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강, 요한복음 2:18절을 보겠습니다. (신 145쪽)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아버지의 집입니다
주님께서 유대인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자와 돈을 바꾸어 주는 자들이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그들을 내어 쫓으시면서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실제 장사를 했습니다. 왜 장사를 했는가 하면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장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정말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정성스러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그들은 성전에서 장사를 했고 제사장들은 그것을 용인을 했습니다.
그들이 왜 장사 했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냥 대충 하나님을 믿을 것 같으면 이렇게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어왔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중요한 신앙이었습니다.
열심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사와 번제를 원치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그렇게 밖에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제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을 짓게 하신 이유를 이스라엘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짓고 그 안에서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제사장들이 했습니다.
문자를 아는 것이 이렇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문자 그대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또 절기를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전을 짓게 하신 것은 그 성전을 통해서 영의 일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다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들은 그것을 하나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영의 일에 있어서 소경이 되어서 성전을 보면서도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것에 대한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성막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도 그 성전 안에 있는 기구 하나하나가 의미를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물두멍에서 씻었습니다. 그리고 떡 상에 떡을 만들어서 올렸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등대가 꺼지지 않게 했고 분향단에 향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일 년 일 차례 휘장 안에 있는 속죄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를 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율법을 지키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사람들에게 더 좋게 보이기 위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성전 앞에서 장사를 하도록 했고 그 모든 것이 다 율법의 행위를 위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와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는데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시는데 그들은 매매를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것이 비단 이스라엘의 일만이 아니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일이라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이방의 교회는 교회라는 건물을 짓기 시작을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할 수 있는 한 사람들이 보아도 하나님이 계실 것 같은 교회를 짓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는 것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입니다
그들은 그 안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입니다. 교회를 짓고 그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고 두 짐승의 표를 받아 매매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선하고 의롭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야 어떻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가득차 있고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 탐욕으로 작용을 해서 하나님을 더욱 잘 믿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기들의 육체로 하고 있습니다.
매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종교가 되어 있는 모든 교회는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집이 이제 어디로 왔는가를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럽습니다.
우리의 의는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는 더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깨닫지를 못해서 교회 안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천국에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전입니다
더럽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깨끗한 것이 없습니다. 의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다 더럽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사람의 눈으로 이성으로 보이는 것으로 더욱 더 거룩하게 보이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성가대에 서서 가운을 입고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서 헌금을 하고 있습니까? 그 모든 행위가 다 더럽다는 것을 모르면 그는 평생 더러운 일만 교회 안에서 하다가 멸망을 당하고 말게 됩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단 하나의 목적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상고를 할 때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가능한 많이 보고 또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억이 되는 말씀들이 서로 인용이 되어서 우리가 든든한 믿음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소?"”
성전입니다
감히 어느 누구도 그 성전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 이제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난 후에 이제까지 유대인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경에서 본 문자 그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뒤집어 질 일이 지금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을 해서 이 시대 가장 큰 교회에 가서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뒤집어 버리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감히 그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서 속된 말로 깽판을 부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심으로 해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로부터 원수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12:38-39절을 보겠습니다. (신 20쪽)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과 같이 주님이 오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을 통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오실 것을 알고 있었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지난 400년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보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갑자기 나타나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주의 길을 평탄케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보고 모두가 그리스도인가 하여 가서 물어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는 빛에 대해서 증거를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 빛에 대해서 증거를 함으로 해서 나로 하여금 사람들이 빛을 믿을 수 있게 증거를 하는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소문이 다 나 있는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에 메시야가 오신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유대인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 가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는 일을 하셔도 어느 누구도 나서서 막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1장을 보았습니다.
당시에 메시야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다 세례 요한에게 나와서 질문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도 사람을 보냈고 바리새인들도 사람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라고 묻고 있었고 세례 요한은 내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을 합니다.
곧 내 뒤에 오실 이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그의 신들매를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말을 하니까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곧 메시야가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이 유대인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오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을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종교의 권력이 강한 때라고 해도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주님께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니까 그들 역시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 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주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주님이 오셔서 성전에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니까 유대인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묻습니다.
성전에서 그렇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조심스럽게 묻고 있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일 수 있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라면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입니다
네가 하나님이라면 표적을 보일 수 있지 않느냐고 우리에게 그런 표적을 보여 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에서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말을 하니까 표적을 보여 달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면 기적을 일으키면 우리가 그것을 보고 믿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지를 않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지극히 이성적이었던 그러니까 인생의 이성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요구였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수많은 기적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실 때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엘리야나 엘리사는 많은 표적을 나타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미 그들도 메시야가 오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는 못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믿지 못하는가 하면 만약에 메시야라면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성전에서 더 나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아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요구였습니다. 자기들의 상식으로는 성전에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을 텐데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으로부터 곧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더 나은 제사를 드리기 위한 유대인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을 용납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성전이 지어지고 난 후에 대대로 그렇게 장사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그리스도면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그러면 우리가 그 표적을 보고 믿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표적을 구합니까?
그들이 분명히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와서 미리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표적을 보면 우리가 믿겠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표적을 본다고 해서 사람들이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22-23절을 보겠습니다. (신 264쪽)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왜 표적을 구하는가 하면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보이셨던 표적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런 표적을 보고 선지자라든지 아니면 메시야라고 믿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
겉으로 나타나는 흔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인도하심을 받을 때 수많은 표적들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주님께도 역시 똑같은 것을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을 통해서 곧 내 뒤에 오실 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들은 주님이 오셔서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아내는 것을 보고 표적을 보여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자기들이 표적을 보면 믿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사람들은 꿈에서 그리고 환상에서 표적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밖에 없는가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 많은 말을 들었습니다.
누구는 꿈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누구는 감정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누구는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누구는 어떤 자기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누구는 진짜 환상으로 본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믿음이 있는 사람을 아직까지 못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표적을 가지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그런 표적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선택을 받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표적으로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까? 제가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믿음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이 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그런 표적을 보고 자기가 영생을 얻었다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성경 자체가 모순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단지 표적을 보았다고 해서 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표적을 본 것과 아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에 대해서 아시기 바랍니다.
표적을 보고 그것을 본 것으로 내가 영생을 얻었다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가 영생을 얻었다고 하면 스스로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입니다
방언을 받으면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방언을 마치 표적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방언이 아니라 종교적인 샤머니즘 적인 행위를 하는 그런 것을 가지고 방언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표적으로 삼아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마치 그 방언을 하는 것으로 자기가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초가 되는 말씀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표적을 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표적을 보았다고 해서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아는 것을 다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본질의 것을 말을 하면서 이 시대 역시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율법주의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는 것을 인정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표적으로 보고 싶어 합니다. 아니 그 표적을 보고 자기들이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이라는 것은 사전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겉으로 나타나는 흔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흔적입니다
그것과 아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있고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면서 겉으로 나타나는 흔적을 보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자체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흔적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보시기 바랍니다.
기독교가 얼마나 샤머니즘에 빠져 있습니까? 성경에서 주님과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이 병자를 고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그러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교회가 아니라 병원을 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슨 병을 고쳐졌다고 간증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표적으로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가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주님이 그리고 선지자들이 병자를 고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표적들은 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보고 이 시대도 마치 병자가 고쳐지는 것과 같이 병원을 차리고 있는 교회를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영생입니다
영생을 사모하지 않고 있습니까? 주님을 빨리 만나고 싶다고 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런 그들이 왜 병에 걸리면 그 병을 고쳐 달라고 때를 쓰듯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런 이중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병자의 치유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은사입니다 그런 것으로 표적을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병자의 치유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영생에 대해서 성경은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병자가 치유 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다 이중적인 사람입니다 천국에 그렇게 가고 싶다고 하는 그들이 왜 그렇게 치유 받아서 오래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은사입니다
이 시대는 은사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은사가 아니라 종교적인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방언의 은사를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로마라는 강대국에 의해서 유럽이 거의 한 국가처럼 살아가고 있었고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 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방언의 은사가 많이 주어졌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우리나라 성경은 이미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이 방언의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성경이 바르게 번역이 안 되어 있는 나라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방언을 한다고 하는 그런 것은 다 종교에서 나온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표적을 보고 믿습니까?
천사가 나타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믿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이라도 우리나라에 천사를 보내서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표적으로는 우리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36쪽)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표적입니다
우리 성도는 유대인들과 같이 표적을 원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은 거의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교회는 거의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로 넘쳐 나고 있고 그 표적을 간증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행위에 대해서 자기들이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경이 다 기록이 되기 전입니다 그때는 예표와 비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수많은 표적들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표적을 보이신 것은 다 영의 일을 비유로 해서 보이신 것입니다
이 시대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의 표적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꿈을 꾸었다 해도 그것은 표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천사를 만나는 환상을 보았다 해도 그것이 표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표적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 그림자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설령 제가 오늘 밤 꿈에서 아니 환상에서 하나님을 본다 해도 그것을 표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믿지도 않습니다. 내가 환상을 보고 꿈을 꾼다 해도 그것은 그저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고 또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표적을 구하는가 하면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많은 표적으로 역사를 하셨기 때문에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구원의 일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성경 외에 그 어떤 것도 표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 말씀이 표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영의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의 역사가 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보다 더 큰 표적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영생에 확신을 갖는 믿음보다 더 큰 표적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난 영이 거하시는 것을 믿는 역사라고 믿고 있습니다.
표적을 보고 싶습니까?
저도 한 때는 정말 왜 나에게만 표적이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제 믿음에 대해서 의심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복음의 비밀로 몰랐고 성령도 받지 못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그러나 그때 표적을 보지 않은 것이 저에게 있어서는 더욱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상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성경에서 감동을 받아 복음을 깨닫고 듣고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었다는 믿음의 확증이 있는 것이 우리에게 표적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이 표적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쓴 편지가 표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쓴 성경만이 표적이 아니라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이 우리에게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큰 표적은 없습니다.
아니 우리가 눈으로 보고 느끼고 하는 그런 것은 표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성경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계시를 해 주고 있고 우리는 그 성경에서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에 든든히 서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다
너무 샤머니즘에 빠져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보다 더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표적을 하나라도 체험을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고 주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마음에서 성경 말씀이 생각이 나는 것 까지도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유대인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표적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설령 표적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보여주시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못 보여 주시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을 본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이미 이스라엘에게 광야에서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만나를 먹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메추라기를 먹여 주셨습니다. 또 물이 없을 때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서 먹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사막을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또 대적과 싸움을 할 때 하나님께서 이기게 역사를 해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이스라엘은 다 보았지만 히브리서에서 그들이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보면 믿을 것 같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들은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표적을 본다고 해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이 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다른 것이 표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 말씀이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해서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이루신 것을 알아서 믿는 것이 우리에게 표적이 되고 있고 영생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그 육체로 천사를 보면 뭐 합니까? 그 육체로 하나님을 보면 뭐 합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표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령 우리가 그런 표적을 경험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육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고 그 생명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 육체가 보고 느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 이성이 아는 것 역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깨닫지를 못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영의 일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인도를 해 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으면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그 영이 생명이 되어 우리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보다 더한 표적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해서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거하고 있고 그것을 확신하는 믿음이 우리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설령 주님께서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셨다 해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수많은 표적을 보여 주셨는데도 믿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진리로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흔적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믿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지금 이 순간 서울 하늘에 천사가 나타나서 여러 가지 표적을 보인다 해도 당시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안 됩니다.
그런 표적으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야지만 우리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이 성경말씀이 표적이 되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성전에서 매매를 하는 사람들을 쫓아내며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으면 그들은 표적을 구하기보다는 지혜를 구했어야 합니다. 아니 그들은 성경을 상고를 하면서 성경에서 지금 자기들이 보고 있는 그분이 성경에서 예언을 하신 그분인가를 아는 지혜를 구했어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주님 앞에서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2:19절을 보겠습니다. (신 145쪽)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인 역시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교가 되는 순간에 다 율법주의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율법의 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는 것을 보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제사도 자기들의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눈으로 보이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은 당연히 눈으로 보이는 표적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눈으로 보이는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으로 보이는 교회를 짓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목사입니다
그가 신학교를 나와서 안수를 받고 교회를 개척을 합니다. 그러면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교회를 건축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목사들에게는 자기들의 믿음의 척도가 바로 보이는 교회의 건축입니다
그들은 육체의 사람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의 이성은 이 영의 일을 이해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의 일에 있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꾸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자기들의 믿음을 증명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흔적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주님께서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네가 그렇게 하는 일에 대한 표적을 보일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동네마다 가 보시기 바랍니다. 가장 큰 건물이 거의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교회 건물을 크게 짓고 있는가 하면 바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자기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 표적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도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 성전이 없어졌으니까 주님께서는 내 아내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 역시 유대인들과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표적을 보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말에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성전을 사흘 만에 일으키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성적 생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주님께서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이 성전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을 주님께서 하고 계십니다.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
우리는 이 성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성막론을 통해서 성전에 대해서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막론을 보면 성막에서부터 성막의 기구 하나하나의 의미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어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5:9절을 보겠습니다. (구 120쪽)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성전
우리는 이 성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예전에 성막론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막론을 강의를 할 때 성막부터 해서 그 안에 있는 기구 하나하나를 다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10회 정도의 강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이제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 나왔습니다. 이 광야는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교회에서 생활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광야에서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천국의 모형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광야에서 죽는 것은 믿음이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보이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에서는 분명히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식양
겉으로 드러나 있는 일정한 모양이나 방식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전대로라면 모세는 성막을 보았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제가 전에 성막론을 강의를 할 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모세가 하늘의 식양을 본 것으로 말씀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그는 육체의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그가 아무리 모세라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맞습니다. 만약에 진짜 모세가 하나님을 보았다면 그는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진짜 하늘의 성전을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예전에는 본 것과 같이 말씀을 했어도 고치겠습니다. 그때는 제가 그 정도까지 밖에 깨닫지를 몼했던 것으로 받아들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세는 절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직접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을 이제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인생인 모세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막입니다
모세는 그것을 보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약에 성전을 직접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보았다는 뜻이 되고 그렇다면 그는 살아 있지를 못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가 모세라 해도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보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영을 볼 수 없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모세도 역시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는 순간 소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이신 식양은 실제 모세가 광야에서 지었던 성막의 모형을 그대로 보여 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보이신 대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 본 것을 육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볼 수 있는 성막을 모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장막의 식양입니다
그 기구의 식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모든 식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막론에서 이 장막의 식양과 그리고 기구의 식양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 모든 식양 하나하나는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식양 대로입니다
다르게 지으면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그 모든 식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을 의미로 표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성전이 있는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시는데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그 식양을 보여 주시고 그대로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입니다
주님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주님을 상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주님을 우리 마음대로 표현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우리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영의 일에 있어서는 그대로 보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비유입니다
여러 가지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비유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을 하실 때는 내가 네게 보이던 식양대로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하고 있고 보고 있습니다. 내 눈에 더 좋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크고 더 화려하게 지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 식양대로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막입니다
주님의 육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기구 하나하나는 모두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을 비유로 해서 그 기구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람의 이성에 따라 더 좋게 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 성막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휘장입니다
네 가지 색으로 휘장을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람의 이성으로 좋은 색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더해서 휘장을 만든다면 우리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보이는 식양대로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1:22절을 보겠습니다. (신 421쪽)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성막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모세가 성전 그 실체를 보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보았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수많은 환상들을 보고 그것을 다 성경에 기록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입니다
성안에 성전은 내가 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환상이지만 사도 요한도 성안에 성전은 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본 것은 다 환상입니다 그런데 그 환상을 보는 가운데서도 성안에 성전은 내가 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성전은 보지 못했습니까?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성전이시기 때문에 성전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은 보았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짜 우리가 생각을 하는 성이 아닙니다. 우리가 유럽의 고풍스러운 성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을 생각을 하면서 성을 보았다고 하니까 그런 것을 본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표현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내세의 일은 다 비유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을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이상을 상상해서는 안 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진짜 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세의 일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천국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이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성이 있겠습니까?
요한계시록 마지막을 보면 성곽이 있고 성이 있고 그런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상상이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언어적으로 표현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가 내세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 때에 대해서 많은 환상을 밧모라 하는 섬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안도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성전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못 보았습니까?
환상이라고 해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꿈 속에서 보았다고 하고 있고 환상으로 보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 그들이 보았다고 해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저 자기들의 이성적인 상상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하고 있는 이 말씀에 반대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들이 어떤 형상을 본 사람들은 더욱 더 반대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자기들의 이성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 순간적으로 보인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표적에 대해서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환상이나 꿈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본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 사람의 이성에 있는 것을 본 것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을 실체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입니다
말씀 그대로 천국입니다 하나님입니다 말씀 그대로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이신 하나님이시고 스스로 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설명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있고 또 내세의 일에 대해서 믿으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들의 이성으로 정의를 내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왜 성경이 수많은 예표들을 기록이 되어 있고 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을 하게 하시고 그것을 이루어 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내세를 바로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그런 예표들을 통해서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게 하심으로 해서 내세의 일을 믿을 수 있는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상상하는 것 까지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정의를 내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다 거짓을 말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세의 일은 그리고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고 우리가 볼 수 없고 우리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꿈에서 보았습니까? 환상에서 보았습니까? 그것은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니 실제로 보았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은 자기 이성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환상을 보고 있는데 성안에 성전은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 성전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깐 짚고 가겠습니다.
또 삼위일체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안 드릴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을 강해를 하면서 생각이 날 때마다 이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왜 삼위일체가 아닌가를 말씀하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다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전입니다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사도 요한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성전이 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사도 요한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입니다
너무도 중요한 삼위의 한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성전을 말씀을 하면서 그 삼위의 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성령에 대해서 한 마디의 언급도 없다는 것은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성령이 하나님이라면 사도 요한은 분명히 이 말씀에서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과 성령이 성전이 되심이라고 말씀을 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삼위일체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성전을 말씀을 하면서 성령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이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인데 어떻게 그 하나님이 성전이 되시는데 성령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사망입니다
분명히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도 성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성전이 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에 성령이 빠져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사도 요한의 실수입니까?
하나님을 말씀을 하는데 실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저는 절대로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지금 요한계시록에서 자기가 환상으로 본 것을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성경을 안 보고 성경을 상고하지도 않으면서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리를 따라 무조건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타나시우스가 누구입니까?
그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만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정의를 해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만든 것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헬라 사상에 빠져 있던 당시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이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들이 만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입니까?
정말 듣기에도 역겹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령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역겨움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하나님을 자기들이 만들어서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고 사람이 만든 기독교의 교리에 모두가 포승으로 묶여서 사망의 길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99쪽)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성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성전이 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안은 보았는데 성전은 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성전이 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우리는 국어를 정말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자 같은 이가
같다, 추측이나 불확실한 단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인자 같은 이를 보았습니다. 인자를 보았다고 하지 않고 인자 같은 이를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자를 보았다는 말씀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상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그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하고 있는 모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도 요한은 인자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비록 환상으로 보고 있지만 인자 같은 이라고 하고 있지 인자라고 정의를 내려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4복음서를 보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았습니까? 서로 다른 형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그들이 알아보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본 것이 아닙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직접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자 같은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직접 보았다면 사도 요한은 인자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가 환상으로 보았지만 정말 주님과 같은 형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라고 단정을 지어서 인자라고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계신 분이고 영이십니다. 우리 육체의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도 그분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을 볼 수도 없고 만약에 본다면 그것이 환상이든 꿈이든 우리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소멸이 됩니다.
우리 육체라는 것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을 부활하신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자기가 보았다고 하면서 간증까지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입니다
그리고 영입니다 그 차이에 대해서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육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영에 대해서는 내세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도 볼 수 없고 이성적으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천국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것으로도 우리 인생들이 도무지 믿을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있음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전을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보이는 성전을 모세에게 보이시고 그 보이는 식양대로 그 기구의 식양대로 이스라엘로 짓게 하셨습니다. 왜 짓게 하셨는가 하면 우리는 성전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을 짓게 하심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에 대해서 우리가 그것을 보고 알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세의 일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일입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의 언어로는 설명 자체가 안 됩니다. 그것을 그마나 깨달을 수 있게 보인 것이 바로 성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전을 짓게 하셨지만 이것이 영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 성전의 식양을 보고 또 기구의 식양을 보고 성전에 대해서 알게 인도를 하시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내세의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셨습니까?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고 설령 본다고 해도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보이시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믿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 성전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막의 식양을 보고 그리고 그 기구의 식양을 보고 성전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장사를 하는 집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성전에 왔으면 그 식양과 기구의 식양을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 및 어린 양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행위에 빠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열심에 빠져 탐욕을 부리면서 더 나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매매를 하는 일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주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내어 쫓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비록 그것을 우리가 육체로 보고 있다고 해도 그것에서 영의 일을 보고 있지 못한다면 그는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을 짓고 그 안에서 매매를 하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책망을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성전이 이제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방에 복음에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전 못지않게 점점 더 크고 화려하게 교회를 짓고 있고 그것을 성지 순례를 한다고 하면서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스라엘과 같이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표적을 보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성전을 보고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성전을 사십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심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4절을 보겠습니다. (신 281쪽)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하는 말씀은 그것은 육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전을 허는 것과 같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율법의 문제로 그러니까 성전에서 매매를 하는 문제로 예수님과 대적을 하다가 결국에는 자기 땅에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삼일 만에 영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이는 성전만 생각을 하고 있지 주님께서 하늘에 있는 성전이 되심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하나님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성전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성전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에게 보이는 식양대로 그 기구의 식양대로 짓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은 그저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이 다 의미적으로 식양에 표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보고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성전을 알아야 합니다.
왜 성전을 알아야 하는가 하면 그 성전은 하나님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성전이 되심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보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서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강 요2:22, 주님이 오셨습니다 (0) | 2019.09.01 |
---|---|
21강, 요2:20, 성전입니다 (0) | 2019.08.26 |
19강, 요2:16, 유대인의 명절입니다 (0) | 2019.08.13 |
18강, 요2:12, 가나의 혼인입니다 (0) | 2019.08.04 |
17강, 요2:5,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0) | 2019.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