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강,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요한일서 1:8-10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기독교가 점점 샤머니즘 화 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세상 것인지 또 내가 하는 행위들이 과연 성경적인지를 전혀 분별하지를 못하고 자기 생각에 옳다고 판단이 되면 아무 거리낌이 없이 의식적인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독교는 세상 종교와 다릅니다.
진리가 만약 보편화 되어 있다면 더 이상 기독교는 진리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이 세상의 종교에서 행하는 것과 같다면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 행위에 불과하고 참 생명이 없는 그저 세상의 여러 종교 중에 하나로 취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편적인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반드시 세상과 대적을 하게 되어 있고 세상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진리입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믿는 진리는 특별할 것도 없고 또한 우리를 스스로 성도라 부를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를 보면 참 불행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부흥을 맞이하고 있고 또 세계 10대 교회의 대다수가 지금 한국에 있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는 것에 취해서 점점 더 마천루를 쌓고 있으며 그런 표면적인 것과 점점 화려하게 의식화 되고 있는 각종 집회를 통해 영적인 일이 무엇인가를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과 같다면 목사를 안합니다
솔직히 어려서부터 많은 권유를 받았지만 솔직히 제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회피를 했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저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축복을 가져다주심으로 모태 신앙으로 출발한 제 신앙의 전환점이 되었고 제 사상은 망치로 얻어맞은 패러다임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 패러다임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저는 절대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성경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고 있고 또 제 구원에 대한 확증이 없다면 제가 하는 이 일을 저는 포기를 합니다. 그저 사명감에 불타서 내 열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을 확증하면서 그것을 성경을 통해 증명을 하면서 제가 가고 있는 지금 이 길을 기뻐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갑니다.
제가 신학을 졸업한지가 10여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한번이라도 이 세상 대형 교회를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또 제가 교회에서 작은 봉사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사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저 또한 그런 교회를 굳이 찾아다니지를 않았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심한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족에게 인간적으로 늘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으며 저를 돕고 있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대단히 죄송스럽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거의 율법주의 화 되어 예배는 이스라엘의 제사와 같이 의식화 되어 가인의 제사와 같은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그나마 감사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다수를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다수를 따라가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다수를 따라가면 제 생활과 형편이 더 나아진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저는 천국을 소망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비록 광야에서 홀로 예배를 하는 그런 자의 입장이 되더라도 진리가 바로 선다면 그쪽을 택하겠습니다. 물론 그것조차도 주님의 은혜로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성경 한 구절로 인하여 내 영혼이 파멸로 갈 수 있고 나 뿐만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사람까지 내 가족까지 모두가 멸망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영혼 구원과 관계가 있는 말씀이라면 단 하나의 잘못된 지식이 여러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었지만 자기들의 사상에 사로 잡혀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의식에 사로 잡혀서 믿음의 주요 자기들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나는 아니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지식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행위가 될 수 있으며 하늘에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이 땅으로 끌어 내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의식에 취하고 행위에 취하는 것이 바로 음녀에게 미혹이 되는 것이며 이스라엘과 똑 같은 일을 행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죄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 교회에 나온 사람 중에 자기는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죄 없다고 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됨으로 아무리 깨끗하게 산 사람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죄 없다고 하는 자체가 잘 못이라는 말씀입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는 단 한사람도 의인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불러 보아야 대답할 사람이 없습니다. 의인이 있는데 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들을 불러 회개 하게 하려고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의인인 체 하는 사람은 예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자기가 행하는 아주 작은 의를 보면서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그 안에 진리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를 행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예수가 자리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최고의 의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욥입니다 어느 누구도 욥의 의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욥도 역시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러 오셔서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만약 욥이 정말 의인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욥을 부르시지도 않았고 욥은 멸망의 길로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욥기 42:6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의 생애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욥의 발꿈치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도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고백을 할 정도로 의롭게 살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정을 하실 정도로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지만 그 역시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욥은 율법의 의로는 정말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죄인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임에 분명합니다.
욥도 처음에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욥기를 보면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가 어떤 의를 행했는가 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은 지금도 욥이 회개 하지 전과 같이 자기의 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회개를 한 이후에 자기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 합니다 회개를 한 사람과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회개를 한 사람은 절대로 자기의 의를 드러내 놓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가 욥 보다 더 의롭게 살았다 해도 진리가 그 안에 있는 성도는 절대로 자기가 죄인임을 알기 때문에 의를 드러내 놓고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가 그 속에 있는 성도는 자기 자신이 철저하게 죄인 일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성경 구절입니다
이 성경 말씀으로 인하여 교회 안에서 이상한 행위들을 하고 있고 진리에 반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묻겠습니다.
죄가 어떻게 사해 집니까?
내가 지은 죄가 어떻게 사해 지는 가를 여러분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세상 지식은 죄인은 자기가 입술을 벌려 고백을 해서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하면 죄를 판단하는 사람이 용서를 해 주면 용서가 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부모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를 부모님이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안다고 가정을 했을 때 자녀는 부모에게 찾아서 내가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면 부모가 아들의 고백을 듣고 그 죄를 용서해 주든지 말든지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죄가 너무 크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게 해서 매를 맞는다든지 또는 용돈을 덜 준다 하든지 여러 가지로 자녀에게 보응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부모는 결국에는 죄를 용서해 줍니다.
그가 설령 세상에서 가장 나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부모는 자기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를 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방법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바로 이와 같이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자기 죄를 고백을 해서 용서를 받는 것은 이 세상의 방법입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습니다.
불교, 천주교, 이슬람,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와 같이 자기가 고백을 해서 죄 용서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백을 하게 되면 거의 모든 종교와 사람들은 용서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들이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세상 방법입니다.
세상 모든 사상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세상 모든 종교가 또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기독교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이 세상 종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 단 한번 나오는 이 말씀으로 인하여 교회 안에 샤머니즘 적인 죄 용서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입술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나지 않으면 생각이 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기도를 해서 예전에 잊어 버렸던 죄가 생각이 나서 회개를 했다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를 모르고 그저 세상 사상에 취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백을 해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이스라엘이 죄를 지면 양을 잡아서 자기 죄를 안수하고 나서 제사 드리고 난 후에 죄 용서를 받았다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11절을 보면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양을 잡아서 드리는 제사도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그것으로도 죄를 없이 하지 못하는데 자기가 입술로 고백을 해서 죄를 사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한 마디로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제사도 죄를 사해 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입술을 벌려 고백을 하는 그것도 죄를 사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입술을 벌려 고백하는 그 기도가 마치 자기 죄를 사해 질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게 합니까?
송구영신 때라든지 부활절 때라든지 종이에 자기가 지은 죄를 기록을 해서 그것을 촛불에 태우는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미개한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그리고 샤머니즘적인 것을 모르고 그저 시키니까 아무 생각도 없이 따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죄는 어떻게 사해 집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해 졌습니다. 그것도 단번에 사해 졌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29절을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는 방법입니다 세상은 나름대로 자기들의 방법대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 기독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못 믿습니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고백을 해서 받으려 하고 있고 심지어는 샤머니즘적인 행위들을 하면서 죄 사함을 받으려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이 말씀을 마치 우리가 짓는 죄를 일일이 다 고백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과연 죄를 다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어떤 죄를 졌는가 알 수 있습니까? 만약 안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우리 인생은 사는 자체가 죄 입니다 죄 덩이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죄를 일일이 고백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불의입니까? 혹시 죄는 깨달을 수 있지만 불의는 무엇이 불의라는 것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혹시 죄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불의를 어떻게 다 일일이 기억을 해서 고백을 하고 그것의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예수님의 의는 참의입니다 내 의는 불의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의는 참 의고 내가 행한 모든 의는 불의입니다 이 불의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불의를 오히려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행하는 의를 자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입술로 고백을 한다 해도 그는 자기 죄를 고백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복음을 위해 일을 합니다. 그것이 내 의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불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일일이 다 사해 달라고 고백한 사람이 있으면 대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죄가 나쁘다는 것은 모두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복음을 위해 하는 모든 의가 불의라는 것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죄를 혹시 기억할 수 있어서 그것을 고백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내 불의까지 다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보니까 자기가 죄인이고 또 그래서 복음을 위해서 일을 하다 보니까 자기에게서 이 불의가 나오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죄인이라서 죽고 또 죄에서 돌이켜 의롭게 살아보려고 하니까 자기에게서 불의가 나타나는 것을 보니까 또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어야 하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면서 탄식을 합니다. 지금 요한일서의 고백은 바로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을 하는 고백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가 지은 죄가 생각이 나서 내가 이런 저런 죄를 지었습니다. 하면서 입술로 고백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자기에게서 죄를 발견하고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복음을 위해서 일을 하다 보니까 또 불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도무지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탄식을 합니다. 바로 이런 고백이 요한 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육체적으로 지은 죄와 또 그 죄임을 깨닫고 복음을 위해 살다 보니까 내 불의로 인하여 참 의인 예수 그리스도가 가려지는 것을 보게 되면서 탄식을 하는 그런 죄의 고백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입술로 고백을 해서 용서를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단번 속죄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믿을 때 내 죄가 사해지고 내 모든 불의가 사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탄식을 하고 난 후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죄를 일일이 기억을 해서 입술로 고백을 해서 내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용서가 되어 내가 죄인임을 고백해서 용서를 받은 그 성도를 모든 죄에서 그리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죄는 혹시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아는 성도라면 절대로 자기 죄를 다 고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죄도 다 기억을 못하는데 어떻게 모든 불의를 다 기억을 하고 그것을 고백할 수 있습니까?
자기가 어떤 불의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오히려 자기의 불의를 보고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다 기억을 해서 고백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샤머니즘에 빠져서 심지어는 자기 죄를 종이에 기록을 해서 태우는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그것도 사함이 안 되는데 세상 종교에서 행하는 것을 교회 안에서 그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방법 이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의 죄와 불의에서 깨끗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믿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방법 말고 또 다른 죄 사함의 방법이 있다면 굳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 입술로 고백을 해서 죄 사함을 받으면 되지 예수님께서 무엇 하러 오셔서 그 고난의 십자가를 감당하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내 죄와 모든 불의에서 깨끗함을 받는 방법은 내가 죄인임을 고백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내 모든 죄와 불의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과 내가 하는 그 고백으로 죄 사함을 받으려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일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죄인입니다.
도적 적으로 짓는 그런 죄인입니다 그런 죄 뿐 아니라 우리는 모든 불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자기 죄를 모르고 자기 도덕적인 죄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입술로 고백을 해서 죄 사함을 받으려 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보내 주셨습니까?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믿지 않고 세상의 방법 자기가 입술로 고백을 해서 죄 사함을 받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것이 거짓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우리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다른 방법을 행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이 잘못 되었고 그것이 거짓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행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그럼 그가 이루신 십자가의 단번 속죄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이여 또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들지 아니하는 성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으로 고백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죄와 모든 불의에서 깨끗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 거짓입니까?
이미 창세기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다고 모든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입술로 고백을 해서 죄 사함을 받으려 하는 행위는 또 다른 어떤 방법으로 죄 사함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셨기 때문에 못 믿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입술로 고백을 하려하고 또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용서를 받고자 샤머니즘 적인 행위들을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내 죄를 일일이 고백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자백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미쁘시고 의로워서 우리를 모든 죄와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바로 이 시대 무지한 교인들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고 자기들의 죄를 자기들이 일일이 고백을 해서 용서를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을 뻔히 성경을 통해 보면서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아니 하나님께서 거짓을 하셨다고 주장을 하고 싶어서 자기 입술로 고백을 해서 죄 사함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다고 예정하셨습니다.
이 예수는 이 세상 모든 죄를 대신 지고 가시기 위해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기 보다는 자기들의 입술로 고백을 해서 죄 용서를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세상을 쫓아 행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내 모든 죄가 단번에 사해 졌다는 것을 믿는 성도 내가 죄인이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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