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62강, 서원(2)

윤주만목사 2019. 4. 10. 06:38


62, 서원(vow, 誓願)(2)

 

창세기 35:1절을 보겠습니다. (53)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제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기둥으로 하나님의 전이 되게 할 것이라는 서원을 이루지를 않았습니다. 그 서원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벧엘로 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왔지만 야곱은 서원을 한 하나님의 전을 잊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서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벧엘로 가게 하시고 있습니다.

 

창세기 34장이 디나의 사건입니다

이 다니의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서원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나안에 돌아왔으면 야곱은 서원한 대로 벧엘로 가서 자기가 기름 부었던 기둥이 하나님의 전이 되게 했어야 했는데 그 이유로 디나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벧엘로 갑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던 자리고 그때 야곱이 서원을 했습니다. 자기가 다시 아비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고 서원을 했는데 갚기를 더디 하니까 하나님께서 디나로 하여금 죄를 물으신 것 같이 보여 집니다. 야곱에게 단 하나 뿐인 딸을 하몰의 아들 추장 세겜이 강간을 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서원을 이루었습니다.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것은 서원을 이룬 것입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자기가 또 서원을 한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서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빨리 갚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서원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서원을 내가 이루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 서원을 반드시 이루시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서원한 것에 대해서 요구하시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벧엘로 가서 단을 쌓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가서 단을 쌓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 돌이 누구를 상징합니까?

예수 그리그도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에 들어왔으면 당연히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하는데 그 서원을 갚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갚게 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십일조는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앞에 서원한 두 가지를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십일조 문제만 남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저도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야곱이 십일조에 대한 서원을 하고 난 후에 이 서원을 어떻게 갚았는지를 성경에서 말씀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히브리서 711절에서 십분의 일을 받은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을 때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하면 야곱도 역시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을 때 십일조를 바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야곱이 서원을 하고 십일조를 받쳤다고 하는 말씀이 더 이상 나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을 때 바쳤습니다.

아마 야곱이 십분의 일을 바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디나의 사건과 같이 분명히 어떤 보응을 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십분의 일에 대해서는 어떤 보응도 따르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십분의 일을 바쳤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서원한 것을 다 갚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먼저 자기 아비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청함을 받아 교회에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고 택함을 입은 성도가 된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의 전이 되게 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을 통해서 십분의 일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시편61:5절을 보겠습니다. (845)

하나님이여 내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다윗의 시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서원을 들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까지 사람들은 서원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서원은 무조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하듯이 하고 그것을 반드시 사람이 갚아야 하는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서원을 들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서원을 갚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에는 서원을 갚았다는 말씀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서원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야곱의 경우에서도 보았지만 서원은 하나님께서 들어 주셔야 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서원을 했다 해도 그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들어 주셔야 합니다.

야곱이 가나안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야곱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창세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 서원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서원을 들어 주셔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본입니다

서원의 기초도 모르고 무조건 교회 안에서 서원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반드시 서원은 먼저 하나님께서 들어 주셔야 합니다. 아니 서원의 가장 기초는 내 영혼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가 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가 어떤 서원을 한다 해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61:1-4절을 보겠습니다. (845)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셀라)”

 

지금 다윗이 무엇을 말씀을 합니까?

자기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부르짖고 있고 기도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서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서원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을 하지 않고 엉뚱한 서원을 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정죄에 빠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서원을 위해서 얼마나 부르짖고 있습니까?

이 서원에 대해서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교회만 나오면 마치 구원을 얻은 것 같이 생각을 하고 있어서 이 서원을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서원을 하지 않고 필요도 없는 서원을 하고 그것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서원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있는 다른 서원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내 기도에 귀 담아 들어달라는 간절한 호소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구원을 받는 성도는 이 구원에 대해서 정말로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구원을 당연히 받았다고 하면서 이 구원에 대해서 간절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르짖습니까?

내 기도를 귀 담아 들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제가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와 가라지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성도는 성경을 보면서 계속해서 이 구원에 대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롭게 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가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지금 이 기도를 하고 있고 이렇게 간절하게 부르짖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다윗은 누구보다도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럴지라도 다윗은 늘 자기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확증을 하고 또 확증을 하는 성도였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구원파라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성도라면 정말 다윗과 같이 이런 간절함이 늘 있어야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 행위를 잘 하고 또 그것을 내 보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도 모릅니다.

자기 서원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서원을 하나님께서 빨리 갚아야 하는 줄을 모르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야곱과 같이 외삼촌의 집에서 안주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는 절대로 서원을 갚지 못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의 서원을 갚게 하셨습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야곱의 피난처는 하나님이십니다. 원수를 피하는 경고한 망대가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을 죽이려고 하는 원수는 에서였지만 지금 이 시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원수는 영적인 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영적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가 자유 함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다윗은 주의 이름을 경외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을 주셨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부르짖고 또 내 기도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해서 천국을 기업으로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얻을 기업을 나에게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천국만을 생각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서원이 무엇인가를 아는 성도는 오직 천국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서원도 갚지 않은 사람들이 필요도 없는 다른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서원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갚았습니다.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서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서원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의 교회에서 서원한 것은 갚았다고 할지 몰라도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서원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자기가 누구인줄도 모르고 무조건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서원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실 기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서원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셔야 합니다. 정말 이것을 위해서 다윗과 같이 부르짖어야 하고 또 내 기도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업을 얻었습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업을 얻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주의 이름을 경외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경외를 하지도 않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경외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입으로는 시인을 하고 있지만 행위로는 부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어떤 행위로 부인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 그는 주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는 자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기업을 얻을 수 있습니까?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그리고 은사주의와 성화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절대로 주를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과연 주의 이름을 경외하고 있는 사람입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믿음의 증표하고 하면서 십일조를 내고 있고 주님의 날이라고 하면서 주일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멸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원 갚기를 더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죄를 묻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서원 갚기를 더디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마치 교회 안에 들어오면 서원을 갚은 것처럼 미혹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해석하지 못하게 해서 마치 정통이라는 교회 안에 있으면 모두가 서원을 이룬 것처럼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을 강의해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짐승과 이방의 교회가 짐승이 되어 있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말 극소수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 빼고는 다 이 짐승에게 미혹이 되어 우상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교회 안에서 하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짐승 안에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또 이방의 교회도 어린양과 같이 보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둘 다 자기들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실제는 짐승에게 경배를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서원을 갚았다고 생각을 하지만 전혀 갚지 않고 짐승에 의해서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가장 기초가 되는 서원도 갚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서원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그 서원에 대해서 부르짖지도 않고 있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다 받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 서원을 굳이 또 갚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 7:14절을 보겠습니다. (918)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음녀입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이 성도들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음녀는 자기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갚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화목제를 드려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2:2절을 보겠습니다. (388)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잘 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화목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이 화목제물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누가 드려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잠언의 음녀는 자기가 화목제물을 드렸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화목제물을 드렸다는 말은 너에게 구원을 주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너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지금 소년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다 여기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만 들어오면 화목제를 드려서 구원을 얻은 것같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만 구원이 있다고 한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정통이라는 교회를 만들어 놓고 음녀가 되어서 자기가 화목제를 드렸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지나가는 소년을 끌어 들여서 그 소년이 결국에는 푸주 간으로 가는 것과 같이 사망을 당하게 됩니다.

 

교회는 늘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화목제물을 되셨지만 자기가 화목제를 드렸으니까 이제 구원의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면서 어리석은 소년들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소년이 아니라 아직 진리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이렇게 교회가 음녀가 되어서 미혹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에 화목제를 드린 것으로 믿고 자기가 서원을 갚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서원을 갚았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음녀는 이렇게 자기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구원을 받았으니까 걱정을 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렇게 음녀에 의해 끌려 들어가서 자기가 어떻게 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잠언 7:22-23절을 보겠습니다. (918)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음녀는 서원을 갚았다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음녀는 서원을 갚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은 음녀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을 갚았다고 하니까 다 그렇게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년이 곧 그 음녀를 따라갔느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 음녀에게 걸리면 소년은 도무지 그것이 음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화목제를 드려 서원을 갚았다고 하니까 모두가 그렇게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음녀도 서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서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제는 충분히 아실 수 있습니다. 서원은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의 구원을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타락을 하는 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서 너무 좋게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언제든지 음녀가 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녀는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받은 것 같이 안심을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 합니다

죽을 때가 되어서도 모릅니다. 아니 죽어서도 자기가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교회는 늘 그렇게 음녀로 변해서 아직 복음의 깊은 비밀을 모르는 소년과 같은 사람이 들어오게 해서 그들을 다 죽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렇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교회가 그렇게 음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죽습니다.

이런 비유의 말씀들을 바로 이해를 하지 못하면 그 영혼은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까? 다른 교회는 잘못 되었을지라도 그래도 자기 교회만은 정통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음녀를 사람의 눈으로는 도무지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 소년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구원에 대해서 말하고 자기 교회는 화목제를 드리고 서원한 것을 갚았다고 하면 소년은 그것이 무슨 말인 줄도 모르고 그저 따라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잠언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23:22-23절을 보겠습니다. (298)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찌니라

 

서원을 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원을 하고나서도 자기 서원을 갚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지 않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아예 맹세를 하지 않았더라면 죄를 입지 않을 것이다. 너희 입으로 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 입을 놀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맹세했으면 그대로 해야 한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예 서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죄를 입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죄는 영적인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본다고 하니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 하지 않았으면 죄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벌을 받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서원을 하지 않았으면 죄를 입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와 나의 하나님이라고 서원을 했으면 반드시 나의 하나님이 되게 하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밖에 죄인으로 살지언정 교회 안에 악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했으면 죄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입니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서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냥 죄인으로 살다가 소멸이 되고 만다는 것을 우리가 내세에 대해서 강의를 했을 때 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은 분명히 특별한 형벌이 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축복과 저주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미 선택을 하셨기 때문에 야곱은 서원을 갚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서원은 야곱이 갚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갚게 해 주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예표입니다

이제 우리가 야곱을 통해서 예표를 보았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서원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차라리 서원을 하지 않았다면 죄를 입지 않을 수 있지만 서원을 하고 갚지를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죄를 물으시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너의 입으로 한 말은 반드시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라고 불렀으면 반드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렇게 서원을 해 놓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반드시 죄가 되어서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미 서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서원을 안 지키면 그에게는 반드시 죄가 따르게 되고 반드시 그 서원대로 실행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를 말든지 하나님이라고 부르려면 반드시 내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도 그 이름을 왜 부르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다 교회에 나오면 마음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원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야곱의 서원과 같다는 것을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도 그것이 서원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며 그 서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서 우러난 대로 행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전도서5:4-5절을 보겠습니다. (952)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신명기 말씀과 똑 같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매자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우매자가 누군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을 우매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우매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원을 하였으면 빨리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무도 게으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부르고 있으면서도 서원을 갚기를 더디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행위에 대해서는 열심을 내고 있지만 실제 서원을 갚는 것을 너무도 더디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매자는 모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부르고 있으면서도 자기 서원을 갚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냥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교회에 나와 있으면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은 우매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서원을 빨리 갚으라고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너무도 게으릅니다.

 

행위는 정말 잘 합니다.

그러나 서원을 갚는 것은 너무도 더디 하고 있습니다. 우매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 안에서 자기가 무슨 영적인 죄를 짓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으며 지혜자가 되어서 빨리 서원을 갚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는 누구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매자는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우매자인지 지혜자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부르고는 있지만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하고는 있지만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어서 서원을 갚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갚을 수 없는 서원인데도 이 시대는 이 믿음을 너무도 모르고 있고 믿음을 아주 값싸게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믿음을 폄하하는 이야기를 너무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매자들에게는 이 오직 믿음이 교회를 망가뜨리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매자들은 이 믿음이 얼마나 든든하고 또 그것이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도 교회 안에서 믿음을 천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매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 우매자들은 믿음의 비밀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지 않은데도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자기들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매자는 서원을 갚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있으면서도 서원을 갚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매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차라리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차라리 우매자가 될 바에는 하나님을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본인에게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세상 죄인으로 살지언정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부르면서 서원을 갚지 못하는 우매자가 되었다가는 화를 당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화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서원을 갚지 않는 사람이 화를 당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 있으면서 이 서원을 갚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우매해서 자기가 서원을 갚았는지 안 갚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원이 무엇인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원을 합니다.

자기가 갚아야 하는 서원은 갚지도 않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빨리 갚아야 하는 서원이 있는데도 그것은 모르고 또 다른 서원을 하면서 그것을 빨리 갚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서원은 서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이 서원을 갚지 않고 다른 서원을 하고 그것을 갚겠다고 하는 자는 정말로 우매한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명기 23:18절을 보겠습니다. (298)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지금 무슨 말씀입니까?

서원을 갚지 않고 서원을 한 것을 아무 서원이나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짜 갚아야 할 서원은 갚지도 않은 사람이 하나님을 부르면서 다른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서원을 받으시겠습니까?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리 서원을 했어도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기 개 같은 자가 누구입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서원은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원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을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못 받은 자가 서원을 하면 하나님께서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것을 내 앞에 가져오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기입니다

이것은 교회입니다. 개 같은 자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자입니다. 그런 자들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도 못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면서 그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증한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서원을 갚았다고 하면서 대단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서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미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서원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시대 서원을 강요하는 자는 창기의 소득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이 시대 교인들은 굳이 하겠다고 하면서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이미 서원을 갚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은 성도는 이미 서원을 갚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원을 갚은 성도는 이제 도무지 맹세하지 않고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혼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서 구원을 얻기를 부지런하게 하고 있습니다. 서원을 빨리 갚아서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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