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145,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윤주만목사 2024. 9. 25. 21:06

역대상4:9-10절을 보면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스라엘입니다 

물론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를 비유로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아니 이 세상에 있는 국가로서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기 보다는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고 그 교회 안에 있는 일은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물론 실제 야곱이라는 인물이 있었던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었던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구원과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기 위해서 그들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유대인들이 생각을 하는 것과 같이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인생들의 편협한 사고에서 나온 생각이라고 저는 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특별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들은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표와 비유로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경을 보는 사람이 지혜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 인생이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그가 세상에서 지혜가 있는 사람이고 종교에서 지도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이스라엘도 성경을 보면서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이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유대교인들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 이방인은 다릅니까

그들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으로 마치 대단한 지혜가 있고 마치 특별함이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 성경에 있는 인생들이 아는 문자를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이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그것이 육의 생각이라는 것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택하심,

특별 등의 단어가 성경에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까 자기들이 인간적으로 아니 인생 중에서도 특별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문자를 보고 그것을 육적으로 적용을 하고 있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고 종교인들은 그런 단어들을 이용을 해서 영의 일도 모르는 교인들이 마치 영의 일을 알고 있는 것과 같이 그리고 자기들이 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으로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 육의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니까 그런 육의 것을 가지고 성경을 마음대로 적용을 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런 말을 계속해서 듣다 보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자기들이 특별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들이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런 단어들이 있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과 육의 일을 분별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 종교에서 말을 하는 것과 같이 자기들만의 철학적 사고에 갇혀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성경말씀 그대로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누구나 다 같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특별하다는 것은 너무도 기분 좋은 일이고 그런 자존감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우리의 육적인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그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래서 자기들 나름대로 더 특별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들이 다 같이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종파에 따라 성경을 보는 관점도 다르고 또 다르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교리입니다 

그 교리를 아는 것으로 심지어는 다른 종파에 있는 사람들과는 또 다르다는 자존감에 빠져 자기만이 특별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교리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이제 사람은 그 안에서 무엇이든지 다 하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심지어는 자기의 모든 것을 종교에 다 걸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9.“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성경말씀입니다 

정말 부탁드리지만 육의 일로 이용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합리화를 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단어를 보고 그 아는 것을 가지고 이용을 하고 있고 그 안에 있는 교인들은 종교인들이 그렇게 말을 하면 자기만이 특별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입니다 

그리고 행위입니다. 그것이 한번만 할 때는 그것에 대해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해도 무심히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계속해서 듣게 되면 인생은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실제 그런 것으로 받아 들에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만 아닙니다

거기에다가 종교적인 행위가 더해지면 그리고 그것이 수십 년을 계속해서 하게 되면 그것은 이제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인생은 그렇게 세월이 갈수록 그 안에서 교리에 의해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서도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특히 심합니다

다른 종교인들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종교인들이 그런 면에서 더 심하게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 안에서 자기들만의 든든하고 높은 성벽을 쌓고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좌지우지하는 것이 종교인데도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소자가 되어 점점 더 굵은 포승으로 묶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예표와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셨을 때 언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었는가를 성경을 보고 깨닫고 정말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말씀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자기만은 다르다고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아니 영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를 못하면서 성경의 모든 말씀을 거의 자기들의 육체의 일에 적용을 시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일은 무당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종교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인생은 참으로 무력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야베스의 말씀입니다 

아마도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설교에 대해서 몇 번은 들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베스의 기도와 같은 기도를 해 주면서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우리 인생의 언어와 같이 모든 것을 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도를 하고 있고 기도를 받는 사람 역시 자기가 존귀한 자가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이 말씀을 보고 이대로 되기를 누구나 다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노래까지 만들어서 부르고 있고 신년이 되거나 하면 종교인들에게서 이런 기도를 받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정말 마음대로 해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육적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종교인은 성경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베스가 가난했다는 말을 하고 있고 그런 그가 가난의 고통 중에서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성경에도 없는 말을 소설을 쓰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종교인의 무지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고 그들이 얼마나 육적으로 빠져 있는가를 다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8:5-6절을 보면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영의 생각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육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영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저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이 기록한 말씀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자를 알면 뭐 합니까?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다는 의미도 모르고 있고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말씀도 그저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이해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역대상의 말씀입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라고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육의 생각으로 성경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베스의 기도와 같은 기도를 해 주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그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자기 육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육신의 생각 아닙니까? 그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역대상의 말씀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육신이라는 단어도 이해를 못하는 것이 종교인들이고 이스라엘이 섬겼던 바알의 사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이방의 종교인들이면서도 무엇이 육신의 생각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야베스입니다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체가 그렇다는 것을 이 세상에서 존귀를 받는 자라는 것을 지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그들이 종교 안에서 그저 맹목적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육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하겠는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들은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빌립보서1:20-21절을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존귀

무겁다, 힘겹다, 짐이 되다, 존경하다, 영화롭다, 존귀하다 등의 뜻이 있는 히브리어의 단어입니다. 한글개역성경에서는 존귀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어 있고 그 사전적인 뜻은 지위나 신분이 높고 귀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육적인 것을 제가 사전에서 그 뜻을 가지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의 생각입니다 

제가 사전적인 인생의 언어의 뜻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 육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제가 종교인들이 설교를 한 것을 보거나 들어 보아도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육적으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지금 역대상에서 야베스의 육체를 보고 그는 그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육의 생각을 하고 있고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가 주님께서 부활하신 형상을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존귀한 자이신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하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압니다.

인생들에게도 존귀하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들은 다 의미를 가지고 말씀을 하는 것이지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실제 세상에서 말을 하는 것과 같이 사전적인 뜻과 같이 지위나 신분이 높고 귀한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존귀하시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자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은 존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고 존귀하지 않는 자기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존귀입니다 

또 빌립보서2장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수고를 하는 성도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은 자 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베스입니다 

그가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가 존귀한 자인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은 자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야베스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고 있고 야베스가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야베스는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존귀한 자입니까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신분이 귀한 사람이 존귀한 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도 자기는 죽은 사람이 존귀한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빌립보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존귀히 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내가 죽은 성도들을 존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거하시는 자를 지금 역대상에서 야베스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그를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보고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이해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사도 바울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는 노래까지 부르고 있고 다 바알을 섬기면서 세상에서 자기 육체가 존귀하게 되는 것을 바라기 위해서 이 역대상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를 하고 있고 기도를 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존귀한 자입니까

이 세상에서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고 아는 것으로 판단을 하고 존귀한 자를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 육신의 생각이고 사망의 길로 가는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자를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자를 존귀히 여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사시려면 내가 죽어야 유익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종교인들이 내가 죽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이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존귀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존귀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어야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세상 사람들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습니까

이 말씀을 보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용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육의 생각으로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면서 누가 존귀한 자인지도 모르면서도 그저 그 언어를 아는 것으로 존귀하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4:19절을 보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성경입니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이 영의 일을 깨닫고 믿음으로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월절을 먹어야 하고 그것을 주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어미입니다 

교회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야베스의 어머니가 낳았다는 것을 부정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하지만 성경은 실제 있었던 이스라엘의 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증거를 받은 성도만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도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을 보고 이 갈라디아서를 보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다시 복음을 듣고 믿게 하기 위해서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남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해산의 수고를 할 수 있습니까? 바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복음을 전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는 역사가 있게 하는 것을 해산의 수고를 다시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어미입니다 

이제 교회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성경은 영의 일을 육의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어미가 야베스를 수고로이 낳았다고 하니까 진짜 세상 어머니가 아들을 낳는 것을 생각하고 이 말씀을 보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미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그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라는 말씀은 그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저 이스라엘의 어느 어미가 자식을 낳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보고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이스라엘의 육의 일을 비유로 해서 우리의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종교인들은 이것을 다 육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야베스의 기도라는 노래까지 만들어서 부르고 있습니다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에베소서1:3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야베스입니다 

슬픔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히브리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인생은 진토이기 때문에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슬픈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인생이라는 것은 사는 것 자체가 슬플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성도는 깨닫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서 부자와 같인 호화로이 연락을 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지만 성경에서 대표하는 인물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어미입니다 

수고로이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사도 바울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한 이 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고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 안에서는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이 수고로이 낳았다는 말씀을 잘 이해를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전하고 교제하는 성도들은 너무도 절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정말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 일이 어떠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해산의 수고를 한다는 사도 바울의 말씀이 가슴에 박히고 있습니다

 

야베스입니다 

그가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는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우리 성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가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기를 그리고 자기 지경이 넓혀지기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복입니다

육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종교인들은 육의 복에 완전히 미쳐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고 그들은 기도를 할 때마다 그 복을 얻기를 구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육의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복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복입니까

육의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복이 무엇인가 하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입니다 

존귀한 우리 성도는 이 복을 구하면서 그리고 이 복을 얻기를 위해서 달려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늘의 신령한 복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존귀에 처해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그러니까 영의 일을 모르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존귀라는 단어를 압니까

그리고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가 하면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육의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지경입니다 

그저 이 세상의 경계와 영역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창조된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베스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이루어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7:10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환난입니다 

히브리어를 보면 나쁜, 악한, , 악한 것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야베스는 그 형제 보다 존귀한 자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거하시고 있고 구원을 받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그렇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이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고 그래서 야베스는 그런 악, 악한 것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슬픔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역대상의 야베스에 대한 말씀 역시 우리가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예표와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보고 영의 생각을 하지 않고 육신의 생각을 하다가 인생들이 다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야베스는 악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이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지금 야베스가 구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 인생들은 육신의 생각을 하다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인 영생을 생각을 하는 성도가 되시고 성경에서 영의 일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