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5강,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윤주만목사 2019. 6. 2. 06:37


85,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이사야 66:10-14절을 보면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지명입니다

그 뜻은 평화의 터전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종교와 문화가 발전을 하고 또 이곳에서 왕국이 건설이 되었습니다.

 

시온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예루살렘 전체를 시온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고 동쪽 요새를 시온이라고 불렀다가 후에는 예루살렘 전체를 시온이라고 불렀습니다. 시온이라는 뜻은 세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지명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예루살렘이라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끊임없이 분쟁을 하고 있으며 전쟁도 불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그 시온이 건설되기를 바라고 있고 시온이 세워짐으로 해서 자기들에게 평화가 찾아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평화를 얻기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기도 합니다. 평화의 터전이 전쟁의 터전으로 바뀐 것은 모두가 율법주의 사고에서 빚어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도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땅 예루살렘을 얻기 위해서는 그 어떤 대가도 기꺼이 치르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반드시 사라지고 맙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이 지구는 지옥이 되어서 더 이상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맙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지구조차도 그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금 있는 지명 예루살렘이 아직도 평화의 터전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또 우리가 가야하는 천국은 이 세상의 어느 지명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임에도 눈이 가려져 있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어느 지명에 집착을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역시 예루살렘과 똑 같습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에 어느 보이는 것을 보고 따라가다가는 이스라엘과 같이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집착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교회가 그렇습니다.

보이는 건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솔로몬의 성전도 하나님께서는 허물어 버리셨는데 지금의 교회가 과연 남아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너무 보이는 건물에 집착을 하면서 그것을 더욱 크게 그리고 화려하게 지려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건물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과 같이 미혹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모두가 율법주의 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치 바벨탑을 쌓았던 노아의 후손들과 같이 지금도 역시 교회라는 바벨탑을 쌓으면서 그것을 보고 또 그 안에서 예배하는 자신을 보면서 아주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교회가 팔려 나가듯이 지금 우리나라에 세워진 교회도 언젠가는 똑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 하든지 건물을 지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예루살렘은 평화의 터전입니다

이스라엘은 보이는 예루살렘을 찾았습니다.

보이는 예루살렘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직 까지도 전쟁을 하면서 그 땅을 차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그 어떤 곳도 평화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사단에게 빼앗긴 이 세상은 다시 평화가 찾아 올 수 없습니다.

 

보이는 예루살렘을 사랑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솔로몬 성전을 무너뜨리고 또 포로생활을 하고 돌아온 후에 건축이 된 스룹바벨 성전도 훼파되게 하셨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찬란하게 영광을 나타내던 헤롯 성전도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예루살렘은 중동에 있는 그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마치 그 중동의 예루살렘이 뭐가 되는 줄 알고 성지 순례를 한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지라는 말 자체는 믿음이 있는 성도가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성지는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지명이 아니라 바로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21:2절을 보면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그들에게는 새 예루살렘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사랑해야 하는 것은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인데도 그들은 소경이 되어서 이사야서를 보면서도 자기들이 돌아갈 지명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야하는 곳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내가 사랑해야 하는 곳은 새 예루살렘이지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지명과 또 건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면서 그것을 인하여 기뻐해야지 자기들이 건축한 교회를 보면서 마치 그것이 예루살렘이 되는 것 같이 그곳에서 평화를 찾으려고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성도는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이 좋게 보여도 절대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역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사랑했던 것과 같이 어떤 지명과 건물을 보면서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천국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을 보고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이 세상에 있는 예루살렘을 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천국을 행하고 있는 가에 따라서 그 영혼이 천국에 갈 수 있기도 하고 또 이스라엘과 같이 멸망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 예루살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보이는 예루살렘이 집착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없이는 안 됩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예수가 없이는 새 예루살렘을 소망할 수 없으며 예수가 없이 새 예루살렘을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에 불과 합니다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성도는 오직 예수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는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우리 심령에 평강을 주시고 내가 사랑하는 새 예루살렘을 갈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소망한다고 하면서도 예수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리려 하기 보다는 자기들이 행하는 그리고 자기들이 건축한 건물을 보면서 평안을 누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어디서 이런 위로를 받겠습니까?

슬피 울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젖을 빠는 어린 아이를 보면 얼마나 평안해 보입니까? 아이에게는 어머니의 품 보다 더 좋은 곳이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만족을 할 수 있을 만큼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위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죄를 하고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평강과 기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졌습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졌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어 천국에 갈 수 없는 자가 되어 내 자신을 보면 애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애통하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로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위로 받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사단과 싸워서 이기려하고 있지 결코 애통하는 자가 되어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려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든지 자기 형편과 처지를 통해서 위로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는 자만이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좋아서 승리하고 있는 자를 누가 위로 할 수 있겠습니까?

율법에 대해서 승리하는 자는 누가 위로를 한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웃고 있는 사람에게 위로를 하겠다고 한다면 아마 정신 이상자로 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위로는 패배를 해서 마음이 슬픈 자만이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의 육체로 이기려고 애를 쓰고 또 어쩌다 한번 이기면 그것을 보면서 너무도 기뻐서 자랑하느라 정신이 혼미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에서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죄를 지라는 말씀이 아니라 자기 죄를 깨닫고 애통하는 자만이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거의 비슷합니다.

내 눈에는 성자 같이 보여도 그 역시도 사람입니다

개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 같이 사람 역시도 사람이라는 그 형질에서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자기가 진토임을 아는 성도만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은 위로를 받지 못 합니다

아니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잘 못한 것이 있어야 위로를 받을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위로를 해 주시겠다고 해도 오히려 요즘 말로 뻘쯤해 져서 자기가 왜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오히려 위로를 하는 예수님을 무안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율법은 위로를 받을 수 없게 만듭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또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고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또 시간을 내서 기도를 하고 또 과부와 고아를 돕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다른 사람이 위로를 한다고 하면 너나 위로 받으라고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가장 잘못된 사상이 바로 선하게 사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과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다른 일임에도 마치 그것을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은 자기가 역시 죄인임을 알기에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절대로 위로를 받지 못 합니다 아니 누가 위로를 한다 해도 거절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내 심령의 평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평강을 주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평강을 얻은 성도는 이 세상이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심지어는 그 생명을 빼앗아 갈지라도 마음에 평강이 있어 기꺼이 내어 줍니다.

 

교회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자기가 행하는 어떤 행위를 보면서 마음에 평강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하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강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드리는 예배를 보면서 자기가 입술로 찬양을 하면서 또 기도를 하면서 또 교회에 나와서 봉사를 하면서 그런 것으로 평강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서 평강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내 영광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해서 그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모든 영광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내가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하는 모든 영광은 내 영광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그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영광이 아니라 내가 한 행위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그 영광을 나타내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양식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 젖을 빠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젖을 빨기 보다는 이 세상 예화가 판을 치고 있고 율법이 성행을 하고 있고 이 세상 이야기 심지어는 유머까지 교회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있는지 아니면 진노를 가져다주는 율법을 먹고 있는지 아니면 이 세상 관원의 지혜를 먹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목사가 전하는 말은 무조건 아멘으로 화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젖을 빨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 것을 먹으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예화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지혜를 먹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예화에 감동을 받고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고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감성을 자극하는 그런 말에 미혹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있는지 아니면 세상의 지혜를 먹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받아먹고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성도만이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는 성도만이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저 양념으로 가끔 한 마디 하면서 예수 믿으라고 하면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라는 말 한마디 하고 세상 이야기로 예화로 떠들고 있는데도 그 예수 믿으라는 말 한마디에 다 용납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만나만을 먹는 것을 불평했습니다.

지금도 믿음이 없는 교인들은 예수에 대한 말씀을 전하면 그것을 먹기 싫어서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인자가 넘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을 깨닫는 성도만이 위로를 받게 됩니다.

어미가 그 자식을 위로하는 것 같이 우리를 위로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모두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위로를 받아 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어머니로부터 위로를 받아서 지금도 어머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나보다 연약하십니다.

그런데도 눈을 감으시기까지 저를 보면서 위로를 해 주시고 당신의 죽음을 아신 후에는 내가 없으며 사업에 실패를 하고 직장이 없이 집에 있을 때 우리 아들이 어떻게 살래 하면서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위로를 받아 본 사람만이 위로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입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실패를 한 우리 인생들을 보시면서 그렇게 위로를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패자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어 애통을 하고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다가와 어머니와 같은 사랑으로 감싸 주면서 위로를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어떤 죄를 지어도 내 자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을 하고 죽일 놈이라고 해도 어머니는 그 자식이 불쌍해서 위로를 해 줍니다 설령 마지막 순간 사형을 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해도 어머니는 자기 자식을 위로를 하고 또 그 자식을 품에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예대로 하면 죽어야 합니다.

반드시 진노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어머니와 같이 위로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위로를 어디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새 예루살렘에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떤 위로를 한다 해도 죽어야 하기 때문에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위로를 한다 해도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을 우리에게 약속을 해 주시면서 그곳에서 우리가 마음껏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위로를 받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위로를 받는다 해도 내 생명이 죽는 그 순간에는 그 위로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위로라는 것은 괴로움이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있고 병이 있는 이 세상에서는 참 위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는 순간 우리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다시 아픔이나 사망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곳이라야 참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예루살렘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갈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상상만 해도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천국은 너무도 좋은 곳입니다

실제 그곳에 가서 천국을 눈으로 목도를 한다면 얼마나 기쁨이 넘치겠습니까?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이생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반드시 이 두 사람이 함께 있습니다.

 

누가 더 많겠습니까?

이생의 안목과 정욕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이생의 정욕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행위가 이생의 정욕과 안목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다는 열심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우리 뼈가 연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헤치지 못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오른 손으로 붙잡아 주시고 있기 때문에 연한 것 같지만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풍성함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손을 직접 볼 수 없지만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강한 손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원수는 진노를 받게 됩니다.

물론 사단입니다 그러나 그 사단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하고 또 그 사단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피할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미혹된 이스라엘을 예수님께서 사단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원수는 율법을 가지고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고 거기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천하를 다니며 교인 하나를 얻으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따르는 자는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아 진노를 받게 됩니다. 율법은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나를 정죄하는 원수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평강과 위로를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서 영의 양식을 삼고 있는 성도는 새 예루살렘을 보게 될 것이고 거기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줄 믿습니다.

 

젖을 먹으세요.

그것은 오직 예수입니다

성경을 그냥 보지 마시고 그 안에서 내가 위로를 받고 마음에 평강을 얻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새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와 평강이 성도님들의 심령에 넘쳐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