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은혜와 진리의 말씀

53강, 복 있는 사람은

윤주만목사 2019. 5. 16. 06:45


53, 복 있는 사람은

 

시편 1:1-6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사람은 복을 받기 원합니다.

아마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심리를 종교가 이용을 하고 있고 세상의 모든 종교는 기복주의 사상에 빠져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복을 받기 위해 합니다.

물론 신앙이라는 본질을 따라가려고 하지만 그러나 복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을 찾으면 그 신을 향해 복을 바라고 기원을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입니다 물론 현세에 있어 복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 너무도 좋은 일이며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세상을 살면서 복을 받고 평안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런 사상이 교회 안에 팽배해 있고 복을 빌어주지 않는 목사가 있다면 아마 그 교회는 도태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의 마음은 떠나가게 됩니다. 어쩌면 목사들보다도 그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기복주의적인 마음 때문에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타락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목사는 복을 빌어 주는 자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하는 그런 복을 빌어주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이 복을 빌어 주는 일이 있었지만 신약에서는 사도들이 복을 빌어 주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구약의 그 복은 물론 그들에게는 육적으로 보였을지라도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는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을 빌지는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평강을 빌어 주셨지 이 세상의 기복을 빌어 주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니라 바로 평강을 주시기 위해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도 목사이기 전에 사람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영혼의 복 보다고 현세의 복을 빌어주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자꾸 그런 기도를 할 때마다 마음이 평안하기 보다는 죄를 짓는 것 같아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너무도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냉정하게 끊을 수 없어 더욱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초대 교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현세의 복이 얼마나 풍족한가를 모르고 또 더 큰 복을 얻기 위해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가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는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고 또 로마 병정을 피해 카타콤이라는 바위굴에서 아주 열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거기서 무슨 복을 누렸겠습니까?

물론 지금 이 시대에 그들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육체의 복은 사실 저 아프리카나 그 밖에 가난한 나라를 볼 때 너무도 큰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던 시기가 참으로 안 좋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 중산층이 형성이 되면서 기복주의 사상이 만연해 있던 그 시기에 우리나라로 복음이 전파 되었고 또 일제의 억압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복음이 전파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최대의 화두가 복이 되고 말았으며 그것이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실제적으로 실현이 되었다는 것이 교회로서는 지극히 불행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가 잘 사는 것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리 잘 살아도 끝없는 탐욕을 부리게 되어 있고 실제로 교회 안에서 서로 경쟁을 하면서 자기를 자랑하고 있고 심지어는 가난한 사람은 교회에 나가도 그저 예배만 이방인처럼 살짝 드리고 나오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이 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기복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자기 영혼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기복주의 사상은 발람의 어그러진 길과 같으며 그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발람을 통해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를 실체로 보다가는 신앙을 바로 가질 수 없으며 믿음에 대해 오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서 구약을 보아야 합니다. 이 시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바리새인들입니다

악인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으면서 복음을 거절하고 또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을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인 하면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악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기준입니다

 

성경에서 정의하는 악인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의 지혜 세상의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악인이 누구인가를 바로 깨닫고 그런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큰 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는 자가 악한 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목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율법적으로는 흠 없는 삶을 살았지만 복음을 거절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그들이 가장 악한 자들입니다 바로 교회 안에서도 이 복음에 저항을 하고 또 복음을 방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악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악인들은 자기가 악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마태복음 25:44절을 보면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악인은 자기가 악하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교회 안에 의인과 악인이 함께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악인은 자기가 악하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 행위를 너무도 잘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악인들이 하는 대답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 악인들은 너무도 그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악인들은 주린 자들이 오면 먹였고 목마른 자들이 오면 생수를 마시게 했고 나그네들을 아주 잘 대접을 했으며 벗은 사람이 있으면 자기 겉옷을 내어 주었으며 병이 든 사람이 있으면 그 병을 치유해 주기 위해 봉사를 했으며 옥에 갇힌 것을 보고 또 공양을 아주 잘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이 자기들의 의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기 보다는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행위가 보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사라진 것입니다 바로 교회 안에 있는 가장 악한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은혜를 말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자기들이 행했던 그런 일들을 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믿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아니하고 행위를 포함하려고 하는 그런 자들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악한 자들입니다

 

성도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않고 그 은혜에 자기 행위를 포함시키려 하는 그것이 바로 악한 자들이 되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임에도 교회 안에서 악인의 꾀를 좇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악인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악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약 이 죄인이 이 세상의 도덕적인 죄를 말씀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예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훨씬 좋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6:9절을 보면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행위를 의지하는 악한 자는 믿음이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라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다는 말씀은 이 세상 죄를 안 짓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지만 영적인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이라고 시편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행위를 의지하면 그 사람은 절대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제가 선하고 살고 의롭게 사는 것이 나쁘고 또 그렇게 살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성도는 당연히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선하게 살아야 하지만 악한 자는 행위를 강조하게 되어 있고 또 그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하지 않습니다.

누가 오만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오만하겠습니까? 아니면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 오만하겠습니까? 자기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만합니다. 자기 행위를 보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부자가 되어 오만해 집니다.

 

행위는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교회 안에 있으면서 은혜를 구하지 않고 자기가 하는 행위를 자랑하는 자입니다 바로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가 타락을 해서 사단이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행위를 자랑하는 것은 그 마음에 사단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왜 율법을 묵상합니까?

교회 안에는 율법을 묵상하는 이유에 대해서 두 가지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그 율법을 지키려고 묵상하는 자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율법을 묵상함으로서 자기가 어떤 죄인인가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하게도 그 율법으로 인하여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 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묵상하면서 죄인임을 깨닫기 보다는 그 율법을 지키면서 스스로 의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의는 들의 풀과 같이 육체가 다하는 날 시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로마서 3:20절을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죄를 깨닫기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도 율법을 보면서 죄를 깨닫기 보다는 그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 행위를 의롭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목적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결국 그 율법으로 인하여 하늘의 복을 차버리는 이스라엘의 전철을 그대 밟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의인이 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율법으로 의인이 되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을 하면서도 왜 율법을 보아야 하는 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 시대도 너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을 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구한 성도는 율법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율법을 묵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이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기에 즐거워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예수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붙은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반석입니다 그 반석에서 생명수를 내셔서 우리를 먹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배에서 생수가 흘러넘치면 당연히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내 영혼이 형통 합니다.

기복주의 신앙을 가진 자는 자기 육체의 형통함을 보고 있지만 성도는 자기 영혼의 형통함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형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형통하다는 말씀입니다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이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 하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음으로 내 행사가 형통하다는 말씀입니다. 내 구원이 형통하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우리 구원을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진액을 올려 주고 계시는데 누가 나를 그 가지에서 꺾어 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바로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생수를 먹고 있기 때문에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데 있어 그 모든 행사가 형통하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0:4절을 보면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성도는 신령한 음료를 마시고 있습니다.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풍성한 물로 인하여 달마다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우리도 역시 신령한 음료를 마시고 있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신령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라는 시냇가에 풍성한 말씀을 주셨지만 이 시대는 성경보다도 예화를 더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 세상의 말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만 먹어도 충분한데 사람들의 탐욕이 그것이 부족해서 이 세상의 것을 먹고 싶어 합니다.

 

신령한 음료를 마시세요.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말씀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정치 경제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또 좋은 말을 남긴 목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나 나를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반석에서 나는 물을 먹지 않고 다른 물을 먹는 사람은 그 영혼이 사망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의인은 신령한 음료를 먹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열매가 없는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티끌과 같은 인생이 그 행위를 자랑하고 또 그것을 보며 오만한 자리에 있는 것은 바로 그 결국이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악인은 영생에 이르는 열매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겉으로 보기에는 풍성한 잎이 있는 무화과나무 같았지만 실제 가서 보니까 열매가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좋아서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잔은 깨끗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영생에 이르는 열매가 없기 때문에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의 결국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겨울이 오고 또 이 세상에 종말이 오게 되면 영생의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는 결국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악인들은 자기들의 행위가 그렇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보기에는 참 좋습니다.

잎이 풍성한 무화과나무가 보기에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 나무가 마르고 나니까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그런 것을 뻔히 성경을 통해 보고서도 아직도 그들의 행위를 따라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망한 것은 행위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지키고자 하는 그 율법으로 인하여 스스로 멸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이스라엘이 망한 율법을 지키겠다고 오히려 그들보다 더 열심을 내며 깊숙이 율법주의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가져 옵니다.

 

그것을 다 지킬 수 없다면 반드시 진노를 받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아직도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서 스스로 마음에는 부자가 되어 자기 행위를 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없고 행위를 보면서 자기 믿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 하리로다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면서 그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기 보다는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보면서 스스로 의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을 보면서 죄를 깨닫기보다 자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악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죄인이지 그들은 악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그들이 악인이지 이방이 악인이 아닙니다. 의인을 죽인 그들이 바로 가장 악한 자들입니다 이 시대도 의인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의인이 되고자 율법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악한 자들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음으로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고 행위는 내 몸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 행위입니다 믿음이 있어서 이런 행위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어서 율법을 사수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교회 안에 있는 죄인은 절대로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교회 안에 있는 악인들은 아직도 행위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악한 자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인정 하십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인만 인정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행위를 따라가는 악인의 결국은 망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염소 무리는 실제 행위로는 모든 것을 했지만 그들은 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보다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행위가 더 커보였던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악인은 바로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며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기 때문에 나를 인정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입니다

 

하늘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내가 예수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성도가 되시기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