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강,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예레미야 7:8-11절을 보면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믿음이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지 그저 형식에 치우쳐 있는 종교인이 되어서는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율법주의에 빠져 결국 자기 영혼을 멸망으로 이끌고 말게 됩니다.
종교는 아편과 같습니다.
공산주의자 마르크스의 주장이지만 사실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가를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선택을 하셔서 제사장 나라를 삼으셨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 제사장의 권위를 이용하면서 아편과 같이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제 한번이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까?
창세 이후로 노아 홍수 때도 세상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저버렸고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삼으셨지만 그들 역시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의를 행하다가 결국 20세 이상 이성이 있는 사람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사사 시대 이후로 계속해서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았으며 왕정 시대에는 계속해서 타락을 거듭하다가 결국 북 이스라엘은 아수르에 멸망을 당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70년 만에 포로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지만 예수님께서 오셨을 당시에는 지독한 율법주의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모두가 종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된 것이 아니라 형식에 치우친 종교인이 되어서 아편에 중독이 된 것과 같이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심지어는 율법을 연구하는 율법사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율법이 성행을 하고 있습니까?
종교적인 의식이 마치 굳건한 성벽과도 같이 자리하고 있어서 감히 어느 누구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따라 하지 않으면 마치 구원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교인들 마음에 자리하고 있어 마치 소가 푸줏간에 끌려가는 것 같이 저항한번 못하고 꽁무니를 따라 가고 있습니다.
아편보다 더 심하게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종교인으로 행하는 행위들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 지금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면 무슨 큰 일이 날 것같이 중독이 되어서 그것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제 말이 심합니까?
스스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인 제가 보기에는 아편도 중독성이 가장 강한 아편에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들과 같이 거기에 매여 있는 자신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유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해야 조금 안심이 되어서 그것을 자유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편 중독자는 아편을 해야 편안합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주의자는 율법을 지켜야 편안합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단 한 가지라도 내가 그것을 안 하고는 견디지를 못해서 혹시 내가 잘못되는 것 아닌가 하면서 마치 아편 중독자처럼 다시 아편을 하기 위해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자유를 누립니다. 그 자유는 법을 초월한 자유이며 어떤 법도 대적을 하지 못하는 그런 자유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종교적인 행위의 법에 구속이 되어서 그것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하지 못하면 교회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무슨 거짓말을 했습니까?
예레미야7:4절을 보면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제사장들이 거짓말을 했습니까?
그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까지 솔로몬의 성전이 그대로 있었고 그곳에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성전을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는 제사장들의 말을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하나님의 전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 전에 영원히 함께 거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사장들이 규례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셨습니다.
건물 외형은 그대로 아직도 솔로몬이 지은 그 성전이 맞지만 하나님께서 떠난 빈껍데기 건물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은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데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사라진 제사를 드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성전은 하나님의 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분명히 솔로몬이 지은 그 성전이 그대로 있고 또 그 안에서 지금 유다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가 없는 빈껍데기 건물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몸이 분명히 성령의 전이 되어야 하는데 성령께서 거하시지 않는 상태에서 예배를 아무리 거룩하게 드린다 해도 그 예배는 거짓 예배가 되고 무익한 행위를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성령이 내 안에 임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는 무익한 예배가 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보혜사가 오셨습니까?
그것을 확증하고 있습니까? 남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니까 당연히 나도 받았다고 하지 마시고 정말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고 있는지 내 스스로 확증을 해 보았느냐는 말씀입니다 만약 보혜사 성령이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도 모르고 예배를 드린다면 그는 한 마디로 무익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없이 무슨 예배를 드립니까?
그것은 바알에게 제사를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근사한 교회에서 십자가를 걸어 놓고 감동이 넘치는 찬양대가 있는 그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한 마디로 바알에게 예배를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임재 하셔야 합니다.
만약 진리의 성령이 오시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지금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하는 무익한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를 함부로 드렸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솔로몬의 성전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 성전을 하나님의 전이라고 믿었습니다.
만약 솔로몬의 성전이 아니라 자기들이 임의로 다른 성전을 만들어서 제사를 드리고 했다면 아마 백성들이 의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도 그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거짓말을 해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없으면 무익합니다.
무엇이 왜 무익한가를 깨달아야 내가 무익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행하는 것을 무익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유익하다고 믿기 때문에 거짓말에 속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무이하다는 것을 안다면 절대로 속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솔로몬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면 모두가 속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요한복음 6:63절을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육은 무익합니다.
육이라는 개념을 바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내 눈으로 보이고 내 육체로 행하는 모든 것이 바로 육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예배도 육으로 드립니다, 찬양도 육으로 찬양을 합니다, 기도도 육으로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은 다 무익하다는 말씀입니다 내 육이 하는 나쁜 일만 무익한 것이 아니라 내 육체가 하는 모든 것이 다 무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예배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하는 것, 찬양 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런 것을 하나도 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주장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영지 주의 사상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가졌기에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내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헌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육체로 하는 이 모든 일이 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무익한 것을 무익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육체로 행하는 제사를 보면서 무익하지 않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향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솔로몬의 성전만 보였습니다.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에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그들이 행하는 그 일이 다 무익한 것인 줄을 깨닫지 못 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인데 육체의 모습을 보고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수가 있어야 합니다.
보이는 건물 그리고 내 육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바로 보혜사 성령이 임재 하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나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바로 그것이 유익한 일이 된다는 것을 지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사는 잘 드렸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서 흠 없는 양을 잡고 소제와 번제를 드리면서 지극 정성을 다해서 제사를 드렸지만 그 안에 예수가 사라졌습니다. 예수가 없는 성전은 하나님의 전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가 없는데도 그것이 유익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한 마디로 거짓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건물을 경쟁적으로 짓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를 짓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안에 그리고 그들이 모여 있는 모임 중에 그들 안에 보혜사 성령이 없다면 그들의 예배는 한 마디로 바알에게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수가 없는데 아무리 좋은 건물 좋은 모양으로 예배를 드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거짓 예배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지혜롭습니다. 예수를 전면적으로 부인을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면 자기들의 행위를 보기 때문에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렇지 않습니까?
근사한 솔로몬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기들의 행위에 미쳐서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나타나는 모습으로 정성을 다할까 그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한번 중독이 되면 그 다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 행위만 집착을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바로 솔로몬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에게 예레미야를 통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성전 안에서 도적질을 하고 또 살인을 하고 또 간음을 하고 거짓 맹세를 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면서 자기들도 알지 못하는 신을 쫓아가는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도적질 했습니까?
바로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도적질 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쳐 주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맡겨 두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 도적질해서 율법주의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오직 예수를 가르쳐 주지 않고 자기들이 드리는 제사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속여 이스라엘을 도적질 했습니다. 예수님의 양들을 도적질해서 사단에게 주어 다 멸망을 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도적질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도적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 했습니다.
하늘 백성을 도적질해서 다 사단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예수가 없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자기들은 선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속여서 도적질을 한 것입니다 지금도 마치 교회만 나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속여서 도적질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종교인들을 만들어서 자기들이 가르치는 행위에 중독이 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아직 사도들이 살아 있는 초대 교회에도 율법주의가 들어왔는데 지금이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자기가 율법주의자인지도 모릅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가 율법주의자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살인을 했습니까?
예수가 없으니까 진리를 모르니까 그 영혼들을 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살리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영적인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육적인 행위에 집착을 하다가 결국 그것에 중독이 되어서 영혼들을 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가 없으면 죽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데 예수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됩니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이스라엘은 행했고 그렇게 행한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지독한 율법주의 사상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서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살리는 영을 쫓아 진리를 따라 간 것이 아니라 죽이는 육을 따라 행했기 때문에 바로 그 제사장들이 살인자라는 말씀입니다 무익한 육을 따라 행하다가 이스라엘 전체를 죽게 만든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나를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육체를 따라 가는 자는 살인자입니다
영을 따라가지 않고 진리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자기가 행하는 육체의 모습을 보고 믿음을 판단하는 사람은 모두다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간음을 했습니까?
두 남편을 섬겼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또 율법을 따라 갔습니다. 예수와 율법 두 남편 사이에서 자기들이 편한 데로 어느 때는 믿음을 어느 때는 율법을 요구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영적인 간음이 성행하는 시대입니다
예수와 율법 두 남편 사이에서 자기가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를 모르고 예수의 남편도 섬기고 율법의 남편도 섬기면서 음란하게 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간음을 하면서도 자기는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으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영의 사람은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지만 육의 사람은 영의 일과 육의 일을 도저히 분별하지 못 합니다 오히려 육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 자신은 영의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예수가 없으면 그것은 바알에게 분향을 하는 것입니다
성전에 예수가 없다면 그것은 어떤 제사를 드리더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고 그 제사는 바알에게 분향을 하는 것이며 또한 다른 자기도 모르는 신에게 분향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 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나와서 행하는 그 일을 보고 성령을 받았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나로 오직 예수를 믿게 감동을 해 주시는 것이지 내 행동을 좋게 만들고 행동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을 모르면 자기가 하는 행위를 보고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솔로몬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자기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교회에 나와서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확증도 없이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자기 영혼에 대한 확증을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의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 행위를 보고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떠들고 있습니다. 구원이 없는 사람이 구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가증한 일입니다 내 스스로 정말 내 안에서 보혜사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고 있는 가 확증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누가 도적의 굴혈로 만들었습니까?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도 똑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원이 없는 교회는 강도의 굴혈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영혼 구원에 대해서 확증을 하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강도의 굴혈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21:13절을 보면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똑 같이 행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잡혀 가기 전에 이스라엘이나 예수님께서 구원을 하시기 위해 오신 이스라엘이나 역시 똑 같이 강도의 굴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늘 그래왔습니다. 초대 교회를 지나가면서 교회는 급속히 타락을 했으며 심지어는 면죄부를 파는 일을 행했고 지금 이 시대도 영혼 구원보다도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 의식에 사로 잡혀서 강도의 굴혈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주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바로 영혼 구원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바로 그 교회는 강도의 굴혈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구원론에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아니 자기 교회에 나온 그 자체로 거기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내 안에서 반드시 확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남을 따라 분위기를 따라 남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성령이 자기 안에 임한 사람은 구원을 분명히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사람은 자기 행위가 조금 나아 보일 때는 구원을 받은 것 같다가도 행위가 나빠지면 구원이 취소될 것 같아 행위에 더욱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편 보다 더 심하게 중독이 되고 만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마음이 자기에게 있다면 바로 종교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아편에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편을 맞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에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어떤 행위를 하지 않으면 마치 아편 중독자처럼 불안해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그 행위를 하려고 다시 아편을 맞으려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것만으로도 평강과 기쁨이 찾아옵니다.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고 오직 믿음 안에서 참 평강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기 위해서는 내 안에 반드시 진리의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아편을 맞은 종교인으로 살아가지 마시고 믿음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고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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