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한복음 강해

22강 요2:22, 주님이 오셨습니다

윤주만목사 2019. 9. 1. 20:37


22, 요한복음2:22절을 보겠습니다. (145)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주님이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의 생명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그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은 우리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계속해서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세례 요한에 대해서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에 대해서 가나 혼인에 대해서 그리고 이제 성전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다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장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평생을 신앙생활을 했는데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다 이 생명에 대한 일을 비유로 해서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서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알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전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의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오셨습니다. 왜 성전에 오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절기를 율법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런 그들을 보고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을 하면서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모세에게 보이시고 식양대로 지시한 대로 지으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본 그대로 식양대로 기구의 식양대로 성막을 이스라엘의 손으로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막을 섬기는 율법들을 정하게 하셨고 이스라엘의 레위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아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대로 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그대로 이스라엘은 얘굽에서 나온 후로 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속죄소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정말 열심을 다 해서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섬기는 모든 일이 율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막을 섬기는 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아 믿음으로 영생을 얻으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실제 그대로 성막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대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더 잘 섬기기 위해서 그들은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자들이 성전 앞에서 있었고 돈을 바꾸어 주는 자들이 있어서 최고로 좋은 제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성전이 되시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내어 쫓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보이는 성전입니다

우리 인생들의 한계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대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을 보고 그 의미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 문자를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었고 그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성전을 보고 이스라엘이 그 성전에서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을 보시고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에 이 성전은 로마에 의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히 헐어져 버리고 이제는 그 성전의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성전을 헐었습니까?

그 보이는 성전이 있으면 사람들이 그 보이는 성전을 섬기느라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성전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만약에 이 성전이 그대로 있었다면 아마도 이방인들 역시 그 성전을 보러 가고 또 거기에 가서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는 일에 참여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성지 순례를 다녀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만약에 성전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성전이 없는 예루살렘도 중세 시대에 십자군 전쟁을 몇 번이나 치렀던 것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자기들이 눈으로 보려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의 이성 때문에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잘 아시고 계십니다.

 

성전을 헐었습니다.

보이는 성전을 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이제 보이지 않은 성전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성전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보고 주님의 육체가 된 성전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고 영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보이는 성전을 헐어버렸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시고 이제 믿음으로서 하나님을 섬김으로서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전입니다

이제 그 성전이 어디로 왔습니까?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전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성전입니다

그 성전은 이제 헐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영의 성전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일으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의 성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의 성전이 있는 성도를 주의 영이 거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7:3절을 보겠습니다. (216)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주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의 말과 같이 이 성전을 짓는데 사십육 년이 걸렸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영의 일을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과 영의 일은 이렇게 마치 동문서답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의 일을 알고 나면 그 일이 당연히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입니다

역시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유대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대화라기보다는 싸우고 있다는 것이 더 맞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들어도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주님의 제자라 해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믿을 수 있었는가 하면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성령이 그들에게 오시고 난 후에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아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반드시 육의 성전은 헐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영의 성전이 일으키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의 일이고 그 영의 일을 우리가 믿을 때 생명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육의 성전은 이미 헐어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교회 안에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아직 육체의 성전이 헐어지지가 않아서 거기서 매매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인 그 육체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 일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영의 성전이 일으키심을 받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의 육체의 성전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부활을 하시고 난 후에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하늘에 올라가시고 난 후에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주님께서 성전을 헐라 하신 이 말씀과 그리고 주님께서 삼일 만에 다시 일으키시겠다고 하는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사도 요한이 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자를 보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영의 일을 알고 믿었는데 이 시대는 이 말씀의 문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매매를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해도 율법을 지키는 매매를 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면 유대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들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거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쓴 성경을 보고 있으면 뭐 합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을 하시는 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유대인들이 장사를 하는 것을 보고 성전을 깨끗하게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자기들의 이성으로 제목을 그렇게 붙여 놓았습니다.

 

성전을 깨끗케 하셨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이제 육의 성전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성전을 헐어 버리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의 성전을 일으키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시고 영의 생명이 있을 수 있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성경도 모르고 있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장사하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이시고 식양대로 그 기구의 식양대로 지으신 성막을 보고 이스라엘이 그것을 섬기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율법을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함으로 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깁니까?

그것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제자들이 믿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믿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성령을 받은 그들이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성경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알고 그러니까 영의 일을 알고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장사를 하고 있습니까?

매매를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고 짐승에게 표를 받은 자들이 매매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매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입니다

물론 지금은 성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교회라는 건물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매매를 했고 이방인들은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예배를 한다고 하면서 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사흘 만에 일으키신 그 성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전이 거하고 있는 성도는 절대로 매매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자들이 믿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사흘 동안에 이 성전을 일으키시지 않았다면 제자들은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성경을 보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이 영의 일이고 주님의 육체가 성전이라는 것을 비유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주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성경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이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있게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이 말씀을 보고 영의 일에 대해서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영의 일을 깨닫고 있는 성도는 믿을 수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립니다.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수백 번을 읽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비유의 말씀을 알아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2:23절을 보겠습니다. (145)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에, 많은 사람이 그가 행하시는 표징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다.”

 

성전입니다

우리는 이 성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르켜 말씀을 하셨다고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이 유대인들이 그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함으로 해서 더러워지고 있었고 주님께서는 그 더러워진 성전을 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성전을 헐어야 합니다. 아니 이제 유대인들에게는 그 성전이 헐어져 없어졌습니다. 그들도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의식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전이 헐어짐과 동시에 유대인들은 멸망을 당했고 디아스포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예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대로 다 이루어짐으로 해서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가 되어서 유럽 각 지역으로 흩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그들은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임으로 해서 그들이 그 죄를 받고 그 자손들이 죄를 받겠다고 함으로 해서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예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모두가 육적으로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이 시대 영적으로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유대인과 같이 디아스포라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전에서 매매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저 유대인들만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에게 경계의 말씀이 되어야 하는데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들에게는 성전이 없고 그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일과 돈 바꾸이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은 매매를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어떻게 비유로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짐승에게 표를 받아서 매매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서 매매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직 그의 안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거하시지 않은 것이고 그는 주님께서 영으로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전입니다

영생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2장에서 이 성전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쓴 복음서와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영생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고 영의 일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묻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유대인의 보이는 성전은 헐어져 버렸고 이제 주님께서 사흘 동안에 일으키신 그 성전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매매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매매를 하는 자들을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기 위해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성전에서 매매를 하는 것 이상으로 매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의 육체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이성으로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하는 자에게는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다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도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그러니까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알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후에 생각이 나서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136:4절을 보겠습니다. (902)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보고 어떻게 오셨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

 

주님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림으로 주님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사실 그것과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겉을 좋게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예수님의 모습도 정말 누구나 흠모할 수 있는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형편이 없으면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오셨습니다.

사실 주님의 겉모습을 보고는 어느 누구도 주님을 영접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더욱 더 주님을 영접할 수 없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할 왕이 다윗의 위를 이어 온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사야 말씀은 애써 무시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이성으로 판단을 하고 교회를 선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 보이는 교회를 보고 있고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정통이라고 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서 교회를 다니고 있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사야 말씀과 같이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한복음 1장에서 보아서 알겠지만 빌립과 나다나엘은 주님을 만나자 마자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말씀을 드리지만 이 두 사람은 성경을 계속해서 보았고 그 안에서 지혜를 얻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모습대로 오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시대 주님이라고 하면서 그려 놓은 그림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 주님이 오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이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말씀을 하시면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저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하면서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어디서 알지도 못하는 그리고 볼품도 없는 사람이 와서 성전에서 이제까지 자기들이 대대로 해 오던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시겠다고 말씀을 하니까 정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믿겠습니까?

아마도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별 미친 사람이 와서 성전에서 행패를 부린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미 그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도 못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지만 그 말씀에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물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믿어야 하는데 도무지 그 겉모습을 보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는 분명히 권세가 있었고 유대인들이 감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주님을 믿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표적이라고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병이 들었으면 그 병을 신을 의지를 해서 고침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종교성이 너무도 강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종교가 그들의 삶의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유대인의 유월절에 성전에 병을 고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왔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더구나 유대인의 유월절입니다 그들은 제사를 드리러 왔고 또 병자들이 많이 찾아왔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표적을 보여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8:6절을 보겠습니다. (199)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다는 것을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주님을 믿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병자를 고치는 표적입니다 물론 주님은 병자를 고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병자를 고치십니다.

이 시대도 많은 교회들이 병자를 고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왜 유대인의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면서 표적을 행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제 오셨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보이셨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말씀과 같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쉽게 말을 해서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 정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 이사야 말씀과 같은 행색을 하고 누군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아마도 그 사람에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너나 잘 믿으세요. 라고 비웃을 것이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이성으로 그리고 자기 눈으로 보는 것으로 먼저 그 사람을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주님을 믿겠습니까? 아니 이 시대 우리가 이사야 말씀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한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우리를 보고 모든 사람이 다 비웃으면서 지나가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실제 이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들이 복음의 말씀만 듣고 성경을 상고해서 이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알고자 하고 있고 그리스도편지에 대해서 알고자 하고 있고 자기들이 알고 있는 이성에 합당하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복음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말씀을 하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표적들을 행하셨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사도행전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마치 맨 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그 전하는 말을 듣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표적입니다

당시는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보니까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셔서 전하는 자를 통해서 표적을 나타나게 하시고 그 표적을 보고 사람들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게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도 역시 이제 처음으로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시고 있고 그런 유대인들에게 표적을 행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 율법주의들을 대하시는 것과 일반 유대 백성들을 대하시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표적을 구했지만 주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시면서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일반 백성입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여러 가지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 앞에서는 표적을 보이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어차피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 하나님께서 주님에게 주신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표적을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입니다

이 세상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복음을 누구에게 전파하시기 위해서 오셨는가 하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전에서 매매를 하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주님께서 표적을 보이시지 않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표적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오셔서 가난한 자들에게 표적을 보이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표적을 보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21절을 보겠습니다. (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성전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이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알고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북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먼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70 년 후에 약속하신 대로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후의 삶입니다.

그들에게는 다윗과 같은 왕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늘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와서 아주 약한 나라로 거의 명맥을 유지를 하면서 살아가다가 스릅바벨에 의해서 다시 성전을 짓기 시작을 했습니다.

 

두 번째 성전입니다

그것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도 헬라에 의해서 분열이 된 왕인 안티우크스 에스파네스라는 왕이 평화를 언약을 했지만 애굽으로 가다가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쳐 들어와서 성전을 완전히 훼파하고 말았습니다.

 

기원전 4-500년 전 일입니다

그렇게 성전이 훼파가 되고 난 후에 이스라엘은 다시 성전을 짓는다는 것은 그들의 힘에 부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의해서 유럽이 정복이 되고 난 후에 로마의 정책에 의해서 헤롯 왕이 나왔고 그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그 성전을 사십육 년 동안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들은 늘 다윗과 같은 왕이 자기들에게 오시기를 기대를 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온다는 성경 말씀을 보고 기다리면서 살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은 성경을 영의 일로 본 것이 아니라 육의 일로 보았습니다.

 

다윗입니다

그들은 늘 그런 왕을 기다리고 살았습니다. 더구나 로마에 의해서 세금을 바쳐야 하는 아주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때에 그들에게 있어 메시아는 너무도 기다렸던 그들의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암흑과 같은 그 때에 세례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고 광야에서 세례를 베푸는 것을 보면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메시아가 올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그때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오셔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 이름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구원자라는 것을 믿었다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입니다.

마태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을 했고 주님께서 그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시니까 그 이름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었으나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긍정입니까?

부정입니까? 우리는 성경을 잘 보아야 합니다. 다른 번역은 많은 사람이 믿었다고 단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개역성경은 단정을 하지 않고 믿었으나 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뒤에서 다시 말씀을 하겠지만 이 말씀은 믿었다는 것을 긍정하는 말씀이 아니라 부정이 강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입니다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믿었습니다. 그것을 한글개역성경에서는 믿었으나 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표적을 본 것에 대해서는 그 이름을 믿었다는 말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뒤에 있는 말씀을 볼 때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참 어렵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말씀을 믿었다고 단정을 해 버리면 뒤에 있는 말씀들이 풀리지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뒤에 있는 말씀이 간단하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 말씀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한글개역성경의 번역을 보면 그들이 믿은 것은 단지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은 것이지 실제 믿음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에서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알았고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에 대해서 말씀을 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시니까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믿었으나 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긍정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것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번역 하나가 성경 내용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성경은 믿은 것으로 단정을 해서 번역이 되어 있지만 한글개역성경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한글개역성경입니다.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습니까? 표적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표적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아는 것에서 출발이 된다고 계속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표적을 보니까 그들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진짜 믿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표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표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표적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다고는 했습니다.

왜 믿는다고 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믿는다고 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의 번역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영생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주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시지도 않았는데 믿는다고 하는 것은 실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늘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세례 요한이 와서 증거를 하는 것을 소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듣고 세례를 실제 받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그런 표적을 보고 믿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나다나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 서로 대화를 한 것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그 말씀을 듣고 나다나엘은 주님을 보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13절을 보겠습니다. (310)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표적을 보고 믿었으나

물론 그 중에 나중에 진짜 믿음이 있는 성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절대로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왜 그런가 하면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난 후에 부활하시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종교에 들어가서 믿는다고 하면 자기 이성에 따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성경을 보고 또 나름대로는 교회 안에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믿는다고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저는 회의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 이름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을 통해서 그의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믿었다는 것으로 해서 이들이 정말 구원을 받을 믿음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하다고 말씀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아직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지 않고 그저 표적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믿는다는 것은 실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때 과연 그 사람들이 다 믿었는가 하는 것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도 그렇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생을 아니 영생을 얻는 믿음을 표적을 보고 믿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제까지 우리가 교제를 한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누구는 표적 한번을 본 것으로 성경에서 겨우 그 이름을 아는 것으로 믿는다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우리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성도님들이 이제까지 많은 교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리스도편지 사이트에 올려 드린 말씀들을 다 보았습니다. 그 분량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많은 것을 보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도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에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는 것에 있어서는 늘 배가 고픈 것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번역입니다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다고 단정적으로 번역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치 구원을 받을 믿음이 있는 것과 같이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한글개역성경 역시도 우리가 국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경험을 한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안다는 것으로 자기들이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믿음이라는 것은 반드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을 때 우리에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이사야 말씀과 같이 주님은 정말 마른 땅에서 나는 연한 순 같고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에게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이 오셨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이름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믿음으로 믿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다리던 오실 이가 이분이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이 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표적입니다

이적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출애굽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이적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해서 광야에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아래서 그리고 밤에는 불기둥 아래서 그들은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적을 많이 보았지만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해서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이제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었다고 하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보고 이스라엘이 믿었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단순히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다고 하는 말씀은 그 표적을 보고 믿은 것이지 복음을 듣고 믿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2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23절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믿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23절에서는 믿었더라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같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성령이 오시고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3절의 말씀은 행하시는 그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이 이런 말씀을 볼 때마다 얼마나 잘 번역이 되어 있는가를 늘 깨닫고 있습니다. 다른 성경을 보고는 도무지 풀릴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님들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22절에서 믿었다고 하는 말씀과 23절에서 믿었더라 라고 하는 말씀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 차이를 한글개역성경은 우리가 알 수 있게 번역을 했습니다.

 

22절입니다.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23절은 누구나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2절은 성령을 받은 후에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고 23절은 단순히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2:24절을 보겠습니다. (145)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셨다. 그것은 사람들을 너무나 잘 아실 뿐만 아니라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 요한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그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은 우리 육체가 가지고 있는 그런 생명이 아니라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생명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반드시 이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생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이 요한복음을 보면서도 거의 종교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치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의지를 하시지 않은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그들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믿는 것과 같이 보였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 중에서는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 전부를 부정하고자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말씀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었으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자체가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을 진짜 구원을 받을 믿음이라고 말씀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사도 요한은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진짜 구원을 받을 믿음이 있었다면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성경에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그들을 의탁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그것에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많은 표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표적들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입니다

겉으로 나타난 흔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표적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이 드리고 있는 예배도 표적이 될 수 있고 부르고 있는 찬양도 표적이 될 수 있고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이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흔적을 보고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행하는 행위를 보고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믿는다고 하는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주님께서 그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마음을 주지 않았다는 말씀은 그들의 믿음이라는 것은 구원을 받을 그런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구원을 받을 믿음이 있었다면 주님께서 그들에게 마음을 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유대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신 것은 그들이 구하는 것이 표적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행하셨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것을 보고 그 이름을 믿는다고 했다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 이름을 믿은 것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은 표적을 본 것이지 믿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에게 그 몸을 의탁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들을 지으신 분입니다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고 믿지 않지만 우리 성도는 주님이 누구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다 아시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친히 모든 사람을 다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으신 분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을 다 아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바라는 가를 다 아시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시면서 유대인들에게 보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그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믿었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의탁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의탁지 않았는가 하면 주님께서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기 때문에 의탁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도 남습니다. 누군가 무슨 큰일을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표적을 보고 그에게 당신이 최고라고 하면서 인생들이 할 수 있는 언어로 최고의 칭찬을 하면서 내가 이제부터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함께 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너무도 들떠서 실제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표적을 보고 얼마나 주님께 다가왔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표적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의탁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친히 모든 사람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성령이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말씀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단지 표적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을 듣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있고 그 표적을 보고 주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친히 모든 사람을 다 아시기 때문에 의탁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종교적으로 표적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눈으로 보고 이성으로 알고 하는 모든 것은 다 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2:25절을 보겠습니다. (14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의 증언도 필요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까지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정말 함부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이 누구신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믿는다고 하니까 사도 요한이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믿었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유대인들이 그 이름을 믿는다고 했다는 말과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표적을 본 것으로 성경에서 아는 것과 같이 그 이름을 믿었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사람을 다 아시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믿는다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하시는 표적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주님의 몸을 의탁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주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진짜 영생을 얻을 믿음이 있었다면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적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18절에서 유대인들이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이겠느냐고 말을 해서 주님께서 실제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서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믿었더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친히 모든 사람을 다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아시는데 주님께서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그 말에 대해서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몸을 의탁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139:1절을 보겠습니다. (90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위하시고 우리의 체질까지도 다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주님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친히 사람 속에 있는 것을 다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믿는다고 하면 다 믿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다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친히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까?

그들이 표적을 보고 믿었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의 속에 있는 것까지도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것을 나다나엘이 주님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 속에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아십니다.

그런 주님께서 그들에게 의탁을 하시겠습니까?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는 나다나엘은 주님께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다 아시므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의탁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들의 속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사람을 별로 믿고 싶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제까지 그리스도편지를 지나간 사람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와서 처음에는 어떻게 말을 합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저는 사람의 속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속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깨닫고 있어야 하는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실망을 할 수도 있고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말씀을 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합니다.

저는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의심하고 싶지도 않고 부정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늘 이 말씀과 같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알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는 이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친히 사람 속에 있는 것을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유대인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후입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믿었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친히 모든 사람을 다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누가 하나님을 믿을 사람이고 누가 버림을 받을 사람인가를 다 알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아십니다.

그럼으로 그들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 앞에 와서 내가 진심으로 믿습니다. 라고 하는 증거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아무 것도 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주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증거입니다

그들의 고백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미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