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강, 요한복음 2:5절을 보겠습니다. (신 144쪽)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간의 이성에 따라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고 그것이 스스로에게 소경이 되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가 기독교의 교리 때문에 사람들이 성경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 하나를 만나면 자기들의 교리를 가르치면서 포승으로 묶어서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입니다
왜 성경에 있지도 않은 성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들이라는 말씀과 성자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들이라는 말씀은 전지전능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말씀을 하는 것이고 성자라는 것은 그들이 만든 교리에 따라 삼위일체의 한 위로서 아들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풀립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이 성경에 보이겠습니까? 저는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믿는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성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공부를 잘 했습니까? 이 세상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까? 그런 것으로 마치 자기가 성경을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역시 그들은 자기 지식으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고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볼 수 있는 기본적인 마음부터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 이성이 앞서면 성경은 절대로 성경대로 보이지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소한 말씀 하나가 결국에는 그것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가나 혼인에 청함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명시는 안 되어 있어도 분명히 마리아의 인척 중에 누군가가 혼인을 하고 있어서 마리아가 그 집안일을 돕는 것으로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저 손님으로 갔다면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 수도 없고 그것을 굳이 주님께 말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혼인입니다
실제 있었던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혼인 잔치를 하기 전에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혼인의 기쁨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혼인 행복한 날입니다
그리고 청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이 있는 날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그들은 밤에 혼인 잔치를 하고 있고 포도주를 먹으면서 기쁨을 만끽하는 그런 행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혼인 잔치의 기쁨이 사라졌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마리아가 주님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마리아를 여자여 라고 부른 것은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주님을 보고 성경을 기록하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어머니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물론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육체적으로는 분명히 마리아가 어머니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마리아에 대해서 기록할 때 여자여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보고 성경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게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런 의미를 모르고 오해를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분명히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 혼인에 있어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 인생 전체가 주님과 상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어느 정도로 상관이 없는가 하면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제자들을 보내어서 당신이 그이가 맞습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묻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그 일에 상관하시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난 자 중에서 제일 큰 자입니다
그런 세례 요한이 자기의 죽음을 앞에 두고 주님께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살려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무 상관도 하지 않으시고 그가 헤롯에 의해서 목이 잘려서 죽음을 맞이해도 상관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우리의 영생의 일이 아닌 그 어떤 일에도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만약에 상관을 하셨다면 초대교회에 그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상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아주 작은 것까지도 주님께서 상관을 해 달라고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고 응답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들이 받았다고 하는 응답은 주님이 상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성도들의 생명도 상관하시지 않은 주님께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상관을 하신 다고 생각을 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때가 이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번역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드는 그런 때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신 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때입니다
우리는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때가 이제는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그 일에 힘써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하였다.”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비록 육신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천사가 전하여 준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천사의 말을 들은 마리아입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이 세상에서 모습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아들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을 하고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마리아 역시 비록 자기 육신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정말 똑같이 믿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높으신 아들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믿으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성경을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리에 묶여서 성경을 볼 수 있는 눈이 감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27:25절을 보겠습니다. (신 235쪽)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저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저는 믿음이 있는 성도님들은 다 그렇게 믿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육신으로 하면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말씀과 같이 천사의 말을 듣고 자기가 잉태가 되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누구신가 하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마리아의 육신의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는 우리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사상에 너무도 깊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사상에서 아직까지도 다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들이 주장하는 말에 제 이성이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다시 생각을 하고 성경을 상고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아들이라고 하니까 그저 아들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오래 동안 아니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이 삼위일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종교의 잔재를 다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나에게서 하나라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이 정도로까지 말씀을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또 누구는 그래도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옳은 것이 그래도 있을 것 아니냐는 아주 그럴듯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라도 옳은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복음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주님과 얼마나 많이 대적을 했습니까? 그들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실 때 단 한번이라도 네! 라고 대답을 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주님께서도 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들에게서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까?
저도 7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제 나이가 이제 70이 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그들의 종교적인 것을 다 버리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저도 모르게 종교에서 했던 행동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담배를 끊습니다.
그러면 금단현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 역시 한 때 잠시 담배를 피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끊었는데 그 금단 현상이 3년 이상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곁에서 담배를 피워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3년이 지나기까지는 정말 나도 모르게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꿈에서도 보인다고 합니다.
정말 저 역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꿈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것을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종교에서의 생활이라는 것은 그 금단 현상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담배
백해 무익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종교의 생활입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옳습니다. 백해무익한 것을 끊는데도 금단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 힘들어 하는데 사람의 이성에 좋다고 생각을 하는 그것이 어떻겠는가는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셨고 이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말씀을 드리지만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영생에 관한 일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 졌다고 말을 해도 주님께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분명히 우리 영생의 일만 하시고 우리에게 그것만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생의 일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예표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냥 하신 것이 아니라 영생과 관계가 있는 일을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마리아입니다
분명히 그녀는 자기가 비록 육신으로 낳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주님께 말씀을 하고 나서 또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연회장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포도주를 만들겠다고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한다고 하면 그것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떻습니까?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가 말씀을 하시면 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씀을 하시고 있고 아직 내 때가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물론 된 포도주를 만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입니다
그가 지금 주님을 그저 자기가 낳은 아들로 보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가나 혼인에 있어서 연회장에 포도주가 떨어졌지만 주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고 혼인의 연회를 다시 즐겁게 하실 분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살아 계시는 중입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지금도 이렇게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생의 일을 주님이 오셔서 다 이루셨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또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아니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한 것과 같이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 일이 지금 이 시대도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초대교회에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 사도들을 통해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렇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친 풍랑입니다
배가 뒤집어 져서 모든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 때에 사도 바울이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말씀을 하신 그대로 가이샤 앞에 사도 바울이 서야 하기 때문에 이 배가 안전하고 함께 승선한 자들을 다 내게 주셨다고 하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마치 이 시대도 이런 일이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찬양이 있는 풍경이라는 다음카페를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자료를 올리지 않고 있고 거의 방치를 하다 시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글을 올립니다.
정말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이 시대 기독교가 얼마나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는가를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무당이 하는 것과 같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고 주님께서 상관하시지 않겠다고 하는 일을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지금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자이고 그 사역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말씀 그대로 그는 가이샤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배가 풍랑을 만났어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구원의 말씀은 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또 기록이 될 말씀이 있다면 이 시대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그런 말에 대해서 저 역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보고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병자를 고쳤으면 똑같이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의 말씀을 보고 이 시대 목사들이 병을 고치겠다고 하면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주겠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한다고 해서 지금 이 시대 그대로 된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아직 신약 성경이 기록이 되기 전에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 외에 것을 가지고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그대로 된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영생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당시 모인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기 위해서 그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1:38절을 보겠습니다. (신 89쪽)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이미 천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전하여 준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수태를 해서 낳았습니다. 처음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마리아가 믿지를 못했습니다.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고 천사가 전하여 준 말에 대해서 마리아는 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사실 마리아는 천사가 전하여 주는 말을 듣고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마리아는 정혼한 사람이 있었지만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고 그녀의 말 그대로 나는 아직 사내를 얼지 못하는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천사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이 나이가 늙었지만 아들을 배었다고 하면서 그가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했는데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고 천사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경험을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인간의 이성적 상식으로는 도무지 낳을 수 없는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천사의 말과 같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일컬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지 못 합니다.
아무리 천사가 와서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친족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통해서 마리아가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수태하고 낳음으로 해서 믿고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아들이라는 말씀은 마리아 역시 이사야 9장6절의 말씀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육체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혼인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혼인의 즐거움과 기쁨이 되고 있는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마리아도 알고 있고 그것을 주님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말씀을 하십니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대로 그대로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을 해서 천국으로 인도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천국에 가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혼인 잔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을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더라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혼인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포도주입니다 그런데 그 포도주가 가나 혼인에서 떨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비록 육적인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져서 기쁨이 사라지고 있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그대로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천국의 혼인 잔치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과 같은 정말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그런 혼인 잔치를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으로는 혼인 잔치의 주인이라는 것을 마리아는 믿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비록 영적으로는 이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통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심으로 해서 천국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주님께서 그 기쁨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비록 육적으로 포도주가 떨어졌지만 하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그대로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혼인 잔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의 언어로 설명이 안 되기 때문에 혼인 잔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천국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혼인 잔치에 참석을 해야 합니다.
누가 과연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가나 혼인은 이스라엘의 실제 있었던 혼인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혼인에 기쁨을 주는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해서 혼인의 기쁨이 사라지고 있는 그때에 마리아가 주님께서 영적으로 이스라엘에게 혼인의 기쁨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혼인 잔치가 예비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어떻다는 것을 의미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혼인 잔치를 하는 것과 같이 그런 기쁨으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최고입니다
누가 자기 혼인 잔치를 하는데 있어서 아끼겠습니까?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꺼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 혼인 잔치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혼인 잔치를 예표로 해서 가나 혼인 잔치에 주님이 청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진짜 혼인 잔치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말씀 그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면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예수를 수태해서 낳았고 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입니다 비록 주님이 청함을 받아서 제자들과 함께 그 자리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일에 상관을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혼인 잔치를 통해서 우리에게 있을 앞으로의 혼인 잔치를 가르쳐 주면서 기쁨을 주고 있는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의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드시는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무슨 말씀이 중요한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물로 된 포도주입니까?
이 말씀에서 그 기적을 보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기적을 보면서 주님의 능력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사람들은 그런 기적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그런 샤머니즘적인 기적이 있으면 그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 무슨 큰 일입니까?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그깟 물론 된 포도주를 만드시기 위해서 이 가나 혼인에 청함을 받아서 참석을 하시고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니까 마리아의 말을 듣고 그것을 만드셨다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입니다
정말 너무도 깊이 샤머니즘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시는 일 중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샤머니즘으로 만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기적입니까?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심지어는 물을 파는 교회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어느 물이 좋다고 하면서 그 물을 떠가지고 가서 먹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물을 먹습니다.
그래서 내 암 병이 났으면 그것이 내가 구원을 받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상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인생은 어차피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엘리사도 죽을병이 들어서 죽었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세의 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믿는 것은 이 육체도 아니고 이 세상도 아닙니다. 영의 일이고 영의 생명에 대해서고 또 내세의 일을 바라고 있고 우리의 믿음이 실상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하는 그들이 병이 들면 그것을 고치겠다고 별의별짓을 다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주여 주여 하면서 주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 그들이 막상 병이 들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심지어는 아무 효과도 없는 아니 근거도 없는 물을 사서 먹고 떠다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가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영의 생명이고 내세의 일입니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실제 이스라엘에 있었던 일을 통해서 비유로 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고 그것을 알아감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6절을 보겠습니다. (신 144쪽)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을 따라, 거기에는 돌로 만든 물 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물 두세 동이들이 항아리였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 안에도 이렇게 돌로 만든 항아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돌 항아리입니다
아마도 신학을 공부를 하고 또 성경을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이 돌 항아리를 사진으로 보았을 수 있습니다. 실제 고고학적으로도 이런 돌 항아리가 출토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것을 성경대백과사전에서 사진으로만 보았습니다.
물 항아리입니다
그러니까 물을 담아 놓는 항아리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고대사회입니다 지금과 같이 수도가 발달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우리가 중동 지방을 이야기로 들어서 알고 있지만 물이 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식사를 하고 난 후에도 주로 포도주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돌 항아리입니다
저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물을 담아 놓은 항아리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물은 정결 의식을 할 때 사용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스라엘은 우리가 성경에서 보아서 알고 있지만 밥을 먹을 때 반드시 손을 씻고 먹습니다. 그러면 물을 떠다가 씻어야 합니다.
제 생각입니다
그런 때 사용하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정확하게는 잘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그 의미가 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돌 항아리에 대해서는 저 역시도 깊은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정결 의식입니다
그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 물을 채워 놓은 항아리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그들의 규례가 있습니다. 그러면 물을 쓸 때 이 항아리에서 물을 떠다가 쓴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결례에 따라 물 두 세통 드는 돌 항아리가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물 두세 통이라고 하지만 그것의 정확한 양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을 알기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이 항아리가 어떻게 쓰였는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입니다
정결 의식이라고도 되어 있고 정결 예법이라고도 되어 있습니다. 다 같은 말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이 물을 떠다가 그들이 규례에 따라 정결한 의식을 행하는 일을 할 때 이 물을 사용을 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가장 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식사를 할 때 손을 씻는 것을 그들은 규례로 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출을 하고 난 후에 발을 씻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때에 사용을 하는 물을 보관하는 항아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규례라고 하지만 그들의 규례를 행하기 위해서 물을 보관하는 항아리라고 생각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항아리에 대해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아마도 말씀을 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결례입니다
정결 의식이라고도 합니다. 그것 역시 율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돌 항아리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물을 보관하고 있는 항아리입니다 율법의 규례를 행하기 위해서 가정마다 돌 항아리를 준비해 두고 거기에 물을 받아 두고 사용을 하는 항아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물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이 돌 항아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율법을 행하기 위해서 물을 채워 놓고 있는 항아리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물은 율법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고 항아리는 율법을 담아 놓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여섯이라는 숫자도 완전수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수를 말씀할 때 6이라는 숫자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돌 항아리가 의미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가정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집에는 이렇게 이스라엘의 결례에 따르는 그러니까 정화를 하고자 하는 물을 담아 놓는 항아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이 돌 항아리를 통해서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항아리가 있습니다.
거기에 무엇을 채워야 합니까? 물을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냥 물을 채운 것이 아니라 결례를 행하기 위해서 물을 채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저 물을 채워 놓은 돌 항아리가 아니라 결례를 행하기 위해서 물을 채워 놓고 있는 항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물은 아무 쓸모없는 물입니다. 아니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물입니다
혼인집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평범한 혼인을 하는 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혼인 잔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거기에 결례를 따라 물을 담아 놓는 항아리가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항아리입니다
여기에 담겨 있는 물은 율법의 말씀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담아 놓은 물입니다 혼인 잔치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든 집에는 이렇게 결례를 따라 행하는 물을 담아 놓는 항아리가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결국에는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2:7절을 보겠습니다. (신 144쪽)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포도주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혼인의 기쁨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물론 가나에 있는 일반 사람의 혼인에 청함을 받아서 예수님께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혼인은 마리아의 인척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고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말씀은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하는 날에 하는 혼인 잔치라 해도 상관을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니 혼인 보다 더한 것을 이 세상에서 한다 해도 주님은 우리의 일에 상관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말을 합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물이 두 세통 드는 돌 항아리가 여섯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의 문제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 아니라면 아무리 마리아가 이야기를 했다 해도 주님께서는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혼인 잔치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영적인 문제를 바꾸시고 그들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의미적으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드시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우리 인생들이 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키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또 그런 기적들을 보고 사람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직 영생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은 영생에 연관이 있기 때문에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기적입니다
이스라엘은 표적을 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기독교인들도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표적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드신 그것을 우리가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생의 문제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집에 결례를 따라 돌 항아리에 물을 채워 놓았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돌 항아리에 담겨 있는 물은 결례를 따라 행하는 물이었고 아마도 손님이 많이 오다보니까 돌 항아리에 물이 다 비어져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혼인에 청함을 받아 왔습니다.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돌 항아리가 여섯 있었다고 하지만 손님이 와서 손을 씻기 시작하면 아마도 제 생각에는 이 여섯 개가 되는 돌 항아리의 물로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돌 항아리에 있는 물이 다 비어 있었고 그 돌 항아리에 주님께서 이제 물을 채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스라엘의 규례를 따라 행하는 항아리가 비어 있는 것을 아시고 그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물이 있던 거기에 예수님께서 이제 새로운 물을 채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질은 같은 물이지만 주님께서는 이제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결례입니다
그들이 결례를 따라 행하려면 그 항아리에 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손님이 많이 와서 그 항아리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주님께서 하인들에게 이스라엘의 결례를 따라 행하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다른 물로 하인들에게 채우라고 하시고 그 물이 포도주가 되어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기쁨을 주시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혼인 잔치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혼인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제 그 율법에 따라 혼인 잔치를 하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그 결례를 따라서 행하던 항아리에 있던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일으키시고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천국의 혼인 잔치를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기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8-9절을 보겠습니다. (신 144쪽)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 하시니,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그래서 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이 항아리입니다
물을 담아 놓은 항아리고 이 물은 유대인들이 결례를 따라 행하기 위해서 물을 채워 놓은 항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인들에게 그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을 하시자 그들이 아구까지 가득 채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이제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하인들이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분명히 물을 채워 놓았는데 그것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자 그것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물론 된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로 된 포도주입니다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다고 번역을 하는 성경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물로 된 포도주가 맞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우리는 한글개역성경을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하고 그 번역이 가장 잘 되어 있다는 것을 믿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보고 있는 성경을 의심을 하는 사람은 성경을 바로 풀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물입니다
그런데 그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니까 그것이 포도주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입니다
그것이 포도주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 항아리는 무슨 항아리입니까? 유대인의 결례에 따라 물을 채워 놓고 사용하는 항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항아리에는 물이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물을 채우라고 해서 하인들이 아구까지 채웠는데 그것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자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물이 있을 때는 분명히 율법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거기에 물을 채우게 하시고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니까 물이 아니라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분명히 이 항아리에는 율법이 있었는데 그 율법이 포도주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포도주는 율법을 상징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도 진노의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혼인에서 먹고 기뻐하는 포도주는 진짜 포도주입니다 이제 그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고 기쁨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왜 기쁨이 사라졌습니까?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을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가 여섯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항아리에는 분명히 결례를 행하기 위해서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하는데 이 혼인 잔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결례를 따라 이 돌 항아리에 있는 물을 다 사용을 해서 비워 있습니다.
그 항아리에 주님께서 물을 채우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결례를 따라 행하던 돌 항아리에 물이 비워져 있다는 것은 그들이 다 결례를 따랐다는 것이며 그것은 율법을 지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서 혼인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포도주가 떨어 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는 기쁨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하인들에게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쓰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을 하시고 나서 아구까지 가득 채우자 그것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자 그것이 포도주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로 된 포도주입니다
이 항아리에는 당연히 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물은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사용이 되어 있는 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고 나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시자 그것이 포도주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을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을 떠갔습니다.
분명히 하인들은 물을 떠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항아리에서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이 아니라 항아리에서는 분명히 물입니다 그래서 하인들도 물을 떠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자 포도주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하인들은 분명히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쓰는 돌 항아리에 있는 물을 떠갔습니다. 그런데 연회장에게 갖다 주자 그것이 포도주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돌 항아리에 있을 때는 물이었는데 연회장에게 갖다 주자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아가서 1:2절을 보겠습니다. (구 861쪽)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포도주입니다
율법을 의미를 하기도 합니다. 율법을 의미를 할 때는 진노를 받는 것으로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단어라 해도 의미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포도주라는 단어가 나쁜 의미로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의미로 말씀을 할 때로 있고 나쁜 의미로 말씀을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포도주도 역시 좋은 의미로 말씀할 때도 있고 나쁜 의미로 말씀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의미할 때 포도주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혼인입니다
그때는 포도주가 나쁜 의미로 사용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의미할 때는 나쁜 의미로 포도주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혼인을 할 때 그리고 사랑을 표현할 때는 포도주는 좋은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조금 극단적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그 말씀에 따라 이 단어가 좋은 의미로 사용이 되었는가 아니면 나쁜 의미로 사용이 되었는가를 문장을 보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포도주라는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같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입니다
분명히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사용되는 항아리에 있을 때는 그것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채우게 하시고 나서 연회장에게 떠서 갖다 주니까 그것이 포도주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 빛을 비춰주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생명이 거하게 하시고 그 영의 생명으로 우리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을 해서 영원히 천국에서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천국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이미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천국의 혼인 잔치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십니다. 정확하게 말씀을 하면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아가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누구와 누구의 관계로 말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분명히 우리 성도 개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 성도 전체인 교회와의 사랑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돌 항아리입니다
그 물은 진노의 물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의 결례를 따라 물이 담겨져 있던 항아리입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에 주님께서 물을 채우시고 혼인 잔치의 연회장에게 갖다 주게 하니까 그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주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교회는 우리 성도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 개인이 아니라 우리 전체를 말씀할 때는 교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주님께서는 사랑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가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주님과 교회는 남편과 아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남편과 아내가 주님이 오실 때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인들이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되었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사랑을 하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무슨 의미입니까?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을 하게 되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가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그리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 포도주를 먹게 하신 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주님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포도주로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진노의 포도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만드신 포도주는 사랑이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쁨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기쁨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포도주를 연회장에게 갖다 주자 연회장이 그 포도주를 먹고 좋은 포도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가서4:10절을 보겠습니다. (구 963쪽)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포도주입니다
주님과 교회와의 사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를 통해서 이 포도주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의 돌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와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만드신 포도주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와 주님과의 사랑을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께서 이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유대인들은 종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례를 따라 쓰는 항아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항아리에 그들과 같은 물을 채우게 하시고 이제 교회와의 사랑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시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적입니까?
그런 기적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기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수많은 기적이 있으면 뭐 합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으면 뭐 합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하시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기적만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포도주입니다
율법으로는 우리는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율법의 물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포도주를 먹어야 합니다.
어떤 포도주를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까? 율법은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노의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시고 있고 그것을 아가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우리 교회와의 사랑은 포도주의 기쁨보다 진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포도주입니다
의미를 보면 극과 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그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아가서를 통해서 주님이 만드신 포도주의 의미를 바로 깨달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사랑하는 신부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이 포도주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율법주의자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주님께서 오셔서 이제 그들의 결례를 따라 행하던 돌 항아리에 물을 채워서 혼인 잔치에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연회장이 물로 된 포도주룰 맛을 보고 하인들을 불러서 물어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이렇게 율법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0절을 보겠습니다. (신 144쪽)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새 번역을 보겠습니다.
“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였다.”
물로 된 포도주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제 그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포도주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얼마나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입니까? 우리가 아직은 그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벌레와 구더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고 곧 썩어 없어지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연회장이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연회장은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난 것인 줄은 모르지만 좋은 포도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포도주입니다
우리는 좋은 포도주를 먹어야 합니다. 그 포도주를 주님께서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해서 우리가 먹을 수 있게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확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가서 7:9절을 보겠습니다. (구 965쪽)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 내려서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
네 입입니다
교회에서 전해지고 있는 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좋은 포도주는 주님께서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드신 포도주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좋은 포도주를 만드시고 그것을 교회의 입에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 시대는 교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생명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입에 좋은 포도주가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교회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교회가 있습니까? 이 시대 교회라고 간판을 내 걸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아세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상이 가득한 곳이고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교회에는 좋은 포도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노의 포도주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포도주입니다
좋은 포도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노의 포도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혼인 잔치를 하고 있는 교회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좋은 포도주는 없고 전부 진노의 포도주만 먹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쓰는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율법의 결례에 따라 행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좋은 포도주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결례를 좋은 포도주가 되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쓰는 항아리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물은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대로 지금 이스라엘은 혼인 잔치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항아리에 있는 물이 다 비어 있을 정도로 율법을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빈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혼인 잔치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그 물로 된 포도주를 먹이시고 있습니다. 좋은 포도주를 먹이심으로 해서 그들이 더 기쁨으로 넘치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대대로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그 히브리어의 문자를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 문자의 뜻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으로 행하신 것이 바로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쓰고 있는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하시고 그것으로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서 혼인 잔치에 기쁨을 주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서 더 이상 잔치를 할 수 없는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는 좋은 포도주를 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시겠다는 것을 가나 혼인 잔치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144쪽)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새 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예를 하게 하기 위해서 오셔서 그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춰주시는 빛을 깨달음으로 해서 이 혼인 잔치에 참석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합니까?
실제 있었던 가나 혼인에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쓰는 돌 항아리에 물이 다 비어 있었습니다. 그들을 율법대로 정결 의식을 행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는 물로 된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돌 항아리입니다
그 안에 있는 물은 율법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비어 있던 그 돌 항아리에 물을 다시 채우게 하시고 나서 혼인 잔치에 연회장에게 퍼서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물이 포도주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포도주는 주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좋은 포도주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혼인입니다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했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해서 그들의 기쁨이 사라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율법으로 혼인 잔치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기쁨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적으로 우리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만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나 혼인 잔치에서 주님께서 물로 된 포도주를 만드시는 표적을 보고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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