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17:17-24절을 보면
“이 일 후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성경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가 된 우주와 그리고 인생들은 그저 헛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피조물들에서 예수의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 피조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기록이 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종교를 만들어서 종교적인 행위에 빠져 있고 그런 인생들의 사상을 경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런 인생들입니다
스스로 겸손하기만 해도 그나마 다행인데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마치 특별한 선택을 받은 것과 같이 도리어 교만으로 넘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들의 자존감을 높이려 하다가 사망의 길로 가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 시대입니다. 그들 역시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 왕이 죽고 하나님께서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라를 나누어서 통치하게 하시고 있고 그래도 남 유다는 성전이 있고 제사장들이 있어서 그나마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라도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입니다
여로보암 왕에 의해서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솔로몬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산당을 만들어서 제사를 드리게 했고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그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입니다
벧엘과 단입니다. 그곳에 있는 산당을 솔로몬의 성전과 같이 생각을 했고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와 같이 금송아지를 산당에다 만들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제사를 드리는 의식의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로보암 왕에 의해서 세워진 금송아지는 그들이 앗수르에 멸망을 당해 흩어질 때까지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명맥도 없습니다.
그래도 남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가고 나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70년 만에 돌아왔고 또 로마에 의해서 디아스포라가 되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지만 지금 그들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을 해서 유지를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금송아지입니다
그리고 다른 절기를 만들어서 지켰고 일반 사람으로 제사장으로 삼아 제사를 드리는 행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죄는 역시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벧엘과 단에 산당을 지었지만 그것에서 어느 누구도 벗어나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흔적도 없이 열 지파의 자손들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예표와 비유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게 되자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든 것이고 그 죄에서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다
그 종교가 생겨나자마자 그들 역시 인생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면 이 시대 종교인들이 아마도 저를 이단이라고 공격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당시 북 이스라엘 역시 벧엘과 단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역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망할 때까지입니다
이방의 종교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창조된 세상이 없어질 때까지 이방의 종교는 삼위일체라는 자기들이 만든 신을 섬기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거대한 종교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있는 인생들은 어느 누구도 거기서 스스로가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이렇게 금송아지를 만들고 또 삼위일체라는 것을 만들면서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고 결국에는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이스라엘을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17.“이 일 후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그 죄가 이방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니케아 공회의 죄가 지금 이 시대까지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고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북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우리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정의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는 것을 자기들이 특별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삼각형의 형상을 그려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한 하나님이면서 위가 셋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고 종교는 거대하고 인생은 소자이기 때문에 감히 어느 누구도 의문조차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죄가 죄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섬기면서 제사를 드리고 있는 그들이 무엇을 못하겠는가를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 이방의 여인인 이세벨이 아합의 왕비가 되어 바알과 아세라까지 섬기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죄입니다.
아합 왕 때만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종교 역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고 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인생으로는 아무리 뛰어난 지혜가 있다고 해도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알입니다
부요의 신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시 근동 지방에 풍습으로 신을 섬기고 있었고 그것의 대표가 되는 신이 바알입니다. 이 바알은 여러 가지 토기나 청동기 또는 나무 등의 형태로 지금까지 발견이 되고 있는 것을 고고학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누구나 다 같습니다. 저 역시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제 안에서는 아직까지도 끊임이 없이 정욕이 불일듯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성령이 오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제가 바알을 좇지 않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지만 제 육체의 정욕은 늘 바알에게 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세라입니다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보이는 교회가 아세라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종입니까?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교회를 아세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에 있는 사라의 교회가 아니면 보이는 교회는 다 아세라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역시 이방의 종교 역시 이 아세라를 세우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세벨입니다
아합의 왕비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왕비는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고 그가 북이스라엘에 지금 이 시대로 하면 보이는 교회를 세우고 있고 그것을 비유로 해서 아세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무슨 말씀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바알입니다
풍요의 신입니다. 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이 바알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부자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유대인들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다 바알 사상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다 의롭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바알로 그리고 부자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자기들이 행한 행위를 간증이라고 하면서 까지 자랑을 하고 있고 그것이 다 바알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북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예언으로 하고 있고 그 비는 은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니까 북이스라엘은 고통 중에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가운데 예언을 한 엘리야를 시돈에 속한 사르밧 과부에게로 보내 엘라야를 공궤하게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접경지역입니다
시돈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이스라엘과 접경 지역으로 한 때는 번영을 누렸던 지역이라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는 지역입니다. 어찌되었든 이방이라고 할 수 있고 거기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엘리야가 이 과부에게 갔을 때 통에 가루 조금과 기름 조금이 있어 나와 내 아들이 음식을 해서 먹고 죽으려고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사르밧 과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성경에서 다 알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엘리야가 그곳으로 가서 과부의 공궤를 받으면서 있다가 17절부터 그 아들이 죽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7:5절을 보면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열국의 주모라 칭함을 받지 못하리라”
성경입니다
북 이스라엘에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어느 사건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다 비유와 예표로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그 말씀이 해석이 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부
주모 성경은 거의 비슷한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여주인이라는 뜻을 안다고 해서 성경이 해석이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인생들의 언어로 기록이 된 그 언어를 성경에서 보고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갈데아입니다
바벨론이라는 나라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열국의 주모라 칭함을 받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서 종교가 그리고 음녀가 받을 심판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환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모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시돈에 있는 사르밧 과부의 집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영의 일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실제 있었던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성경을 보고 인생들은 마치 이스라엘이 특별한 민족이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금 이 시대까지도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신의 백성이라서 기도를 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고 세상이 그대로 진행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미디어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 지혜가 바로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는 이 시대까지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기도한 대로 역사를 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종교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모입니다
그저 시돈에 있는 사르밧 주모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는 언어를 알 정도만 되도 성경을 보고 누구나 다 알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는 것과 같이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인생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다 신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특별히 자기들의 신을 믿는 백성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막연하게 하늘을 보고 신을 생각을 하고 있고 신을 찾고 의지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인류사를 통해서도 잘 알고 있고 근동 지방은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하나님을 찾는 사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 주모입니다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라는 의미는 충분히 알 수 있는 말씀이고 그 아들이 죽었다는 것은 그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4:26절을 보면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열왕기상의 말씀입니다
그저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어느 특별한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선지자로도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복음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난 후에 26절에서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엘리야 역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시돈 땅에 있는 사르밧 과부 집으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보내심을 받았습니까?
주모는 교회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의 교회가 있다는 것을 이미 엘리야 시대에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교회에 아들이 있는데 그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과부의 아들입니다
그가 죽고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는 초등학생이 성경을 보고도 알 수 있는 지식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인생의 지식으로 미혹을 하는 말을 하는 것은 그저 세상에서 지식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안에서 생명을 얻어 영생을 얻는 일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그냥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서 왔는데 그것을 그 주모의 아들이 죽은 것으로 시작을 해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교회입니다
누가복음에서도 주님께서 그것을 말씀을 하기 위해서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이 분이 나서 주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지금 사르밧 과부와 그리고 나아만 장군을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이방인들이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지금 아합 왕 때에 비가 오지 않아서 사르밧 과부 집에서 공궤를 받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간 것이고 이방의 교회에 아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8.“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복음입니다
그리고 주의 은혜의 해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단어들을 보고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온갖 감언이설로 포장을 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그들이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의 은혜의 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여인입니다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은혜의 해가 임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죄가 생각이 나지 않아야 그러니까 지금도 죄 사함이라는 것을 말을 하면서 그 죄가 사해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런데 그 죄 사함도 사실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이 시대 종교인들이 말을 하는 죄 사함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가 생각이 났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럼으로 해서 자기 아들이 죽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리고 마치 자기 육체의 죄가 사함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어느 종파는 죄인이라고 하면 마치 정죄를 하는 것과 같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은 의미입니다
그 결과를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복음인데 이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그들이 아니 죄사함의 결과를 모르는 그들이 성경에서 죄사함이라는 단어를 보고 그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생각입니다
죄가 생각이 나면 그러니까 죄사함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아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이 전파가 되어 그 죄사함의 결과로 주의 은혜의 해가 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주모가 자기 아들이 죽자 엘리야에게 내 죄가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기 위해서 내게 왔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19.“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갈라디아서4:27절을 보면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자녀입니다
다 영의 생명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라를 비유로 해서 갈라디아서에서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재앙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은 재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선지자로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엘리야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방의 교회에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것을 비유로 하기 위해서 죽은 아들을 살리는 것을 표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엘리야입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선지자로 오셔서 주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해서 주의 은혜의 해가 임함으로 해서 이방의 과부인 교회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죽습니다.
복음이 전파가 되지 않는 교회에서는 아들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보냈고 그 엘리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 하는 선지자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이방에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해서 시돈 땅에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과 같은 우리 이방인들을 살려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시간적 개념으로 그리고 인생의 지식으로 그 언어를 아는 것으로 성경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복음이 전파가 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달달 외운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방의 교회입니다
인생들은 죄가 생각이 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이방의 교회의 사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고 있는 우리 인생들의 생각을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 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그가 이 아들을 살려주면서 복음이 전파가 된다는 것을 누가복음을 통해서 주님께서 엘리야가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서 그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은 것과 그 아들을 엘리야가 기도를 해서 살린 것의 현상만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과부입니다
이방의 교회는 과부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보내심을 받음으로 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고 그 아들이 살아난다는 것을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가 있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사건입니다
그 현상을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고 성경을 안다고 하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그저 종교적인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리고 이방의 교회에 그분이 남편이 되셔야 아들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 아들은 영의 생명을 비유로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1.“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누가복음7:12절을 보면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엘리야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고 계시고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고 사도 베드로는 이어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고 주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주님께서는 선지자로 그러니까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실제 누가복음에서 과부의 독자가 죽어 메고 나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살려 주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인이라는 성에서 지금 엘리야가 주모의 아들을 살려주는 것과 같이 그 어미의 독자 아들을 살려 주시고 있습니다.
죽은 자입니다
그저 그 육체를 살려주시는 것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자 같은 헛것 같은 것을 티끌로 돌아가는 것을 다시 살려주셔서 무엇 하겠습니까?
영의 생명입니다
단지 육체의 생명을 살려주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예수의 생명이라고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방의 교회가 어떻게 되는가를 이미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내심을 받아 복음이 전파가 됨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이방인들도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24.“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이렇게 이방의 교회에 복음이 전파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교회는 남편이 없는 과부와 같은 교회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이제 그 교회가 그의 아내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아들이 산다는 것을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성경은 우리 피조물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약속을 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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