 교회를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이 단 두 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을 당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어딘지도 모르는 땅으로 끌려가서 민족이 완전히 흩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 유다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7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를 하다가 주님께서 오셔서 예언을 하신 그대로 로마에 의해서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고 세계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듯이 디아스포라가 되어 2000년 가까이 나라가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물론 세계2차 대전이 끝이 나면서 지금의 팔레스타인에 정착을 하기 시작을 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강대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래도 주변 국가들보다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입니다
나라를 세웠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을 받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아직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고 신약 성경 자체를 부정하고 있고 아예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지금도 그 종교 안에서는 랍비들에 의해서 율법을 배우고 그대로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민족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 가지를 꺾어 버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된지 벌써 20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 피조물들의 구원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우리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해서 바로 깨달을 수 있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지금 우리가 그 성경을 보고 있지만 이방인들 역시 성경을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고 경계의 말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 자손인 이스라엘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이 그들보다 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고 그저 종교 안에만 있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종교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예표와 비유로 해서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잘 믿는데 다른 곳 그러니까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이단이라고 생각을 하는 그곳이 이스라엘에게 경계로 하신 말씀대로 화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잘못 믿는다고 한번이라도 고민을 하고 생각을 했는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고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이 스스로를 생각하면서 혹시라도 잘못 믿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무도 주님과 그렇게 대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한 일을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혹시 하는 생각만 했어도 절대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23,“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혹시 입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 인생이 다 알 수 없다고 생각을 하면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그리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대해서 바리새인인 가말리엘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말리엘입니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가말리엘입니다
그가 사도들을 생각을 해서 이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정말 많은 공부를 했고 그래서 당시 종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을 그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공부한 것을 근거로 해서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말을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는 종교인으로서 인간적으로 신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많은 경험을 했고 성경도 많이 보았고 그런 그이기에 혹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는 일이라면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는 당시 대제사장들과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입니다
이 가말리엘을 칭찬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종교인으로서 조심성이 많은 사람인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성도들을 탄압을 하는 일이 있으면 이 말씀이 경계가 되게 하기 위해서 기록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인생들은 종교 안에만 들어가면 대담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알고 있는 성경말씀을 합리화를 시키면서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종교재판을 해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성경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자기 합리화를 시키기를 좋아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해도 자기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17:10절을 보면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 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인생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자기에게 좋은 말씀만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보고 그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들이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만 눈에 보이고 경계를 하는 말씀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인생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잠언입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 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총명한 자는 경계의 말씀을 보고 그것을 경계로 삼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입니다
매를 백 개로 때려도 그것을 경계로 삼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얼마나 많은 말씀들로 경계로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경계로 삼는 것이 아니라 매를 맞으면서도 그것이 아프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인생들입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들의 육적인 일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경계로 삼지 않고 남의 집에 불구경하듯이 너무도 태평한 것이 인생들이 성경을 보는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23장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그리고 서기관들 등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적을 했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대적을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종교입니다
그리고 사회입니다. 다 지도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종교를 대표하거나 사회를 대표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종교나 사회 그리고 국가가 위험하다고 생각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있으면 가장 먼저 그들이 변론을 하게 되어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너무도 당연하게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대적을 했고 그것은 이미 선지자들의 예언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잘 믿었다면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영접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의 참 빛이시고 우리 인생들은 그 빛을 볼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어두움에 있고 그래서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우리 인생 스스로는 총명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총기가 있었다면 주님께서 오셔서 한 마디 말씀을 하면 그들은 잠언의 말씀과 같이 매 백 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혀 주님을 영접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게는 그런 총기가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총기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성경을 보아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이 자기 땅에 오셨는데도 인생들은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는데 성경을 보고 깨닫는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렇게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무시를 하고 있고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사야5:21절을 보면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요한계시록12:12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화 있을찐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만 하는 말씀입니까?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스라엘을 경계로 해서 그들이 바벨론에 멸망을 당할 것을 예언을 하면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화를 당합니까?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도 역시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여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그들만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행위를 해서 화를 당하고 지금 이 시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입니까?
성경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이 먼저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고 그 말씀대로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성경을 보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화를 당하는 일을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화에 대해서 말씀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화를 당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남은 자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화를 당하는 사람입니다. 바다 모래 같은 많은 사람이 화를 당합니다. 이것이 다 교회 안에 있는 일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총기가 없어서 경계로 삼지 않고 그런 그들이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 말씀이 마음에 박히지를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화를 당합니까?
지금 주님께서 스스로가 아니 인생들이 보기에는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화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리고 사람들이 인정을 하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화를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화를 당하지 않으려면 경계로 삼아 이 말씀이 내 마음에 박히는 것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평생을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는데 화를 당한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이 왜 화를 당하는가 하면 외식을 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외식이 무엇인가 하면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화를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신명기14:22-23절을 보면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십일조입니다
율법에 십일조를 어떻게 드리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신명기에서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십일조입니까?
토지소산의 십일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고 주님께서 그것을 외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하는 십일조는 율법에 기록이 된 십일조가 아니라 외식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내 마음대로 할 것 같으면 성경을 왜 보고 있습니까? 더구나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으면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명히 율법에서는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입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박하, 회양, 근채도 다 토지에서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를 십일조로 드린다고 하는데 그것이 외식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외식을 하는 행위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식입니다
헬라어로는 대답하는 자, 사칭하는 자, 위선자, 불신앙 자 라는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식이라는 직접적인 뜻은 겉을 좋게 꾸미는 행위를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입니다
이미 그리스도편지에서 이 십일조에서는 말씀을 했습니다. 물론 제가 지금 강해를 하기 때문에 모든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다 해석해서 말씀을 하지는 않았지만 율법에 대한 기초는 그 율법을 완전케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토지소산의 십일조입니다.
레위기에서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다면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누가 완전케 하셨습니까? 율법을 말씀할 때마다 이 기초를 말씀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그래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나타내시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고 그것을 유대인들이 종교 지도자들을 따라 그대로 행하는 것을 보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화가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왜 화가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외식입니다
이미 앞에서 외식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좋게 생각을 하는 행위를 하는 모든 겉으로 나타나는 종교적인 행위가 다 외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이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를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화가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1:25절을 보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율법입니다
기초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다는 말씀이 기초입니다.
십일조입니다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율법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율법을 누가 완전케 하는가를 모르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인생들은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면서 성선설과 성악설을 기초로 해서 그것을 자기들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의 형제 야고보는 주님께 완전케 하신 율법을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입니다
그것을 들여다보니까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증거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서 완전케 하시고 우리에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셨으면 그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았으면 우리는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가 되어서 주님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복을 받는다고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안다고 하고 있고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은 세상의 철학적 지식의 법이 아니라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시는 일을 법으로 정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것이 바로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7:49절을 보면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누구라도 공부를 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인터넷이 발달을 해서 히브리어나 헬라어도 단어를 치면 그 뜻을 다 알 수 있고 언어적 배경까지도 다 알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 성경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는 말씀을 보고 또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끝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본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문자를 가지고 끝까지 가면 더 이상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헬라어를 보아도 그렇고 한글로 번역이 된 것을 보아도 마치 주님께서 십일조를 해야 하는 것으로 정당성을 말씀한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외식하는 일입니다.
화가 있다는 말씀에 이미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화를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다시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주님께서는 정말 이상한 말씀을 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율법을 누가 지키는 가를 기초로 말씀을 했고 그리고 토지가 누구의 것인가도 말씀을 했습니다. 이것도 행하라는 말씀은 바로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십일조를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요한복음에서 바리새인들이 주장을 하는 것과 같이 율법이 무엇인가를 알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율법을 모르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율법을 알고 있습니까?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래서 토지가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것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단어만 나와도 자기들이 육체로 행하는 것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대해서 아는 것도 그리고 그 일을 주님께서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도 행하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고 주님께서는 그래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와 인과 신입니다
이미 앞에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율법을 완전케 하시는 일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심으로 해서 율법에서 주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증거를 받아 믿는 성도가 복이 있다는 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만 받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도 모르고 있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셨는데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행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바리새인들은 화를 당해도 자기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24,“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성경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그것을 이스라엘을 예표와 경계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다 영적인 일을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아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소경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진리를 아는데 있어서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만 소경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는 다 소경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소경인가 하면 율법을 모르니까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살이입니다
그리고 약대입니다. 다 부정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율법에서 알고 있습니다. 비유의 말씀입니다. 하루살이는 우리 인생이 율법을 보고 지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율법에서 십일조라는 단어를 보고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하루살이로 아주 적은 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와 인과 신입니다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것은 약대와 같이 크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없으니까 부정한 인생들이 마치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과 같이 하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약대를 삼킵니다.
의와 인과 신을 당연하게 알아야 하는데 소경이 되어서 그것을 삼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적은 부정한 일은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과 같이 하면서 아주 큰 의와 인과 신은 그러니까 주님께서 완전케 하시고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신 일은 부정한 짐승을 먹는 것과 같이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찐저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를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성경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외식의 모양을 버리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은혜와 진리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43,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4) | 2024.09.18 |
---|---|
1142,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0) | 2024.09.16 |
1140,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0) | 2024.09.11 |
1139,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 (1) | 2024.09.08 |
1138,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1) | 2024.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