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64,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윤주만목사 2023. 12. 30. 11:06

여호수아3:14-17절을 보면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 쌔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성경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를 보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들이 성경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이 행했던 그 일들이 이 시대도 성경에 문자 그대로 기록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기록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성경은 기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역사를 하면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신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인생들의 사상에서 만들어 낸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말들이 나오는가 하면 성경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에게 선지자나 그리고 기적과 표적을 나타내실 필요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압니다.

제가 이 말씀을 하면 종교에 있는 사람들이 반대를 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도 자기들이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니 하나님의 힘을 빌리고 싶으면 여호수아서를 보고 여리고를 하루 한번 그리고 칠일 째는 일곱 번 돌았다는 그 말씀을 보고 자기들도 그렇게 하고 있고 그래서 혹시 무엇인가를 얻으면 마치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마치고 이제 요단을 건너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이 시대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해서 비유와 예표로 그리고 어떤 상징성으로 기록한 말씀이지 그런 기적과 표적을 이 시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입니다 

참 다수의 힘이라는 것이 늘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집단화를 시키고 한 사람이 깃대를 메고 가면 더구나 그 사람이 종교 안에서 영향력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를 보고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기들의 행위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입니다 

이스라엘을 우리 이방인의 비유로 나타낼 때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는 아직 성경이 다 기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표적들을 나타내 주시고 있습니다. 그 표적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나님을 보고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는 다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행하셨지만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도 성경을 보면서 정말 크게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사랑이시고 우리 인생들을 그러니까 피조물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분은 창조주라서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인생의 것을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입니까?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고 있고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가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길을 가면서도 자기들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을 보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이방인들 역시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자기들의 이성적 생각에 따라 선과 악을 생각을 하면서 그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를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고 또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그 사람이 복이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거의 2000년이 넘어가지만 이제는 자기들의 교리에 매너리즘에 빠져 그것에서 벗어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이가 듭니다

사람은 더욱 더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30대를 넘어가면서 사람은 사상의 고착화가 되기 시작을 하고 있고 그 매너리즘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사실 어떤 강한 충격이 있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생들은 자기가 한번 안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깊이 상고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종교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얼마나 좋은 시대입니까

예전에는 일일이 다 책을 읽어야 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디어가 발달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무한정하게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를 살면서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성경말씀을 종교인들로부터 듣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납득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들으면서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생으로는 아니 귀찮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굳이 변화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수가 잘 가고 있는 것이 자기 눈에 보이고 있기 때문에 왜 나만 유별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 종교는 또 그것을 용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은 거기에 매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따라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구하라고 했으면 반드시 구해야 하고 또 성령을 어떻게 받는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종교에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입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광야 40년을 지나고 이제 모세와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이 다 죽고 난 후에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가나안을 점령하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호수아를 세워 점령을 하게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모든 일은 다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하심으로 해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는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도가 있다면 설명을 하기가 더 쉽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도가 없어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다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알고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뜻을 깨닫는 것이 지혜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호수아3: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이스라엘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이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들이 광야 40년을 보낸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은 지금 7절에서 말씀을 하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인생들은 자기들의 이성이 꽤나 지적이고 그리고 의지가 강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우리 인생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고 이성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주셨고 그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지만 사실 이 믿음도 아는 것이 있어야 믿을 수 있는데 인생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요단강을 쉽게 건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니까 마치 이스라엘이 크게 잘못하는 것과 같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막상 내 앞에 부딪치면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여러 가지 이적을 일으키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보이는 실체는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입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믿음의 선진들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인생들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을 예표와 비유로 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하심으로 해서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들어갈 수 있었는가를 우리는 성경에서 보아야 하고 그것이 믿음에 든든히 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역시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어떻게 했는가는 이미 신명기에서 모세가 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고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광야를 지나 조상들에게 약속을 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고 지금은 그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요단을 건너기 위해서 장막을 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입니다. 그 조상들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다고 해도 사실 인생이 막상 들어가려고 하면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실제 정탐한 사람들에 의하면 성이 높고 아낙 자손이 있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요단을 건너는 일입니다 

그냥 건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요단을 건너게 하시는가 하면 이제 모세는 죽었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셨던 것과 같이 여호수아와 함께 계신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요단을 건너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입니다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당시 가장 강대한 나라라고 하는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때 모세와 함께 하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고 비록 광야 40년을 지났지만 요단 이편에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그 땅을 점령하고 주셨습니다

 

이제 요단 건너편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들은 전쟁을 해서 그 땅에 살고 있는 족속들과 전쟁을 해서 다 멸하고 그 땅을 차지를 해야 하는 일입니다. 사실 그 땅에 사는 거민이 이스라엘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요단을 건너 그 땅을 점령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건널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지금 여호수아에게 요단을 건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모세와 함께 있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백성들로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넜습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 세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음으로 해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증거를 받아 홍해를 건넌 것과 같이 요단을 건너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게 하리라 

사람들은 그저 종교 안에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자기들보다도 강한 족속이 토착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땅을 점령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시겠다는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그들은 건널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는 것입니다 

그 아는 것에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무작정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을 주신 목적도 바로 우리가 성경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을 수 있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해서 요단을 건넜고 우리는 그것을 보고 아는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세입니다 

그의 인도에 따라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것과 같이 이제 여호수아를 통해서 요단을 건넘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이스라엘로 알게 하고 그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그들이 담대하게 건널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2:17절을 보면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건너다 

지나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원어의 뜻보다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광야입니다. 그것은 교회입니다. 그 교회를 사도 요한은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반드시 이 교회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나가야 하는가 하면 이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광야 교회입니다 

거기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습니까? 그리고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그 모든 것이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의미로 지금 사도 요한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는 세상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온갖 정욕에 빠져 있습니다. 그 정욕이 사람의 이성에는 다 좋은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이성적 지식으로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마치 지금 이스라엘이 광야 교회를 건너듯이 그러니까 광야를 잊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듯이 우리도 보이는 교회 안에서의 모든 것을 지나가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단을 건너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앞에서 말씀을 했지만 르우벤 그리고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이편에서 기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요단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들이 기업을 얻었지만 그들의 군대는 앞에서 요단을 건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건너야 합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교회를 지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보이는 교회는 다 정욕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그리고 예표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일이 이스라엘만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세상입니다. 그 교회에서 우리는 정욕을 다 버리고 마치 지나가듯이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요단을 건너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용입니다 

구약의 말씀만 인용을 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에서 풀리지 않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는 신약에서 인용을 해서 왜 우리가 이 성경을 보아야 하고 그리고 우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주셨습니다

다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저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치는 사람은 너무 어리석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금 여호수아서를 보면서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는 것이 사실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러나 있습니다

광야 교회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우리도 반드시 요단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요단을 건너는가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아들을 보고 믿는 자는 이 세상도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행하던 모든 행위가 다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이고 그 정욕을 다 버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와 상관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역시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아들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 그러니까 보이는 교회에서 행한 모든 정욕을 버리고 지나가듯이 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정욕이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좋기 때문에 종교 안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정욕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이스라엘의 육입니다 

그것은 항상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저 보이는 문자 그대로의 사건을 보고 마치 성경을 아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육을 보고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면 지금 이 시대 언약궤도 없고 제사장도 없는데 이 성경을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모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요단강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강을 건널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애굽이라는 진짜 세상에서 광야 교회를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모형을 보여 주시고 있고 우리도 역시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언약궤입니다 

지성소 안에 있을 때는 그룹들이 그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우리를 위해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언약궤입니다 

거기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십계명이 들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대표할 수 있고 그 십계명을 언약의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십계명을 메고 있는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3:6-7절을 보면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문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는 의미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도 그 문자를 보고 자기들이 그대로 행위를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입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입니다 

그 계명이 돌에 썼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의문은 죽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십계명을 그런데 이스라엘도 지키다가 다 사망의 길로 갔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그들의 교리에서 이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이 죽게 하는 의문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그는 더 이상 진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생활을 하면 사람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더 이상 성경을 상고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입니다 

왜 언약궤를 메고 요단에 발을 잠기고 있습니까? 이 언약의 계명으로는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실제 땅을 차지하게 위해서 요단을 건넜지만 우리는 영원한 기업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반드시 요단에 빠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요단에 빠지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 조상들에게 하나님이 언약을 하신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못 건넙니다.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건널 수 없기 때문에 이 시대도 십계명이 다 살아 있다고 지켜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이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믿게 하기 위해서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에 발을 잠기자 흐르던 물이 그쳐서 건널 수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모세와 함께 하던 것과 같이 여호수아에게 함께 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여호수아에게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에 발을 담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함께 하실 때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과 같이 마른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인생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런 그들은 요단을 건널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홍해의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것을 의미를 하는 것과 같이 의문에 쓴 계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함께 못 박았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건널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 쌔

 

율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는 율법을 지킬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 그대로 주님께서 다 지키시고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어 그의 의로운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요단입니다 

그냥 건너려고 하는 사람은 건널 수 없습니다. 반드시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그 물에 발을 담가야 그 물이 그쳐서 이스라엘이 건넜다는 것을 예표의 사건으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돌에 써서 새긴 의문의 율법은 우리는 죽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이는 율법을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지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언약입니다 

무슨 언약입니까? 물론 율법에는 이스라엘에게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형제 야고보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율법을 들여다보고 실행하는 자 그러니까 주님께서 완전케 하셨다는 것을 믿는 성도는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단을 그냥 건널 수 있습니까

절대 못 건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담대하게 인생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반드시 이 율법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없고 그래서 그 모형으로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널 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에 잠기매 물리 그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시편143:6절을 보면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그런 성도만이 시편의 말씀과 같이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단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우리가 그냥 건널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반드시 언약궤를 멘 제사장의 발이 잠겨야 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을 마른 땅같이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주를 사모합니다. 왜 주를 사모하는가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주를 사모한다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입니다 

사도 바울이 돌에 써서 새인 죽게 하는 의문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 교회에서 그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요단을 건너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케 하신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믿고 요단을 건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히 요단을 건너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