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12강, 다른 복음

윤주만목사 2019. 4. 25. 19:54


12, 다른 복음

 

갈라디아서 1:10절을 보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면서 다른 복음에 대해서 강하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후 불과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갈라디아 교회는 율법주의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변질 시키고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이냐고 한 마디로 정의를 하면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은 참 복음이고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은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것은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좋게 하면 참 복음을 따라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은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간단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내가 지금 하는 있는 행위가 사람을 좋게 하고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은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말씀은 갈라디아 교회에 하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하는 어떤 것으로 내 기쁨이 되고 사람의 기쁨이 되었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에 내가 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에게 좋게 하는 것은 무조건 다른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사람이 잘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26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다른 복음이 무엇이냐면 사람이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려면 그 행위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믿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행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그대로 다 보입니다. 그 행위를 보고 칭찬하는 사람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고 가르칩니다.

십일조를 많이 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헌신하고 있는 사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칭찬을 받으면 얼마나 좋고 그 마음에 기쁨이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바로 이렇게 좋게 하고 기쁨을 주게 하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행하는 그것으로 사람을 좋게 하고 사람의 기쁨이 되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에 미혹된 것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헌신이라는 것이 사람의 기쁨이 된다면 그것은 다른 복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에서 찬양을 아주 잘 했습니다. 그것으로 내 마음에 기쁨을 얻었다면 그것은 사람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을 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것으로 내가 사람들의 칭찬이 되고 그것으로 내 마음에 기쁨을 얻고 있다면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사람의 기쁨이 되게 하는 것을 행하고 그것으로 내가 기쁨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목사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많은 교인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은 믿음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보이는 행위에 대한 칭찬이라면 그것은 사람을 좋게 한 것이요 또 사람의 기쁨을 구한 것이 됩니다.

 

모든 율법주의 사상이 여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율법을 잘 지키면 그것으로 사람이 좋게 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고 그것이 사람의 기쁨이 된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임에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람의 칭찬과 그리고 기쁨을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나 은사는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아주 잘 지켜보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은사가 아름답게 나타나 보세요. 아마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칭찬을 할 것이고 그것으로 여러분의 마음에는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든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제가 교회 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더욱 더 복음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또 그것이 사람들의 기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칭찬을 받게 되고 사람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한번 그 맛에 길들여지면 그것을 탐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래도 칭찬을 받으면 춤을 춘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번 그 칭찬을 맛보고 그 기쁨을 맛본 사람은 그것에 길들여지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면서 더욱 더 그것을 탐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는 사람에게 자꾸 무엇인가를 요구합니다. 그것을 하나 하면 칭찬을 받고 또 다른 것을 하면 또 칭찬을 받게 되면 그것이 사람의 기쁨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것에 길들여져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율법주의에 빠져 다른 복음을 쫓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그렇게 사람을 좋게 만들고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내가 새벽 기도를 잘 못나가던 사람이 새벽 기도를 나가보세요. 당연히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 칭찬이 마음에 기쁨이 돼서 더욱 더 열심을 내서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루에 기도를 세 시간 해 보세요 아마 교회 목사님이 칭찬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점점 더 기도에만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고 그것이 기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사람이 칭찬을 받게 되면 그것이 기쁨이 되고 더욱 더 선한 일을 찾아 하려합니다. 이렇게 되면 마음은 어느 덧 부자가 되어 복음을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사람이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성령을 받은 성도만이 이것을 절제할 수 있고 복음을 위해 헌신을 하면서도 그것으로 내 기쁨이 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하나님의 일을 하더라도 율법주의에 미혹된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그 행위를 보며 칭찬을 받고 그것으로 기쁨을 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6:24-25절을 보면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율법으로 부요해져 있습니다.

사람의 칭찬을 구하는 것 사람의 기쁨을 얻는 것 이런 것은 모두 율법에서 나온 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율법을 하나 지키다 또 하나 지키고 그러다 다른 사람 보다 더 많은 율법을 지키다 보면 그것이 자기를 좋게 만들어 버리고 자기 안에서 기쁨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하는 행위를 보며 부요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율법주의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율법주의는 자기 행위를 보고 마치 자기 믿음이 좋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것이 사람을 좋게 하고 그것으로 사람의 기쁨을 얻는 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지 못하면 결국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누가 칭찬을 받습니까?

그리고 누가 사람의 기쁨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가난한 자가 아니라 부요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100만원 내는 사람과 십일조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사람의 기쁨이 되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 누가 기쁨을 누리겠습니까? 그것을 내는 사람은 기쁨을 누리지만 내지 못하는 사람은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부자가 됩니다.

자기 행위를 보면서 그것만 보아도 배가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고 그리고 주일 성수를 하고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 헌신을 하고 그것으로 칭찬을 받아 보세요. 그 사람은 이미 배가 불러 더 이상 아쉬운 것이 없게 됩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말합니다.

자기 행위를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것입니다 굳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먹지 않아도 행위가 워낙 좋기 때문에 그것만 보아도 배가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라는 것은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내 자식이 서울대를 가 보세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부모들이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내 행위가 좋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그것이 마음에 기쁨이 되면 배가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렇게 간절하지가 않습니다.

 

이미 사람들로부터 좋게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칭찬을 받고 있고 사람의 기쁨을 얻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기 위해 심령이 가난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주 작은 율법의 한 모양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에 미혹이 되면 빠져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좋게 되었고 그것으로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믿음 플러스 행위를 주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것이 자기를 좋게 하고 있고 사람의 기쁨을 얻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율법은 사람을 좋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좋게 만들어 버리면 그것을 보며 기쁨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아니라 해도 역시 그 마음에는 율법주의 사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예수라는 말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것이 사람을 좋게 하고 기쁨을 주고 있는데 오직 예수만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것으로 이미 마음은 한껏 부자가 되어 있고 배가 고픈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리 소중한 것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복음이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애통하게 되어 있고 그 심령은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행위로 칭찬을 받기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칭찬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보이지는 않지만 믿음이 있는 성도는 그가 믿음이 있는 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도의 칭찬은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49:20절을 보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복음의 좋은 것을 취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왔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칭찬을 구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구원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로 기뻐하기 보다는 사람의 행위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사람을 좋게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좋아 지면 그것을 간증하러 다니느라고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사람을 좋게 만들기 위해 제자 훈련을 하고 사람을 좋게 하기 위해 영성 훈련을 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통해 사람이 조금 좋아지면 칭찬을 하고 그것으로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

 

사람을 좋게 하려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좋게 만들기 위해 교회에서 행하는 그것들이 결국 그것으로 사람의 기쁨이 되어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존귀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 더 존귀해 지려고 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잘 됩니까?

물론 조금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 변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치 자기 좋아진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좋아진 것으로는 절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내 노력으로는 안 됩니다

나를 변화 시키고 내가 조금 나아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시편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길을 정하시고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갈 길을 나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더 잘고 계십니다. 내가 내 노력으로 변화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심으로 내 행위도 조금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노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49:18절을 보면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자기 스스로 좋아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살아 있는 동안에 자기 스스로를 축하합니다. 자기 스스로 축하를 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율법주의는 존귀에 처하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이유는 자기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좋아 진다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겨우 담배 끊고 술 안마시고 주일 잘 지키고 하는 것으로 자기 행위가 무척이나 좋아 진 것같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내는 십일조를 보면서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그가 행위가 아무리 좋게 보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그것이 기쁨이 된다 할지라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에 굴복하지 않으면 그는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에 미혹된 자들은 오직 믿음만 가지고 안 됩니다 자꾸 행위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보면서 스스로를 축하합니다.

나 예수 믿기 전에는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얼마나 개차반으로 살았는데 이제 많이 변해서 이제는 그런 것 다 끊고 주일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위해 교회에 봉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하면서 스스로를 축하하고 그것을 통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기쁨을 누립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온 율법을 다 지키다 하나를 범하면 다 범한 자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형제가 돈을 꾸러 오면 묻지도 않고 줍니까?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고 있습니까?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도 돌려 대로 있습니까? 그리고 선을 행할 줄 알고 다 행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변했다고 하는 그것이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온 율법에 비추어 보면 아주 빙산의 일각 정도 변한 것을 가지고 스스로를 축하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그것으로 기쁨을 누리고 있는 가장 어리석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이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온 율법에 겨우 몇 개를 하고서 스스로를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좋아 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보면서 마음에는 한껏 부자가 되어 있고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는 세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존귀에 처하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0:10절을 보면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행위를 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거룩함을 입은 존귀한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실 때 내가 행위를 좋게 했습니까?

 

아직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잘 했을 때 내가 그 행위를 보고 스스로 축하하지 않을 때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이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어 있는 자들은 믿음에다 자꾸 행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행위는 사람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가 좋아 지면 스스로를 축하하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그것이 기쁨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다른 복음을 쫓는 자가 되고 맙니다.

 

성도는 이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스스로 축하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기쁨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빛도 없이 지나가는 바람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만이 존귀에 처한 자기 자신을 바로 깨닫고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것이 사람을 좋게 만드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되고 그것을 통해 사람의 기쁨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의 환심을 사게 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8-9절을 보면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복음은 오직 예수입니다

그것에 무엇이라도 포함을 시키려는 행위는 다른 복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라 해도 복음에다 그것을 플러스 시키려는 순간 다른 복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하나님을 좋게 한다고 하는 거의 모든 행위들이 사람을 좋게 하는 것임을 모르고 다른 복음에 미혹되어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는 이 행위가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인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주의에 이미 깊게 빠져 있는 사람은 자기가 그것을 분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기가 하는 모든 행위가 하나님을 좋게 하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가 여러분에게 저주를 가져 올 것입니다

내가 하는 행위로 나 스스로를 축하하고 있고 그것으로 기쁨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가 아니고는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행위를 보고 자기가 조금 좋아진 것을 보고 스스로 축하하면서 그것으로 기쁨을 누리고 있다면 여러분은 모두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는 자들입니다 구원을 이룰 수도 없는 그것을 보고 기뻐한다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는 행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 행하는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하는 그 행위가 스스로를 축하하게 만들어 버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그의 단번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얻은 그것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좋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좋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오직믿음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예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것에다 어떻게 하든 행위를 포함시켜서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좋게 하고 그것으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습니다.

 

복음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존귀에 처해 거룩함을 입은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