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025,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니라

윤주만목사 2023. 8. 2. 06:10

사무엘상20:17-23절을 보면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너는 사흘을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내가 과녁을 쏘려 함같이 살 셋을 그 곁에 쏘고 아이를 보내어 가서 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이편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앞편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니라

 

성경입니다 

구약 성경은 거의 이스라엘의 역사와 같이 성경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해서 선지자들의 모든 글을 보면 마치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우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역사 속에서 진리를 알고자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이스라엘의 역사와 같이 성경을 보고 있고 이스라엘을 동경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삼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본받아야 하고 그들을 배워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도 인생이고 우리도 역시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다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이방인이라고 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다른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다 같다는 것을 그래서 사도행전에서도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표입니다

그들을 선택하셔서 성경에 그들을 기록하게 하신 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예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마치 이스라엘이 대단한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들이 거주하던 땅을 성지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은 다 같습니다

다만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구속의 일을 나타내 주신 것 외에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가져서도 안 되고 이제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자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입니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고 영생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의 예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어 영생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전쟁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인생들의 탐욕에서 빚어진 일이고 그것은 인생들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항상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물론 먼저 이스라엘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유럽을 통해서 아프리카로 전해졌다가 이제는 아시아까지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복음을 전했는가 하는 것에 있어서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종교를 전한 것에 불과하지 어느 누구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이나 그리고 미주나 유럽은 특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우리에게 성경을 전했고 그 성경이 번역이 되고 하는 일은 그들의 도움이라는 것을 제가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일입니다 

종교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일로 복음이 전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성경도 종교인들의 열심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집에서 보는 큰 글자 성경은 그래도 좀 낫다고 할 수 있지만 들고 다닐 수 있는 거의 모든 성경은 사도신경이나 십계명을 큰 글자로 앞에나 뒤에 편집을 해서 출판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종인들의 열심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성경 원문을 그대로 출판을 했다면 이 시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그래도 더 많이 상고를 했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 인하여 성경은 많이 훼손이 되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장절을 정해 놓은 것도 문제가 되고 있고 제목을 붙여 놓은 것 역시 성경을 보는데 있어서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성경을 원문 그대로 출판을 하면 더 좋은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적 생각으로 편리를 따르다보니까 지금과 같이 편집을 해서 출판을 하고 있고 그것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속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은 당을 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종교의 거대함에 빠져 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사단은 종교와 문화를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고 거기에 모두가 미혹을 당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일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이라고 해도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는 순간 세상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믿음의 선진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은 그저 세상의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비유와 예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문자 그대로를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결국에는 이스라엘과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증거를 받고 그 믿음이 역사를 해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감동해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왜 기록하게 하셨는지도 모르고 그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들도 인생입니다 

그리고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에서 이미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광야라는 교회를 거쳐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단 두 명만이 하나님 나라를 모형으로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까? 하나님을 알던 세대가 죽으면 그들은 바로 타락의 길로 갔다는 것을 사사기에서 그리고 선지자들의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때에 남 유대가 멸망을 당할 때 그 성에 진리를 구하고 공의를 행하는 자가 한 사람이 있으면 이 성을 사해 주시겠다고 하지만 그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입니다 

그리고 예표입니다. 우리 이방인 역시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방인들 역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역시 종교가 되어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간음과 음행이 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17,“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물론 압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이 시대로 하면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보는 목적을 망각하고 있고 자기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그 기초조차 모르면서 그저 종교에 의해서 소가 푸주로 끌려가듯이 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러려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믿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았고 이방의 종교도 종교가 되자마자 그들은 성경을 인용하는 것을 금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지금 이 시대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아는 말씀입니다

그것만 성경을 편찬하면서 각주를 달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지식으로 잘 모르는 것은 각주를 달아 놓지를 않고 있고 그래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종교에 의해서 그 각주를 달아 놓은 말씀만 서로 인용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배우면서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당시 이단으로 규정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서로 인용이 되어야 하는데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아는 것만을 인용을 허용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으니까 자기들의 교리가 무너지기 때문에 그것을 아직까지 금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1:26절을 보면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요나단입니다 

그리고 다윗입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울의 아들로서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나단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다윗이 알고 201절을 보면 다윗이 요나단에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고 묻고 있고 요나단은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내 부친의 대소사를 내가 다 알기에 이 일을 내가 숨기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 요나단입니다 

그리고 인간 다윗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인간 요나단과 인간 다윗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그저 인생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앞에서도 말씀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정입니까

사나이들의 우정이 깊어 사랑으로 까지 말을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요나단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가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것을 다윗이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고 사무엘하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때에 그를 살려 준 것을 기억하고 사무엘하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 다윗의 마음으로 그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씀을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나단의 사랑입니다 

다윗이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이하다, 놀랍다 등의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으로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인간 요나단이 인간 다윗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 커서 마치 여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합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왕이고 요나단은 다윗을 그런 왕으로 생각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그 사랑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희미하게 아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1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입니다

그는 다윗을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마치 여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여인이 아니라 자기 생명과 같이 아니 생명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2:9절을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3:7절을 보면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한복음8:12절을 보면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나단의 사랑입니다.

다윗의 시에서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예수 그리스도로 사랑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인생 다윗이 아니라 그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것을 알고 사랑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이하다.

뛰어나다, 비범하다, 기이하다, 놀랍다 등의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우리 성도들을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이한 빛입니다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밤에 주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는 너무 놀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일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그 사랑이 기이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그저 말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고 있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감성입니까

지금 성경에서 우리에게 그런 감성적인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야 우리가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기이한 사랑입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요나단은 다윗을 보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윗을 사랑했고 그 사랑이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까

지금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의 아들과 두 번째 왕이 되는 다윗의 사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시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한 것은 정말 기이하게도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는 다윗을 사랑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다 정결한 처녀로 예수 그리스도께 중매를 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여인의 사랑보다 더 승하였다는 것을 사무엘하에서 다윗의 시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이합니다

지금 언제입니까? 아직 구약이 다 기록이 되지 않은 때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다윗을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정결한 처녀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다윗을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의 사랑입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 사랑해요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정말 요나단의 기이한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그런 감성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너무 감성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내 안에 그의 생명이 거하심으로 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에 참예를 하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 노래를 부르라고 말씀을 하니까 찬송하라고 찬양하라고 말씀을 하니까 그저 곡조를 붙여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지만 다윗을 보고 여인의 사랑보다 더 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0:39절을 보면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감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감성주의에 빠지게 하고 있고 그런 감성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지만 실상은 악을 행하는 행위가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나단입니다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지만 사울이 죽으면 정상적으로는 그가 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입니다

자기의 왕을 빼앗을 수 있는 다윗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너는 왕이 되고 나는 그 다음이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왕도 버리고 그는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요나단의 사랑입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사랑이 얼마나 기이한 가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요나단은 성도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나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요나단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바로 요나단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보다 그리고 왕위보다 다윗을 더 사랑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에서도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의 목숨보다 그는 다윗의 생명 그러니까 요한복음에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생명의 빛을 얻는 것을 더 사랑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육체의 생명입니다

그는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 생명의 빛을 얻기 위해서 요나단은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요나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의 빛을 얻는다는 것을 사무엘하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고 그래서 기이한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는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습니다. 그 생명이 천년을 살고 이 세상에서 모든 영화를 누린다 해도 그것은 그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는 것을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인생의 생명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의 빛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생명의 빛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고 역사를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했고 그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더 승하였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1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지도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 주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아서 성경을 본다고 하는 그들이 주님의 말씀과 같이 다 소경이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까

이 시대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이방의 종교는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그리고 태초에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세상의 초등학문에 따라 자기들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 그렇게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의 교리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종교의 교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생명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요나단의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인간적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서 거듭난 자만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자만이 생명의 빛을 얻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입니다 

그의 생명도 모르면서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노래 평생을 불러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보다는 요나단과 같이 다윗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우리 성도는 거듭난 생명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그렇게 썩지 아니할 씨로 거듭난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내신 이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의 기이한 빛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빛을 성경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13절에서 빛이 있으라 하셨고 그 빛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생명의 빛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18,“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너는 사흘을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내가 과녁을 쏘려 함같이 살 셋을 그 곁에 쏘고 아이를 보내어 가서 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이편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앞편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인생 다윗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요나단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는 말씀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그저 이스라엘의 역사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인물들의 사건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고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요나단의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자기가 왕 위를 버리고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고 해서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고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비유로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상20:16절을 보면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찌어다 하니라

 

언약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입니다. 그 언약은 그저 이스라엘의 요나단의 집과 다윗의 집의 언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에서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생명에 대해서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언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기를 정말 여인이 사랑하는 것보다 더 승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기 위해서 다윗을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8-22절 말씀입니다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성도는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 있고 그 빛을 선전하는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23,“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니라

 

히브리서13:7-8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요나단은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이 요나단은 우리 성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믿음입니다

요나단의 믿음을 본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버리고 다윗의 생명을 사랑했던 성도입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께서로 난 자인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의 빛을 얻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